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249)
괴식식당-249화(249/613)
249화. 각오 (2)
신명 무구는 신의 숫자만큼 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는 신명이 존재했었던 신의 숫자만큼 있다.
이미 신명을 잃어버린 신이나, 소멸 당한 신의 신명 무구도 알음알음 전해진다.
그 수많은 신명 무구 중에서 검의 신명 무구, 아이온.
그것은 한눈에 보기에는 가치 없는, 불량품으로 보인다.
칼날은 매끄럽고 고르나 길이는 비정상적으로 길어 한손으로 다루기 적합한 규격이 아니다.
칼날과 자루를 구분하고, 적의 공격을 막아야 할 코등이가 없다.
애초부터 자루가 엉성한 탓에 제대로 고정되지 않은 탓이다.
하도 후려쳐서 폼멜은 오래전에 없어졌다.
신의 상징, 신급 아티팩트의 절정인 신명 무구들은 대체로 화려한 외관을 지녔기에 녀석의 가치는 매우 낮아 보인다.
하지만 아이온을 아는 사람이라면 저것이 무수한 신명 무구 중 최정상급임을 부정하지 못한다.
적어도 크라이가 아는 한 아이온이 최강이었다.
아이온의 권능은 실로 담백하다.
검을 쥔 자가 다뤄본 검의 능력을 모두 사용할 수 있다.
별거 아닌 능력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용자가 유승우였으며 모든 검에게 사랑받는 존재라는 게 문제였다.
“여전하군…….”
승우가 아이온을 드는 순간부터 그는 방어적으로 결점이 아예 없어진다.
수호검 디펜더의 안티매직필드, 성검 엘피스의 파마 결계, 뇌검 케라우노스와 천검 아스트라페의 일렉트릭 실드, 용살검 카일레우스의 드래곤 스킨, 화정검 레반테인의 화식 능력 등등.
검을 들 때부터 자동 적용되는 방어기재가 무수하게 적용된다.
그것뿐인가.
성운검의 속도 증가 버프, 강마검의 마력 증가, 에케작스의 근력 증가 등등.
이롭게 작용하는 효과는 천 개가 넘는다.
안 그래도 완벽했던 방어 기술을 다채로운 마법 효과가 보조한다.
완벽을 넘어서 초월적인 방어력이다.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마법 효과를 두르고 승우가 검을 겨눴다.
“시시하게 하진 말아줘. 이 녀석도 오랜만의 싸움이라 흥분했거든.”
아이온이 일렁거렸다.
강마검의 능력인 악의 분열이다.
모든 공격을 5배로 분열시키는 효과가 있다.
크라이가 그 효과를 떠올리는 것과 동시에 공격이 시작됐다.
아이온이 조각조각 갈라지며 섬광같이 뻗어왔다.
단순한 찌르기다.
하지만 니드호그의 내뻗는 속도와 강마검의 5배 증폭이 걸려 있어, 찌르기는 엄청난 속도로 다섯 개가 동시에 날아왔다.
크라이는 팔 끝부터 머리끝까지, 모든 기를 모아 방어 행동에 나섰다.
왼팔을 오른 방향으로 비틀고, 오른팔을 왼 방향으로 비튼다.
기를 나선의 모양으로 꺾어 상대의 힘을 흘려내는 방어 수법이다.
그가 만든 기술은 아니다.
지구의 기술로, 전사경(纏絲勁)이라 한다.
그의 생명을 여러 번 구한 기술이 이번에도 목숨을 구해줬다.
찌르기를 겨우 흘려냈다.
크라이는 동시에 하늘을 박차고 허공을 때렸다.
‘내가 한 번 움직일 때 두 번 움직이는 녀석이야. 적어도 공세를 이어가야 한다.’
그럴 작정이었다.
하지만 어째선지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가 크라이의 몸을 묶고 있었다.
“능력을 모두 쓸 수 있다는 건 이런 거야.”
니드호그의 능력은 마력을 증기압으로 바꿔서 조각난 칼날을 발사하는 것.
그리고 조각난 칼날을 뱀처럼 움직이는 것이다.
그러니까 방출과 조작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두 개의 능력을 동시에 사용한다면 찌른 후에 적이 공격을 흘렸다고 해도 칼날을 움직여 적을 완전히 동여맬 수 있었다.
“거기에 참월의 쇼텔을 썼지.”
“투명화 능력!”
“마법적인 투명화라 못 본 모양이야? 여전히 마법에 약하구나.”
하긴, 마법에 약하다기보다 마법을 상대해 본 적이 없다는 게 옳은 말이다.
마법사라면 크라이 앞에서 주문을 외우다가 머리통이 터졌겠지.
“자, 그럼 다시 처박혀 볼까.”
“!”
니드호그가 마력을 흡수해서 다시 한번 가속했다.
크라이는 다시금 몸으로 지면을 뚫기 시작했다.
아까보다는 충격이 덜하다.
투구의 힘으로 방어력이 증폭된 덕이다.
그러나 움직일 수가 없다.
온몸을 꽁꽁 에워 싼 칼날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몸을 짓누르고 있었다.
‘이건 중력을 조작하는 성운검의 힘이로군.’
검의 능력을 100% 활용한 숨도 쉬지 못할 정도의 연속 공격이다.
검 하나하나의 능력은 한계가 있다.
하지만 검과 검의 능력을 조합하면 그 가짓수는 무한대가 된다.
다채롭고 끝이 없는 공격에 크라이가 경악했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강해졌지?’
검의 능력과 검의 능력을 조합하는 일은 예전의 승우도 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마력이 부족해서 조금만 해도 지친다고 했었을 터.
이렇게 난사할 만한 기술이 아니다.
‘녀석에게는 1년도 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달라진다고? 녀석에게 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거냐!’
이래서야 수천 년 간 전쟁터를 누비며 단련한 것이 내가 아니라 저 녀석 같지 않은가.
그만큼 녀석은 이질적으로 강해졌다.
알고 있던 승우보다도 몇 배는 강하다.
‘초마왕? 아니, 초마왕 이상으로 강하다.’
어째서 이렇게 강해진 건가.
고찰을 할 시간은 없었다.
녀석의 맹공이 이어졌다.
칼날을 타고 검의 능력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엄청나군.’
절망적이기까지 한 힘의 차이다.
그러나 크라이는 웃었다.
‘이 정도는 해줘야 내 목표지.’
포기하지 않는다.
버틴다.
기회는 온다.
녀석이라고 해도 이만한 공격을 무한정하게 할 수는 없다.
언젠가 반격의 때는 온다.
이유는 단 하나.
어쨌든 신명 무구의 권능이 있다.
의지가 죽지 않는다면 크라이의 방어력은 무한정하다.
그리고 힘 또한 무한정하다.
힘과 방어력을 갖추고 이리 맥없이 질 수는 없다.
‘문제는 두 개구만. 내가 그때까지 못 버티거나.’
이 행성이 못 버티거나.
등으로 맨틀을 부수고 내핵으로 진입하며 크라이가 쓰게 웃었다.
이렇게 된 거 지오그란트가 조금만 더 힘을 내주길 기도하는 수밖에 없지.
* * *
승산이 없는 싸움을 이어가는 크라이처럼 오크 군세 또한 마찬가지로 절망적인 싸움을 하고 있었다.
지구의 군대는 다른 차원의 군대와는 달랐다.
난폭하게 자신의 무력을 뽐내는 것이 오크의 전쟁이라면 지구의 전쟁은 차가운 불꽃같았다.
이길 곳에는 이기고 질 곳에서는 진다.
하지만 지더라도 그냥은 지지 않았으며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완벽하게 통제되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 와중에 퍼스트 오더들은 흩어져서 자신의 팀만을 이끌고 유격작전을 했다.
이들이 공격하는 곳은 하나같이 적의 중요 지점이었다.
기지를 잃고, 보급선을 잃고, 반격의 기초가 되는 지점을 잃는다.
화가 난 오크가 반격을 준비할 때에는 이미 늦었다.
이들은 유격작전을 끝내고 이미 사라지곤 하니까.
이렇게 황당할 정도로 좋은 기동전을 보여주는 주제에 병사들은 거북이 같았다.
기지에 처박혀서 방어만 한다.
니가 와, 니가 와, 나는 안 가.
수성전의 기초이기도 하지만 사람 미치게 하는 전략이기도 했다.
이성을 잃은 오크가 달려들면 함정에 빠져서 전멸한다.
그래서 소극적이 되면 이번에는 퍼스트 오더가 뒤를 치고, 그 사이 병사들이 앞을 친다.
물 흐르듯이 유려한 공격과 방어의 전환.
시라노의 지휘에 오크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시라노의 주름은 펴지지 않았다.
그가 한껏 구긴 얼굴로 중얼거렸다.
“순조롭지만, 글쎄. 이 정도로 용병 업을 해먹을 수는 없겠지.”
“억측 아닙니까? 지금으로서는 우리 군의 압승으로 보입니다.”
“이게 녀석들의 전부라면 우리는 모든 차원을 지배하는 침략자도 될 수 있을 거다. 그럴 리가 없잖아.”
시라노는 평소의 느슨한 태도와는 반대로 적을 얕잡아보는 일 따위는 하지 않는 완벽주의자다. 질질 끌려가는 모습의 오크를 보면서도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았다.
오히려 누구보다 불안해하고 있었다.
“마무리가 중요해. 마무리가.”
전쟁은 끝나가고 있다.
막상 전쟁의 시기는 짧았다.
하지만 이 전쟁을 위해서 준비한 시간과 노력은 적지가 않다.
근 몇 개월을 여기서 보냈다.
크고 작은 많은 일이 있었다.
힘든 일도 있었고 즐거운 일도 있었다.
시라노의 긴 커리어에서도 찾기 힘든 대규모 작전이다.
이번 일이 끝나면 그의 훈장을 더 늘어날 것이고 이 사례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앞으로의 대처도 좀 더 잘할 수 있겠지.
이제는 그 모든 일을 마무리 짓는 마지막 단추만 남았다.
“여기서 실수하면 끝장이야.”
실수한다면 지금까지의 분전이 허사가 된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최고의 보험으로 고용한 유승우는 적의 대장을 봉쇄하는 최고의 역전패로 사용했다.
그렇다면 차선책의 보험은 어떻게 해야 할까.
만약의 상황이 발생한 후에 그 뒤처리를 위해서 아껴야 할까?
“한국어에서 내가 제일 감명 깊었던 말은 말이야. 아끼다가 똥 된다야. 전략적으로 아주 우수하면서 정론이라고 할 수 있지. 한국인의 지혜는 정말 대단해.”
“예?”
“블랙 호크에게 연락을. 이능력 해방의 준비를 하고 언제라도 나갈 수 있게 대기하라고 해.”
윤은형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지.
시라노는 혀를 차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 * *
대부분의 이능력자, 각성자는 자신의 능력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각성자의 능력은 대체로 자신이 바라던 것, 자신이 잘하는 일을 근본으로 한다.
관심종자인 백강혁의 능력이 슈퍼스타이고, 경계심이 많은 민이 탐지 능력을 갖은 이유가 그것이다.
하지만 그 둘은 퍼스트 오더가 될 법한 재능과 강한 능력을 가졌기에 만족하는 것이지 보통은 싫어한다.
왜냐면 바라던 것인 경우에는 ‘힘’이 부족한 경우가 많았고, 잘하는 일이 좋아하는 일인 경우는 매우 드물었기 때문이다.
퍼스트 오더 66위, 블랙 호크 윤은형은 어떠한가 하면, 아주 싫어한다.
끔찍하게 싫다.
무엇 하나 마음에 드는 게 없다.
능하가 피식 웃었다.
– 중2병 같아서 그래?
“아니거든?”
– 처음에 너 이능력 각성했을 때는 진짜 와, 존나 멋있다 싶었지.
“…….”
– 근데 나이 먹고 보니까 워우…….
“죽을래?”
통신기를 타고 들려오는 능하의 웃음소리가 짜증 났다.
윤은형은 바람에 흔들리는 머리를 고쳐 묶었다.
“중2 같다는 건 인정해.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라고.”
윤은형의 능력은 부스트다.
순간 강화 능력, 일시적으로 신체능력을 폭발적으로 상승시키는 계통이다.
백강혁의 슈퍼스타가 관심이라는 애매한 기준 때문에 자기 멋대로 능력치가 상승하는 것과는 다르다.
딱 정확하게 백 배만큼 강해진다.
자체적인 스펙으로도 충분히 강한 윤은형의 능력을 백 배나 강화시키니 강력한 능력임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대가가 크다.
“아프단 말이야.”
– 아프겠지. 보는 내가 다 아프더라.
그의 능력은 사용 전에도, 사용 후에도 미칠 듯이 아프다.
전치 8~16주는 기본으로 확정될 정도다.
과거의 전치와 지금의 전치의 기준은 아예 다른데, 지금 전치 16주라면 예전 기준으로는 소생불가능 판정이 떨어진다.
치명상, 죽는 게 당연한 부상이 더해지는 능력이니 거부감이 생기는 것도 당연지사.
한 번 능력을 사용할 때마다 엄청난 각오가 필요하다.
– 하지만 써야겠지. 나도 시라노 사령관의 판단에 동의해.
“왜?”
– 임페리얼 오크 하나하나를 뜯어보면 사실은 퍼스트 오더보다도 강하다고. 지금은 유리한 지형, 유리한 상황에서, 다수가 하나를 찾아서 죽이는 구도니까 이기는 거야.
“그런데?”
– 퍼스트 오더들도 랭크에 따라서 힘의 격차가 있지. 슈퍼스타가 있는가 하면, 소울이터도 있다고. 임페리얼 오크도 약한 놈이 있고 강한 놈이 있을 수 있어.
“진짜 강한 임페리얼 오크가 뜨면 큰일 난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지?”
– 그래. 그리고 진짜 나온 거 같다.
윤은형의 망막에 새로운 좌표와 몬스터 정보가 떠올랐다.
다른 오크보다 크고 붉은 이상한 오크다.
능하가 조금 낮은 톤으로 말했다.
– 아마도 놈이 적의 히든카드다. 교전에 나선 샌드스톰이 중상을 입고 3초 만에 패퇴했어.
“샌드스톰? 게릴라전의 전문가잖아. 그 사람이 3초 만에?”
– 휘두른 망치의 충격파가 살짝 닿았다는군. 네가 가야 해.
“알았어. 내가 간다.”
각오는 이미 했다.
은형은 오른손을 천천히 들었다.
그리고 손가락을 모아 스스로의 오른쪽 눈을 찔렀다.
눈알이 파열하고 피와 눈물이 흐른다.
그는 스스로의 눈을 터트리고 끄집어냈다.
낮게 짐승처럼 비명을 지른다.
능하는 착잡한 눈으로 그것을 지켜봤다.
몇 번을 보아왔지만 볼 때마다 좋은 기분은 아니다.
친구가 아파하는 것이, 그리고 친구의 모습이 바뀌는 것은 항상 불쾌하고 안쓰럽다.
점차 윤은형의 모습이 바뀌어갔다.
머리에는 커다란 두 개의 뿔이.
등에는 네 쌍의 검은 날개가.
인간의 오른쪽 눈이 있던 자리에는 악마의 눈이 자리 잡았다.
두개골을 부술 듯이 확장하는 눈.
날개를 펄럭이며 윤은형이 날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