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252)
괴식식당-252화(252/613)
252화. 뒤처리 (2)
베이스캠프가 철거된다.
공사장의 일은 여전하다.
자잘한 일은 사람이 하고 큰일은 기계가 한다.
사람의 힘을 강화시켜 주는 강화외골격 장치를 제외한다면 10년 전의 모습과 그다지 다를 것도 없다.
요란하게 움직이는 건설 장비를 보며 백강혁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제 이쪽의 일도 끝이네요.”
“그래. 이제 정말로 끝이야.”
시라노는 산처럼 쌓인 서류에 서명을 하며 하품을 했다.
눈 밑이 거뭇거뭇한 것이 잠을 통 못 잔 모양이다.
“밤이라도 샜어요?”
“총장이랑 긴밀하게 의논할 일이 있어서 말이지. 어쩌다 보니 밤을 새버렸군.”
“호…….”
세계 최고의 권력자와 그 오른팔의 밀담이다.
어지간히 큰일이겠지.
세계구급인 문제일 것이다.
궁금증이 치솟는다.
하지만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고도 하지 않던가.
강혁은 깊게 관여하지 않고 한 발자국 뒤로 걸었다.
“그나저나 이제 건물들도 다 철거하던데 우리는 언제까지 있어야 해요?”
“병사들은 앞으로 2주일은 주둔해야 되고, 퍼스트 오더들은 오늘부터 바로 자유야.”
“오, 오오. 드디어 소집 해제군요.”
“길었던 파견 임무가 끝났군.”
시라노가 애매한 눈으로 강혁을 봤다.
어쩌다 보니까 이 녀석이랑은 그럭저럭 엮여 버렸다.
같은 검술 스승을 둔 동문이기도 하고, 호형호제까지도 허락했다.
과거의 자신이 들었다면 믿을 수 없겠지.
그도 그럴 것이 저 녀석은 백강혁이다.
“정말로. 너치고는…….”
녀석에게는 몇 가지 별명이 있었다.
퍼스트 오더의 수치.
ISAC의 실수.
한국의 망신.
이정훈의 탈모가속기 등등.
전부 좋은 의미의 별명은 아니었다.
이런 별명이 공공연하게 돌았다.
혹자는 주혁진 총장이 한국인만을 편애해서 랭킹에 남겨뒀다고 말했다.
몇 번이나 녀석을 자르라는 건의가 올라왔었다.
그만큼 백강혁은 인식이 나빴다.
시라노도 그에게는 썩 좋은 감정이 없었다.
입만 산 녀석은 싫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떳떳하게 말할 수 있다.
“랭킹 100위, 관종병 얼간이 주제에 애썼어.”
녀석은 할 만큼 했다.
진심을 담은 칭찬이었다.
하지만 백강혁에게는 전혀 칭찬으로 들리지 않았다.
백강혁이 발끈했다.
“뭔 말을 해도 그렇게 해요!?”
“나름 칭찬인데.”
“칭찬 드럽게 못하네! 그리고 나 100위 아니거든요? 올랐거든요?!”
“몇 위더라?”
“92위! 와, 와, 어떻게 100위랑 92위를 착각해요! 자릿수가 다른데!”
시라노가 펜을 빙글 돌렸다.
“이거이거, 자기 랭킹도 모르는 바보가 여기 있네.”
“엥?”
“너 랭킹 올랐어.”
“엥!?”
“이번 일로 세운 공훈을 높게 사서 ISAC는 퍼스트 오더 백강혁의 랭킹을 61위로 조정함을 알린다, 내일 뜰 공문이다. 좋지?”
“61위!?”
단번에 30계단 이상이 올랐다.
강혁의 눈이 커다래졌다.
“오를 만한 전과였어. 전쟁 중의 전훈도 나쁘지 않았지만 독뱀알 함정을 찾은 게 가장 컸다.”
“오, 오오오오오-! 그럼 나 윤은형보다 높은 거죠!”
윤은형의 랭킹은 66위다.
놈보다 5개나 높다.
강혁이 기쁨에 차서 양팔을 치켜 올렸다.
그런 놈을 보고 시라노가 딱하다는 듯이 말했다.
“아. 그건 아냐. 윤은형은 55위가 됐거든.”
“왜요?! 걔가 나보다 뭘 더 잘했다고!”
“퍼스트 오더도 패퇴시킨 강적을 여럿 처리했거든.”
데빌 트리거를 사용한 10분.
그 잠깐 동안에 올린 전공이 백강혁이 2년간 올린 전공보다도 크다.
무수하게 많은 적을 썰어버려도 그렇지만 하나하나가 압도적으로 강한 대장급의 몬스터였기 때문이다.
“큰 작전에 투입돼서 능력을 사용하면 랭킹이 확 오르고, 부상 중에는 작전에 참여 못 하니까 조금씩 떨어지지. 그래서 그 녀석의 랭킹은 원래 들쑥날쑥해.”
“칫, 좋다 말았네.”
“그렇게 이기고 싶으면 랭킹전을 해보던가.”
“아, 그건 쫌.”
윤은형은 랭킹에 비해서 세다.
특히 랭킹전에는 엄청나게 강해진다.
랭킹전에서는 데빌 트리거를 뒷감당 걱정 없이 쓰는 까닭이다.
그래서 녀석과 랭킹전을 하려는 바보는 매우 적었다.
바꿔 말해서 랭킹전에서 윤은형을 이겼다는 귀환자는 정말 대단하다는 말이다.
그래도 녀석도 무패는 아니니까 해볼 만하지 않을까.
‘와, 역시 에바야.’
백강혁이 고개를 흔들었다.
이래 봬도 자기파악은 확실하게 하는지라, 못 오를 나무에 비비는 바보는 아니었다.
싸워서 이기는 그림이 안 그려진다.
시라노가 피식 웃었다.
“수당도 넉넉하게 넣었고, 보너스도 충분하고, 아티팩트도 줬… 지만.”
“예. 아티팩트는 우리 파란 존만이가 맘에 들어 해서 줘버렸습니다. 실은 뺏긴 거죠. 주기 싫었는데. 제기랄.”
“그건 뭐, 둘의 관계니까 알아서 하도록 하고. 그간 수고했네.”
임무 종료 선언.
시라노가 자세를 고치며 헛기침을 하자 강혁이 냉큼 경례를 올렸다.
그 경례를 받아주자, 강혁이 살짝 입가를 올렸다.
“나중에 한국 오십쇼, 브라더.”
“내가 갈 일이 없어야 좋은 거야, 이 자식아.”
“임무나 파견이 아니라 휴가로 오면 되잖습니까.”
“내가 휴가가 어디 있어. 이제부터도 한참 바빠지는데…….”
바쁠 일이 있나?
* * *
중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올 때는 평범하게 비행기로 움직였다.
모두가 다 한 아름 선물을 받았다.
레이첼을 비롯한 현지에서 만난 셰프, 요리 보조자들이나 괴식에 감명을 받은 병사들이 승우에게 선물을 했다.
받은 만큼은 돌려줘야 하는 주의라 전부 나름의 답례를 하고 오긴 했지만.
“그래도 숫자가 너무 많아. 특히 편지.”
요즘 세대에 편지라니 신기한 일이기도 하지만, 병사들에게는 여전히 편지라는 문화가 남아 있었다.
편지에서 느껴지는 진심과 노스탤지어.
승우는 미소를 지으면서 편지를 읽었다.
대체로 더럽게 맛없는 밥 감사했습니다! 라는 뜻을 굉장히 풀어서 쓴 편지였다.
기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읽어줘뿌.”
영식이가 슬쩍 편지를 내밀었다.
양이 제법 많다.
아니, 승우가 받은 것보다도 많다.
그 편지의 양을 보고 승우가 눈웃음을 지었다.
“너희들도 대단해. 잘했어.”
“뿌뿌~”
“어떻게 호떡을 구울 생각을 했니.”
“뿌~? 먹는 게 남는 거!”
“인생의 진리를 알고 있다니 더 이상 가르칠 게 없군.”
“뿌!”
칭찬을 받은 영식이가 의기양양하게 몸을 부풀렸다.
녀석이 내민 편지는 모두가 다 전투 중에 호떡을 먹고 부상을 이겨낸 병사들의 것이다.
“헤헤. 헤헤헤.”
“우냥.”
편지를 읽으며 나비와 은하가 웃었다.
사람들에게 도움이 됐다.
그것만으로도 기쁜데 이런 감사는 태어나서 처음 들어봤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너무 기뻐서 춤이 나온다.
나비와 은하가 콧노래를 부르자 영식이가 뿅뿅뿅 하고 뛰어왔다.
그러곤 같이 덩실덩실 춤을 췄다.
녀석들에게 고마움과 감사를 꾹꾹 눌러 담은 편지는 당연히 그냥 편지만 보낸 것은 아니었기에 이런저런 기념품이나, 선물, 음식이 같이 있었다.
그 양이 엄청나서 비행기의 좌석이 가득 찰 지경이었다.
“전용기라 망정이지 민폐를 끼칠 뻔했군.”
승우가 그리 말하자 백강혁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왜 저한테는 편지가 안 올까요, 싸장님.”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저 꼬맹이들은 솔직히 편지 받을 만해요. 그런데 싸장님은 밥만 해줬잖아요?”
“그렇지……?”
“그런데 편지가 산처럼 왔잖아요. 나는 칼 맞으면서 싸웠는데! 나한테는 한 개도 안 왔는데!”
“…….”
“대체 뭔 차이가 있었을까요.”
몰라서 묻는 걸까.
“그야 병사 입장에서 보면 너는 동료고, 나는 선의의 밥집 아저씨잖아. 동료가 같이 싸워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나는 특별한 일이지.”
“끄응……. 끄응. 그런 문제일려나요.”
“그럼 뭔 이유가 있겠어.”
다른 이유가 있는 거 같은데…….
말꼬리를 흐리는 백강혁 옆에서 책을 보던 황지현이 작게 ‘얼굴 차이’라고 소곤거렸다.
그러자 백강혁이 크게 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납득이 가는 차이다. 과연-!”
“내가 말을 말지.”
“아, 그런데 옆에 주무시는 분은 누구셔요? 기분 탓이 아니라면 존나 오크처럼 생겼는데.”
백강혁이 대수롭지 않게 옆 좌석에 앉아 있는 커다란 사람을 가리켰다.
그는 물론 크라이였다.
크라이의 상태는 영 좋아 보이지 않았는데 안색은 파리했고,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있었다.
“친구야. 지금은 컨디션이 좀 안 좋아서 이래.”
“끄, 끄응……. 좀? 좀?”
크라이가 빠득하고 어금니를 갈았다.
전날 밥이나 같이 먹자, 하고 먹은 요리가 탈이 났다.
해룡 카리브디스를 구워서 만든 샌드위치, 카리브디스 테오도르를 먹은 탓이다.
승우가 씩 웃었다.
“네가 시시한 요리 집어치우고 센 요리 가져오라며.”
“그렇다고 신살 요리를 가져오는 미친 자식이 어디 있나.”
“버틸 수 있을 거라며? 쉽다며? 예전보다 어째 효과가 떨어진 거 같다며?”
“끙.”
앓느니 죽지.
입이 망정이다.
크라이는 신음을 흘리면서 다시 얼굴을 수건으로 덮었다.
찬 수건이 열을 식혀준다.
듣자하니 포세이돈 정도의 주신이 일격에 폭발사산 했다고 한다.
아레스도 헤르메스도 죄다 한 입에 잿더미가 됐다.
비웃기도 했지만 이제는 인정한다.
‘죽을 만한 요리였어,’
수도 없이 압축된 마력이 몸 안에서 해방되려고 하는데 마치 태양을 씹어 먹은 느낌이다.
몸 안에서 에너지가 폭발하고 빅뱅을 시작한다.
살 수 있는 방법은 그 마력을 똑같이 힘으로 억누르거나, 완전히 소화하는 것.
‘용케 억눌렀어.’
수천 년의 단련이 없었다면, 예전의 크라이였다면 즉사했겠지.
억누르지 못했으면 포세이돈과 똑같은 꼴이 될 뻔했다.
다시 생각해 봐도 죽지 않은 것이 용했다.
한 번 더 해보라고 하면 자신이 없다.
무엇보다 그 맛. 그 맛!
“크흐음…….”
생각을 떠올리니 입가에 그 지독한 비린 맛과 단맛이 맴돌았다.
바위에 글을 새기면 천년은 간다고 하던가?
이 맛은 앞으로 천년은 더 새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니 떠올리면 안 돼.
잊자, 잊어야 해.
크라이가 그렇게 말없이 다시 침묵하자 백강혁이 입가를 떨었다.
“오크 맞네요?”
“응. 오크야.”
“그것도 임페리얼 오크네요?”
“오, 그걸 알아보네.”
인간이 다른 종족의 얼굴을 보고 외형 차이를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테라에서 포교 활동을 할 때 워낙 다양한 종족을 접한지라 강혁은 눈썰미가 매우 좋았다.
전쟁까지 했으니 싫어도 외모가 기억에 남는다.
싸장님의 친구는 임페리얼 오크라는 작자들과 생김생김이 비슷하다.
“임페리얼 오크가 어째서 여기에 있어요?”
“말했잖아. 내 친구야.”
“사령관님도 알아요?”
“응. 정식으로 신분도 준비해 준다던데.”
명목상으로는 망명자였기에 문제는 없었다.
브라더가 인정했고 싸장님이 인정했다면 괜찮은 거겠지.
백강혁은 그리 생각하면서 시선을 돌렸다.
구석에는 치료 장치를 덕지덕지 부착한 윤은형의 침대가 있다.
본래라면 전치 16주 예약의 반죽음 상태였겠지만 빠르게 호떡을 먹은 덕에 전치 3주 정도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죽은 듯이 잠만 자는 녀석은 상처 입은 짐승 같았다.
실제로도 짐승처럼 빠른 속도로 부상을 회복하는 중이었다.
나비가 만든 특제 호떡을 소화하고 나으려면 잠이 필요하다.
쿨쿨 잘도 자는 녀석.
“자고 있을 때는 애같이 생기긴 했네. 얘 속눈썹 길구나……. 헤.”
여자애같이 생겼네.
그렇게 생각하며 백강혁은 조심스럽게 녀석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윤은형의 다리깁스에 그적그적 낙서를 했다.
경박스러운 세 글자짜리 영어단어였다.
승우의 눈이 찌푸려졌다.
“너란 놈은 어째 한시도 가만히 안 있냐.”
“헷헷. 자고 일어나면 이놈이 화내겠죠?”
“화 낼 짓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
지현은 관계되고 싶지 않은지 모른 척 눈을 감았다.
A섹터로 돌아가면 해야 할 일이 산더미다.
쉴 수 있는 것은 지금뿐이니 이참에 쉬어둬야지.
승우도 조용히 편지로 눈을 돌렸다.
시라노의 편지였다.
활약에 대한 감사, 그리고 ISAC의 입장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주된 내용은 전쟁에서 승우가 한 일은 전쟁영웅이라 불려 마땅한 일이지만 승우 본인이 원하지 않는 것 같으니 대외적으로 공표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음. 이해해 줘서 다행이군.’
만약 대가를 받고 싶거나 유명해지고 싶었다면 몰래 깃발을 설치할 이유도 없었겠지.
승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편지를 마저 읽었다.
그런데 뒷내용이 어째 이상했다.
[하지만 대가를 바라지 않더라도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게 우리들의 규칙 아니던가. 이런저런 토론 끝에 자네가 단순한 물질로는 만족하지 않을 거란 결론이 나왔네. 아래의 예시 중에서 하나를 골라서 답신을 주면 좋겠군.]총 예산: 15조 원.
예시.
1. 인권증진을 위해 내전국가에 개입하여 국가정상화작전 시행.
2. 난민, 재난 구제를 위한 유승우기금재단설립.
3. 괴식 요리사를 양성하기 위한 괴식전문요리학교 건축 및 재단 발족.
4. 항공모함(풀 튜닝, 전투기, 탱크 포함.)
5. 변신로봇(탑승 가능, 11m)
“이 중에서 고르라고?”
승우의 동공이 떨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