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259)
괴식식당-259화(259/613)
259화. 원수를 은혜로 (2)
생각보다 요리의 허들은 낮다.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혀본 사람을 제외한다면 대다수는 요리 경험이 있다.
막말로 햄을 한 캔 까서 굽기만 해도 햄 구이다.
쌀을 씻어서 밥솥에 넣고 취사 버튼을 누르면 밥이 된다.
햄 구이, 밥, 김치만 있으면 그럴듯한 한 끼 식사다.
식사를 만들 수 있으면 충분히 요리를 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지.
그렇다면 프로 요리사와 일반인의 차이는 무엇일까.
맛? 시간? 숙련도?
오묘하고 복잡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나비는 딱 한마디로 일축했다.
“면허가 있어야 된다냥.”
“면허요?”
셔벗을 냠, 하고 먹으면서 나비가 꼬리를 흔들었다.
“한식, 중식, 일식, 양식 같은 면허도 있고 조리사 면허도 있다냐.”
“면허가 꼭 있어야 하나요?”
“있어야 한다냥. 특히 테라에서는 필수다냐.”
“웅?”
지구인이 인류의 99.999%인 지구와는 다르게 테라는 다인종 차원이다.
오크도 있고, 고블린도 있고 코볼트도, 엘프도 드워프도 용인도 있다.
“다들 먹으면 안 되는 음식이 있다냐.”
“아, 세경이가 오이 못 먹는 거처럼!”
“그렇다냐. 알러지다냐.”
인간만 하더라도 오이를 먹으면 안 되는 사람, 땅콩을 먹으면 안 되는 사람.
유지방을 먹으면 안 되는 사람 등등.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식재료가 있다.
그런데 다인종 차원인 테라에서는 어떨까.
“실수로 먹으면 안 되는 걸 먹이면 죽는다냥.”
그래서 있는 것이 다인종 조리 자격 면허다.
나비가 자랑스럽게 별 모양의 배지를 꺼냈다.
“이게 다인종 조리 자격 면허다냥~”
300종이 넘는 종족의 거부 반응 식재료를 전부 알고 있으며 그것을 중화시키고, 조리할 수 있는 자.
그리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자신의 힘으로 치료하고 수습할 수 있는 자에게만 부여되는 고급 면허다.
이 면허 하나만 있어도 어깨에 힘을 주고 요리사라고 할 수 있다.
“신기해요. 그럼 삼촌도 있어요?”
“당연하다냐. 용사님 건 더 대단하다냐!”
테라의 조리 면허는 두 단계가 있다.
다인종, 거의 모든 종족에게 요리를 먹여도 되는 조리 자격 면허.
나비는 이 면허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승우의 면허는 그것보다 한 단계 높은 면허인, 다인종 괴식 조리 자격 면허.
거의 모든 종족에게 요리가 아니라 괴식을 먹여도 되는 면허다.
그런 만능 조리 자격을 가진 승우가 즐겁게 웃고 있었다.
친구에게 먹일 요리를 생각하니 벌써부터 기쁜 모양이다.
* * *
임페리얼 오크.
크라이의 종족이다.
흔히들 오크는 하급 몬스터의 상징이자 삼류 헌터와 이류 헌터를 가르는 장벽으로 본다.
마찬가지로 하급 몬스터의 대명사인 고블린에 비해서 오크는 근육이 많아 힘이 강하고, 무기를 제법 잘 쓴다.
무리생활을 하는 놈이라 집단전에도 능숙하니 상당히 까다로운 몬스터다.
이 녀석들을 잘 처리할 수 있을 때.
사람들은 헌터로서 제몫을 할 수 있다고 본다.
프로 헌터와 용역 헌터의 경계선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럼 임페리얼 오크는 어떤가, 하면 실제로는 오크와는 아예 차원이 다른 존재다.
겉모습이 비슷할 뿐이다.
생물학적으로 분석한다면 오크보다는 트롤에 가깝다.
약산성의 혈액은 포션의 대용으로 쓸 수 있을 정도로 근재생력이 좋고, 완력은 오크와 비교를 불허한다.
오크의 시각 구조는 인간과 같다.
양쪽 눈으로 보다 보니 중앙에 시야의 시각이 생긴다.
그래서 인간이나 오크는 뇌 기능의 상당 부분을 시야 보정에 쓴다.
그런데 임페리얼 오크는 다르다.
녀석들은 플라나가 엄청나서 기감으로 시야를 보정하는 능력이 있다.
그래서 시야 보정에 낭비되는 뇌 능력을 온전히 사용할 수 있다.
보기보다 머리가 좋다는 의미다.
‘싸움에 미친 종족이라 그렇지 실제 뇌 능력은 인간보다도 높다던가.’
그러니까 돼지와 오크의 차이보다 오크와 임페리얼 오크의 차이가 크다.
그 말은 일반적인 오크와 임페리얼 오크는 먹는 것도 다르다는 뜻이다.
‘오크는 글루텐이 약점이지.’
일반적인 오크는 글루텐 과민증을 가지고 있다.
글루텐이란 밀가루와 귀리, 보리에 있는 글루테닌(glutenin)과 글리아딘(gliadin)이 결합하여 만들어진다.
단백질의 일종인데 물에 용해되어 풀어지지 않는 성질을 갖는지라 오크의 체액과 결합되면 소화가 되지 않고 심장 이상을 일으킨다.
오크가 철저하게 육식인 이유고, 오크에게 잘 통하는 독도 그렇게 만들어진다.
그럼 임페리얼 오크는 어떠한가?
녀석들은 딱히 가리는 게 없다.
초콜릿도 잘 먹고, 빵, 밥도 잘 먹는다.
녀석들의 약점은 단 하나.
“매운 걸 못 먹지.”
모든 걸 잘 먹는다는데 매운 것은 못 먹는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매운 맛은 맛이 아니라 통증이니까.’
애초에 전 종족을 통틀어서 매운 맛이 괜찮은 종족은 몇 없다.
괜찮은 건 조류 종족이나 인간 정도.
하지만 조류 종족은 즐긴다기보다 매운 맛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진정으로 매운 것을 즐기는 종족은 인간뿐!
때문에 조금이라도 매운 음식은 테라에서는 당당하게 괴식으로 꼽혔다.
우스갯소리로 파이어버드 볶음면을 평소에 잘 먹는 지구인 출신의 고등학생이 테라에선 용사라는 말도 있을까.
‘임페리얼 오크의 발달한 감각 덕분에 매운 맛이 강하게 느껴져.’
약간 매운 맛도 녀석에게는 크게 느껴진다.
그러니까 진짜 매운 맛이라면? 지옥의 맛일 터!
평소라면 이런 괴롭히기 위한 요리는 하지 않았겠지.
하지만 지금은 승우는 많이 화가 났다.
크라이가 매우 나빴다.
‘감히-! 감히! 제우스랑 아레스와 비교했겠다!’
떠올리는 것만으로 승우의 분노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화가 난다.
녀석은 선을 제대로 넘었다.
“후, 이 분노. 음식으로 풀어주마.”
크라이는 대접 받은 음식을 거절할 수 없다.
그런 겟슈를 가지고 있다.
겟슈란 스스로에게 제약, 약점을 가하는 것으로 강한 힘을 얻는 의식을 말한다.
음식으로 승우가 보복할 걸 알아도 먹을 수밖에 없다.
‘그럼 어떻게 맵게 해볼까.’
저녁 식사는 크라이만 먹는 게 아니다.
아이들도 먹는다.
너무 매우면 녀석들이 먹지 못한다.
역시 처음에 생각한 대로 변화구로 가야겠어.
변화구의 기본은 의외성이다.
직구를 던질 것 같을 때 커브를 던진다.
처음으로 상대하는 투수가 처음은 견제구를 던질 거라고 예상할 때 한복판에 직구를 던진다.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녀석이 갑자기 그럴 때, 변화구는 그 효과가 나타난다.
승우가 히죽히죽 웃으면서 반찬통을 점검했다.
딱 좋은 게 있다.
“이거야.”
그가 꺼낸 것은 고추장아찌였다.
설탕, 간장, 식초를 넣어서 만든 양념장에 청양고추를 푹 재우는 것은 평범한 조리법이지만 여기에 하나의 비법을 더했다.
바로 식초!
‘드워프의 비밀 식초지.’
드워프라 하면 수염이 수북하고 광산에 처박혀서 광물을 캔 후에 무기를 만드는 종족이라는 인상이 있다.
실제로도 그와 별로 다르지 않지만 그들은 광물 다음으로 술을 좋아한다.
맥주나 와인, 증류주. 가리지 않는다.
그래서 드워프는 술과 광석에 대해서는 최고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술과 식초는 사실 별반 다르지 않다는 말씀.’
국물이나 과일에는 포도당이 있다.
이 당을 당화시키는 것이 알코올 발효 과정이다.
발효가 되면 그게 술이 되는데, 술을 더 발효시켜서 아세트산 발효가 되면 식초가 된다.
즉, 술과 식초의 제조기술은 표리일체!
그렇기 때문에 드워프가 만드는 식초는 최고의 품질을 가지고 있다.
특히 여기에 들어간 식초는 더더욱 최고다.
‘미스릴이 들어 있지.’
워낙 귀해서 신의 은이라고 불리는 미스릴이지만 무기나 방어구를 만들다 보면 자투리가 남는다.
그 자투리 미스릴을 양조주에 넣으면 맛이 한결 더 깊어지고, 농후한 마력이 부여된다.
그런 최고의 식초로 만든 고추 장아찌다.
누가 먹어도 이견이 없을 만큼 맛있다.
‘하지만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면 말이 다르지.’
다른 조건은 몰라도 한 조건이 너무 치명적이다.
예전에 처음으로 드워프의 식초를 받았을 때는 아예 입에도 대지 못했다.
그 조건은 여전해서 지금도 먹으면 큰일이 나겠지.
그걸 이용해서 크라이를 혼쭐낸다.
승우가 씩 웃었다.
‘튀김 요리와 궁합이 끝내주니까, 튀김 요리에 올려서 먹자. 마침 돈가스가 남았네.’
일전에 만들어둔 평범한 돈가스를 꺼냈다.
지글지글, 기름이 끓는 소리는 항상 기분이 좋다.
“몇 장을 튀길까.”
생각해 보자.
은하야 두 장 정도고 나비도 세 장 정도면 배가 찬다.
하지만 영식이는 대식가라서 한 번에 10장은 먹는다.
크라이로 말하자면 글쎄, 백 장을 튀겨도 혼자 먹을 놈이지만 이번에는 한 장을 먹을 수나 있을까.
“내가 먹을 것과 크라이가 먹을 거 한 장. 그리고 아이들이 먹을 거 많이-!”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슥슥, 손을 움직이자 하나둘씩 식탁이 차려진다.
오늘의 기분에 맞는 식탁보를 두르고 돈가스를 놓고, 반찬을 놓는다.
마지막으로 식기를 놓으면 끝.
“그럼-! 밥 먹자!”
* * *
은하가 나이프로 돈가스를 잘랐다.
한 입에 먹을 정도로 작게, 그리고 조금.
많이 썰어두면 뺏긴다, 그러니까 먹을 때마다 자르라는 아빠의 가르침이 있었다.
먹는 걸 양보할 수는 있고, 줄 수도 있지만 뺏기는 건 아니다.
은하는 아빠의 가르침에 전적으로 동감했다.
주씨 가문의 사람은 이상할 정도로 승부욕이 강하다.
나비는 다소곳하게 목에 냅킨을 두르고 차분하게 돈가스를 먹었다.
용사님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몸에 익힌 귀족식 예법이다.
“아아아아앙-!”
영식이는 그딴 거 모른다.
그냥 입을 벌리고 돈가스를 삼켰다.
몸이 출렁거리고 금세 한 장의 돈가스가 소화된다.
녀석이 눈이 동그래졌다.
“맛있다뿌.”
“맞아요. 맛있어요.”
“뿌. 특히 이거 맛있다. 이거, 이거.”
영식이가 가리킨 것은 초록색의 소스다.
돈가스 위에 뿌려서 먹어도 좋고 찍어도 좋다고 했다.
먹어보니 은하는 찍어 먹는 게 좋았고 영식이는 뿌려먹는 게 좋았다.
달콤하면서 새콤한데 입 안에 들어가면 정말 깜짝- 놀랄 만큼 맛있어진다.
“신기하구냥? 냐도 이건 처음 먹어본다냐. 고추냉이냥? 맛있다냐.”
“고추장아찌를 갈아서 만든 소스야.”
“앗, 그렇구냐!”
드워프의 식초를 쓴 고추장아찌를 갈은 후에 약간의 마요네즈와 매실 진액을 넣었다.
얼핏 괴식의 경지에 다다른 막장 조합 같지만 꽤 괜찮은 맛이 났다.
무엇보다 튀김과 궁합이 환상적이다.
튀김의 느끼한 맛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시원한 청량감이 든다.
은하와 영식이는 슬쩍 눈을 굴리더니만 앞 다퉈서 손을 뻗었다.
“수상하다.”
크라이는 말없이 식탁을 봤다.
승우라는 녀석을 알고 지낸 지가 오래된 만큼 놈을 잘 알고 있다.
녀석은 분명 털털하고 뒤끝이 없다.
하지만 원한이 있으면 반드시 복수를 한다.
“녀석이 순순히 맛있는 걸 줄 리가 없다만.”
화가 나서 내뱉은 말이지만 스스로 생각해 보아도 역시 제우스와 아레스에 빗댄 것은 너무 심한 욕이었다.
선을 분명히 넘었으니 무엇인가 보복이 있을 것이다.
“모르겠군.”
턱을 괴고 식탁을 다시 확인했다.
못 보던 사이에 실력이 일취월장했는지 이제는 요리가 가늠이 안 된다.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만큼 의문과 의심이 커진다.
크라이는 팔짱을 끼고 계속해서 식탁을 노려봤다.
그런다고 답은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그때였다.
문을 열고 남자가 들어왔다.
아침에도 본 사람, 백강혁이다.
녀석이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와앙-! 식사 시간이에요? 딱 맞춰서 왔네. 돈가스! 돈가스다! 맛있어 보이는데, 얼러리. 이 초록색 소스는 뭐예요? 와사빈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접근한 녀석이 손을 뻗어 소스 그릇으로 향했다.
손으로 찍어 먹을 작정이다.
비위생적인 행동이라 나비가 막으려고 했지만 그런 나비의 앞발을 크라이가 막았다.
“냥?”
“잠시만.”
그 잠깐의 시간.
백강혁이 결국 손가락을 뻗어 소스를 찍었다.
손가락이 입으로 향했다.
그리고.
“……!”
백강혁이 펄쩍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