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270)
괴식식당-270화(270/613)
270화. 가족 (3)
사상 초유의 테러 사태는 조기에 진압됐다.
얼마나 그 속도가 빨랐는지 사람들은 테러 모의가 있었고 백 명이 넘는 마피아 조직원이 무장을 한 채 A섹터에 왔다는 것도 몰랐다.
이정훈은 황지현의 보고를 받으며 인상을 썼다.
“말이 조기 진압이지 우리가 한 일은 사후 처리밖에 없다는 뜻이군.”
“그렇습니다. 변명할 말이야 있습니다만…….”
“우리는 변명이 허용되는 기관이 아니지.”
“예.”
테러 방지에 ISAC의 기여도는 0%.
순도 100%, 유승우가 활약했고 그가 진압했다.
“민간 협력자의 도움이 없었으면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을 거라니, 얼굴을 들 수가 없군.”
보안에 허점이 있다.
초장거리 도약이 가능한 공간 이동 능력자에 의한 테러에는 답이 없는 게 현실이지만 없으면 없는 대로 어떻게든 해결해야만 ISAC다.
“…….”
황지현이 손가락으로 서류를 톡톡 두드리며 말을 참았다.
지부장인 이정훈의 마음이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엄청난 인명 피해를 야기할 사태에서 자신들의 활약이 없다니, 아무것도 못 했다니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다.
이정훈이 한숨을 내뱉었다.
“애초에 민간인 협력자, 유 사장님이 거기에 있던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아니면…….”
“예. 우연이 아닙니다.”
“역시.”
“아슬란 미하일로프의 증언에 의하면 공간 도약 중에 무엇인가에게 끌려갔다고 합니다. 십중팔구, 유 사장님이시겠죠.”
“공간 이동보다도 공간 이동 유도와 장악이 더 힘든 건데, 그렇다면 유 사장님은 공간 이동도 할 수 있다는 건가?”
“이쯤 되면 못 하는 걸 찾는 게 쉽겠죠.”
“확실히 이렇게 되면 놀라기도 지치는군. 그냥 그런 존재라고 여기는 수밖에.”
그런 존재가 적이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지구의 복이지.
정훈과 지현은 눈빛을 주고받고 턱을 긁었다.
“그런데 유 사장님, 훈장은 받아주신다던?”
“귀찮다고 싫다고 하십니다.”
“그렇겠지. 그런 사람이니까…….”
“보답을 하고 싶으면 10주년 추모식이나 잘해달래요.”
“그럼 그쪽 예산을 늘려줄 테니까 잘해주게.”
“녜.”
또 일이 늘었다.
매일매일 야근인데 어째선지 일이 조금도 줄지 않는다.
지현은 수척해진 얼굴로 다음의 서류를 들었다.
아슬란 미하일로프의 동기나 러시아 조직의 동태, 국제 외교 문제와 앞으로의 계획 등등.
보고할 일은 아직도 많았다.
그중에 중요한 것은 아슬란이 소속된 체첸 레드 마피아의 동향이다.
녀석들은 막대한 위자료나 추궁을 피하기 위해서 본격적으로 사력을 다할 것을 표방했다.
다른 조직은 무시할 수도 있고 강압적으로 나갈 수도 있지만 체첸 마피아는 힘들다.
그들의 빅 보스가 굉장한 위험인물이기 때문이다.
‘피곤해…….’
이걸 정리하고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고 준비하는 데 10시간이 걸렸다.
잠은 아예 안 잤다는 의미다.
하지만 그럴 가치가 있는 보고서다.
지현이 야심차게 보고를 준비하고 있으니 이정훈이 헛기침을 하면서 눈을 피했다.
눈에 익은 행동, 저건 뭔가 미안할 때 하시는 동작인데?
황지현이 불안한 마음에 그를 보니, 그가 눈치를 보며 말했다.
“그런데 지현 군, 그 킬러맨시 셔벗 체인점 말인데, 언제쯤 상용화되나?”
“예?”
“아니, 아니. 오해하지 말게. 재촉하는 것은 아냐. 그냥 어, 총장님이 넌지시 묻더라고……. 왜 이렇게 늦지… 하고.”
“…….”
“재, 재촉하는 거는 아니라네. 그냥 확인차…….”
“아나, 진짜!”
일거리를 줄여줘야 다른 일을 하든가 말든가 할 거 아냐!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지현의 머리카락이 빠직빠직 하는 소리를 내며 천천히 위로 솟구쳤다.
그것은 일개 행정 직원이 가질 수 있는 살기가 아니었다.
고전압이 만들어내는 무시무시한 박력!
그녀의 온몸을 휘감는 번개는 그야말로 뇌신이었다.
“미안하네! 살려주게!”
“누가 지부장님을 때리기라도 한대요? 왜 가드를 올려요?”
“…….”
지현은 거울을 안 보는 게 분명하다.
지금 자신의 모습을 한 번이라도 봤다면 저런 말이 나올 수가 없다.
초황지현4라고 불러야 할 저 모습을 보고 안 쪼는 사람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하지만 정훈은 대꾸하는 대신 조용히 입을 다물고 가드를 튼튼하게 올렸다.
지현의 새 능력, 전기 방출 능력은 아직 미숙하다.
미숙하니까 제어에 실패하면 사고가 터진다.
부적절한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는 의미다.
“에휴…….”
위에서는 찍어 누르고 아래에서는 치고 올라온다.
이정훈은 중간관리자의 설움을 느끼며 눈을 살짝 피했다.
* * *
한적한 식당.
머리 위에서 폴짝 폴짝 뛰는 영식에게 당근을 넣어주며 백강혁이 말했다.
“동생의 원수?”
“그래. 내가 죽인 범죄자 중에서 아슬란의 동생이 있었다는군. 원수를 갚으려고 왔다네.”
“주제에 의리는 있네.”
“그래. 정말로 주제에, 말이지.”
마피아, 야쿠자, 건달.
세상 사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이러한 인종들은 웃기게도 모두 다 의리를 강조한다.
마피아의 멋과 의리.
야쿠자의 협과 의리.
건달의 깡과 의리.
“의리, 의리. 의리. 웃기는 소리지.”
실소를 참을 수가 없다.
그렇게 의리를 찾는 녀석들이지만 역설적으로 녀석들은 의리가 없다.
불법적인 일로 쉽게 돈을 벌기 위해서 뭉친 녀석들이 의리가 있어봐야 뭐가 있겠는가.
하지만 아예 없지는 않다.
계곡에 가서 계곡 물 바닥을 까뒤집어 보면 아주 적은 확률로 사금을 만져볼 수 있다.
그 정도의 확률로 범죄자에게도 의리가 있다.
이번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동생의 원수인가. 동생이라…….”
백강혁이 미묘한 얼굴이 됐다.
그의 손이 멈췄고, 당근 공급이 늦어지자 영식이가 화를 냈다.
뿌뿌거리는 녀석을 꾹 눌러주고는 다시 당근을 물려줬다.
아작아작 당근을 깨무는 영식이를 보던 민이 아, 하고 낮게 숨을 내뱉었다.
“그러고 보면 너도 동생이 있지?”
“뭐, 그렇지.”
강혁이 말을 아꼈다.
고아인 민이 보기에는 배부른 소리지만, 녀석의 가정도 제법 복잡하다고 했다.
정확하게 말해서는 강혁이 복잡하게 만들었다고 해야 할까.
한때는 강혁의 밑에서 일했던지라, 나름 그의 사정을 알고 있기에 민은 조용히…….
“네가 머저리라 생긴 일인데, 왜 그렇게 우수에 찬 표정으로 회상하냐.”
백강혁을 깠다.
그 말투가 너무 강해서 그만 승우의 웃음이 터져 버렸다.
“푸핫, 뭔데 그렇게 적대적이야?”
“별거 아닙니다. 다 저 녀석이 잘못한 일이죠.”
사연은 이러하다.
백강혁은 제대로 된 녀석이 아니다.
지금은 조금 똘기가 넘치는 이상한 녀석이었지만 학창 시절에는 제법 대단했다.
“흔히 일진이라고 하더군요.”
“아, 일진. 그런 게 있긴 했지.”
학교에서는 사고를 치고, 공부는 안 하고, 침을 찍찍 뱉고 애들 돈이나 삥 뜯는다.
꼴에 싸움은 조금 한다.
아니, 조금이 아니라 상당히 잘했다.
오죽했으면 지금 퍼스트 오더를 하고 있겠는가.
녀석은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청개구리였고, 크게 올챙이배를 내민 철부지였다.
어른에게 싸움을 거는 일도 부지기수고 경찰서 신세를 지는 일도 흔했다.
“그래서 꽤나 내놓은 자식이었다더군요.”
“이야, 불량소년의 표본이네.”
“동생이 그 탓에 꽤 고생을 했다나 봐요.”
“동생은 어떤데?”
“저 녀석이랑 완전 반대라더군요. 머리 좋고, 모범생. 학력고사에서 전국 순위 5위 밖으로 내려가 본 적이 없는 수재랍니다.”
“이런.”
건달 같은 형과 모범생 동생인가.
의외로 꽤 있는 경우다.
이런 경우 대체로 서로의 사이는 좋지 않다.
형은 형대로 질투하고, 동생은 동생대로 형을 경멸하게 된다.
백강혁의 가족이 자연스럽게 머리에 그려졌다.
“사이가 점점 나빠질 수밖에 없네. 동생은 뭐 하는데?”
“검사예요.”
“검사? 소드맨?”
“아뇨. 법조인이요.”
검사(劍士, Swordsman)가 아니라 검사(檢事, Prosecutor).
한국에서 최고로 치는 직업 중 하나다.
백강혁의 동생이면서 참으로 번듯하게 잘 컸다.
승우가 휘파람을 불자 백강혁이 몸을 떨었다.
“아, 진짜! 뭘 그리 시시콜콜하게 이야기하냐!”
“아무튼. 클 때도 그리 사이가 안 좋았는데 나중에는 더 사이가 나빠졌다는군요.”
“무시하지 마!?”
“그도 그럴 것이 저렇게 막살던 놈이 좋은 이능력에 각성했다고 퍼스트 오더까지 됐잖습니까. 열심히 공부해서 검사가 된 동생이 보기에는 좀, 좋지 않았겠죠.”
노력해서 열심히 사는 자신이 바보 같은 느낌도 있었을 거고, 일진 행세나 하던 껄렁패 형이 이제는 세계의 수호자랍시고 거들먹거리니 꼴 보기도 싫었을 거다.
종합적으로는 이해가 되는지라 승우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맘대로 말해라. 제기랄.”
강혁은 부끄러움과 화남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 그냥 넙죽 엎드려 버렸다.
데구르르 하고 영식이가 굴렀다.
그런 영식을 안아 올리면서 승우가 물었다.
“그래서 화해는 했어?”
“화해고 뭐고 있겠어요. 싸장님, 동생 없죠?”
“없지. 난 독자라서.”
“없어서 모르는 거예요. 형제라는 건요. 태어나면서 서로를 찔러 죽여라, 저 새끼 잘되는 꼴을 보지 마라! 라고 명령을 받아서 태어난다고요. 그런데 서로 화해요? 사이가 좋아요? 에이,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전적으로 네가 잘못한 거 같은데 그래도 화해의 신호는 보내야지.”
“에헤이, 가오 안 살게 화해의 신호는 무슨…….”
민이 히죽 웃었다.
“안 그래도 저 녀석, 몇 달 전부터 계속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있답니다. 자기가 잘못했다고 구질구질하게 편지도 썼고 선물도 보내고 아주 그냥…….”
“야! 너 진짜!”
강혁이 냅다 달려들었다.
기습 공격이었지만 탐지능력자에게 기습은 통하지 않는다.
심지어 최근에는 승우의 요리를 먹고 기겁할 만큼 레벨도 올랐으며 환골탈태도 했다.
달려드는 강혁을 스무스하게 엎어 매치기로 제압해 버렸다.
놀랄 만큼 깔끔하게.
예전에는 백강혁이 더 피지컬이 좋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민이 피지컬도 더 좋다.
“어? 어어어어?”
“후.”
강혁이 말을 잃고 당황하니 민이 위에서 내려다보며 비웃었다.
“약하군. 시시해서 죽이고 싶어졌다.”
“뭐 이 자식아아아아-!? 캬아아아! 오늘 사생결단 내자!”
“사생결단은 수준이 맞아야 하는 법이지.”
강혁이 다시 달려들었고, 싸움이 시작됐다.
둘이 뒤엉켜서 싸우는 걸 보고 승우가 피식 웃었다.
“잘 논다. 그나저나 가족이라…….”
가족이란 단어는 참 좋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사람은 종종 다른 사람에게도 가족이 있다는 걸 잊는다.
고아인 민이나, 이제는 혼자인 승우 같은 예외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어쨌든 가족이 있다.
그러니까 자신의 가족을 아끼는 만큼, 다른 사람도, 그들의 가족도 생각해서 아껴주면 좋을 텐데, 쉽지가 않다.
“가족, 가족인가.”
승우는 착잡하게 창밖을 봤다.
그의 표정에서 살짝 외로움이 느껴졌다.
그러자 오물오물하고 당근을 먹던 영식이가 뿅 하고 뛰어올랐다.
녀석이 머리 위로 올라와서 춤을 춘다.
어째 평소보다 열정적인 춤이다.
위로해 주려는 걸까.
녀석이 그러더니만 슬쩍 먹던 당근을 내민다.
“당근 먹어뿌.”
“그래그래.”
“당근은 노화를 예방하고 눈 건강과 피로를 풀어주며, 장을 보호해 주는 한편 섭식장애와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을 준대뿌.”
아니, 이 녀석이 언제 그런 걸 외웠지?
영식이가 몸을 부풀리면서 자랑스럽게 말했다.
“공부했어뿌. 밥집 슬라임 반년이면 동의보감을 외운다뿌.”
잘했지? 하고 이쪽을 보면서 으쓱으쓱 몸을 세운다.
승우는 그런 영식을 꼭 안으면서 웃었다.
“그래, 잘했어. 똑똑하다, 우리 영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