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275)
괴식식당-275화(275/613)
275화. 괴식학원 (5)
김해찬은 사람의 급을 책정하는 안 좋은 버릇이 있다.
많은 사람들을 보고 부리고, 기업을 경영하다 보니 생긴 버릇이다.
그는 단번에 사람의 재능을 간파하고, 잠재능력을 읽어낸다.
관찰안- 사람(人).
김해찬의 사람의 재능을 간파하는 스킬의 숙련도는 이미 상급.
그런 그가 이메일을 열자마자 반사적으로 외쳤다.
“이건 특급 인재로군. 의심할 바 없는 특급 중의 특급이야. 스킬이 아니더라도 알겠어.”
유승우의 위험등급은 EX.
단신으로 세계를 멸망시킬 수 있는 재앙덩어리다.
그런 이에게 급을 나누다니 실언에 가깝지만 이것은 김해찬 나름의 칭찬이었다.
그가 특급 인재라고 인정한 사람은 살면서 몇 되지 않는다.
보자마자 첫눈에 반한 주혁진.
러시아의 푸른 별이라고 불리는 바실리 블라디미로비치 자이체프 정도였다.
여기 세 번째 특급 인재가 나타났다.
“대단하군. 이쪽의 사정을 완벽하게 꿰고 있나?”
이메일의 내용은 김해찬의 가려운 부분을 속속 긁어주고 있었다.
그가 가장 걱정했던 부분은 유승우의 제자들에게 압박을 가하는 것이 유승우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이다.
그런데 대뜸 시작부터.
[요리밖에 모르는 철부지들이라 많은 교육과 지도 편달이 필요합니다.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라고 적어두었다.
한 줄을 읽자마자 마음속 깊은 곳에 담덩어리가 살살 녹아들었다.
성질을 건드릴까 봐 피하고 있었던 문제인데 정면으로 이리 허락을 해줄 줄이야.
김해찬의 입가에서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메일은 상당히 장문이었는데 여러 가지 해결책이 적혀 있었다.
낭비에 대한 해결책, 괴식 스킬 관리에 대한 주의사항.
앞으로 어떤 방침으로 교사진을 꾸릴지, 어떤 설비가 필요한지.
세세한 매뉴얼이다.
김해찬이 절로 감탄을 터트린 부분은 바로 경영 부분이었다.
[수조 원이라는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어 있다고 해도, 그 자원을 모두 사용하는 일방적인 지원 학원이 아니라 스스로 자생할 수 있는, 앞으로의 수익을 창출할 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혹, 청주의 이촌 시장을 아시는지요.]“이촌 시장?”
[이촌 시장에는 구매자가 시장을 돌아다니며 사온 재료로 길거리 요리사가 즉석에서 요리를 재량껏 해주는 문화가 있습니다.]“들어본 것 같기도……. 아, 과연. 예전에 한 번 TV에서 봤었군.”
[그때그때 마음이 내키는 대로 요리하는 이 방식은 창조성을 중시하는 괴식 요리사에게 매우 어울립니다. 따라서 이것을 도입할 것을 추천 드립니다. 만약 학원 근처에 시장을 만들 수 있다면 시장경제 활성화와 그것을 통한 자금 유치, 시의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고 요리사의 성장도 동시에 도모할 수 있습니다.]“옳거니!”
실로 명안이었다.
시장 경제 활성화.
학원이 설립될 국가의 지원을 받을 명분.
그리고 시민들의 괴식에 대한 인식을 개선할 수 있고 동시에 요리사의 육성 또한 할 수 있다.
한 번 돌을 던져서 몇 마리의 새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이다.
“시장을 꾸려놓으면 주민이나 관광객들이 알아서 재료를 사올 거고, 그 재료로 요리를 연습하니 그렇게 하면 낭비되는 자원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도 있겠군. 학원 설립에 반대하는 이들에게도 압박을 넣을 수 있어.”
영리한 방법이다.
누구도 손해를 보지 않으면서 모두가 이득을 본다.
[괴식 요리사만이 아니라, 평범한 요리사들의 식당도 있으면 좋습니다. 현지인들의 반발이나 괴식을 먹고 불만이 있는 손님들의 클레임을 최소화할 수 있으니까요. 동시에 평범한 요리사들의 직장을 빼앗지 않아도 됩니다.]“뒤처리까지 완벽하군.”
김해찬은 무릎을 탁 쳤다.
“유능해. 아주 유능해.”
청주의 이촌 시장은 김해찬도 알고는 있었다.
지식으로만 말이다.
전자뇌 깊숙한 곳.
메모리에 저장되어 있을 뿐이라 떠올리지는 못했다.
그것과 괴식학원을 접목하다니 놀라운 발상이다.
“여러모로 특급 인재야.”
지식과 높은 식견.
타인의 상황을 멀리서도 유추하고, 그 올바른 해답과 조율을 할 수 있는 정치력을 지닌 수완가의 모습을 가지고 있으면서 기존 문화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는 인격자다.
“아쉽군…….”
그래서 아쉽다.
차라리 귀환자가 아니었다면.
일신의 무력만으로 세계를 멸망시킬 수 있다는 위험등급 EX가 아니었다면.
이 유능한 인재를 아낌없이 쓸 수 있을 텐데!
ISAC는 인재는 대우하고, 세계 평화를 위해서 맷돌에 넣고 곱게 갈아서 쓴다를 신조로 삼고 있다.
총장 본인부터가 곱게 갈려나가고 있으니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신조다.
“에잉. 에이이이잉. 아까워 죽겠군.”
차라리 이 유승우라는 녀석을 조각조각 찢어서 사용하고 싶을 지경이다.
딱 5등분으로 쪼개면 좋겠다.
“5등분의 귀환자라. 아, 생각만 해도 좋군.”
무력을 담당하는 조각은 세계 멸망 위험의 보험 역으로 대기시키고 요리사로서의 빼낸 조각은 괴식학원의 학장을 시키면 되겠고, 이 정치력을 갖춘 부분은 분쟁이 끝나지 않는 분쟁 지역으로 보내고 지력을 갖춘 부분은 유럽을 맡기면 최고겠지.
겸사겸사 얼굴도 잘났으니까 외모를 빼낸 녀석은 모델이라도 시켜서 ISAC의 프로파간다를 맡기면 좋겠다.
“가끔 이렇게 마음에 드는 녀석은 혼자서 모든 재능을 다 가지고 있다니까. 욕심쟁이 같으니. 그 재능을 조금만 떼서 남을 주면 나도 좋고 잿놈도 좋고 세계도 좋을 것을. 쯧쯧.”
김해찬은 혀를 차며 아쉬움을 토로하다가 고개를 털었다.
아쉬운 것은 아쉬운 거고, 할 일은 할 일이다.
“좋아……. 그럼 나는 나대로 일을 시작해야겠군.”
두 철부지의 경영학 공부나 교육학 공부를 시켜줄 교사를 찾아야겠고, 학원이 설립될 부지를 알아보고 그곳의 시장이나 대통령도 만나봐야겠다.
레이첼은 프랑스에 짓고 싶은 모양이지만.
“코쟁이들만 좋은 일 시켜줄 수는 없지. 암. 아아암!”
ISAC 슈퍼 어드바이저 김해찬.
국제 표준어를 한국어로 바꾸고, 실수인 척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를 터트린 남자.
그는 새 시대를 상징하는 안드로이드지만 누구보다 구시대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자였다.
구시대적인 가치. 즉 애국심.
더 간단하게 말해서 국뽕.
“당연히 한국에 지어야지! 누가 괴식의 권위자인데! 누가 돈을 대는데! 어딜 감히 프랑스 따위가 어깨를 나란히 해!”
반년 안에 한국에 괴식학원을 짓고야 말겠다.
최고의 시설과 최고의 인재로, 최고의 부지를 선정해서 최고의 학원을!
김해찬은 그리 다짐하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 그런 의욕을 가득 담아 귀환자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다들 의욕적으로 움직여 주니 승우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 * *
아일루로스들은 괭이 나무에서 태어난다.
돌돌돌 말려 있는 아기 고양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몸을 펴고, 이윽고 완전히 자라면 똑 하고 떨어진다.
한 나무에는 보통 한 마리가 열리지만 가끔 열 마리까지 자란다.
동글동글하게 잘 여문 괭이열매는 테라에서만 볼 수 있는 따뜻한 풍경이다.
아쉽게도 올해도 상황은 좋지가 않다.
매해가 지날수록 새로운 아일루로스의 탄생은 그 수가 격감하고 있다.
작년 한 해 동안 태어난 아이의 숫자는 고작 다섯이다.
아일루로스의 유아기는 3~4년 정도인데, 그 3~4년 간 태어난 아이를 모두 합쳐봐야 스무 마리가 채 되지 않는다.
곤란한 일이다.
아일루로스는 최고의 집사이자 동반자이기에 누구라도 원한다.
당장에라도 아일루로스를 원하는 용사나 왕족은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매년 이리 줄어드니 수요는 많은데 공급은 부족하다.
“냐아. 아직도 하나도 안 늘었냥?”
고향으로 향하는 길, 플라잉 피쉬 버스 안.
나비가 한숨을 내뱉었다.
플라잉 피쉬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하늘을 헤엄치는 물고기다.
날치에 가까운 모습인데 아주 빠르게 날 수 있으며 아일루로스나 코볼트 같은 소형 종족은 다섯이나 태울 수 있기에 버스로 활용되지만 곤란하기도 하다.
플라잉 피쉬는 물고기라서 비린내가 나는데 이 비린내가 조금 식욕을 자극한다.
“냥.”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 속.
아일루로스의 고양이 나무들은 열매 하나 맺히지 않은 모습이었다.
월급을 모아 짬짬이 보냈던 지원금이 소용없었나 보다.
왜 열매가 맺히지 않는 걸까.
고민 속에서 목적지에 도착했다.
“내린다냐앙~”
나비는 폴짝하고 플라잉 피쉬에서 뛰어내렸다.
고향은 여전하다.
신록이 아름다운 숲, 오솔길 옆에는 색색의 꽃이 피어 있다.
나비는 꽃향기를 맡아보고는 앳옹, 하고 재채기를 했다.
꽃가루가 많이 나오는 걸 보면 슬슬 여름이 오나 보다.
“웨옹, 웨옹.”
“애옹?”
“웨옹.”
“애옹애옹!”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아기냥이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직 애옹이 태를 못 벗은 걸 보면 올해, 아니면 작년에 태어난 아이겠지.
살짝 보니 샴 고양이와 카오스 고양이다.
분명 샴은 이름이 마로였고, 카오스는 티거였다.
두 아이는 어깨에 곤충망을 걸치고 타박타박 걷는 중이었다.
곤충 수집 중이었을까?
녀석들이 곤충을 꺼내 서로에게 자랑했다.
“풍뎅이 애옹.”
“투구벌레 야옹!”
요맘때의 곤충은 나무의 수액을 빨아먹고 살이 토실토실하게 올라서 한층 더 맛이 없다.
즉, 제철이라는 의미다.
곤충은 갈아서 마법의 소재로도 쓸 수 있고, 먹으면 여러 효과가 있다.
그래서 곤충 잡이는 아일루로스의 귀중한 소득원이자 훈련이고, 놀이다.
‘곤충 잡이냥, 그립구냐.’
나비의 수염이 움찔거렸다.
어른냥이가 돼서 아가냥이들 앞에서 자랑할 일은 아니지만 나비는 곤충을 잘 잡았다.
왕년에는 곤충망도 필요 없이 꼬리 하나로 헤라클레스 킹 엠페러 풍뎅이도 잡았던 몸이다.
꼬맹이들이 다시 숲으로 들어갔다.
오랜만에 고향에 왔으니까 아이들이랑 곤충이나 잡을까.
아니, 일단 할머니부터 봐야 한다.
곤충 잡이는 그 다음이다.
“냥?”
나비는 오솔길을 따라서 걷다가 기시감이 들어 문득 옆을 봤다.
담쟁이 잎이 무성한 담 아래에는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어린 시절 나비가 뚫어둔 괭이 구멍이다.
아일루로스들은 여기저기 구멍을 뚫어두고 자신들만 이동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든다.
숏컷이라는 녀석이다.
빠르게 이동할 수 있고, 적에게 모습을 감출 수 있으며 비상시에 탈출 루트를 확보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전략 전술의 일환은 진지 구축의 훈련이지 않았을까.
‘저 구멍은 할머니 방 옆으로 이어졌다냐.’
저기로 슉 하고 나타나면 할머니가 놀랄까?
할머니는 베테랑 아일루로스이기 때문에 항상 흐트러지는 법이 없었다.
놀라게 할 수 있으면 놀라게 해보렴~ 하고 말하셨다.
‘오랜만에 저기서 나오면 놀라시겠지냐?’
놀라게 해서 성장을 보여주는 것도 일종의 효도다.
나비가 엉덩이를 흔들면서 구멍으로 다가갔다.
머리를 넣고 몸을 밀어 넣었다.
이대로 슥슥 전진하면 집은 금방이다.
그런데.
“웨옹?”
앞으로 나아가질 않는다.
“꼈다냐……?”
살이 너무 쪄서 배가 껴버렸다.
나비가 바둥바둥거렸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나비의 뒷다리를 잡아당겼다.
대단한 실력이었다.
레벨 99의 나비의 뒤를 잡을 수 있는 실력자다.
기척도 느끼지 못했다.
경악한 나비가 돌아봤다.
그러자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콩가루 같은 노릇노릇한 털 색깔과 나비를 똑 닮은 분홍코.
하얀 버킷 모자를 쓰고 따스하게 웃는 큰 고양이.
할머니 고양이가 나비의 몸에 묻은 흙을 털어줬다.
“냥?! 할무이냥!”
상냥한 눈으로 보는 할머니.
나비가 폴짝 안겼다.
둥기둥기 하고 나비를 흔들어주며 할머니가 웃었다.
“얘, 나이오비 야옹아. 살쪘냐옹?”
“애, 애옹…….”
“살찌니까 더 귀엽구냐, 우리 애옹이.”
할머니가 나비의 머리를 핥았다.
나비는 부끄러움에 눈을 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