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281)
괴식식당-281화(281/613)
281화. 권불십년 (2)
화무십일홍 권불십년.
(花無十日紅權不十年).
꽃의 붉음은 열흘을 넘기지 못하고 아무리 강력한 권력이라 할지라도 십 년을 넘기지 못한다는 말이다.
왕의 권력이 유지되는 것도 십 년.
대부분의 왕은 자신의 후손인 왕자나, 친인척, 외부의 견제와 신하들의 권력다툼 등의 이유로 점차 힘을 잃어간다.
꽃은 열흘이고 왕은 십 년이다.
그렇다면 신의 권력은 어떠한가.
영원할까?
그렇지는 않았다.
과거 테라의 최고 권력자는 하늘과 지배의 신인 우라누스였다.
그는 그의 아들인 농경과 시간의 신 크로노스에게 죽었다.
그리고 크로노스는 마찬가지로 자신의 아들인 제우스에게 죽었다.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는 패륜.
신들은 대대로 패륜을 거듭해 왔다.
허나 탓할 일은 아니다.
이것은 불멸, 불사, 불로 하는 신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들이 장성하고 딸이 장성한다고 해서 권력을 이어받을 방법이 없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늙어 죽지를 않는데 어떻게 권력을 계승하겠는가.
그러니 자신의 부모를 죽이는 패륜.
암살과 모살, 주살이야말로 왕권 계승의 의식이었으며 부모를 뛰어넘는 자식의 탄생이 곧 주신의 레임덕이었다.
아버지 크로노스를 죽임으로써 훌륭하게 권력을 계승한 제우스는 언젠가 자신의 무한한 권력이 끝날 것을 두려워하진 않았다. 두려워했다면 아이를 낳게 하질 않았겠지. 그는 언젠가 자신의 목을 따버리고 주신의 자리를 가져갈 자식이 나타난다면 명예롭게, 긍지 있던 아버지처럼 기꺼이 목을 내놓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건 아니지…….”
신의 권력은 그 목이 잘리는 순간까지도 신다워야 한다. 무소불위의 힘을 마구 휘두르며 폭정을 가하다가 단두대에 목이 걸리거나, 장성한 자식에게 왕권 계승 의식을 하기 전까지는 완전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지금의 제우스는 천천히 말라 죽어 가고 있었다.
신명 무구는 잃었고, 신망도 잃었다.
그리고 권력을 잃었다.
제우스의 손이 떨리며 누군가를 가리켰다. 승우가 살짝 눈썹을 치켜떴다.
그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등 뒤에서 강 건너 불구경하는 태도의 헤라를 지목한 것이다.
“헤르메스는 어디 있느냐.”
“내가 어떻게 알아요? 그 녀석이니 어딜 싸돌아다니고 있겠죠.”
“헤르메스……. 헤르메스.”
헤르메스의 신명은 전령의 신.
빠르게 소식과 정보를 물어서 전달하는 신이다. 전령의 신이 정보를 전달해야 할 대상은 물론 권력자다. 즉, 제우스였었다.
“왜, 헤르메스는 아무 말도 없었느냐.”
헤르메스는 지금 중요한 정보를 제우스에게 주지 않았다.
아들인 죠르주 아스트레이드를 구하려고 준비를 하던 중이었다.
아비로서 응당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그 일로 유승우가 먼저 찾아왔다. 서슬 퍼런 안광을 뿌리며 검을 든 채로 제우스의 영역에 들어섰다.
보는 순간 죽음을 각오했고, 자연스럽게 원망이 헤르메스에게 향했다.
“직무를 유기하다니……!”
전령의 신이라면 적어도 제우스가 하려는 일에 유승우가 관련되어 있다거나, 이쪽으로 그가 오고 있다는 정보를 전해주었어야 한다. 그래야 순리에 맞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덕분에 승우가 먼저 제보를 받아서 움직였다. 레토의 쌍둥이, 아르테미스와 아폴론이 재빨리 녀석에게 정보를 찔러줬다. 그 둘이 헤르메스보다 먼저 정보를 얻기는 힘들다. 요약하자면 헤르메스는 이 사태를 방관했고 아르테미스와 아폴론은 제우스를 배반했다.
“어째서?”
“그야 지금의 주신은 당신이 아니니까 그렇죠.”
헤라의 단호한 말에 제우스는 비로소 자신의 권력이 완전하게 사라졌음을.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주신으로 불릴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배신했구나!”
승우가 실소를 내뱉었다.
“배신이라고 할 만한 이야기도 아니지. 그보다 이봐, 아저씨. 내가 지난번에 헛짓거리하려다가 걸리면 가만 안 둔다고 말했지? 얌전히 농사를 짓고 있어서, 당근 품질이 좋아서 참는 거라고 했잖아? 그런데 잘도 저질러 주셨네.”
“아. 아아아…….”
“내가 안 왔으면 뭐 하려고 했을까.”
뭘 하긴, 날아가서 아들을 괴롭힌 적을 찢어서 죽이려고 했지.
그리고 아직 이 제우스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건재하다는 것을 만천하에 알리려고 했다.
솔직히 씨 뿌리기는 재밌지만 다른 종류의 씨 뿌리기가 더 재밌거든.
“이따위의 생각을 하면서 헛짓거리하려고 했지?”
제 버릇은 개 못 주는 법이고, 세 살 버릇은 여든 살까지 가는 법이다.
수천 년을 그렇게 살아왔는데 언제까지나 농사만을 하고 살 수는 없는 노릇.
딱 고대로 생각했었기에 제우스가 뻐끔뻐끔 입을 열었다.
“네 녀석의 생각은 손바닥 위에 올린 듯 훤해. 그러니까.”
승우가 조용히 게이트를 열었다.
게르니아로 가는 직통 게이트다.
“자, 진실의 방으로.”
* * *
제우스가 진실의 방으로 끌려가서 모진 고초를 당하는 동안, 그리고 죠르주가 하늘의 별이 되어 반짝이는 동안 지상은 소란스럽게 움직였다.
아스트레이드는 아일루로스들의 돈을 횡령해서 축제를 벌이고 있었던지라, 관광객이 매우 많았다. 그런 관광객 앞에서 왕이 수직 상승하여 별이 되었고 기사단이 팬티 바람으로 제압당했다.
국격이 엄청난 속도로 곤두박질 쳤다. 음유시인이 노래했다.
주로 기사단의 팬티와 별이 된 왕, 그리고 용감한 아일루로스를 칭찬한 노래였다. 향후 몇 년간은 음유시인의 단골 소재가 되겠지.
그 노래에 영향을 받아서일까.
기사단장 카젤은 스승의 은혜는 하늘같아서-로 시작하는 이세계의 노래를 부르며 가장 앞에서 걸었다.
그녀는 나비의 손을 잡고 아스트레드 왕성의 보물고를 열어 재물을 꺼냈다.
“안 된다, 이놈들아!”
“그 돈이 어떤 돈인데!”
“원래 우리 돈이었다냐! 도둑이 건방지다냐!”
반발이 심했던 귀족들. 내정대신을 비롯한 이들은 크게 저항했다.
물론 나비의 앞발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우끼.”
잘 날아가네~라고 카젤이 한가롭게 말했다. 먹구름은 사라지고 파란 하늘이 보인다. 구름을 가르며 날아가는 귀족들의 모습은 참으로 보기가 좋았다.
“냥? 하늘에서 돈이 떨어진다냐.”
“우끼.”
품성은 속일 수 없다고, 그 혼란한 와중에 보물고에서 재물을 챙긴 녀석들이 있었다.
녀석들이 나비에게 맞아서 하늘을 날아가며 돈을 뿌리는 것이다.
“보물 고블린 같구냐.”
“우끼끼.”
횡령한 돈이 정확히 얼마인지는 모른다. 얼마를 가져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할머니는 항상 지혜롭다.
노묘라서 그런 게 아니라, 본래 머리가 좋았다. 할머니가 말했다.
“다 가져가면 된다냐.”
“그런 거냥?”
“깽값이라도 남겨주면 감격할 거다냐.”
“깽값이 뭐냥?”
“그런 게 있다냐. 나이오비 애옹이는 몰라도 된다냐.”
보물고는 아주 커다랬지만 재물은 적었다. 점점 빈약해지고 있는 재정이 고스란히 보였다.
고양이의 돈이라도 훔쳐야 했을 정도로 아스트레이드는 재정 악화가 심각했다.
아마 이번에 보물고를 싹 털어간다면 아스트레이드는 망할지도 모른다.
죠르주가 숨겨진 재능을 폭발시켜서 엄청난 활약을 하거나, 내정대신이 돈의 신에 필적하는 재능을 가지지 않는 이상 망할 확률이 더 높다.
아스트레이드의 기사단장인 카젤로서는 가슴이 아픈 이야기다.
“우끼.”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카젤이 앞서서 제물을 뒤졌다.
“우끼.”
스승의 아일루로스인 나비의 돈을 횡령하다니 그 죄가 크다.
백번 죽어 마땅하다.
몰랐다면 스승의 아일루로스를 모르고 있었다는 죄가 그렇고, 알았다면 알고도 저질렀으니 천억 번 죽을죄와 다름없다. 카젤만 하더라도 나이오비가 스승의 아일루로스인 것을 알고 있지 않았던가.
“우끼끼. 죽어우끼.”
스승의 은혜를 뼈에 새기고 그림자도 밟지 않게 노력한다는 것.
그것은 평소에 부지런하게 스승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관심을 주어야 가능한 일이다.
카젤은 월급의 일부를 정보 길드에 자동이체 시켜놓고 매달 승우의 대한 정보를 받아보고 있었다.
“우냐. 그런 것도 하냥?”
“우끼. 우끼끼.”
원숭이조차도 스승의 은혜를 이리 아는데, 인간이 되어서! 왕이 되어서 그리 한심하다니!
카젤은 죠르주가 내려오면 볼기짝을 때려서 정신을 차리게 할 생각에 얼굴을 붉혔다.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 나이오비의 인벤이 빵빵해졌다. 용사님으로부터 할당 받은 공간이 거의 꽉 찰 정도였다. 망해가고 있다고 해도 왕국은 왕국이라 상당한 재산이었다.
“이만하면 충분하겠지냥?”
할머니는 입을 다물었다. 사실은 충분하다 못해서 아마도 한참 더 많은 돈이었다. 여유자금과 비축자금은 그 의미가 달랐다.
아일루로스들에게서 가로챈 돈은 여유자금이다. 투자하고 써도 지장이 없는 돈이다.
하지만 이 보물고에 있는 돈은 비축자금이다. 긴급한 상황, 위기상황에 쓰는 돈이다.
그 돈을 싹 가져가면 어떻게 될까?
망하겠지.
응. 망해라.
내 손주의 눈에서 눈물을 뺀 나라 따위는 망해 버리라지.
할머니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모른 척 나비의 이마를 핥았다.
“냐아아, 할무이냥. 냐는 애옹이가 아니다냐.”
“야옹야옹.”
돈을 회수했고, 왕도 혼내줬다.
이제는 돌아갈 시간이다.
타박타박 걸어 나오니 해가 지고 있다. 꽤 오랜 시간을 안에서 있었나 보다.
팬티 바람이었던 기사단 사람들은 어느새 옷을 입고 있었고, 우물쭈물 경계하며 성을 포위하고 있었다. 그걸 보고 카젤이 이를 보이며 웃었다. 아주 위협적인 웃음이다.
“팍그냥우끼!”
“히익…….”
기사단장의 실력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이 바로 기사단원이라, 카젤의 위협을 보고 죄다 꼬리를 말았다. 싸웠다가는 박살이 난다.
기사단장의 배신이 확정된 이상 승산은 없다.
녀석들은 휘파람을 불며 모른 척 포위망을 풀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비가 물었다.
“카젤은 이제 어떻게 할 거냥? 갈 곳이 없으면 우리 집에 갈래냥?”
“우끼, 우끼.”
카젤이 꼬리를 흔들었다.
그녀는 당연히 남을 예정이었다.
카젤은 기사단장이다.
나라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
“우끼.”
비록 나라가 이 꼴이고, 왕의 실정이 있었지만 근본은 변하지 않는다.
곧 왕이 돌아올 테니, 녀석을 혼내주고 반성하게 만든 후에 혼란의 빠진 나라를 수습해야만 한다. 수습하는 동안 약해질 치안과 국방을 책임지는 것. 그것이 기사의 일이다.
“우끼. 의리우끼.”
“의리냥! 멋지구냐. 그럼 건강하라냐.”
“우끼우끼.”
나란히 아장아장 걷는 두 고양이를 보며 카젤이 주먹을 풀었다.
계산해 보니 슬슬 죠르주가 떨어질 때가 됐다.
과연 하늘을 보니 한줄기 유성이 떨어지고 있었다.
* * *
호된 꼴을 당했다.
반나절 이상 하늘에 떠 있었고, 내려오자마자 카젤에게 혼났다. 녀석의 혼냄은 그냥 말로 화내는 게 아니다. 그냥 팬다. 알아들을 때까지 계속 팬다. 반성할 때까지 때린다.
“우씨, 폭력적이야…….”
왕을 후려 패다니 반역이고 모반이다.
하지만 카젤의 충심을 모르는 자는 없다. 인망도 높다. 이런 것으로 처벌하긴 힘들다. 내통을 했고, 반역도 했고 불충했다. 처벌하는 게 맞다.
그러나 어차피 왕국 내에서 카젤을 이길 자는 죠르주를 포함해도 없었다.
“으, 으으. 아파. 내가 그 녀석이 스승님의 아일루로스인 걸 어떻게 아냐고.”
정보길드 놈들은 알았던 거 같지만, 그런 시시콜콜한 정보. 그러니까 검의 용사가 아일루로스를 고용했다는 아주 사소하면서 알 필요 없는 정보 따위를 대체 누가 궁금해 한단 말인가. 그리고 누가 그런 정보를 사서 모은단 말인가.
“으, 으으. 그것도 그거지만 아버지도 아버지야. 설마 그렇게 애달프게 기도를 해도 들어주지 않다니…….”
제우스에 대한 실망과 서운함을 중얼거리며 죠르주가 방 안으로 들어섰다.
힘겹게 침대 위로 올라가서 드러누웠다. 이제부터의 계획을 생각하니 머리가 아프다.
나라를 어떻게 정상화할지, 날린 돈을 어떻게 채울지. 고양이 돈을 횡령했다가 몇 배로 잃었다.
국고를 탕진했으니 황당할 정도의 적자다. 나이오비 하나만의 일이 아니다.
곧 소식을 접한 아일루로스들이 법적 절차를 밟을 것이다. 묘산묘해를 이룰 괭이들을 생각하니 뒷골이 땡긴다.
“시버얼…….”
산 너머 산이다. 그러나 불가능은 아니다. 죠르주는 생각보다 상재(商材)가 있었다. 돈을 불리는 일은 의외로 잘하는 편이다.
아일루로스의 돈을 빼돌릴 방법을 찾았듯이, 다른 곳에서 돌려막을 수 있겠지. 사기의 돌려막기다.
수십 년은 걸리겠지만 어떻게든 일어설 수 있다. 그러나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스승의 일이다.
그의 스승인 유승우는 칼 같은 인간이다. 평소의 온화함이나 상냥함은 선을 넘는 순간 사라진다.
그 후부터는 극악의 슈퍼 사디스트가 된다.
“의외로 막 나가시는 분이니까…….”
중력을 이용하는 검술을 가르칠 때 이해 못 하면 몸에 새기면 된다고 절벽에서 던지는 사람이다. 결과적으로 배우긴 했지만 과정이 정상이 아니었다.
나이오비가 울었으니 유승우는 반드시 온다. 살아야 한다.
스승님의 약점은 알고 있다.
크게 두 개다.
먹을 거. 그리고 아이.
죠르주는 이제 아이가 아니다.
그러니까 쓸 수 있는 방법은 음식뿐.
어떻게든 스승님이 만족할 만한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그 스승님이 만족할 만한 음식이라니…….
“으, 스승님을 어떻게…….”
“나 불렀어?”
“우왁?!”
갑자기 옆에서 들려온 소리에 죠르주는 깜짝 놀라서 침대에서 떨어져 버렸다.
고개를 드니 싱긋 웃는 스승님의 얼굴이 보였다.
죠르주의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