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286)
괴식식당-286화(286/613)
286화. 세상에 믿을 놈 없다 (2)
신선도가 중요하지 않은 음식이 어디에 있겠냐만, 아이스크림은 그중에서도 유독 신선도의 영향을 많이 받는 음식이다.
얼마나 영향을 크게 받는가 하면 극단적으로 말해서 완성이 되는 그 순간부터 초 단위로 맛이 떨어진다.
현대의 과학기술로 맛을 보존할 수 있지 않은가, 라고 해도 사실은 맛의 손실을 줄인 것뿐이지 완벽하지는 않다.
막 만들어진 아이스크림을 먹어본다면 냉동포장이 얼마나 많은 맛을 잃어버리게 하는지 체감할 수 있다.
승우가 만든 이세계의 두리안 아이스크림도 아이스크림인 이상 맛의 손실을 피할 수는 없었다.
이 아이스크림은 맛을 제외하면 그리 특별한 음식은 아니다. 괴식도 아니었다. 그저 이세계에서 가져온 두리안의 변종 과일을 써서 아이스크림을 만들었을 뿐이다.
요리 방식도 같았다.
바닐라 에센스 조금, 설탕 조금, 생크림 조금과 계란 노른자 몇 알을 넣고 이세계의 두리안을 썰어서 섞는다.
그리고 드라이아이스나 빙결마법을 사용해서 얼리면서 긁어낸다.
워낙 쉽다 보니 재료를 준다면 누구나 같은 맛을 낼 수 있다.
간단하게 만들 수 있고 엄청난 맛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세상만사 편한 일만 있지는 않다.
이세계의 두리안 아이스크림은 맛의 변질이 너무나 빨랐다.
단 1분, 고작 60초.
1분만 지나도 감격적인 맛은 사라지고 평범한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된다.
이 정도라면 어느 마트에서도 5천원이면 살 수 있는 맛이다.
이세계의 과일을 쓴 수제 아이스크림다운 맛을 내지 못한다.
그럼 어떻게 맛을 유지할까.
빙결마법으로 얼리면 너무 꽁꽁 얼어서 식감이 나빠진다.
자연히 맛도 떨어진다.
보존마법을 걸면 해결이 되지만, 연비가 나쁘다. 말이 보존마법이지 실은 그 마법은 시간동결이라는 엄청난 대마법인 까닭이다. 아무리 승우가 무한의 마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아이스크림에 일일이 시간동결 마법을 걸기도 그렇다.
그래서 승우는 꾀를 냈다.
바로 한유성을 사용하는 것이다.
세상의 만물은 음과 양, 오행으로 이루어져 있다.
살아 있는 생물은 양, 죽은 것들은 음.
양은 플러스를 의미하고 발전과 성장을 의미하며 음은 마이너스를 의미하고 성장의 정지, 정체를 의미한다.
한유성이 부릴 수 있는 잡령은 힘이 없고 나약하지만 음기의 덩어리인지라 이미 만들어진 아이스크림의 온도를 동결시킴과 동시에 맛을 유지하는 최고의 도구였다.
“싫소이다. 그거 무지 힘들단 말이오. 대체 나에게 왜 이러시오?”
“너만이 할 수 있는 일이야. 고아원의 아이들에게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보내주고 싶단 말이다.”
“그럼 그 잘난 마법을 쓰란 말이오!”
“보존마법 같은 대단한 마법을 걸었다가 장거리 이송 중에 마법 사고라도 나면 골치 아파.”
“에잇! 솔직히 귀하도 망령 정도는 다룰 수 있지 않소이까?”
“응? 아, 난 못 다뤄. 내가 의지를 보이는 순간 망령들이 증발해 버리더라고…….”
“…….”
생각해 보면 그러했다.
어지간한 힘을 갖춘 령이 아닌 이상, 승우의 집 근처만 가도 증발한다.
그가 가진 양의 기운이 너무나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다가가기만 해도 증발하는데 명령을 내리려고 의지를 내비추거나 말을 걸면 당연히 소멸하겠지.
“그렇다면 요리하는 동안 본인이 있어봐야 어차피 다 증발할 거 아니오?”
“응. 내가 만들면 영식이가 너에게 배달을 할 거야. 너는 거기에 잡령으로 밀봉을 하면 돼.”
“으……. 본인이 싫다면 어쩔 거요?”
“거참. 일일이 귀찮게 굴기는…….”
“흥. 확실하게 말해두겠는데 이 홍룡도령. 그리 싼값에 부림당하는 몸이 아니외다. 각오하는 게 좋을 거요.”
아무렴! 아무렴!
한유성이 크게 몸을 부풀렸다.
그 모습에 승우가 실소했다.
“제임스 미치너라는 소설가는, 사람의 성격은 세 번째와 네 번째 시도에서 뭘 하느냐에 따라 규정된다고 했어.”
“그게 뭔 뜻이오?”
“한 번의 실패, 두 번의 실패 후. 세 번째 도전부터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사람의 본성이 나온다 이거지.”
“허.”
“나도 그 사람의 의견에 동감하는지라, 어떠한 악인이라고 해도 세 번에서 네 번까지는 기회를 주는 편이거든. 그런데 너는 이번이 슬슬 세 번째 같은데…….”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한유성은 인격적으로 발전이 없었다.
그 말을 어째 칭찬으로 인식한 건지 한유성이 한껏 거드름을 피웠다.
“흐으응, 본인은 조선제이무당 홍룡도룡이외다. 그리 쉽게 굴복할 수는 없지. 그리고 이미 완성된 완벽한 인성을 가졌는데 발전은 무슨 발전이오?”
그래. 꼭 이렇게 크게 혼나봐야 굽히는 놈이 있지. 그런 근성 있는 녀석은 개인적으로는 싫어하지 않는다.
하지만 역시나 매번 이렇게 입 아프게 이야기해야 된다면 귀찮다.
승우가 생긋 웃었다.
“너 괴식의 효과를 떠넘기기 스킬을 써서 홍룡에게 떠넘기고 있지?”
“그, 그걸 어떻게!”
“내가 그것도 모르겠냐. 내가 이걸 누군가에게 말하면 어떻게 될까?”
“!?”
누군가는 당연히 황지현이었고, 세상에서 한유성이 제일 두려워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당신은 악마요?!”
“그래서 할 거야, 말 거야.”
“…….”
그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오래 보존되고 맛있는 두리안 아이스크림이 탄생했다.
맛있는 음식에 대한 소문은 정보화시대의 상징 SNS를 통해 날개 달린 듯 퍼져나갔다.
입소문이 무섭다고 반나절이 채 되지 않아서 발 빠른 기업인들이 접근했고, 앞다투어 상품화를 요청했다.
한유성이 투덜거렸다.
“상품화는 무슨. 본인이 없으면 어차피 못 만드는 거라니까! 상품화 하고 싶으면 저 귀축선인 말고 본인에게 잘 보여야 하는 거 아니오? 구체적으로 말해서 돈 달라고, 돈! 크아아앙!”
내심 상품화를 바라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 엄청난 맛 때문에 기존 아이스크림 시장을 완전히 무너트릴 가능성이 있기에, 승우가 거절했으며 기업인들은 낙담했다.
그래서 상품화는 없었고, 땡전 한 푼도 못 받았다.
“아까워 죽겠네. 돈 방석에 앉을 수 있는 기회였거늘……. 따흐흐흑. 저 귀축선인은 돈 귀한 줄을 몰라…….”
한유성은 오늘도 구슬프게 울었다.
* * *
“그런 사연으로 만들어진 아이스크림이야. 고아원에 보내기 전에 시험판으로 아는 사람에게 몇 개 준 건데, 내가 아들이 생각나서 하나 가져왔지.”
강혁이 그렇게 말하면서 엄지를 세우자 아레스는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사연을 들어보니 나름 귀한 아이스크림이다.
아니, 제법 정도가 아니다.
검신이 직접 만든 아이스크림이라면 테라에서는 왕후장상이나 신들도 쉽사리 먹을 수 없는 보물이다.
당연히 이 지구라는 곳의 귀족들, 왕도 마찬가지겠지. 그런 귀한 아이스크림을 고아원의 아이들은 먹을 수 있다는 아이러니가 쓴웃음을 나오게 했다.
“과연 여전히 강강약약이군.”
“싸장님이 그렇지 뭐.”
“그런데 너는…….”
아레스가 묘한 눈으로 강혁을 봤다.
새삼 느껴진다.
‘이 자식, 정신은 나간 놈인데 의리는 있단 말이지.’
아레스를 아들이라고 부르는 놈이다. 정신병자가 분명하다.
수천 년을 산 아레스의 수명도 그렇지만, 아레스의 아들인 에로스만 하더라도 천 살이 넘는다. 그런데 서른도 안 된 그야말로 핏덩이가 누굴 아들이라고 부르는 걸까.
‘미친놈이지.’
그런데 머리가 아픈 건 아픈 거고, 의외로 의리는 있다.
이 귀한 아이스크림을 가져오다니!
보통은 자기가 먹지 않던가.
적어도 아레스는 그렇게 할 것이며 베스트 프렌드인 헤르메스도 그리했을 터. 그런 의미에서 확실히 이 녀석은 의리가 있었다.
“딱히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으마.”
“…그게 고맙다는 말 아니야?”
“…….”
아레스는 말없이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읏…….”
역시, 역시나 유승우다.
이 강렬한 단맛과 그 단맛을 은은하게 감싸주는 짠맛. 단맛과 짠맛의 조화가 완벽하다. 더하고 뺄 것도 없다.
혀 위에 하얀 아이스크림이 올라가는 순간 녹아내리고, 맛이 전신에 퍼진다.
온몸의 감각기관이 깜짝 놀라며 미쳐 날뛴다. 한바탕 노동을 한 후의 단맛이라서 그럴까.
메마른 대지에 단비가 내리듯 스며든다. 뼈에 사무치는 감동적인 맛이다.
아레스는 자기도 모르게 한 줄기의 눈물을 흘렸다.
그는 지금 꽤나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 몰린 상태였다.
알게 모르게 그의 정신 줄은 끊어졌고 마음의 방어막은 박살이 난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이 엄청난 맛의 두리안 아이스크림이 마지막 일격을 날렸다.
그 증거가 바로 눈물이었다.
“아들? 울어?”
“크읍…….”
“뭔 일이야? 말해봐. 도와줄게.”
그러니까 아레스가 울분에 차서 가슴에 쌓인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다.
문제는 그 많은 사람 중에서 하필이면 백강혁에게 마음의 문을 열었다는 거지만, 절벽에 떠밀린 아레스에게 이성적인 판단은 불가능했다.
“시, 실은…….”
아레스가 눈물을 흘리며 말한 사연은 참으로 기구했다.
* * *
사랑, 사랑, 사랑.
누군가가 사랑은 열병이라 했다.
그렇다. 병이다, 병.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일은 병과도 같아서 한 번 걸리면 답이 없다.
그러니까 아레스가 형 헤파이스토스의 아내인 아프로디테와 사랑에 빠진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한눈에 반해버렸으니까! 그녀도 아레스를 마음에 들어 했으니까!
아레스와 아프로디테는 금슬이 좋아 8명의 자식을 낳았다.
포모스, 아드라스테아, 포토스, 히메로스, 하르모니아, 안테로스, 포보스.
마지막으로 에로스.
헤파이스토스와는 하나의 자식도 없었는데 아레스와는 8명이다. 금슬이 여간 좋았던 게 아니다.
아레스는 진심으로 아프로디테를 사랑했다. 그런데 얼마 전이었다.
염전에 온 친척이 모였다.
포세이돈을 필두로 소금을 만들기 위해서다. 욕을 한 바가지 내뱉으며 대파(염전바닥을 긁는 도구)로 슥슥 바닥을 긁던 하데스가 문득 말했다.
“그러고 보니까 헤르마프로디토스가 살마키스에게 건 소송 말인데, 상황이 상황이니 페르세포네가 법정을 열 수 없어서 심판 기일이 연장됐다. 헤르메스에게 전해야 되는데 혹시 못 봤나?”
낑낑거리며 포세이돈표 천일염을 배달하던 아레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헤르메스요? 그러고 보면 요즘 보기 힘드네요.”
“그럼 뭐, 검신이 괴롭히고 있겠지.”
“그런데 삼촌, 헤르마프로디토스가 누굽니까? 이름이 굉장히 어렵네요.”
“누구긴, 헤르메스와 아프로디테의 자식이지.”
“예?”
아레스의 몸이 굳었다.
지금 뭐라고 한 거지?
“살마키스와의 소송도 못 들어봤나? 헤르마프로디토스가 워낙 미남이라 살마키스가 한눈에 반했는데, 녀석이 계속 구혼을 거절하니까 신력을 써서 그만 양성구유로 만들어버린 사건이야.”
양성구유. 남자와 여자의 육체적 특성을 둘 다 가진 몸을 말한다.
하데스가 혀를 차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때 헤르마프로디토스가 양성구유가 되도록 신력을 빌려준 게 네 아버지, 제우스야. 재밌어 보여서 그랬다더만. 어쨌든 헤르마프로디토스는 피해 소송을 걸었고 네 아비와 살마키스, 헤르마프로디토스, 헤르메스, 아프로디테가 엮어서 난장판이야. 도대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페르세포네도 골머리가 아프다더군.”
“그, 그런… 헤르메스와 아프로디테의 자식이라고요?”
“…뭔가 그 처음 듣는다는 듯한 반응은?”
“처음 듣습니다!”
“헤르마프로디토스의 나이가 이미 천오백 살이 넘었어. 에로스보다도 형이야.”
“!?”
하데스가 표정을 구기며 다시금 혀를 찼다. 마치 멍청이를 보는 듯한 표정이었다.
“아니, 천오백 년이 되도록 모르고 있었나? 너도 어지간히 멍청하구나. 난 또 잘 이야기해서 합의한 줄 알았지.”
“…….”
“아마도 헤르메스가 너에게 가는 소문을 전부 차단하고 있었나 보군. 하긴, 녀석은 전령의 신이니 그런 소문을 떠벌리는 일도 잘하겠지만 차단하는 일도 잘하겠지.”
믿었던 친구의 배신!
그리고 사랑했던 여인의 변절 대미지는 컸다.
그 충격에 아레스가 쓰러졌다.
승우에게 끌려가기 하루 전의 일이었다.
* * *
강혁의 입을 통해서 사연을 접한 승우는 말없이 눈을 가늘게 떴다.
“불륜한 놈이 불륜 당했다고 지금 감성을 파네.”
매가 부족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