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288)
괴식식당-288화(288/613)
288화. 세상에 믿을 놈 없다 (4)
고민하던 헤르메스의 뇌리에 벼락처럼 결론이 떠올랐다.
“이대로는 안 돼. 죽는다.”
그는 신들 중에서도 유독 약한 신이었다. 무력으로만 치자면 잘나가는 용사나 귀족들, 왕족보다도 약했다.
헤르메스의 신격은 수련과 수행, 고난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타고난 것이기 때문에 무력과 곧장 이어지지 않는다.
굳이 따지자면 헤르메스뿐만이 아니라 타고난 신성으로 신명을 얻은 대부분의 신이 그러했다.
그렇게 약해빠진 헤르메스지만 올림포스에서의 입지가 그리 떨어지는 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위상이 높았다.
전령의 신이라는 신명은 쉽게 말해서 ‘정보’에 대한 신이다.
정보란 전쟁에서도, 일상에서도, 경영에서도 항상 가치가 높다.
그 때문에 헤르메스는 힘은 약하지만 교활하고 물리적인 속도뿐만이 아니라 발상의 전환 속도 또한 빨랐다.
미래 계획을 생각하던 그가 바로 발상의 스위치를 바꿨다.
“남에게 기대서는 안 되겠어.”
지금까지의 기본 전략은 남에게 대출을 받건, 보증을 부탁하건 해서 목돈을 마련한 후에 도피 및 정착 자금으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에로스는 거절했고 의지할 신은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에로스는 두 부모를 증오하니 정보의 유출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봄바람의 날개로 얻은 48시간의 이득은 아직 유지되는 상태다.
그럼 지금 가진 게 무엇일까.
“우선은 시간.”
아레스가 진실을 알아채고 격노하고, 죽이겠다고 날뛰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48시간이다.
이 시간에는 아레스가 유승우가 두려워서 분을 참고 얌전히 노동을 하는 시간도 포함되어 있다.
약 40시간쯤부터는 유승우의 공포에서 벗어나서 헤르메스와 같이 동반자살을 결심할 것이다.
“하지만 미래는 고정된 게 아니지. 다양한 선택이 있고 그것으로 분기가 생긴다.”
헤르메스가 관측한 최악의 미래는 아레스가 백강혁을 아버지로 인정하는 대신 유승우의 힘을 빌려서 추노를 시작하는 것. 이럴 경우에는 시간의 이득이고 뭐고 그냥 단숨에 잡힌다.
물론 확률은 낮다. 유승우의 엉덩이는 무겁고 아레스가 백강혁을 아버지로 인정해 봐야 유승우에게는 어떠한 메리트도 없다. 그러니까 실현 가능성은 한없이 낮다. 그리고 만약 유승우가 온다면 그냥 얌전히 죽어주면 된다.
“그러니까 유승우 생각은 접어두자.”
유승우를 생각만 해도 다리가 떨린다. PTSD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헤르메스는 의식적으로 유승우에 대한 생각을 접었다. 뭔 대책을 세워도 놈이 나오면 그 순간 게임 오버다. 항거 불가능한 재해를 상대로 대처법 따윈 있을 리 없다. 생각해 봐야 손해다.
“후우… 후우…….”
헤르메스는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분위기를 바꿨다.
생각을 계속하자.
“내 강점. 내 강점은 이 날개지.”
올림포스 최고속을 자랑하는 날개. 전령의 신으로서 가진 태어날 때부터의 힘이다. 그의 속력은 두말할 나위 없다. 올림포스에서도 최고속이었으니 반고에서도 당연히 최고속이다. 반고는 테라보다 레벨이 낮은 차원이다.
“그리고 정보, 빠른 머리 회전.”
헤르메스는 여러 차원을 여행했었다.
지혜의 신인 아테나 정도는 아니지만 많은 경험과 지식이 있다.
그리고 제우스나 포세이돈, 하데스의 밀명을 받아서 움직였던 만큼 아테나도 모르는 비밀 정보를 여럿 알고 있다.
“마지막 강점. 나는 거지!”
신력이 정말 한 톨도 남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이 왜 강점인가?
그것은 단순한 이유였다.
“어차피 다 거지니까.”
올림포스의 신들은 죄다 거지다. 알토란같이 모아온 보물이나 신력을 죄다 유승우에게 빼앗겼다. 그러니까 사이좋게 전원 파산 상태였다. 한쪽만 돈이 있고, 한쪽은 돈이 없는 상황이 아니라 죄다 돈이 없으니 이것은 강점이었다.
“그러니 문제는 또 유승우인데, 그놈이 끼어들면 그냥 노답이니까 상정해도 의미가 없지. 근데 계속 무섭네. 젠장할. 진정하자, 진정해.”
정리하자. 지금 가진 것은 잠깐의 시간 유예, 빠른 날개와 정보력.
그리고 죄다 거지고 헤르메스는 자신을 지킬 힘이 없으니 위험한 상황이다.
이 모든 것을 조합해서 헤르메스는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구상했다.
“밀수.”
인벤토리와 속도.
뒷지식을 활용한 차원 밀수다.
밀수, 몰래 거래하는 것.
합법과 불법을 두고 비교를 하면 불법이 돈이 더 잘 벌린다.
신들이 사는 신계라고 해도 인간계와 별로 다르지도 않았다.
인간들의 밀수가 돈이 되듯, 신들의 밀수도 신력이 된다.
차원 밀수는 공공연하게 벌어지는 범죄였다. 거래할 것은 많고도 많았다. 차원의 특산물, 보물, 정보, 인력 등등.
“지금 있는 건 쥐뿔 없지만 말이야.”
유감이지만 지금 헤르메스는 차원의 특산물도 보물도 없다. 그런 건 이미 검신이 죄다 가져갔다. 인력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정보는 많다.
신들의 약점, 비리, 꿍쳐둔 비자금의 위치, 내밀한 관계는 팔면 신력이 된다.
“정보를 팔자.”
밀수와 정보를 밑천으로 신력을 벌어서 이세계에 뿌리를 내린다.
망설임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이 작업을 한다면 헤르메스는 올림포스를 적으로 돌리게 된다.
그러나 이미 아레스를 적으로 돌리는 짓을 했다. 녀석을 아끼는 헤라와 제우스도 적이라는 소린데, 그럼 이미 올림포스 전부를 적으로 돌리는 짓을 한 것과 다름이 없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
그 극한 상황 속에서 헤르메스는 웃었다. 가진 능력은 자신의 능력뿐.
이것을 이용해서 살아남아야 한다.
인간은 자신의 격을 올리고 업적을 증명해야 신이 될 수 있다.
태어나길 신으로 태어난 헤르메스다.
그는 이 상황 자체가 자기 자신이 왜 신인지를 증명할 기회로 여겨졌다.
“조오아써! 해볼까!”
헤르메스는 각오를 다지고 날아올랐다.
* * *
그런 헤르메스의 사정은 알 바 없고, 죠르주는 죽을 맛이었다.
고양이들에게 갑질 했다가 왕국이 폭삭 망하게 생겼다. 어마어마한 손해를 봤고 그 손해를 메꾸기 위해서 신하들과 어머니가 애를 쓰는 중이다.
거기에 한 손을 보태지도 못하고 승우에게 끌려왔다. 그리고 갑자기 헤르메스를 잡아오란다.
“돌겠네.”
미치고 팔딱 뛸 일이지만 그렇다고 답이 없지는 않았다.
승우의 말처럼 도망간 놈을 잡아오는 놀라운 재주가 있어서가 아니다.
얼마 전에는 불발이었던 아빠 찬스를 썼다. 의지할 거라고는 제우스 정도다.
“이 애비만 믿어라. 곧 해결해 주마.”
새하얀 비둘기의 형상을 한 제우스가 호언장담했다.
물론 별로 신뢰성은 없었다.
“…….”
예전이었다면 감격하고 감동하고 무조건적인 신뢰를 보내겠지만 요새 전적이 좋지가 않다. 구조 요청을 보냈더니만 스승님에게 얻어맞는 중이었단다.
“이, 이번에는 확실하다니까!”
“예. 믿습니다, 아버지.”
“…….”
한 조각의 믿음도 느껴지지 않는다.
제우스가 한 방울의 눈물을 흘렸다. 무너진 가장의 위엄이 그리워서다.
“그런데 아버지, 추적을 어디서부터 해야 할까요?”
“음…….”
헤르메스는 전령의 신이다. 정보를 전해주고 물어오는 일을 한다.
그 특성상 오만가지 일에 동원됐다.
사소하면서도 더러운 일을 도맡아하는 뒷세계의 프로라고 할 수 있다.
“헤르메스는 이런저런 공작을 아주 잘하지. 쉽게 잡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도주를 한다면 어차피 아는 신에게 도움을 받아서 도주를 했겠지. 그러니 시작을 한다면 녀석의 지인부터 시작하는 게 옳다.”
그럴듯한 의견이다.
하지만 죠르주에게는 허점이 느껴졌다.
“헤르메스의 지인이라고 하면 아레스 님의 친구라는 뜻도 되는데 과연 친구의 도움을 받았을 까요?”
“응?”
“아레스 님의 친구기도 하니까 아레스 님 편을 드는 게 당연하잖습니까. 그걸 헤르메스가 모를 거 같지는 않아요.”
“윽.”
허를 찔렸는지 비둘기 제우스가 입을 다물었다. 반박할 말이 없다.
죠르주는 바로 제우스에 대한 신뢰를 접었다. 이 비둘기. 비둘기 대가리다.
“아, 아들아?”
“…….”
“아들아! 그런 싸늘한 눈으로 보지 마라!”
“…….”
“싸늘한 눈이 어머니를 닮았구나. 아니지, 할머니를 닮았나…….”
“아버지, 진지하게 합시다. 저 이 일을 해결 못 하면 진짜 죽어요. 스승님이 내린 명령이라고요.”
“농담하지 말거라. 검과 승리, 괴식의 신은 분명 괴팍하지만 그런 한편 선인이기도 하다. 적인 나조차도 인정할 만한 자가 설마 제자를 죽이겠느냐.”
“아버지는 몰라요.”
“내가 그를 몰라?”
제우스가 기도 안 차는지 콧방귀를 뀌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제우스 자신보다 유승우와 엮여서 크게 좆된 자는 없었다.
무기 두 개를 털려 방울도 털려 입지도 털려, 돈도 신력도 보물도 다 털렸다. 이제는 아무리 털어도 먼지조차 나오지 않는다.
“아들이지만 어이가 없구나. 나만큼 그를 잘 아는 신은 몇 없다.”
“적으로서의 유승우를 아실지 몰라도, 스승으로서의 유승우는 모른다는 겁니다.”
“스승으로서?”
죠르주가 오한으로 몸을 떨었다.
“중력을 이해하라고 절벽에 던졌다가 건져 올리기를 수백 번.”
“오.”
“몸 안에 흐르는 피의 흐름을 이해 못 한다면 비슷한 물을 이해하면 된다고 바다에 던져 버리길 수천 번.”
“호오.”
“정지의 중요성을 이해 못 한다면 몸을 돌로 만들어 버리면 된다고 하면서 석화마법을 쏘고.”
“으음.”
“바람처럼 빠르게 움직이려면 바람의 기분을 이해한다면서 폭풍 속에다가 던진다고요!”
승우가 말했었다.
말로 해도 이해를 못 하니까 어쩔 수 없다고. 몸으로 배우는 수밖에 없다고.
그러나 죠르주는 바로 반박했다.
“말만 해서 이해하는 사람이 어디 있는데! 제기라아아알! 내가 멍청한 게 아니라 스승님의 기준이 미쳐 날뛰는 거라고오오오!!! 나는 안 멍청하다고!”
어쩔 수 없었다. 유승우는 검에 대해서는 감히 대적할 만한 자가 없는 천재였는지라 죠르주의 수행이 오랑우탄과 침팬지가 지능 교육 하는 걸로 보였다.
그러니까 네모 블록을 들고 세모 블록을 넣는 자리에 우겨넣는 것처럼 보인다는 의미다.
“이번에 주신 임무를 해결 못 하면 또 이상한 말을 하면서 말도 안 되는 수행을 시킬 거라고요. 저는 그거 못 합니다. 예전에는 어렸으니까 젊음과 혈기로 한 거지. 제 나이가 지금 오십이에요, 오십! 지금 예전처럼 수행하면 100% 죽습니다!”
쒸익쒸익 하고 죠르주가 화를 내자 제우스가 쩝 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럼 어쩐다냐. 딱히 수단이 없는데.”
원래 이런 일은 죄다 헤르메스에게 맡겼었다. 그런데 막상 그 일을 맡길 놈이 도주한 것이니까 답이 없었다.
“끄으으으으응.”
제우스가 날개를 튕겼다.
“하나 수단이 있긴 하구나. 왜 진작 이 생각을 못 했을꼬.”
“뭔데요?”
“잠시만 기다려 보거라.”
비둘기 제우스가 날아갔다.
그리고 그로부터 1시간 후.
비둘기가 좋은 소식을 물고 왔다.
“찾았다. 녀석은 반고라는 차원으로 간 모양이로구나. 정확한 위치도 찾았다.”
“반고요?”
“음. 태초의 거신이 죽어서 그 시체로부터 만들어진 차원이란다.”
“그런 곳에 왜 헤르메스가 갔을까요?”
“한적하면서 살기 좋은 곳이라더구나.”
감각적으로 말하자면 테라는 도심이었고, 반고는 시골이었다. 한적한 시골로 이주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죠르주도 도심 생활을 접고 시골로 튀어버리고 싶은 마음이라, 이해가 됐다.
“그렇군요.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알아내셨어요?”
“이 아비가 누구냐. 하늘과 벼락의 제우스다. 그쯤이야 쉽지.”
“역시… 아버지는 대단하셔요.”
“무얼. 신력만 조금 쓰면 간단한 일이지. 하하하하하-!”
“와아아……. 예? 신력이요?”
죠르주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아버지를 비롯한 신들이 알거지가 된 사실은 알고 있다.
못 보던 사이에 스승님은 완전히 괴물이 다 됐다.
예전에도 괴물이었지만 지금은 더더욱 괴물이다. 신들을 후두려 패고 재산을 모조리 강탈했다. 그러니까 지금의 신들은 거지였고 제우스도 마찬가지다.
“그, 농사로 번 신력이신가요?”
“킬러맨시? 그거 팔아서 뭔 신력이 쌓이겠느냐. 만드는 족족 검신에게 뺏기기만 할 뿐이지.”
“그럼 어디서 신력이 나셔서……?”
제우스가 푸드덕하고 날개를 펼쳤다.
그러고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요즘은 신력도 빌려주고 참 좋은 시대가 됐더구나. 65%라는 싼 이자로 빌려준다고 하더군.”
“65%!?”
상상을 초월하는 고금리에 죠르주가 무릎을 꿇었다.
어찌 됐건 그 덕분이었을까.
반고에서 밀무역과 정보상을 하던 헤르메스는 그날 밤 체포됐다.
녀석이 구슬프게 울었고 죠르주도 울었다. 그리고 제우스도 울었다.
“이 미친 영감이!”
“여, 여보!”
그날 밤.
제우스의 등짝이 터졌다.
헤라의 스매시는 오늘도 매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