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298)
괴식식당-298화(298/613)
298화. 불가능한 임무 (2)
대재앙이 터지고, UN이 몰락했다.
세계의 정세는 세 갈래로 나눠졌다.
새롭게 급부상한 ISAC에 순응하는 친 ISAC국가와 그 흐름을 거부하는 반 ISAC국가. 그리고 중간에서 박쥐 노릇을 하며 양쪽의 이득을 취하려고 하는 중립국이다.
ISAC의 주요 인사가 한국인이었으니 한국은 대표적인 친 ISAC국가였고, 한국을 싫어하는 일본은 반 ISAC국가였지만 귀환자의 대처 미숙과 게이트 처리 미숙, 방사능을 이유로 국가가 붕괴할 위기에 처한 다음 ISAC의 지원을 받아서 소생. 그 후에는 알아주는 친 ISAC국가가 되었다.
대표적인 중립국은 중국이었는데, 중국은 약삭빠르게 대처하여 ISAC의 편을 들다가도 여차하면 ISAC에 적대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과감한 모습을 보이며 중립국 중 최강국임을 과시하곤 했다.
다만 이번에는 그것이 선을 넘었다. 도를 넘은 패악질을 부리다가 그만 ISAC가 개입할 여지를 주고 말았다. 그 결과 수렵부는 해체되었고, 중국공산당 수뇌부조차도 차근차근 공중분해의 수순을 밟게 되었다.
그 모습이 세계 최고의 반 ISAC국가, 러시아가 보기에 썩 좋지 않았음은 자명한 이치. 러시아의 대통령인 블라드미르 블라드미로비치 자이체프의 심기가 점차 불편해졌다.
“음으으으으으으으음.”
60줄에 임박했음에도 불구하고 30대로 보이는 외모, 깔끔하게 넘긴 백금발과 단정한 정장. 그리고 탄탄한 체구를 갖춘 그는 대통령이라기보단 젊고 매우 유능한 사업가 내지는 마피아의 보스로 보였다. 만약 사업가와 마피아 중에서 어느 쪽에 더 가깝냐고 한다면 단연코 마피아에 가까웠다. 차가운 눈매와 사람 하나나 둘 정도는 언제라도 죽여도 괜찮다고 여기는 심성은 대통령이나 사업가보다는 마피아의 감성이리라.
“…….”
“…….”
그래서 화려하게 치장된 대통령 집무실은 언제나 따뜻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장관들은 벌벌 떨어야 했다. 성난 사자처럼 이를 가는 대통령의 불호령이 떨어진다면 목도 날아간다. 비유적으로도, 물리적으로.
독이 들어간 홍차는 여전히 애용되는 숙청 수단이다. 대통령의 심기는 지금 있는 대로 상해 있으니, 괜히 말을 잘못했다가는 눈앞의 새하얀 식탁보가 피로 물들 것이다. 그 피가 자신의 것이 되는 일만은 피하고 싶었다.
“다들 할 말이 그리도 없으신가? 뚫어져라 찻잔만 보고 있군 그래.”
“…….”
“자기 보신 하나는 참 잘해.”
블라드미르는 짐짓 미소를 지으며 보란 듯이 홍차를 입에 머금었다. 길고 커다란 탁자에 옹기종기 모인 장관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고개를 조아리며 눈치를 살폈다.
“볼로딘 총리, 나에게 할 말 없나?”
“대통령 각하, 그럼 감히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작금의 사태는 우리가 관여할 수 없는 일입니다. 중국이 빌미를 주었고, ISAC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니까요.”
과연 군인 장성 출신의 총리답다.
대통령의 살벌한 눈초리를 받으면서 말을 이어가는 볼로딘 총리를 보며 장관들이 감탄했다. 블라드미르 대통령도 그 의기를 높게 사서 그의 말을 끊지 않고 경청했다.
“중립국의 특권을 이용해서 이리저리 박쥐 생활을 하던 중국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래도 중립국이 친 ISAC국보다는 낫습니다. 중국을 이대로 방치하면 분명히 ISAC의 괴뢰정권이 들어설 겁니다. 아마도 대통령 각하는 이 점이 우려되어서 대응을 해야 한다고 판단하신 거겠지요.”
“잘 알고 있군. 그래서 해결책은?”
“앞서 말했다시피 작금의 사태는 우리나라가 관여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두 손 다 들었다는 말을 이렇게 어렵게 꼬아서 하는 건가?”
죽고 싶다는 말 참 힘들게 하는군.
대통령이 중얼거리자 볼로딘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제 말은 ‘우리나라’가 관여하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호.”
블라드미르는 결코 아둔한 자가 아니었다. 뉘앙스만으로 볼로딘의 의도를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차도살인지계를 쓰자?”
“그렇습니다. ISAC는 중국 공략의 실미를 얻기 위해서 유승우라는 귀환자를 썼다고 합니다. 그것을 본받아서 이쪽도 귀환자를 쓰심이 어떠한지?”
“나쁘지 않군. 괜찮은 아이디어다.”
“감사합니다, 각하.”
좌중의 분위기가 한결 누그러들었다. 볼로딘은 대통령의 오른팔로 가는 길에 한 걸음 내딛었다는 마음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블라드미르는 턱을 괴며 되물었다.
“그런데 귀환자라, 항상 귀찮은 놈들이야. 그 유승우라는 빌어먹을 놈은 어떤 놈이지?”
잠자코 있었던 한 장관이 냉큼 손을 들었다.
“조사에 의하면 레벨 99의 귀환자입니다. 한국인이고, 교사였었다고 합니다. 현재는 요식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교사, 요식업? 이것저것 잘도 하는 놈이군. 그런데 레벨이 99라니. 허풍도 꽤나 성대하게 치는구만.”
“허풍은 아닐 겁니다. 유출된 영상을 보면 검압파 하나로 수렵부의 헌터들을 완전히 무력화시켰습니다.”
“허.”
헌터들 사이에서 전해지는 ‘레벨은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격언이 있다. 레벨보다는 스킬 구성과 경험이 중요하다는 의미로, 실제로도 레벨 10~20 차이가 나는 헌터끼리 싸워서 결과가 반대로 나오는 일이 종종 있었다. 하지만 99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99면 그냥 정점이다.
“그렇다면 보통 강한 게 아니겠군. 어지간한 헌터나 귀환자로는 명함도 못 내밀겠어.”
“그렇습니다. 그러니 볼코프를 쓰면 될 거라고 생각됩니다.”
“볼코프를?”
현 시대에 러시아에서 자랑거리로 꼽히는 것은 많지가 않다.
세계 최고의 목재 자원 보유 국가로서의 자부심은 게이트에서 넘어오는 질 좋은 목재에 무너졌다. 세계 최고의 과학 기술 보유 국가도 마찬가지. 사이버다인이 가진 압도적인 과학력에 체면조차 못 건진 지 오래다. 그래서 혹자는 넓은 땅과 많은 거지, 폭력배가 있을 뿐 가진 게 없는 나라. 러시아라 했다.
그런 러시아의 자존심을 아직까지도 붙잡아두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경원시하던 존재, 마피아였다. 레드마피아의 일파인 체첸 마피아에는 비공식적인 지구 최강의 각성자가 있었다. 그가 바로 볼코프였다.
“하지만 놈이 과연 말을 들을까?”
“마침 때가 좋습니다. 한국과 녀석이 원한 관계로 엮였다고 합니다.”
“원한 관계? 누가 죽었나?”
“볼코프 오른팔의 동생이 한국에서 죽었다더군요.”
“허이고… 오른팔의 동생이라. 이러다가 사돈의 팔촌까지 튀어나오겠군. 그거 가지고 되겠어?”
볼로딘이 손사래를 치면서 웃었다.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되겠지만 오른팔이 죽으면 어떻습니까?”
“그거라면 움직일 법도 하구만. 오른팔은 누구라도 아까운 법이지. 왜, 혹시 오른팔도 죽었나?”
“동생의 복수를 울부짖더니만 한국의 헌터에게 체포됐다는군요. 테러 혐의니까 십중팔구는 사형이겠죠.”
“한국은 테러에는 타협이 없지.”
“예, 그러니 녀석도 한국에 간섭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을 겁니다.”
블라드미르가 실소했다. 상황이 너무 좋다. 이거야 이용해 달라고 과시하는 격 아닌가.
“그럼 놈들에게 연락을 넣게. 내 이름으로 의뢰를 한다면 기뻐하겠지.”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국가가 마피아에게 의뢰를 한다니, 참 웃기는 일이야. 기자들이 알면 좋아하겠군. 법과 폭력의 동침이라고 말이야. 잘하면 내가 실각할지도 모르겠어. 내가 실각하면 다음은 볼로딘이 대통령인가?”
블라드미르가 너스레를 떨며 그렇게 말하자 장관들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라서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응? 안 웃긴가?”
“하하하하. 하하하하하! 배, 배꼽이 빠질 거 같군요!”
그의 농담은 대체로 이런 식이라, 부하로서는 굉장히 버티기 힘들었다.
다들 난처하게 웃을 때 볼로딘만은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감탄했다.
이딴 말에도 남을 웃게 만들 수 있다니 언제 보아도 참 부러운 권력이었다.
* * *
러시아의 마피아, 레드마피아는 국제 조직인 경우 브라츠바. 지방의 작은 조직은 밴디트라고 부른다. 체첸 마피아의 일파인 볼코프 패밀리는 당당한 브라츠바다. 그것도 세계 최고의 브라츠바. 누구도 이견이 없는 사상 최고, 최강의 마피아다.
러시아의 대통령조차 이들에게는 명령할 수 없다. 협조를 요청하고 공손하게 의뢰를 해야 한다. 그들이 세계 최고인 이유는 단순하다. 그들의 빅 보스, 크레스테니 오테츠, 두목 중의 두목인 볼코프가 세계 최고이기 때문이다.
그는 명실상부한 세계최강의 귀환자였다. 그래서 볼코프에 대한 조직원의 충성심은 하늘을 찔렀다. 그가 은행을 털어오라면 털어올 수 있었다. 경찰서에 쳐들어가서 짭새를 죽이라고 하면 죽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아니지 않나?
“어, 이건. 죽으라는 건가.”
볼코프 패밀리의 브라톡(정규 행동대원)인 로만은 지령서를 보고 입을 벌렸다.
“A섹터에 잠입해서 귀환자에 대한 정보를 얻어 와라, 입국은 러시아 정부에서 협조할 것이다, 라니…….”
이것은 불가능한 임무다.
귀환자에 대한 정보를 얻어오는 것도 힘들고, 살아남기도 힘들다.
무엇보다 입국이야 러시아가 도와준다고 하지만, 그럼 탈출은?
“왜 탈출에 대한 이야기는 없는 겁니까. 예? 들어가는 길은 있는데 왜 나오는 길은 없습니까.”
마치 가서 정보나 토하고 얼른 뒈져 버리렴, 이라고 말하는 듯한 지령서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온다.
로만은 좋은 각성자다. 청각이 보통 인간에 비해서 무려 400배나 좋다. 단순히 좋은 것만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소리를 음소거시키거나 증폭시킬 수 있다, 감청, 도청에 특화된 능력이다.
거기에 추가로 뒷골목 건달패 시절부터 익혀온 마샬아츠까지 장착했으니 그 실력은 가히 일급 스파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A섹터에는 목 베는 민이 있단 말이지. 일급 스파이 정도는 그냥 뭉탱이로 조지는 괴물이…….”
샤프슈터 민 오키프는 전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탐지 능력자다. 그런 놈이 신급 아티팩트를 들고 탄환이 박히지도 않는 퍼스트 오더 코트를 입고 호위 병력과 같이 돌아다닌다. 재앙이라는 게 살아서 걸어 다닌다면 딱 그렇게 생겼을 거다.
“100% 죽겠지?”
죽을 자리로 굳이 가는 바보는 없다.
그런데 로만은 어디에도 갈 수가 없었다. 가면 죽고 안 가도 죽는다.
은밀하게 크렘린궁에서만 사용하는 안료가 발라진 이 지령서를 살펴보면 확실하다.
크렘린궁을 거쳐 왔다는 것은 러시아의 챠르- 블라드미르 대통령의 의뢰라는 뜻이고, 거기에 대충 휘갈긴 볼코프라는 서명이 적혔다는 것은 위대하신 갓 파더, 빅 보스, 크레스테니 오테츠가 직접 승인했다는 뜻이다.
그런 명령을 로만이 무시하고 튄다면 밤의 챠르와 낮의 챠르가 합심해서 조지려고 할 터이니 로만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좆됐네. 러시아 땅이 아무리 넓다 고해도 도망치면 뒈지겠지? 응. 역시 좆됐어. 다시 생각해 봐도 좆됐다고.”
그럼 살길을 모색해 보자.
우선 러시아 정부의 도움을 받아서 한국으로 간다. 해상보안과 현지보안을 뚫고 A섹터에 도착해 보자. 다음은 귀환자 유승우라는 놈의 정보와 행방불명된 아슬란의 정보를 얻는다. 그리고 A섹터를 탈출해서 다시 러시아로 돌아온다. 참 쉽죠?
“아, 시-바아알.”
험한 욕이 절로 나온다. 목숨이 10개 있어도 10개 다 쓰고 11번 죽을 기세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살길이 보이질 않는다. 로만은 전전긍긍하며 어떻게든 살아날 길을 모색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작전 투입일이 됐다.
그는 운이 좋게도 수십 명의 밀항 시도자 중에서 첫 번째 성공자가 되었다.
조짐이 좋았다. 로만은 임무를 성공하고 금의환향하여 승급하는 자신을 떠올렸다. 딱…….
“이건 또 뭐 하는 놈이지?”
3미터는 될 덩치를 가진, 오크에게 붙들리기 전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