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30)
괴식식당-30화(30/613)
030화. 용사 트레이닝
재해복구지역 A섹터를 책임지는 지부장 이정훈은 요즘 꽤 스트레스가 쌓여 있다.
장마 후에 기강이 해이해지는 건 늘 있었던 일이다.
하지만 이번처럼 소속 헌터들이 뻗은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것도 모두 줄지어서!
하나도 아니고 거의 전원이 병가를 추가로 신청했다.
장마가 끝난 직후의 균열이 얼마나 불안정한지 잘 아는 것들이!
“그러니까. 사유가… 흐음…….”
“괴식 챌린지.”
“몰라서 말하고 있는 거 아니네!”
기도 안차서 잠깐 버벅거렸더니, 그 찰나에 끼어든다.
샤프 슈터 민 오키프.
백강혁을 서포터하는 팀의 팀장, 천둥벌거숭이인 백강혁을 능수능란하게 제압하고 조련하는 하는 유일한 남자.
능력도 좋고 의외로 인성도 좋아서 여기저기에서 인기가 많은 민이다.
원래 다른 섹터로 재배치되려던 걸 이정훈이 ISAC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면서 보류시킨 특S급 인재다.
그런데 이 망할 놈!
아, 아니, 보배 같은 팀장님은 어째선지 용사의 밥집 이야기만 나오면 싸고돈다.
아주 노골적으로!
“후우, 그 괴식 챌린지라는 거 말일세.”
“예.”
“진짜 괜찮은 거 맞나? 의사나 전문가는 뭐라고 하나?”
“괜찮습니다. 절대로 괜찮습니다.”
네 의견 말고, 전문가 의견이요.
이정훈은 뚱한 눈으로 민을 봤다.
그러자 민은 별 일 아니라는 듯이 서류나 보고 있었다.
이러니 애가 타는 건 이정훈이다.
“그러니까 괜찮다는 근거가…….”
“선생님이 하신 일이니까요.”
없잖아!
전혀 근거가 없잖아!
그놈이 한 일인 게 뭐가 근거가 되는데!
이 무한 신뢰는 대체 무엇인가!
그놈과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몇 년을 같이 보낸 상사인 나보다 그 귀환자를 믿고 있다.
이건 질투 이전의 문제다.
솔직히 신기할 정도다.
‘대체 뭘 어떻게 했으면 이 녀석이 이렇게 따르지?’
그는 세컨드 오더다.
퍼스트 오더는 단일로써는 최강의 전략 병기이지만, 팀 간 조율에 애를 먹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세컨드 오더라는 실무진이 더욱 필요한 거다.
현장에 나가서 균열을 제어하고, 조사하고.
게이트를 통해 던전을 탐험하고 어떨 때는 이세계까지 진출하여 모험, 답파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다.
행정 처리와 사무 처리만 하던 구세대가 모르는 현장의 일이라는 게 있다.
세컨드 오더는 현장을 뛰어본 헌터만이 알 수 있는 경험을 살려 행정 처리의 보조까지 해야 한다.
그러니 유능한 세컨드 오더는 어지간한 퍼스트 오더보다도 귀하다.
특히 세계 각지의 재해복구지역에서 일하는 지부장들은 세컨드 오더의 귀함을 자알~ 알고 있다.
처음, 이정훈 지부장이 한국으로 민 오키프를 영입하기 위해서 한 노력은 적지가 않다.
그를 영입하고 원딜들을 집중적으로 모집하여 백강혁을 지원하는 팀을 짜낸 것도 바로 이정훈 본인이다.
그러니까 민에 대해서는 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러다 보니…….
‘에이, 제기랄,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더럽게 부럽네.’
뭘 했는지 몰라도, 민의 마음을 꽉 움켜쥔 귀환자가 무지하게 부러워졌다.
이정훈은 ‘아, 빨리 싸인’이라고 신호하는 민을 보다가, 고개를 떨어뜨리고 서류에 사인을 해줬다.
이걸로 괴식 챌린지에 참가했던 헌터들은 모두 1박 2일의 휴가를 얻게 됐다.
그것으로 인해서 생기는 치안의 구멍과 만약의 사태를 위한 대기조가 필요하다.
가급적 유능한 사람으로, 공백을 채워야겠지.
그리고 그것은 온전히 지부장인 이정훈의 일이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수고하십쇼. 지부장님.”
“…….”
자기 할 일을 다 했다는 건가.
휙 하니 돌아가는 민의 뒷모습이 야속하기만 했다.
이정훈은 처연하게 전화기를 들었다.
“여보, 나 오늘 야근.”
늘 그러하듯, 지부장실의 불이 가장 나중에 꺼졌다.
* * *
“슬슬 도전해 볼까 합니다.”
아침 식사로 죽을 먹던 민이 넌지시 말했다.
올 게 왔다는 기분이었다.
“하긴 이제 죽도 졸업할 때가 됐지.”
“예. 그간 감사했습니다.”
민은 몰라보게 건강이 좋아졌다.
부상으로 적출했던 신장도 재생됐고, 덕분에 살도 제법 붙었다.
복부 지방 같은 유해한 게 아니라, 사람이라면 좀 있어야 할 살 말이다.
민은 장마로 인한 휴가 시간 동안 순찰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훈련에 투자했다.
평소에는 절대로 하지 않던 근육 운동이었다.
조금만 격렬한 움직임을 보이면 수분 만에 움직일 수 없었던 게 거짓말처럼 몸이 잘 움직여줬다.
그렇게 되면 이제 훈련 자체가 재밌어지는 법이다.
그는 꽤 오랜 시간을 투자한 끝에 회복 요리로 붙은 살을 근육으로 바꾸고, 늘어난 힘과 지구력을 자기 몸에 체득하는 데 성공했다.
크게 표는 안 나지만, 예전보다 훨씬 강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다음 단계로 가야겠지요.”
강해질 길은 이미 제시되어 있다.
승우의 존재는 민에게 있어서 등대다.
등대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아예 다른 일이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보여주고 비춰준다.
어디까지 비추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선은 그가 보여주는 길을 무작정 따라 걸으면 되겠지.
“아주 좋아.”
향상심이 넘치는 젊은 인재는 언제라도 환영이다.
승우는 그의 도전을 환영했다.
무엇보다 자신의 설계에 이 정도까지 따라와 주는 소질 있는 헌터는 아직 민과 태지뿐이니까.
“그러고 보니까 백가 놈은 어떠냐?”
“그놈 말입니까? 요즘은 그냥 무작정 쉬나 봅니다.”
“무작정?”
“번아웃 증후군인 거 같더군요.”
“이런…….”
번아웃 증후군.
소진 증후군이라고도 한다.
극도의 신체적, 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하면서 무기력해지는 증상이다.
민은 강혁이 번아웃 증후군이 온 걸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잦은 야근에 휴식 시간은 부족하니 어쩔 수 없죠. 그리고 역시 놈이 처한 상황이 제일 큰 문제겠습니다만…….”
“처한 상황이라니?”
“100위니까요.”
퍼스트 오더 코트를 받을 수 있는 건.
그리고 퍼스트 오더라고 불릴 수 있는 건 100위까지다.
101위부터는 아무것도 없다.
“언제 랭크가 내려갈지 몰라서 전전긍긍하나 봅니다.”
“그렇게 약한 멘탈로는 안 보였는데.”
“글쎄요. 얼마 전부터 임무 중에도 꽤 넋을 놓고 집중을 못하는 게 심각해 보이긴 했습니다. 휴가를 다녀오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휴가가 끝나도 여전한가 보군?”
“휴가를 더 내더니만 지금은 집에 있습니다. 술이라도 마시나 본데요.”
내 앞길 챙기기 바쁜데, 그놈 관리까지 할 정도로 여유는 없지.
민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승우가 건네주는 괴식 챌린지 요리를 받았다.
여전히 1단계인 콱이다.
아직 이 메뉴를 재패한 것이 태지뿐이니까!
뜨끈한 파전, 아니, 콱이 공포스럽다.
탐지 능력자인 민에게는 이 요리의 실제 모습이 보인다.
그래, 보이고말고!
마치 A급 레이드 보스를 관찰할 때처럼 선명하게 피어오른 마력이 보인다.
‘싸워서 못 이길 상대는 아냐. 침착하게 구상한 전략대로 간다.’
이미지 트레이닝은 수십 번을 했다.
그런데 민이 심호흡을 하고 있는데, 승우가 스마트폰을 꺼내 민의 사진을 찍었다.
찰칵- 하고 셔터 음이 들렸다.
“무슨……?”
“도전 성공자의 사진을 벽에 걸어야지.”
“아직 한 입도 안 먹었습니다만……?”
“호랑이 사냥꾼이 총을 장전할 때는 잡을 수 있다고 확신할 때뿐. 성공할 거라고 생각해서 도전하는 거잖아? 그럼 성공하겠지.”
그건 그렇지.
민은 피식 웃으면서 젓가락을 들었고, 아주 조그마하게 콱을 찢었다.
그도 태지가 그러하듯 정공법으로 공략에 나섰다.
그로부터 30분 후.
벽에는 민의 사진이 걸리게 됐다.
그 대가로 민은 하급 독 내성 스킬과 알리스터가 만든 단검을 가져갔다.
‘스터너’라는 이름의 단검으로 던지면 돌아오는 마법의 단검이다.
검 자체에 전기가 흘러서 박히기라도 한다면 대상을 기절시킬 수도 있다.
탐지계의 능력으로 적의 약점을 파악하고 제압할 수 있는.
그러면서도 별 힘들이지 않고 회수할 수 있는 좋은 무기다.
승우가 민을 위해서 따로 빼둔 무기인 만큼 그야말로 찰떡궁합을 자랑했다.
항상 쿨한 민도, 단검을 얻었을 때는 활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저, 저기, 선생님! 그 사진은 쓰지 마시고, 아까 처음에 찍은 거로 써주시는 게!”
“왜? 활짝 웃고 보기 좋은데.”
“선생님!”
“알았어. 이 사진은 그냥 가지고만 있을 게.”
정말로 가지고만 있을지는 모르겠다.
다른 일로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이 유승우라는 사람은.
“선생님은 의외로 짓궂으시군요.”
“그러니까 괴식 챌린지 같은 걸 하지.”
“…….”
나름 납득이 된다고 해야 하나?
* * *
밤, 늦은 시각.
게이트 주둔군 근처의 저택.
퍼스트 오더 백강혁의 집이다.
그는 ISAC로부터 집과 권력을 받았다.
왜?
그가 퍼스트 오더이기 때문이다.
퍼스트 오더는 ISAC로부터 무한한 지원을 받는다.
가지고 싶은 건 대부분 가질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건 다 누릴 수 있다.
왜냐?
퍼스트 오더는 세계의 수호자.
희망, 등불.
모두를 이끌고 보호하는 자이기 때문에!
“그런데 그건 역시 내 주제에 안 어울렸나?”
침대에서 늘어진 강혁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침대 밑에 소주병이.
그의 발치에도 소주병이 널려 있다.
과음한 모양이지만, 뭐라 말릴 사람은 없었다.
그는 성인이고 독신이며 친구도 없으니까.
민을 친구라고 부르지만…….
글쎄다.
“그놈도 날 친구로 볼지는 모르겠군.”
반쯤은 강혁도 민을 친구로 보지 않고 있긴 하다.
놈은 경쟁자다.
요즘 들어서 건강이 급속도로 호전되니, 이제는 실력을 부쩍부쩍 키워가고 있다.
원래부터 실력으로는 정평이 난 민이다.
건강이 호전된 이상 녀석의 능력은 탐지에서 끝나진 않을 거다.
결국, 코트를 입게 될지도 모르지…….
뺏긴다면 그건 강혁의 코트가 될 것이다.
예전이라면 허세를 담아 절대로 안 뺏기겠다고, 노력이라도 해보겠다.
하지만 요즘은 그럴 생각도 안 들었다.
이런들 저런들 어떠한가.
최악의 경우가 되면 또 어떤가.
A섹터에 S랭크 오버.
새로 등급을 매긴 SS랭크, 아니, SSS랭크의 게이트가 열리면 또 어떤가?
범죄조직들이 일시에 궐기해서 폭탄테러를 하면 또 어떤가!
랭킹에 밀려 백강혁 님이 퍼스트 오더가 아니게 되면 또 어떤가!
“무적의 귀환자 씨가 잘 해결해 주겠지.”
그가 싸우던 장면이 망막에서 안 사라진다.
사라지고 터지고 모든 게 갈라지는 압도적인 무위.
우물 안의 개구리가 우주를 보면 이런 느낌일까.
인간의 끝을 봤다.
원래부터 수련이나 단련 같은 건 하지도 않았다만.
글쎄, 노력한다고 그렇게 될까?
꿈은 그릴 수 있어야 꿈이다.
너무 먼 이상과 꿈은 그릴 수조차 없다.
그를 처음 봤을 때 말했었다.
반쯤은 농담 삼아, 반쯤은 코트를 지키기 위해서.
그는 하늘에서 떨어진 초인이고, 모든 걸 다 해줄 수 있지만 우리들의 성장을 위해서 아무것도 안 하고 지켜만 보는 거라고.
강혁은 이제 안다.
왜 승우가 강혁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는지.
놈 앞에서는 일반인이나 퍼스트 오더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젠장할! 나도 귀환자였으면 그 정도는 됐을 거다!!”
듣기만 해도 감미롭지 않은가.
이세계!
치트!
지구에서 미적미적 성장하는 게 아니라 치트를 받아서 팍팍 성장할 수 있다.
유승우란 놈이 했는데 나는 왜 못하겠는가!
“내가 더 잘할 수 있다고! 더 강해질 수도 있고! 나도 할 수 있다고!”
강혁이 신경질을 내며 병을 내던졌다.
하지만 깨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나도… 용사할 수 있다고…….”
강혁은 그 말을 끝으로 곯아떨어졌다.
승우는 잡은 병을 바닥에 내려놓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럴 거 같더라니…….”
바닥에 굴러다니는 술병이 어마어마하다.
술고래가 와서 마셔도 이 정도는 아니겠다.
승우는 병을 피해 걸어서 강혁이 뻗어 있는 의자의 맞은편에 앉았다.
“워낙 자의식이 강한 녀석이라 괜찮을 줄 알았는데, 보기보다 여린 구석이 있었군.”
그럼 이놈을 어찌한다.
승우는 코를 고는 강혁을 바라봤다.
정말이지, 손이 많이 가는 놈이다.
그나저나.
“재밌는 소리를 하는걸?”
승우가 씨익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