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304)
괴식식당-304화(304/613)
304화. 골목식당 (3)
땅 주인이 승우로 바뀐 이후로 집세는 오히려 줄었다. 절반가량만 내면 됐으니, 밀린 금액은 사실 한 달 치와 같았다. 만약 전 주인이 그대로 동일한 값을 받았다면 밀린 집세가 무려 네 달 치나 됐겠지.
양대식의 얼굴이 붉어졌다.
“지, 집주인이셨군요. 월세가 밀려서 죄송합니다.”
“예. 그러실 겁니다.”
드물게도 승우가 강하게 나섰다. 그가 한참을 고민하고 내린 결론은 다른 집주인처럼 어깨를 펴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일이었다.
“아무래도 두 달이나 밀렸으니까요.”
“으…….”
말이 월세, 임대료지 승우에게 있어서 그 돈은 푼돈과 다름없었다. 막말로 월세 따위 받지 않아도 그의 자금 사정에는 전혀 상관없었다. 한 달에 수십억에서 수백억을 기부하는 승우다.
다루는 돈의 단위가 다르니 넘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푼돈이라고 해서 우습게 보지는 않았다.
고작해야 몇십만 원.
고작해야 몇만 원.
적은 돈, 푼돈이라고 그깟 돈 필요 없다며 우습게 본다면 그 푼돈을 못 내서 쩔쩔 매는 양대식의 꼴이 얼마나 우습게 되겠는가.
임차인과 임대인의 관계는 철저한 비즈니스 관계다. 돈을 주고 자리를 빌리고, 자리를 빌려주고 돈을 받는 관계다. 여기에 알량한 동정심이나 은혜를 베풀어주는 일은 같은 어른으로서 꼴사나운 일이다.
공은 공, 사는 사.
칼같이 둘을 나누는 게 성인으로서 가져야 할 올바른 자세겠지.
승우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그럼 양 사장님, 하던 이야기로 넘어가서 이제 어떻게 할 겁니까?”
“어떻게 한다고 해도…….”
“상환 계획이 있을 거 아닙니까?”
“상환 계획…….”
있을 리 만무했다.
양대식이 분식집을 차린 이유는 단순하게 취사병이었던 시절의 경험을 믿었기 때문이고 더 내밀하게 보자면 먹는 장사를 하면 굶어 죽지는 않겠다는 낙관적인 판단에서였다.
굶주림은 세상에서 두 번째로 괴로운 일이었고 사랑하는 아들이 굶는 것은 제일 괴로운 일이다.
그런 짧은 생각으로 시작했으니 계획이 있을 리가.
승우가 한숨을 내뱉었다.
“듣기로는 헌터셨다고 하던데.”
“예, 예.”
“헌터가 게이트를 공략할 때는 어떻게 합니까?”
“어떻게 하다니요. 별 거 없습니다. 정찰대가 가져온 사전 정보를 토대로 공략대를 편성하고, 보조를 받아서 게이트를 공략하지요.”
“장사도 같습니다. 인터넷이나 발품을 팔아서 사전 정보를 얻고, 그 정보를 토대로 사업 아이템을 편성하고, 지인의 보조를 받아서 하는 겁니다.”
“아…….”
“게이트 공략 중에 실패한다면 어떻게 됩니까?”
“실패할 경우를 상정한 플랜 B를…….”
“그러니까 제가 지금 묻고 있는 것은 이 분식집이 망한 후의 플랜 B를 묻는 겁니다, 양 사장님.”
정중한 승우의 말에 양대식이 얼굴을 굳혔다. 그렇게 풀어서 이야기해 주니 헌터이던 시절의 감각이 돌아온다. 그는 결코 멍청한 사람이 아니었다. 멍청했다면 예전에 죽었겠지.
“장사나 게이트 공략이나 같습니다. 다 전쟁이죠. 베테랑 헌터시니 장사도 잘할 수 있습니다. 생각을 멈추면.”
“죽는다.”
“그겁니다.”
생각을 멈추면 죽는다.
주혁진 총장이 헌터들에게 반복해서 가르친 행동 강령이다. 멍하니 복창하던 양대식의 눈에 총기가 돌아왔다.
“그렇다면…….”
그를 멍청하게 만든 것은 장사를 하면서 얻은 끝없는 무력증이다. 아무리 애써도 바뀌지 않은 현실이 그를 바보로 만들었다.
무력하기에 생각을 멈추고, 생각을 멈췄기에 빠져 죽는다. 냉정하고 침착하게 자신이 가진 것을 알고 판단하면 살 수 있다. 반드시라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확률이 오르면 올랐지, 내려가지는 않는다.
승우가 그 점을 환기시키자 대식은 냉정하게 자신의 상황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되니 자신이 가진 무기가 보인다. 통장잔고, 냉장고에 남은 식재료들.
보증금과 친구들. 이 모든 것이 탄환으로 보였다.
이 탄환을 어떻게 써야 효율적일까.
이 싸움을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똑딱, 똑딱 하고 시계 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물우물하고 영식이가 김밥을 먹는 소리도 퍼졌다.
그런 미묘한 시간이 흐르고 양대식이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플랜은 두 개 정도가 있겠군요.”
“경청하겠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업종을 변경해서 스티커 사진기라도 놓는 겁니다. 월세는 보증금에서 제하는 방향으로 가면 되겠지요.”
지극히 현실적인 방안이었다.
이렇게 할 경우 리스크는 없다.
스티커 사진기, 인형 뽑기는 고수익을 얻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궤멸적인 적자는 나지 않는다.
보증금으로 승우에게 월세를 준다면 승우도 손해를 보지 않는다.
“상책(上策)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중책(中策) 정도는 되겠네요. 그럼 두 번째 플랜은 뭡니까?”
“아직 분식집은 망하지 않았습니다. 인테리어를 건드릴 필요도 없고, 식재료도 그럭저럭 남았습니다. 부족한 식재료는 알고 있는 지인에게 부탁을 한다면 앞으로도 한 달 정도는 이상 없이 공급할 수 있어요.”
“분식집의 지속 경영이군요. 지금까지 경영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 개선점은 있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하책(下策) 중의 하책입니다.”
양대식이 머뭇머뭇 대답했다.
“그, 유승우 사장님이 제안하신 대로 요리를 배워서 상황을 개선하는 방향은 어떻습니까? 잘 배울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개선이야 되겠죠. 하지만 그렇게 할 경우 저에게 돌아오는 이익은요?”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외부의 세력을 빌려올 때는 대가가 필요하다. 그 대가는 보통 돈, 땅, 권리, 희소자원이다. 적어도 외부 세력이 보기에 매력이 있어야 했다.
양대식은 결심을 했는지,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제가 현역 시절에 쓰던 아티팩트를 드리겠습니다. F급이라 큰 값어치는 없지만 못해도 몇 백은 받을 수 있습니다.”
양대식은 유승우를 믿기로 결정했다. 근거는 있었다. 그는 이미 성공한 사업가였고, 양대식에게 내려진 유일한 동아줄이었다. 그를 놓치면 다음의 동아줄이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저도 제 처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분신 같은 아티팩트를 걸었다.
이 도박에 가까운 수에 승우는.
“좋습니다. 계약하죠.”
흔쾌히 손을 내밀었다.
* * *
양대식이 적극적으로 나와 주니 일은 어렵지 않았다.
그는 헌터 출신답게 위생 수칙에 까다로웠으며, 창조성은 떨어졌지만 매뉴얼로 체계화시키면 그 일을 반복 수행하는 일에 능했다. 창조 능력의 결여는 요리사로서는 치명적이지만 분식집 사장에게는 치명적이지 않았다.
“위생 문제나 식재료 취급은 제가 언급할 필요도 없겠네요. 훌륭하십니다.”
“그래도 손님이 오지 않아서…….”
“그건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만 우선은 타깃팅 실패를 꼭 집고 가야겠습니다.”
때로는 메모를 하며, 때로는 냄비를 흔들며. 승우의 강의가 이어졌다.
“이가 안 좋으시죠?”
“그걸 어떻게!”
“밥이 질어요. 그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요리가 푹 익어서 씹는 맛이 없습니다. 본인의 기준을 맞추면 안 됩니다. 여기 오는 손님의 반은 학생이고, 반은 빠르게 식사하려는 젊은이들이니까요. 다들 이가 튼튼합니다.”
“아…….”
“그리고 싱거운 걸 좋아하시나 본데, 그래서 요리가 간이 약해요. 외식 요리는 간이 강해야 합니다. 늘 먹는 집밥과는 달라요. 강렬한 맛이 필요합니다. 튀김은 바삭하면서 소스는 깜짝 놀랄 정도로 맛이 강하게, 제육볶음은 달고, 짜게. 하지만 선을 넘지 않게.”
“그 선이 애매해서…….”
양대식이 난감해할 만했다. 승우가 말하는 것은 요리를 정말 많이 한 사람이 직감적으로 해결하는 부분이다. 향이나 색, 맛을 보고 어떤 조미료가 어느 정도 부족한지, 기름의 온도와 날씨를 보고 몇 분을 튀기고 몇 번의 기름을 털어야 하는지는 전문가의 영역이다.
승우가 씩 웃었다.
“그래서 매뉴얼을 만들었습니다.”
“예?”
“우선 계량컵과 계량스푼, 전자저울과 디지털 온도계, 온습도계와 쿠킹 타이머를 삽시다.”
“그것들을 다 어디에 쓰죠?”
“계량컵과 계랑스푼, 전자저울을 사용해서 제가 정한 확실하게 맛있는 비율을 0.1g 단위로 맞추면 됩니다. 그리고 온도와 시간을 가르쳐 드리면 그걸 똑같이 따라합시다.”
양대식에게 가르치는 것은 괴식이 아니다. 평범한 요리다.
그렇다면 레시피대로 정확하게 만들면 누구나 다 비슷한 맛을 낼 수 있다.
“요즘 감각으로 말하자면 요리의 치트 노트겠네요. 너무 거창하려나.”
“그, 그런 걸 주시면 제가 너무 죄송해서…….”
“응? 죄송해하실 게 있습니까? 이건 거래잖습니까. 저는 양 사장님에게 아티팩트를 받고, 양 사장님은 저에게 레시피를 받는. 평범한 거래예요. 죄송할 건 어디에도 없죠.”
“그래도…….”
맛집 레시피는 부르는 게 값이다.
양대식이 알기로도 육수값만 천만 원이 넘었다.
“이럴 시간 없습니다. 양 사장님은 꾸준히 암기하고, 만들어보셔야 돼요.”
“아. 예!”
“시식은 영식이가 할 겁니다. 영식아.”
영식이가 폰 게임을 하다가 빙글 돌아봤다.
승우는 그런 영식이를 들어서 테이블에 앉게 하고는 당부했다.
“오늘은 진짜 마음대로 먹어도 돼.”
“진짜뿌!?”
“대신 먹을 때마다 맛의 평가를 할 것. 그리고…….”
그가 목소리를 낮춰서 영식이의 귀에 소곤소곤 이야기했다.
“내 요리를 기준으로 해서 50점만 나오면 합격이라고 해줘.”
“뿌.”
말이 비슷한 맛이지 완전히 같을 수는 없었다. 승우는 단순한 볶음을 할 때도 마법이나 스킬을 쓴다.
그 맛에 완전히 익숙해진 영식이에게는 아무래도 부족함이 느껴지게 마련. 하지만 그래도 그냥 손님에게까지 그렇게 해서 팔지는 않기 때문에 분식집 손님에게는 충분히 맛있는 요리가 되겠지.
“그리고 양 사장님.”
“예?”
“앞으로 일할 때는 이걸 끼세요.”
승우가 건넨 것은 손목보호대였다.
“이건 왜……?”
“손을 다친 흔적이 있더군요. 지금까지는 손님이 적어서 괜찮았지만 많은 손님을 받다 보면 부상이 도집니다. 손목은 쉽게 재발해요.”
당연히 보통의 손목보호대는 아니다. 착용자의 힘을 상승시켜 주며 자잘한 회복 기능이 붙어 있는 마법의 아티팩트였다. 등급으로 치면 B등급은 된다.
“그렇군요. 배려 감사합니다.”
“꼭 끼셔야 합니다.”
“예.”
과연 양대식이 이 아티팩트의 가치를 알까? 현역 시절이었다면 마력의 잔재를 눈치챘겠지만, 지금의 그는 알 길이 없었다.
양대식은 노트를 뚫어져라 보고, 냄비를 흔들었다. 잠시 후 첫 요리가 나왔다.
“25점뿌!”
“짜, 짜다…….”
“아까 먹은 돈가스는 1점이었다뿌.”
“고작 1점…….”
“좀 더 노력해라뿌?”
“…알았어. 노력할게.”
영식이의 입에서 ‘하산해라뿌.’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는 3일이 걸렸다.
* * *
승우가 양대식을 가르치는 동안 가게를 굳건하게 지킨 나비는 탈진 상태였다. 접객과 빵 굽기와 요리와 은하의 놀이 상대와 티거의 놀이 상대를 하자니 레벨 99라고 해도 지친다.
“수고했어.”
“냐아아……. 냥이 부리는 게 험하다냐.”
“내가 너를 믿으니까 그렇지.”
“그렇냥? 그럼 더 해도 괜찮다냐!”
“아냐. 푹 쉬어.”
고생한 나비에게 휴가를 주기 위해서.
그리고 양대식의 가게에 손님을 몰아주기 위해서 가게의 문을 닫았다.
마침 미칠 듯한 더위가 시작됐으니 시기가 딱 좋았다. 나비와 은하, 영식이는 바로 게르니아로 피서를 떠났다.
그런 무더운 여름, 승우는 의자에 앉아서 양대식이 준 아티팩트를 쥐었다.
F등급의 아티팩트, 흑철단검.
효과는 잘 부서지지만, 금방 재생한다.
막 써도 되니 이리저리 편리하지만 그렇게 대단한 검은 아니다,
“겉보기론 말이지.”
ISAC에서 제공하는 아티팩트 라이브러리에는 그리 등록되어 있었고, 양대식도 그렇게 알고 있는 모양이지만 승우의 눈에는 전혀 다르게 보였다.
—
[??의 단검]???, ???
—
신의 눈으로 보아도 정체를 알 수 없는 무기는 오직 하나뿐이다.
“신명무구.”
단검에 깃든 미약한 신력이 그것을 뒷받침한다. 그가 혀를 찼다.
“양 사장에게 뭔가 더 보내줘야겠군. 미안한 짓을 했어.”
그의 가게는 지금 문전성시.
손님이 줄을 서서 먹는 가게가 됐다.
승우의 가게를 닫고 손님을 몰아주고, 새 요리 방식을 도입한 게 주효했다.
하지만 그래 봐야 신명무구와 비견할 것은 아니다. 망가진 신명무구가 아니라 멀쩡한 신명무구라고 해도 양대식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겠지만, 그래서야 승우의 기분이 편치 않았다.
“약이나 음식이면 되겠지. 그나저나 이건 누구의 무구지?”
신명무구가 이미 형상과 기능을 잃어갈 정도라면 사라진 신일 확률이 높다.
승우는 그렇게 자문자답하며 단검을 보다가 팔짱을 끼었다.
“뭐, 좋아. 신력을 부어보면 알겠지.”
단검이 천천히 떠올라서 천장까지 날아올랐다. 빛이 모여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