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306)
괴식식당-306화(306/613)
306화. 태풍의 눈 (2)
A섹터 전체는 지금 전운이 감돌고 있었다. 폭풍 전야의 나날이다. 따지고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109명의 각성자 테러리스트가 작정하고 국가에 테러를 가하려고 한, 역사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테러 시도가 있었다. 그 시도는 승우의 심기를 건드려서 미연에 방지됐지만, 그 이후로도 놈들의 견제가 이어졌다.
이번에는 추가로 스파이까지 보냈다. 스파이를 보낸 의도는 매우 투명했다. 정찰의 용도다. 군사학적으로 본다면 정찰대를 보냈으면 그 다음은 본대가 오는 게 올바른 수순이다. A섹터는 지금 전쟁 직전의 상황이다.
“공격이 있을 겁니다.”
태지가 그리 말하면서 조금 불편한 식당의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승우가 냄비를 흔들며 물었다.
“누가 공격한다는 거야?”
“볼코프라고 합니다.”
“볼코프?”
“사장님이 오시기 전에 세계 최강이라고 불렸던 귀환자입니다.”
“으음- 들어본 거 같아.”
복지센터에서 주민등록증을 재발급하며 귀환자 교육을 받을 때 얼핏 들은 기억이 있었다.
“귀환 용사인데, 등록을 거부하고 범죄 조직의 세계로 갔다고 했지.”
“맞습니다.”
“그래 봐야 한 명의 귀환자가 공격하는 건데 그리 큰일이야?”
“이게 국제적으로 봐서 상당히 복잡한 상황입니다.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까요. 우선 중국이 해체 수순을 밟고 있는 건 아십니까?”
“몰라. 처음 들었어.”
그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며 냄비에 와인을 부었다. 그러자 초록색의 불꽃이 타올랐다. 플람베 색이 초록색이라니, 또 뭔가 이상한 요리를 하시는구나. 응, 뭐 늘 있는 일이지.
태지는 그리 생각하면서 또박또박 힘을 주어 설명을 계속했다.
“총장님은 중국을 완전히 갈기갈기 찢어두실 생각입니다. 예전의 오호십육국 시대로 만드시려고 하고 있죠.”
“과감하군. 그런데 그게 마피아와 무슨 관계야?”
“중국이 그렇게 해체당하는 걸 보니까, 러시아가 조바심이 난 거죠.”
“러시아가?”
“러시아는 알아주는 반 ISAC 성향의 국가인데요, 그래서 중국과 아주 든든한 관계였거든요.”
“동맹국인 중국이 박살 나는 걸 보니 자기 차례가 왔다고 생각했나 보구나.”
“그겁니다. 그래서 마피아와 결탁을 해버린 거죠. 볼코프가 있는 마피아는 보통의 마피아가 아니니까요. 듣기로는 대통령이 머리를 숙이고 들어갔다고 합니다.”
복수를 하려는 볼코프 패밀리.
당하기 전에 쳐서, ISAC 주도 아래에 있는 흐름을 바꾸고 싶어 하는 러시아.
서로의 이해관계가 일치했으니 동맹을 맺는 것도 간단하다.
“그러니까 지금의 상황은 러시아와 러시아 마피아가 연합하여 A섹터를 공격할 채비를 하는 도중입니다. 다만 그리 대놓고 하는 일은 아니에요. 몰래몰래, 숨어서 하고 있습니다.”
“그렇겠지. 대놓고 하면 러시아를 공격할 명분이 되니까.”
승우는 주혁진에 대해서 잘 아는 것은 아니었지만 워낙 많은 이야기를 들은 터라 그의 성깔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았다. 조금의 명분만 있었어도 러시아를 지도에서 지워 버릴지도 모른다던가?
태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이해가 빠르시군요. 정확하게 그런 상황입니다.”
전쟁은 피할 수 없다. 그렇다고 먼저 칠 정도의 명분도 없다.
ISAC로서는 적의 공격을 한 번 받고, 반격으로 쓸어버리는 방법뿐이었다.
이렇게 위기가 닥쳐오니 ISAC는 대비를 해야 했다. 낡은 시설은 새롭게 보수하고 새로 개발된 최첨단 장비가 들어온다. 그러면 일이 늘어나겠지.
이 와중에도 게이트는 계속 생긴다. 괜히 서울, A섹터가 세계 3대 마경으로 불리는 게 아니다. 이곳의 게이트 생성 속도는 전 세계를 뒤져봐도 대적할 곳이 없었다.
“게이트가 이쪽 사정 봐주고 생기지는 않으니까요.”
“그렇군.”
“웃기는 일이에요. 이차원의 적과 싸우기에도 벅찬데 사람끼리 싸우고 있다니…….”
“세상 사는 일이 다 그렇지.”
세상 사는 일이 다 그렇지, 라.
여러 가지로 무게감이 있는 말이었다.
태지는 그 말을 듣고 내심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안도감을 느꼈다.
‘이 사람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세상은 지금 다가올 태풍을 걱정하며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A섹터의 책임자인 이정훈은 물론이고 ISAC 전체가 그러했다. 불안과 공포는 전염되게 마련이다. 윗선이 그러하니 아래 또한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법.
‘지금은 백소향 회장님이나 총장님도 여유가 없어.’
A섹터 전역에 전쟁의 태풍이 몰아치는 이 시기. 태풍의 중심지는 가장 태풍으로부터 안전하다고 한다.
그야말로 유승우는 태풍의 눈이었다.
‘유 사장님이 은하를 보호해 주고 있어서 다행이야. 이걸로 나도 일선에 나갈 수 있겠어.’
태지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때였다.
승우가 냄비를 흔들던 손을 멈추었다.
“자, 다 됐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요리가 완성됐다. 태지는 침을 꿀꺽 삼키며 그가 주는 그릇을 받았다. 찰랑찰랑 흔들리는 스프. 그러나 흐르지는 않았다.
스프지만 반쯤은 고체였다. 어떤 느낌이냐면 초등학교 시절에 문방구에서 팔던 만득이 인형 같았다.
승우가 씩 웃었다.
“갑자기 영감이 떠올라서 만들었어. 오리지널 특제 야일라 초르바스야.”
“야일라 초르바스? 그게 뭡니까?”
“터키식 스프인데, 요구르트에 민트를 넣고 끓여서 먹는 거야.”
“요구르트, 민트…….”
민트를 넣어서 끓인 요구르트라니 듣기만 해도 괴식다운 괴식 조합이다. 어찌나 따끈따끈한지 한참이나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터지는 기포를 멍하니 보던 태지가 중얼거렸다.
“터키는 이런 걸 먹습니까?”
“민트는 세계적으로 사랑 받는 재료라고. 요구르트도 마찬가지지. 같이 넣고 끓이는 건데 뭐 그리 신기하게 봐.”
“아, 그야. 뭐… 사장님이 하신 요리니까. 심지어 앞에 ‘오리지널’이라는 말도 하셨고, ‘특제’라고도 하셨으니까. 또 다른 게 있을까 하고…….”
“물론 있지. 내가 재미없게 순수하게 터키식으로 만들었겠어?”
승우는 음식을 만들 때 재료를 가리지 않는다. 아무리 더러운 재료라고 해도 마법으로 정화하고, 아무리 혐오스러운 재료라고 해도 합리적으로 처리하여 먹을 수 있는 물건으로 만든다.
그것은 이를테면 괴식 중에서도 생존을 위한 괴식, 서바이벌 괴식이라고도 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그의 손에 잡힌 재료는 그 어떤 것이라도 괴식의 재료가 된다.
그런데 딱 하나.
요즘 사용하지 않는 재료가 있었다.
“슬라임을 썼지.”
“슬라임을?!”
슬라임은 던전의 삼대 요소라고 불리는 아주 기본적이며 범용성이 높은 몬스터다. 어찌나 범용성이 높은지 어지간한 곳에 다 쓸 수가 있었다.
“각 나라의 요리를 보면 기본이 되는 요리가 있어. 중국에서는 요리를 배울 때 볶음밥을 배워. 기름을 다루는 방법, 재료를 손질하는 방법, 불을 다루는 방법과 간을 보는 방법을 배울 수 있지. 비슷한 것으로 프랑스 요리에서는 오믈렛을 배워. 마찬가지로 요리의 기본을 배울 수 있지.”
“그럼 괴식에서는…….”
“괴식에서는 슬라임 요리를 기본으로 쳐. 슬라임은 쓰기도 쉽고, 먹기도 좋으며 여러 가지 복합적인 효과를 부여하는 연습 도구가 되지. 괴식을 만들 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배울 수 있어.”
그런 슬라임을 지금까지 쓰지 않는 이유. 그것은 바로 영식이 때문이었다.
영식이는 엄밀하게 말해서 슬라임이 아니다. 녀석은 생물병기였고, 강준치의 파멸을 먹고 약화된 후에 처음으로 먹은 푸딩 슬라임처럼 변한 것뿐이었다.
슬라임처럼 변했다고 해도 부정형의 생물체라는 점만 닮았지, 정작 외견도 동글동글하게 생겨서 전혀 달랐고, 마법적인 특성조차 슬라임과 아예 달랐다.
“그런데도 참 쓰기가 힘들더라고. 나도 나지만, 영식이가 보면…….”
“영식이가 보면 충격을 받을지도 모르겠군요.”
“걔가 처음 먹은 음식이 푸딩 슬라임이었으니까 아마 충격받지는 않겠지만, 받을지도 모르잖아? 그래서 평소에는 슬라임 요리를 피했어.”
“아, 오늘은 영식이가 없군요.”
“대명 백화점에서 나이트 슬라임인지 슬라임 나이트인지, 인형극을 한다고 해서 갔어.”
“아아아-! 들었습니다. 만화 대히트했다면서요. 귀엽다고 회장님도 푹 빠지셨습니다.”
“그렇다더라. 아무튼 나도 오랜만에 기본기를 다질 겸 슬라임 요리를 해봤다. 기본은 소중하니까!”
기본이 소중한 것은 인정하지만 내 몸도 소중한데…….
태지는 그 말을 꾹 삼키고 승우의 요리 설명을 경청했다.
“요리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민트를 먹여서 몸의 성분을 바꾼 슬라임을 채 썰었고, 양젖을 먹여서 키운 슬라임을 며칠 발효시켜서 요구르트로 만들었지. 그걸 같이 넣고 푹 끓이면서 겸사겸사 솔트 와인으로 플람베를 했지. 이렇게 하면 맛이 한층 더 독해지거든.”
“하하하하. 하하하하.”
태지는 초점이 풀린 눈으로 스프 그릇을 내려다보았다. 이 요리는 참으로 혁명적인 요리였다. 보고 있으면 천사가 칫솔에 듬뿍 치약을 묻혀서 안구를 직접 닦아주는 느낌이 들었다. 산뜻하고 청량한데 눈알 아파.
이 상쾌한 향기는 너무 상쾌해서 코 안쪽의 뼈가 시릴 정도였다. 분명 펄펄 끓는 뜨거운 스프인데, 차갑다.
‘정성을 담아서 사람을 조지는 음식이구나. 참, 이거만 아니면 완벽한 사람인데, 하늘도 무심하시지.’
뭐, 하루 이틀 일인가.
이제는 익숙해질 때도 됐지.
태지는 담담하게 민트향이 풀풀 나는 스프를 내려다보았다.
* * *
황지현에게 있어서 군기교육대란 곳은 미지의 세상이었다. 발랑 까진 자신의 직속상관이야 군기교육대 입소횟수 랭킹 2위라는 불명예(백강혁 본인에게는 명예였다.)를 가진 만큼 하루가 멀다 하고 들어가서 제 집처럼 느껴지나 보지만, 적어도 황지현에게 있어서 이곳은 이세계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조금 걱정을 했다.
하지만 와보니까 이게 웬걸?
“여기가 천국이구나…….”
“야옹?”
근 십 년. 이리도 평화로운 적이 있었던가. 폭식한 소파에 앉아서 담요를 두르고 무릎 위에 티거를 올린 채, 녀석의 보드랍고 따끈따끈한 등을 매만지며 교양서적을 읽는다.
무술 교본이나 전략서, 외국어 교재, 작전 수기가 아니라 교양서적이다!
교양서적!
손을 뻗으면 그곳에는 따뜻한 코코아가 있었고, 과자가 있다.
설거지도 본인이 할 필요도 없었으며 인터넷도 할 수 있다.
황지현의 감성은 사막과도 같았다.
대재앙 이후 십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그녀는 바쁘게 일했고, 생존을 위해 투쟁했으며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어금니를 꽉 물어왔다.
그 결과 인성이 마모되고 메말라 쩍쩍 갈라져 한 줌의 모래가 되었으니 사막이라고 할 수밖에.
“흐아아아. 너무 좋아.”
꾹꾹, 하고 담요를 누르는 티거의 젤리가 따끈따끈하다. 그게 너무 귀여워서 보고 있으면 발라당 뒤집어서 배를 보이고는 왕방울만 한 눈을 깜빡이면서 앞발을 뻗어온다.
든든하게 밥을 먹고 올챙이처럼 볼록 솟아오른 배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걸 보면 입가가 사르르르 녹는다.
“왜 이렇게 귀엽니? 응? 대체 왜 이렇게 귀여워!”
“간지럽다오옹~”
티거의 배에 얼굴을 비비면서 생각해 보니 무얼 위해서 그리 치열하게 살았는지 모르겠다. 발바닥에 불이라도 붙은 양 처절하게 사지를 비틀어 가며 달려온 인생이다.
슬슬 자신에게 조금의 여유를 주어도 되지 않을까. 응, 좋아. 돌아가면 일을 반으로 줄이자. 그리고 그 반만큼을 나와 티거를 위해서 쓰는 거야.
그렇게 다짐할 때였다.
독실의 문이 활짝 열렸다.
그리고 지긋지긋한 얼굴이 튀어나왔다.
“부관아아아-! 내가 왔다!”
“오더? 여길 어떻게?”
“어떻게 오긴 차 타고 왔지.”
“그런 걸 묻는 게 아니잖아요?!”
“답답하고 지루해서 혼났지?”
답답하고 지루했냐고?
근 십 년 간 최고의 힐링이었다.
얘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하고 의문을 떠올리는 것도 잠시.
백강혁이 엄지를 세우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내가 퍼스트 오더 권한을 팡팡 써서 널 자유로 만들었단다!”
“뭐라고요?”
“여기 있을 필요가 없다는 거지! 나가자!”
“누, 누구 맘대로!?”
“퍼스트 오더 권한 썼다니까! 고맙지? 고맙지? 고마워해라!”
깐죽거리면서 으쓱거리는 놈의 표정.
그 표정을 보자마자 지현의 필름이 끊어졌다.
“이 도움이 안 되는 망할 오더 새끼야아아-!”
“왜, 왜 화를 내는 거야?!”
그녀의 휴가는 매우 짧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