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311)
괴식식당-311화(311/613)
311화. 신은 주사위를 굴리지 않는다 (1)
블라드미르 대통령이 말했다.
“우리는 보기보다도 상황이 좋지 않아.”
러시아는 강국이다. 대재앙 전까지만 하더라도 당당하게 세계열강에 이름을 올렸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러시아의 국토는 방대하고 지하자원은 풍부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선진국이라 불리는 수많은 국가 중에서도 러시아만큼 빠르게 몰락한 나라는 없었다.
“원인은 대재앙 이후로 나온 모든 것들이지.”
풍부한 지하자원은 러시아에게 다른 세계열강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힘을 줬었다. 그러나 대재앙 이후로 자원의 판도는 바뀌었다.
신비로운 에너지, 마력과 마석은 석유와 석탄, 가스보다도 압도적인 성능과 가격을 자랑한다.
가성비에 있어서는 차마 비교하기도 부끄러울 지경이고, 마석과 그 마석을 사용하는 여러 소비재는 시시각각 발전했다. 삶의 작은 부분부터 천천히 마석이 잠식해 들어가는 걸 보고 있으면 속이 탈 지경이다.
“제일 큰 문제는 인간이야.”
현 시대의 최고 자산은 사람, 더 정확하게 말해서는 각성자다.
각성자의 숫자, 질은 국력과 직결되는 문제다. 러시아의 각성자는 상당히 강한 편이었는데, 혹독한 자연환경과 가혹한 사회정책이 그들을 강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강하게 만들었다고 해서 애국심이 생길 리는 만무하다.
러시아의 사회정책은 구닥다리였고 엉성하다. 그러하니 강한 각성자일수록 빠르게 ISAC의 요청을 받고 국외로 탈출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제 러시아에 남은 각성자는 범죄 경력이 있거나 멍청한 사람, 능력 미달인 사람이 대부분이다. 이래서야 국력이 신장될 리가 없다.
“내가 3년만 빨리 대통령이 됐어도 이렇게는 되지 않았겠지.”
블라드미르가 대통령이 되기 전에 이미 판도는 기울어졌다. 러시아는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할 힘을 잃었고, 성장 동력조차도 상실해 버렸다.
망국의 내리막길을 타버린 것이다.
눈을 감고 가만히 들어주던 볼코프가 발을 들었다, 내렸다. 그러자 원탁이 산산조각이 나며 사방으로 폭발했다.
먼지가 자욱한 가운데, 붉은 안광의 볼코프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불평을 할 생각으로 날 불렀다면, 지금 널 죽여 버리겠다.”
“진정하게. 자네도 지금의 정세를 알아두라고 하는 말이야.”
“정세?”
“우리는 100% 지는 싸움을 하고 있는 거야.”
러시아는 약해지고 있고 ISAC는 강해지고 있다.
세계의 중심은 이미 미국과 중국, 러시아에서 한국과 미국으로 움직였다.
“우리가 이길 가능성은 사실 없네.”
“아까부터 우리라고 하는데, 우리가 아니라 러시아겠지.”
“정정하지. 내가 이길 가능성은 없어.”
내가? 자신이 곧 러시아라는 말인가.
볼코프는 따분한 표정을 지우고 처음으로 블라드미르에게 흥미를 가졌다.
그 기색에 그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이제야 이쪽을 봐주는군.”
“재밌는 놈이니까, 몇 마디 정도는 더 들어주려고. 해봐.”
“고맙군. 자네가 A섹터에 개인적인 원한이 있어서 싸워주고 있지만, 원론적으로 말해서 나의 적은 A섹터가 아니라네.”
러시아는 국가인 만큼 한 도시와 싸운다면 이기는 거야 일도 아니다. 러시아에 있는 핵은 모두 577발이다.
당장에라도 버튼을 누르면 핵전쟁이 시작된다. A섹터가 아니라 한국을 지도에서 지워 버리는 일도 가능하다.
“내 진정한 적은 A섹터 같은 작은 도시도, 그리고 한국도 아니라네. ISAC지. ISAC는 지금의 세계 그 자체니 세계와 싸우는 셈이군.”
“그거 대단하시군. 그래서?”
“생각해 보게. 지금 당장 자네와 힘을 합쳐서 A섹터를 쓸어버린다 치지. 그러면 우리나라는 어떻게 될 거 같나?”
“알 게 뭐야.”
“그 순간 러시아는 사라질 거야.”
“뭐?”
ISAC의 총장 주혁진이라는 자는 신기에 가까운 감각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 자신을 노리거나, 공격할 마음을 품는다면 그 기색을 공격하려는 본인보다도 먼저 찾아내서 먼저 공격을 한다.
얼핏 보면 무차별 공격 같지만 다르다. 공격할 의도가 있어야만 공격한다.
“결론적으로 보면 주먹을 드는 순간 목에 칼을 꽂아버리는 형국이니, 무차별 공격으로 보이지만 엄연히 규칙이 있긴 하다는 말이야. 우리가 공격에 나서고, A섹터에 대해서 도를 넘는 공격을 하면 그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아마도 이미 공격하려고 만반의 준비를 끝냈을지도 모르지. 내가 선을 넘는 순간 다 없애 버리려고 말이야.”
“그 잘난 핵은 어쩌고?”
“공간 이동을 막는 기계를 설치하는 판인데, 핵폭탄도 막는 기계가 있을지도 모르지. 공간 이동처럼 영문을 모르는, 말도 안 되는 하이퍼 오버 테크놀러지보다는 핵분열 쪽이 이해하기 쉽고, 낮은 등급의 과학 기술 아닌가. 핵분열을 막고 핵폭탄을 불발로 만드는 기술쯤이야 없는 게 더 이상하지.”
“그런데 왜 나와 협조하자고 한 건가. 화려한 자살이 취미였나? 기왕 죽는 김에 온 국민을 무덤으로 데려가고 싶었나 보군.”
블라드미르가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그게 바로 정치라는 거라네.”
“정치?”
“ISAC의 독주를 원하지 않는 나라는 많아. 중국, 인도, 파키스탄, 중동의 여러 국가들. 하물며 총장이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한국과 동급으로 취급 받는 미국도 그러하지.”
“미국……?”
“세계최강국인데 고작 아시아의 작은 반도와 같은 취급이라니, 자존심이 상하는 것도 당연하지. 그레이트 아메리카 어게인, 이란 말을 모르나?”
“하. 오랜만에 듣는군. 귀환하고 나서는 처음 들어봐.”
“덧붙여 지금 미국의 대통령은 알아주는 수구꼴통이야. 그런 사람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면서 눈 찢어진 황인종에게 먼저 악수를 건네고 있네. 살고 싶어서 말이야. 굴욕도 이런 굴욕이 있을까.”
“그렇군. 그래서 그게 A섹터를 공격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지?”
의문을 표한다. 의문을 표한다는 것은 드디어 관심을 가졌다는 의미고, 감정을 열었다는 의미다. 블라드미르는 친절하고 상냥한 얼굴로 말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세상의 정세가 그래. ISAC 위주로 돌아가고 있지.”
“그래서, 그만 말 돌려. 죽여 버리기 전에.”
“A섹터의 함락은 반 ISAC 국가에게 있어서 집결의 신호탄이라네.”
“집결의 신호탄?”
“모든 일에는 흐름이 있고, 그 흐름을 바꾸는 일은 쉽지가 않아. 흐름을 바꾸려면 그 흐름을 이길 만한 거대한 변곡점이 있어야 하지. A섹터를 무너트리면 ISAC의 아성에 흠집이 간다. 저들도 이길 수 있는, 싸울 수 있는 대상임이 드러난다. 그때가 되면…….”
블라드미르의 두 주먹이 부딪쳤다. 제법 세게 쳤는지 시원한 소리가 났다.
“지금까지 참고 있던 분노, 증오, 짜증이 폭발하는 거라네. 막힌 댐이 무너지듯 한 번에 몰아치지. 그렇게 사방에서 공격이 시작되면 ISAC는 러시아를 공격할 수 없을 거고, 우리가 드디어 공세로 돌아서는 거야.”
“그래서 부탁이란 게, A섹터를 무조건 함락시켜 달라?”
“부탁은 두 개야. 하나는 자네 말대로 러시아의 힘을 모조리 쓰는 한이 있더라도 A섹터를 함락시켜 달라는 것.”
“두 번째는?”
“나를 감금해 주게. 기왕이면 여기, 이쯤을 보기 좋게 잘라서 만신창이가 된 후가 좋겠군.”
블라드미르가 눈웃음을 지으며 스스로의 오른쪽 어깨를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었다. 팔을 잘라달라는 의미다.
눈에서 스멀스멀 번지는 익숙한 광기에 볼코프가 입 꼬리를 올렸다.
“미친놈.”
“이유는 안 들어도 되는 건가?”
“러시아의 권력을 마음대로 쓸 수 있도록, 너를 인질로 잡으라는 거 아니냐. 겸사겸사 ISAC의 공격을 방지하는 효과도 노리는 거고.”
“오호라.”
“예비 반역자가 아니라 가련한 인질이 되는 게 명분으로는 나쁘지 않겠지.”
100점 만점의 100점짜리 답변이었다.
블라드미르는 박수를 치며 호응해 줬다.
“머리까지 좋을 줄은 몰랐군.”
“머리를 쓰기 귀찮은 거지, 쓰는 법을 모르는 건 아냐.”
“훌륭해. 사업 파트너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군. 내 부탁을 들어주겠나?”
볼코프가 생각하는 듯 눈을 감았다가, 입술을 핥았다.
거부하기에는 너무 재밌는 제안이었다.
* * *
여느 때와 같은 저녁 식사 시간이었다.
승우는 요즘은 무더위도 있고, 전시 직전 상황이라 다들 조금 긴장하기도 해서 저녁 영업시간을 특별히 2시간 정도 늦춰서 장사를 했다. 늦게까지 잔업을 하고 온 헌터들이 고마워하는 것은 당연지사. 약간의 술을 반주 삼아 즐거운 식사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일부는 아이스큐브를 먹고 몸을 시원하게 하는 중이었다. 민은 본래부터 마력 조작의 달인이다. 아이스큐브를 다섯 개나 먹어도 그 다섯 개를 전부 컨트롤 할 수 있었다.
“으흐으음……. 좋군.”
뭉친 어깨나 종아리 근육을 풀고 있자니 절로 노곤노곤해진다.
그런데 그때였다. 민을 비롯한 헌터 전원의 폰이 동시에 울렸다. A섹터 주둔군의 헌터 전원에게 보내지는 긴급 알람이었다. 알람을 확인한 모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게 시발 무슨 소리야…….”
이 중에서 가장 어리기 때문인지 감정의 동요를 숨기지 못한 윤은형이 험한 말을 내뱉었다. 그때였다. 가게 한편에 틀어둔 TV에서 긴급 뉴스가 시작됐다.
[긴급 속보입니다. 러시아의 크렘린 궁전이 반정부 세력에 의하여 점령당했습니다. 관련 영상은 현재 영상의 진위 파악을 위해 조사 중이며 자세한 뉴스는 잠시 후에 이어집니다.]“이런 미친.”
헌터들은 잠시 눈치를 보더니만 본부와 연결을 시도했다. 굳이 체면을 가릴 처지가 아닌 긴급 상황이다. 어차피 주변에 있는 거라고는 다 동업자인 헌터였으며 그게 아닌 사람은 승우뿐이고, 생명체로 그 범주를 넓혀봐야 나비 정도였다.
그렇게 다들 통화를 하는 동안 백강혁이 승우에게 말했다.
“싸장님, 잠시 셔터 내려주실 수 있습니까?”
“왜? 갑자기.”
“이만큼 헌터가 모이기도 했으니, 잠시만 여기를 통제 센터로 쓰게요.”
“나야 상관없지만 괜찮은 거야?”
승우가 눈짓을 하니 나비가 재빨리 셔터를 내렸다. 그걸 보고 다들 안심하고 통화를 이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마치 전쟁 직전의 상태였다. 승우는 조바심을 내지 않고 가만히 TV를 주시했다.
TV 속 캐스터들이 대화를 하고 있다.
[그러니까 마피아가 크렘린 궁을 무단으로 점거했다는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인명피해는 있었습니까?] [때마침 내각 회의 중이었다고 합니다. 현재로서는 그들의 생사를 알 길이 없습니다.] [내각 회의 중이라, 그렇다면 블라드미르 대통령은 어떻습니까?] [러시아의 현장 영상을 보시면, 한 팔을 잘린 채 소리치는 블라드미르 대통령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생존은 확실하나 큰 부상을 입은 것은 분명합니다.] [대체 어쩌다가 이런 일이 생긴 겁니까?] [러시아는 본래부터 마피아의 세력이 강한 국가입니다. 정부와 내밀하게 연이 닿아 있기도 했는데요. 교섭이나 협상 과정에서 불화를 일으켰다는 설이 중론입니다.]통화를 마치고 온 민이 이를 갈았다.
“저희 쪽 정보망에 연락이 닿는 것과 언론의 반응이 거의 시차가 없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이거 아무래도 러시아 쪽에서 정보를 푼 거 같습니다.”
“러시아 쪽에서 무슨 정보를 풀어?”
“영상 정보입니다. 지금 인터넷에 현장 영상이 대량으로 풀려 있는데, 수준이 거의 스너프입니다. 대통령 놈 말고는 죄다 죽었나 봐요. 막 클립을 따자마자 올린 모양새인데, 반정부 세력이 정보를 통제했다면 절대로 이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속이 뻔히 보이는 수작이었다.
블라드미르와 볼코프는 긴밀하게 협력하는 사이였고, A섹터와 전쟁을 준비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둘이 갑자기 반목하고, 감금을 당해? 그럴 리가 없었다.
“ISAC가 선공할 것을 두려워해서 명분을 만든 거겠죠. 이쪽도 민심이 있으니까 멋대로 공격적으로 나갈 수 없으니까요. 아주 교활한 수법입니다.”
공기가 무겁다. 돌아가는 꼴을 보고도 아무것도 모를 사람은 없다.
승우가 혀를 찼다.
“이제 전쟁이 시작되겠군.”
태풍이 코앞까지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