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312)
괴식식당-312화(312/613)
312화. 신은 주사위를 굴리지 않는다 (2)
순위 매기기는 인간의 본능이다.
어려서는 만화나 게임에 나오는 캐릭터들 중에 누가 더 강한가를 따진다.
조금 더 머리가 굵어지면 누구의 대학교 더 학벌이 좋은지.
누가 더 좋은 곳에 취직했는지.
하나하나 따져서 순위를 정한다.
아름다움도 강함도 현명함도 모두 다 순위를 정한다.
힘은 싸워보면 확실하게 누가 더 강한지 알 수 있다. 퍼스트 오더 랭킹은 그렇게 태어났다.
하지만 힘과는 다르게 아름다움은 주관적이다. 누가 더 아름다운가는 보는 사람이 정하는 것이니 순위가 있을 수 없다. 어떻게 하면 아름다움에도 순위를 매길 수 있을까, 사람들은 고민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안목이 있는 심사위원들과 힘을 합쳐서 그 순위를 정한다.
이렇게 힘과 아름다움까지 순위를 매기는 데 성공했다.
이제 남은 것은 현명함이다.
머리가 좋고 나쁨의 기준은 뭘까.
머리가 좋다는 말은 머리의 공격력과 내구력이 좋아서 많은 송판이나 기왓장, 대리석을 깰 수 있다는 말이 아니지 않은가.
암기력, 암산 속도를 겨뤄야 할까? 그것은 단순한 수치 계산 능력이니 누구도 계산기나 컴퓨터를 이길 수 없다.
그렇다면 학벌인가? 좋은 대학은 인내심과 좋은 학습 태도와 학습 습관에 대한 증명은 될 수 있지만 지성(智性)과 지혜(智慧)의 증명은 아니다.
그렇다면 지혜는 대체 어떻게 해야 순위를 매길 수 있을까.
많은 고민을 했지만 답은 없었다.
하지만 답이 없어도 사람은 순위를 만들어냈다.
눈에 보이는 결과와 전문가의 평가, 소문 등을 모아서 암묵적으로 세계의 전략가 랭킹을 정했다.
공신력이라고는 하나도 없어서 호사가의 장난, 혹은 각종 커뮤니티의 땔감 정도의 취급이지만 어쨌든 공개된 랭킹은 이러했다.
첫 번째는 ISAC의 총장인 주혁진이다. 그의 경우는 살아 있는 신이라고 불릴 정도로 추종자가 많고 가장 세력도 강력하다 보니 이견 없이 전략가 1위에 군림했다.
그 다음은 프랑스가 낳은 불세출의 전략가, 시라노 베르그송이다. 그는 베이징 시 SS 오버 랭크 게이트에서 무려, 사망자 0명의 공전절후한 기록을 세움으로써 단독으로 2위로 급부상했다.
문제는 이 다음이다.
주로 호명되는 것은 수많은 게이트 사고와 파견 임무에서 성공률 97%를 기록한 미국의 천재 육군 참모 총장인 유진 리 대장.
수많은 국가의 해산으로 인해서 전직 해군이 해적이 되어버린 최악의 바다를 제압하여 세계 최대 규모의 해상 무역상회를 만든 이탈리아의 천재 사업가 피오라 비세티.
마찬가지로 혼란스러운 아시아의 바다를 제압하여 홍콩과 중국을 분리시키고 손꼽히는 거부가 된 트라이어드의 거두 창 리엔홍 정도였다.
이들의 순위는 지지자 중 누군가가 게시판에서 입을 잘 털었거나, 더 열성적이거나, 숫자가 많거나 적거나로 매번 바뀌었다.
그만큼 눈에 띄게 독보적인 사람이 없었다는 의미다.
하지만 전문가들, 그러니까 일선에서 활약하고 있는 ISAC의 전략지휘관이나 참모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총장을 제외한 전략가 중의 최고는 무조건 바실리 V. 자이체프라고.
그의 활약은 대중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의 전공은 대재앙이 터지기 전 러시아와 미국의 침묵전쟁으로부터 시작됐다. 침묵전쟁은 전쟁사에서 기록조차 남지 않은 은밀한 전쟁이었다. 기록은 말살되었고 그의 전공은 부정당했다.
다음으로 그가 출연한 곳은 리비의 사조직인 에메랄드 레이븐즈였다. 그는 거기서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자신의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서 수석 참모 자리를 꿰차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대재앙이 터졌다. 대재앙이 터진 이후 리비는 주혁진을 새로운 시대의 리더로 확신했고, 주저 없이 주혁진에게 모든 패를 올인 했다. 자연스럽게 바실리도 주혁진의 편을 들게 되었다.
그는 UN에 대한 역성혁명에서 폭탄 테러, 암살 같은 지저분한 일과 UN반대 운동 같은 멀쩡한 일을 동시에 진두지휘하며 그의 능력을 만천하에 보여줬다. 그러나 이 일도 결국 대중에게는 알려질 수 없는 일이었다.
요컨대 그는 전문가가 꼽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뛰어난 전략가이며 마찬가지로 두 번째로 위험한 인물이었다.
그러니 지금의 화상통신은 정말로 위험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으리라.
세계에서 두 번째로 뛰어난 남자.
바실리가 긴 백금발을 묶으며 첫 번째로 뛰어난 남자에게 말했다.
“예상 못 한 일은 아니잖아. 그리 당황할 필요가 있나?”
– 러시아와 레드 마피아의 결탁은 예상했지만, 이건 우리가 그린 그림과 다르니까.
“다르다고 해도 상정한 플랜 안에는 들어 있잖아? 이건 볼코프와 개새끼의 결탁에서 개새끼가 제일 이득을 보는 시나리오니까, 성공 가능성이 낮을 뿐이야.”
바실리의 말투가 상당히 과격해졌다. 바실리의 평소 말투는 이것보다 조금 낮고 나른하다.
상황이 아무리 격해져도 여유를 잃지 않는 사내지만 오늘은 조금 여유가 없었다. 주혁진이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그럼 자네의 아버지인 개새끼를 칭찬해야겠군.
“그 개새끼가 얼굴과 잔머리 하나는 수준급이지.”
바실리 V. 자이체프.
러시아인의 이름은 처음에 자신의 이름이 붙고, 중간에 아버지의 이름이 붙는다. 마지막으로는 성이 붙는다.
그의 경우 V는 블라드미로비치.
블라드미르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그의 아버지는 러시아의 대통령 블라드미르 블라드미로비치 자이체프다.
두 부자의 문제는 예전에 리비로부터 들었었다. 군인이었던 아버지가 아들을 팔아넘겨서 승진했다던가?
꽤나 끈적끈적하고 진흙탕 같은 사연이 있다고 한다.
-아버지라서 감시망을 소홀히 하거나 방심한 건 아니지?
“방심은 안 했어. 그냥 저 새끼가 하는 짓을 보니까 하게 두는 게 저놈에게도 그렇고 내게도 최선으로 보이더라고. 그래서 방치했지.”
-이게 최선이라고?
상황은 그리 좋지가 않았다.
레드마피아는 크렘린 궁을 점거해 대통령을 인질로 잡고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본래는 고작 인질범 따위에 휘둘릴 러시아군이 아니지만, 한 팔이 잘린 대통령이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고 있다는 핑계로 인질범의 요구를 전적으로 따르고 있었다.
-너희 아버지가 러시아군 전체에도 이미 언질을 해둔 모양이야. 그러니까 군사력을 발휘하는 데는 문제가 없겠지.
“그래, 문제야 없겠지. 핵 가방도 챙겨갔더라.”
-그런데도 최선이라고 말하는 건가?
전쟁은 시작됐다.
러시아의 핵잠수함은 서해로 진입 중이고, 무장병력은 국경을 넘어 한국으로 향하고 있었다.
마침 ISAC가 중국을 해체하던 중이라 해체가 끝나고 지휘권이 붕 뜬 군사들을 모아 러시아의 육군 병력을 막고 있지만 그것도 잠시뿐이다. 중국군은 ISAC에게 호의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에 친 러시아 성향의 국가들은 많아. 벨라루스나 세르비아는 벌써부터 A섹터 공략에 성공하면 움직이려고 군사를 모으고 있는 상황인데 잘도 그렇게 여유를 부리는군.
“어차피 이 작전의 대부분은 곁가지야. 전쟁이라고 판을 깔았지만 실제로는 게이트 공략보다도 단순하지. 키워드는 결국 A섹터야. A섹터만 지키면 되잖아.”
-A섹터만 지키면 된다. 그래서 방치하셨다?
“그래서 방치했어. 문제라도 있나?”
주혁진이 한숨을 내뱉었다.
역시 이 남자는 쓰기 어렵다.
어째서 어렵냐면, 그의 지성은 정말로 신화적인 수준이다.
모든 문제를 상정하고 그것에 대한 해결책을 준비해 둔 후 대처하는 주혁진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진짜로 미래를 보고 온 사람처럼 전략의 판을 예측하고, 짠다.
예지능력이 없는데도 그렇게 움직인다.
신산귀모(神算鬼謀)의 전략가는 사실 주혁진이 아니라 바실리였고, 주혁진은 한 번도 전술 시뮬레이션에서 바실리를 이겨본 적이 없었다.
물론 정치와 인재기용 등의 다양한 문제를 고려하면 주혁진의 능력이 훨씬 더 높기에 최고의 전략가는 주혁진이 맞았지만, 적어도 전투에 대한 지휘능력, 전술 구사력과 예측력은 바실리가 더 뛰어났다.
그렇게 대단한 전술가가 사태가 이렇게 되도록 방치했다. 그 의미는 방치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의미다.
주혁진은 바실리가 말하고 싶은 바를 시간 차이 없이 바로 알아들을 수 있는 전 세계에서 두 명뿐인 전략가였다. 그가 짜증을 담아서 인상을 구겼다.
-유승우를 쓰라 이거군.
“그래. 쓰면 산개한 모든 게 해결되는데 뭐가 그리 문제야?”
-산개한 모든 문제라.
“러시아군? 막는다고 쳐. 사람이 몇만 명 정도는 죽겠지만 대승리할 수 있겠지. 친러 성향의 국가들의 집단 봉기? 내가 막을 수 있어. 내가 박아둔 부하들이나 밀정, 마피아 놈들을 움직이면 일도 아냐. 막말로 놈들이 한 십만 명이 모여도 내가 대충 부하들 500명만 부리면 박살 낼 수도 있어. 다른 모든 문제는 좆도 아니라고. 그런데 볼코프는 어떻게 할 건데? 볼코프의 위험도는 네가 더 잘 알고 있잖아.”
세상에 귀환자는 의외로 많았다.
드러난 사람과 숨겨진 사람을 포함하고, 거기에 승우가 아테나와 계약해서 복귀시킨 사람까지 포함하면 200명이 훌쩍 넘는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귀환자 중에서 바실리나 주혁진이 이름을 기억하고 공식적인 회의에서 내뱉는 사람은 유승우와 볼코프뿐이었다.
그러니까 유승우가 오기 전까지 귀환자라고 말하면 그것은 100% 볼코프였다.
“이번에 그놈 하나를 막으려면 대체 몇 명의 퍼스트 오더를 써야 할까? 20명? 30명? 50명? 작년에 해본 시뮬레이션 결과는 어땠지?”
-74%는 100명을 다 보내서 동귀어진. 26%는…….
“100명을 다 처먹고 무지막지하게 강해져서 지구멸망이라는 결과였지.”
볼코프의 이능력은 [탐식]이다.
단순하게 말해서 먹으면 먹을수록 강해진다. 그리고 그는 웨어울프다.
늑대로 변할 수 있고 인간도 먹는다.
그에게 인간이란 경험치 덩어리.
마력 덩어리, 성장 포션이다.
“그런 놈과 싸우면 손해니까, 가만히 방치하는 게 우리 방침이었지. 하지만 지금은 참 상황이 좋아. A섹터만 막으면 우리의 승리, 막지 못하면 패배라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부탁하면 뭐라도 들어주는 램프의 지니가 아군이야. 지금 볼코프를 죽여 달라고 부탁하면, 그 사회의 암 덩어리를 치우면서 아시아 전역에 암 덩어리도 겸사겸사 제거할 수 있지. 일석이조 아냐?”
-하지만 그 사람이 부탁을 들어준다는 보장도 없어.
“들어줄 거야.”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바실리는 눈을 가늘게 뜨고 소파에 몸을 기대었다.
“네가 그 사람이 세 번까지는 부탁을 들어줄 거라고 예전에 판단했으니까.”
-…….
“나는 사람의 마음을 잘 모르지만, 너는 사람의 마음을 잘 알아. 내가 아는 한 너보다 사람 마음을 잘 읽는 자는 없어. 그런 네가 세 번까지는 부탁을 들어줄 거라고 판단을 내렸어. 이 이상의 근거가 필요해?”
-젠장. 그런 신뢰는 전혀 안 고마워.
“아무튼 나는 건의했어. 이번은 무조건 귀환자 찬스를 쓰는 게 옳다고 봐. 나머지는 네 판단에 맡기지.”
화상통신이 끝났다. 주혁진은 의자에 몸을 기대어 눕고는 눈을 감았다.
바실리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이해가 된다. 솔직히 주혁진도 그 생각은 했다.
‘이정훈을 고치는 데 이미 한 번의 부탁을 썼지. 내 계산으로는 아직 두 번이 남았어.’
고작 한 명의 질병을 고쳐주는 것과 수만 명이 죽고 다칠 때 전쟁을 빠르게 수습하는 것.
어느 게 유승우 티켓을 더 잘 쓰는 것인지는 어린애도 알 수 있을 만큼 확실하다. 그러나 주혁진은 여전히 이 전쟁에 유승우를 동원하고 싶지 않았다.
이유는 여럿 있으나 가장 큰 이유는 그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게이트를 타고 온 외계인, 이세계인과 싸우는 데 동원하는 것도 아니고. 같은 인간끼리 죽고 죽이는데 도와달라고 한다면 그는 실망하겠지.’
하지만 부탁하면 들어주긴 할 것이다. 실망하고 상처받겠지만 도와주겠지.
귀환자 한 명을 실망시키면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장차 있을 많은 분쟁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주혁진은 자신의 손에 주사위가 쥐어졌음을 알았다.
이 주사위를 굴리는가, 마는가는 온전히 그의 의지였다. 그리고 그의 의지에 온 지구인의 미래가 걸려 있었다.
주사위가 너무 무겁다.
“은하 보고 싶다.”
그가 깊게 한숨을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