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316)
괴식식당-316화(316/613)
316화. 천재의 수난 (3)
전쟁 발발로부터 6일.
이 짧은 시간에 세상이 변했다.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로부터 출발한 붉은 군대는 중국군과 교전을 개시하고, 단 하루 만에 중국군을 격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패배의 요인은 중국군 고위 간부의 배신이었다.
그들은 은밀하게 러시아와 내통하여 ISAC의 명령을 거부하고 붉은 군대에 합류했다. 내부에서 배신자가 속출하고 탈영병이 증가하는데 상대될 리가 만무. 러시아군은 쾌도의 진격으로 중국을 지나 북한 땅에 진입했다.
북한 땅은 10년 전에는 독재자, 김씨 가문 왕조가 있었지만 지금은 핵폭탄의 관리 소홀로 인한 유폭으로 문명은 사라지고 방사능 지대가 되었다.
있는 것이라고는 게이트를 관리하고 방사능의 범람을 막고 있었던 ISAC의 병력뿐이다.
이들도 군대를 막기에는 터무니없이 적은 병력이라 빠르게 이탈하는 수밖에 없었다.
러시아군은 기세를 타고 남한으로 노도의 진격을 하고 싶었지만 방사능 지대를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노릇.
때마침 홍콩에서 보내준 병력이 러시아의 보급선을 차단한 탓에 이들의 진군은 그 속도를 늦추어야만 했다. 보급이 없는 전진은 무의미한 까닭이다.
하지만 사태는 극단적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중국 육군의 배신으로 러시아군이 북한으로 진입을 성공하는 걸 보고, 서해안에서 한국군을 지원하던 일본 해군과 중국 해군도 잇따라 배신의 깃발을 올렸다.
중국, 러시아, 일본이 손을 잡았다.
승기가 ISAC의 지원을 받는 한국이 아니라 러시아에 있음을 확신한 이들도 삼국의 움직임에 맞춰서 태동을 개시했다. 대체로 친중, 친러, 친일 노선을 타고 있던 국가들이었다.
이렇게 각국의 군대가 움직이니 점차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ISAC에게 우세해 보였던 세상이 사실은 사상누각이었으며, 싸울 만하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렇다면 친 ISAC인가, 반 ISAC인가. 방침을 정해서 움직여야 할 때였다.
친 ISAC라면 ISAC를 도와야 한다. 그들이 무너지면 세상의 균형이 깨진다.
반 ISAC라면 지금이라도 러시아를 도와 싸워야 한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ISAC 주도인 세상의 흐름은 더욱더 굳건해질 것이며 그건 더 이상의 기회가 없다는 뜻이다.
세계는 편 가르기를 시작했다.
어느 쪽에 서느냐, 그 선택으로 앞으로의 미래가 달라진다.
성급한 이들은 벌써부터 다른 선택을 한 근처의 나라에 군대를 파견하려고 했다.
우리 편과 우리 편이 아닌 놈들.
적과 아군을 구분하여 줄 세우기를 한다. 그리고 서로를 향해서 총부리를 겨눈다. 각국의 여론이 시끄럽게 떠들고, 정치인이라는 이들이 언성을 높인다.
6일이 지난 지금. 테러리스트의 활동으로 시작했던 이 사소한 규모의 교전이 제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질 것을 누구도 부정하지 못했다.
아주 극소수의 사람을 빼고는.
“3차 세계대전? 그럴 리가 있나.”
화면 가득 빛으로 표시된 정보의 나열을 보며 시라노가 비웃었다.
모든 일이 작전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최소한의 피해로 전쟁은 장기화되었고, 이번 기회를 빌미로 오랫동안 지구에 쌓여 있었던 고름들이 짜이기 시작했다.
지금의 전략은 어찌 보면 단순했다.
“청소를 할 때는 먼지와 쓰레기를 한 곳에 모은 후에 치우지. 단지 그뿐이라는 걸 왜 모를까.”
무능하지만 먼저 태어났고, 인면수심이기에 윗자리를 차지한 정부의 고관.
지구와 이세계의 교전이 벌어지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알 바 없고 아직까지도 고루한 과거의 가치에 묶여서 역겨운 종족 우월 주의론을 펼치거나 국가 우월 주의론을 펼치는 지배자들.
자신의 향락을 위해서 무슨 짓이라도 하는 독재자들과 사람들 사이에 숨어들어서 마약을 팔고, 범죄를 저지르는 범죄조직들. 법을 무시하는 무뢰배들.
그런 이들을 모조리 밖으로 꺼내기 위한 대전략이다.
시라노는 인명 손상과 재산손실을 최소화화면서 약한 척을 했을 뿐이다. 중국의 배신 따위는 애초부터 예상했었고, 유도하기도 했다.
주혁진은 중국을 너무 좋아해서 중국이 30개쯤 있기를 바라는 사람이었는데, 시라노는 그 정도가 심하면 더 심했지 덜하지 않았다.
그는 이번 일을 빌미로 중국을 완전히 없애버릴 작정을 하고 상황을 만들고 있었다.
그 전략은 대성공했고, 제거하기로 한 이들이 반 ISAC라는 이름으로 집결하고 있었다.
그들이 모이는 걸 기다려서 쓰레기를 고이 쓸어 담으면 이번 해프닝은 끝난다. ISAC가 숨겨둔 저력을 생각하면 전쟁이라고 불릴 정도도 아니었다.
“월드 레벨이라는 뒷감당을 생각하지 않으면 이 상황까지도 안 왔어.”
볼코프라는 이레귤러를 제외한다면야 고작 그 정도의 일이다. 세계대전이라고 불릴 정도의 일은 결코 아니지.
“문제는 우리 천재 씨가 볼코프를 이길 정도로 성장했느냐, 라는 건데…….”
볼코프와 이시형의 전투력 차이는 절망적이다. 일전에 교전했을 때는 10분을 채 넘기지 못했고 유효타조차 거의 주지 못했다. 볼코프는 웨어 울프였는데, 웨어 울프라는 말은 재생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어지간한 부상은 1초가 되지 않는 사이에 치유해 버린다. 그렇다고 느리지도 약하지도 않다. 누구보다 빠르면서 누구보다 강한데, 재생력까지 있다.
전설처럼 은에 약하지도 않으니 당해낼 도리가 없었다.
“고작 일주일로 되려나 모르겠네.”
승우의 솜씨를 못 믿는 것은 아니지만 역시 일주일은 너무 짧다.
오늘로서 6일 경과.
작전 결행은 이제 하루가 남았다.
시라노는 손톱을 뜯으며 이시형으로부터의 보고를 기다렸다.
* * *
이시형은 눈을 감고 싸움을 복기했다.
지금까지의 싸움이 떠올랐다. 무참하기 짝이 없는 패배다.
그러나 갈수록 이시형은 강해졌다.
첫날에는 건들지도 못했지만 다음 날에는 한 번의 유효타를 칠 수 있었다.
3일째에는 드디어 어떠한 방향에서도 놈의 공격을 막을 수 있었고, 4일째에는 공격과 방어의 흐름이 그럴싸해졌었다. 어제는 처음으로 20분이나 싸움을 이어갔다.
그리고 6일째인 오늘.
이시형은 카젤을 이길 작정이었다.
슬슬 각이 보였다.
검이 보이고 대처법도 생각할 수 있다.
‘며칠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이야. 엄청나게 성장했지.’
생각의 벽을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상식과 생각의 벽을 뛰어넘은 존재를 눈으로 보고, 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확인하니 생각의 지평이 넓어졌다.
인간은 원숭이처럼 움직일 수 없지만 반대로 원숭이도 인간처럼 움직일 수 없다.
인간은 인간에게 맞는 올바른 검의 방식이 있는 것이며, 그 검의 방식은 슬쩍슬쩍 유승우가 보여줬다.
검이 아니라 요리를 위한 중화식도로 말이다.
그가 요리하는 걸 보고 있으면 영감이 샘솟는다. 검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무엇이 올바른 검의 사용법인지가 바로 뇌에 떠올랐다. 그가 왜 검술을 가르칠 필요가 없다고 하는지도 이해했다.
완벽에 가까운 견본이 있다면 배우기 싫어도 배워진다. 보기만 해도 이렇게 몸과 생각에 영향을 주는데 작정하고 그가 가르치면 어떻게 되겠는가.
재능이 부족한 이들은 그가 가르쳐 주는 것만 딱 하고 거기서 끝이다.
조금 더 재능이 있다면 가르쳐 준 걸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고 거기서 조금 더 나아갈 수 있겠지.
하지만 상당한 재능, 이를테면 이시형 본인 정도의 재능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모든 면에서 놈을 닮고 싶어질 거야.’
검을 쥐는 자세, 걷는 법과 휘두르는 법, 마나를 쓰는 법부터 몸을 다루는 모든 것.
그 모든 것에 완벽한 교본이 저기에 있다. 할 수 있는 만큼 따라하려고 하고, 재능이 있기에 어지간한 것은 다 따라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다 보면 자아를 잃고 놈의 복제품이 되기 위해서 인생을 사는 몸이 되겠지.
승우도 그걸 알고 있기에 가르치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이시형은 사념을 끊어냈다.
‘어쨌든 오늘은 이긴다.’
이시형은 각오를 다지며 눈을 떴다.
카젤과의 싸움을 생각하니 달아올랐지만 그 전에 피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점심 먹어라.”
“끄으으으.”
“손 씻고 와.”
“알겠습니다아…….”
매일 아침, 점심, 저녁, 야식 시간마다 찾아오는 악몽 같은 괴식!
단 하루도 멀쩡한 메뉴가 나온 적이 없었다.
이시형은 과거에 괴식을 먹어본 적이 있었다. 티비에 나오는 신호등 치킨이나 민트초코수플레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러한 괴식들은 대체로 기괴한 맛을 가지고 있고 해서는 안 되는 조합으로 만든 음식인 경우가 많았다.
재미 삼아서 흥미 삼아서 한 번쯤 먹고 웃으면서 ‘맛없다!’라고 이야기하는 게 목적인 요리다.
그런데 승우의 괴식은 달랐다.
실용적이다. 효과가 좋다.
너무 효과가 좋아서 짜증이 난다.
안 먹으려고 버틸 수가 없기 때문이다.
‘돈 주고도 못 먹는다는 말이 뭔 말인가 했어. 젠장.’
마법으로도 연금술로도 이러한 효과를 가진 것은 본 적도 없었다.
그의 음식으로 이시형은 몸 안에 있었던 사소한 문제를 모두 고쳤다.
그는 아주 예전에 레벨 100을 초월하기 위한 프로젝트의 실험체였던 적이 있었는데, 실험은 성공했지만 그 때문에 몸 안에는 비정상적으로 만들어진 인조 마나 코어가 많았다.
그의 레벨은 정확하게 130.
격을 세는 신법이 아니라 마나코어 셈법이기에 실질적으로는 레벨 100도 되지 못한 것이지만 어쨌든 몸 안에는 32개의 인조코어가 있었고, 그것들은 이시형의 재능과 몸을 축내고 있었다.
[그런 인조 코어가 몸에 있어봐야 좋을 거 없어. 출력은 오르겠지만 조정이 힘들어져서 감각만 버려. 효율도 나쁘고 말이야. 없애는 게 낫겠네.]승우는 그걸 던전 클리너의 요리로 제일 먼저 고쳤다. 인조코어는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그러곤 브레이크가 없는 것처럼 이시형에게 계속해서 괴식을 만들어 먹였는데, 어느 날은 너무 달아서 먹는 순간 이빨이 빠질 거 같은 롤케이크를 먹여서 이빨을 왕창 뽑아냈고, 다음 날은 노인을 위한 요양식 같은 시금치죽을 주더니만, 그걸 먹었더니 악어처럼 뽑힌 이빨이 바로 자라났다.
뿌득뿌득 소리를 내면서 잇몸으로부터 바로 치솟아 오르는 치아의 느낌이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이시형은 괴식을 먹을 때마다 인간이 아닌 무엇인가로 육신이 바뀌는 느낌까지 들었다.
그제는 연골이 바뀌었고, 어제는 혈관의 굵기가 변했다.
오늘은 대체 무엇이 변할까 이제는 두렵기도 했다. 두려우니 자연히 말투도 공손해졌다.
이시형의 투덜거림을 듣고 승우가 피식 웃었다.
“남들은 이런 관리를 못 받아서 안달인데 뭐가 불만이야.”
“내가, 내가 아니게 되는 기분이 들어서 그렇다고요.”
“테세우스의 배처럼?”
“아, 그래, 그런 거처럼, 하나씩 몸이 바뀌는 느낌이 불쾌하다고요.”
불쾌하지만 효과는 인정할 만했다.
과연 주혁진이 인정한 새 시대의 주력 사업다웠다. 이시형은 오늘의 메뉴를 확인하고 다시 인상을 구겼다.
“이건 뭡니까?”
“비빔밥인데.”
“이게 비빔밥?”
오늘의 점심은 화채 그릇에 담겨진 밥이었다. 밥 주변에는 알록달록하게 아름다운 색상의 재료들이 놓여 있었는데, 그것들은 하나같이 상큼하면서 달콤한 냄새를 풍겼다.
모르긴 몰라도 이세계의 과일이리라.
요컨대 밥과 과일.
거기에 고추장 한 스푼이 곁들여진 요리다. 이치적으로 보자면 비빔밥이 맞긴 했지만 생긴 것은 비빔밥이 아니었다. 차라리 과일빙수에 쌀을 넣은 것에 가깝다. 맛도 그렇겠지.
승우는 천천히 참기름을 떨궜다.
“한국인이면서 비빔밥 처음 봐?”
“과일이 들어가면 비빔밥이라고 안 하지… 요.”
“우끼? 우끼우끼!”
카젤이 즐겁게 스푼을 들고 소리쳤다. 6일이나 같이 다녔더니 뭔 말을 하는지 알 수 있다. 놈이 말하고 있었다.
[마 함 무봐라. 죽인다 아이가.]“…알았어. 먹자.”
이걸 먹으면 이번엔 대체 뭐가 바뀌는 걸까. 이시형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억누르며 수저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