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322)
괴식식당-322화(322/613)
322화. 러쉬 (2)
공간을 가르며 균열을 야기하는 볼코프의 손톱을 간발의 차이로 피하며 동시에 검을 휘두른다. 조금이라도 오차가 생기면 충격파에 휩쓸려서 목이 날아간다.
초 단위로 수십 번씩 목숨의 위기가 찾아왔다. 이시형은 쇄도하는 볼코프의 공격을 억지로 흘리고, 넘겼다.
쾅-!
흘려 넘긴 공격이 땅에 닿으면 지진이 되고, 하늘에 닿으면 구름이 흩어진다.
‘사람이라는 게 이렇게까지 강해질 수 있는 건가?’
파괴의 규모나 공격 속도가 상상 이상이다. 과거에 출현했던 최고의 강적, 마룡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마치 폭풍 같군. 마룡이 귀여워 보일 정도야.’
이쯤 되면 생명체가 아니라 자연재해의 일부로 보인다. 예전에 교전했을 때 볼코프가 얼마나 장난삼아서 놀아준 것인지 체감이 된다.
그때 마음을 먹었다면 이시형의 몸과 머리는 1초면 분리되고도 남았다. 그 마음을 아는지 볼코프는 짐승의 아가리로 유창하게 말했다.
“그때 죽여둘 걸 그랬군.”
“그러지 그랬냐.”
“헌협 놈들이랑 정면으로 싸울 때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참았지.”
“왜, 후회되나?”
“조금 후회되는걸.”
“그런 것치고 즐거운 표정이군.”
“그야 즐겁지, 즐겁고말고.”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이시형은 이제 볼코프도 쉽게 목숨을 가져갈 수 없는 강자로서 성장했다. 그것이 못내 아쉬우면서도 즐겁다.
즐거울 수밖에 없지.
치열하게 싸울 수 있는, 자신의 힘을 모두 발휘하는 강자와의 싸움은 전사로서 항상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차피 이기는 것은 자신이다. 간발의 차이로 지는 싸움은 최악이지만 간발의 차이로 이기는 싸움은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법이다.
“칫, 여섯 개째.”
민은 혀를 차며 마력회로 과열로 녹아버린 총을 던졌다. 준비한 총은 모두 여덟 자루였는데,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 게 오산이었다.
리비의 마력 버프로 인해서 증가한 마력을 총이 견디질 못한다. 덕분에 한 발, 한 발이 폭발적인 위력을 낼 수 있었지만 그것은 총의 내지르는 비명 같은 것이라 오래 갈 수가 없었다.
한 발이면 탱크를 터트리고 빌딩을 무너트리는 마력탄이거늘, 볼코프에게는 견제기조차도 되지 못한다.
직격으로 미간을 맞추어도 놈은 0.1초가량 멈칫하는 게 전부.
유효타는 아니다.
‘하지만 안 쏠 수도 없는 노릇이지.’
그 0.1초의 저지력으로 목숨이 오간다.
한 발의 오발이 생기면 이시형이나 민의 목이 날아갈지도 모른다.
일발입혼(一發入魂).
한 발 한 발에 혼을 불어넣는 집중력으로 쏴야만 0.1초의 시간을 벌 수가 있다.
민은 평소에 괴식을 열심히 먹어둬서 갈고 닦은 집중력과 체력에 감사했고, 그것은 이시형도 마찬가지였다.
갈아치운 심장과 혈관, 뼈가 아니었다면 죽어도 열 번은 죽었고, 이 전선은 무너졌다. 카젤과의 단련도 도움이 되었다. 그녀의 속공과 강검에 익숙하지 않았다면 볼코프의 숨도 못 쉬는 맹공에 폐가 짓눌려 터졌겠지.
“에고고고.”
이시형과 민은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견딜 만했다. 하지만 리비는 아니었다.
리비는 괴식을 그리 즐겨 먹지도 않았고, 승우의 특별 관리를 받은 적도 없다. 오로지 타고난 천성의 재능과 경험만으로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천재적인 감각과 재능, 오성과 센스는 충만하나 체력은 단련과 노력의 영역이다. 그래도 리비의 체력은 나쁜 편은 아니었지만 민과 이시형에 비할 바는 아니었고, 볼코프와 비교하면 태양과 반딧불 이상의 격차가 있었다.
“주, 죽겠는데요.”
산소가 부족하고 호흡이 부족하며 여유가 부족하고, 혈액이 바짝바짝 마르고 마력회로가 달아올라서 문신처럼 피부를 통해 보였다.
한계는 예전에 넘었고, 지금은 오기와 의지로 따라간다. 자연히 버프의 유지는 한계를 보이고, 집중력은 흩어진다.
“네 버프가 끊어지면 다 죽는다!”
“알아요! 아는데 어쩔 수 없잖아요!”
한계란, 말 그대로 한계다. 의지나 정신력으로 여간해서는 넘을 수 없기에 한계라 한다.
리비의 체력은 이미 한계에 가까웠다.
“제이슨 씨, 교대해 줘요. 꿹.”
리비의 눈이 까뒤집어졌다.
급격한 마력 소모와 체력 소모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탈진해 버렸다. 교전 개시 후부터 고작 40분, 버퍼가 뻗어버렸다.
“망할! 남은 시간은?!”
“나는 8분.”
이시형과 민은 순간적으로 남은 버프의 시간을 확인했다. 8분, 볼코프의 숨통을 끊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다.
애초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초 단위로 버프를 조율하고 볼코프를 방해한 리비의 공이 컸다.
그가 없었으면 교전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니, 가장 부담되고 힘든 일을 한 것이라 먼저 탈진한 것이겠지.
“8분 안에 어떻게든 끝내야…….”
“할 수 있으면 해봐.”
볼코프가 혀를 내밀며 비웃었다.
예상보다도, 상정보다도 적은 강하다.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 * *
모스크바의 서쪽 첨탑.
꼭대기에 앉아서 구경을 하던 크라이가 몸을 들썩거렸다.
“아-! 근질근질하구만. 싸우고 싶다.”
“확실히 우리가 끼어들 만하긴 하다.”
“그러니까 말이야. 그리고 지구인도 제법이네. 저런 괴물을 상대로 잘도 버티고 있어. 용하네.”
무심코 승우조차 감탄을 할 만큼 볼코프의 수준은 높았다. 저게 필멸자라는 것 자체가 납득이 되지 않는다. 크라이가 가늠을 해보고는 턱을 긁었다.
“저 녀석 아레스쯤은 그냥 때려죽이겠는데? 신명이 없는 인간이 저렇게까지 강해질 수 있나?”
아레스는 신명이 하나인 신 중에서는 단연코 최정상급의 투신이다. 그런데 그런 녀석을 신명도 없는 자가, 상대할 만한 것뿐만 아니라 일방적으로 죽일 정도로 볼코프가 강하다.
그러니까 지금 이시형과 민, 리비와 다른 퍼스트 오더가 전장을 유지하는 일 자체가 기적적인 일인 것이다.
“수상한데.”
크라이는 의문을 표했고 승우도 마찬가지의 기분이었다.
“벽을 넘은 것 같지는 않아. 초월자 특유의 아우라가 없어. 신력을 쓰는 낌새도 없고, 권능을 사용하지도, 신명 무구를 꺼내지도 않아.”
“하지만 그 힘은 확실히 레벨 200 이상이야. 어떻게 된 걸까?”
“짐작이 안 가는 건 아니지만…….”
승우가 말을 흐렸다.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없지는 않았다.
“아마도 내 예상대로라면, 저 녀석은 어떤 신의 화신 같아.”
신명이 있는 신은 다른 생명체를 자신의 대리자로 임명할 수 있다.
승우의 화신이 백강혁이듯이, 다른 신들도 화신, 자신의 대리자를 둔다.
“나처럼 화신에게 전혀 힘을 안 주는 신이 있는 반면에, 자신의 힘을 있는 대로 퍼부어주는 경우도 있다니까.”
“그렇다면 적어도 두 개의 신명을 가진 신이 힘을 주고 있는 거군.”
“그렇지. 그렇다면 어떻게 할까.”
방법이 없지는 않다.
크라이가 주먹을 쥐었다.
“내가 갈까?”
제일 쉬운 방법은 그냥 크라이나 승우가 가서 볼코프를 소멸시키는 일이다.
말이 두 개의 신명을 가진 신의 화신이지, 크라이는 화신이 아니라 신 중에서도 최정상급인 신이므로 싸운다면 단숨에 소멸시킬 수 있다.
승우에 이르러선 급이 다른 일이라 몇 초 걸리지도 않는 간단한 일이다.
하지만 승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나 내가 끼면 월드 레벨의 폭등은 피할 수가 없어져. 단숨에 20레벨까지는 오를 거야. 뒷감당이 안 돼. 한 번 지켜주기 시작하면 계속 우리가 지켜줘야 한다고.”
“그럼 어떻게 할까? 아, 그래. 네게도 화신이 있었지.”
“…있긴 하지.”
“네가 걔한테 힘을 몰아줘서 대리전을 하는 게 어떨까?”
승우는 입을 다물었다.
크라이가 제시한 방법은 그야말로 정론 중의 정론이었다. 대리인, 화신이란 본래 그렇게 사용하라고 있는 것이다.
힘을 부여받아서 휘두르고, 대리전쟁을 하고 우열을 확인한다. 신들의 전쟁이란 본신이 직접 싸우는 게 아니라 화신을 통해서 이뤄진다.
그러니까 현명하다면 현명한 해결 방법이지만, 승우는 이번에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싫어.”
“왜?”
“야, 쟤가 하는 거나 봐라.”
승우가 짜증을 내며 부서진 방공호를 가리켰다. 거기에는 십만 명이 훌쩍 넘는 사람을 모아두고 포교 중인 백강혁이 있었다. 놈은 이런 일을 처음해 보는 것일 터인데, 매우 능숙하고 능란하였으며 사람의 마음을 쉽게 쥐락펴락하여 포교를 이어가고 있었다. 승우는 몰랐지만 백강혁은 테라에서의 포교로 큰 깨달음을 얻어, 포교를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판단. 매일 저녁마다 인터넷 방송으로 심리학과 회화, 포교를 배우고 있었다.
그 노력이 빛을 보여서 사람들은 떼를 지어서 방공호로 몰려왔고, 몰려오는 만큼 괴식의 신을 모시는 신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미래의 러시아의 국교를 보고 싶다면 저 방공호를 보라, 저것이 미래의 러시아 국교다.
[믿쑵니까!] [믿쑵니다!] [신의 숨결이 느껴지십니까!] [느껴집니다!]“느껴지기는 뭐가 느껴져!”
승우가 인상을 팍 쓰자, 광란의 포교 현장을 보던 크라이가 이상하다는 눈으로 승우를 돌아봤다.
“저게 왜?”
“저게 왜라고?”
“아주 예쁘고, 기특한 화신이지 않은가. 나는 오히려 네가 화신을 정말 잘 뽑아서 부럽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
자고로 신력이란 신자들이 보내오는 믿음의 힘, 믿음의 화폐다.
신자의 숫자는 곧 출력이고, 믿음의 강함은 곧 화력이다.
많은 신자를 모으고 깊은 신앙의 체계를 갖추게 하는 일은 화신이 해야 하는 일 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일이며, 대리전쟁과 더불어서 화신의 유능함을 뽐내는 무대이다.
“아주 유능해. 착실하고 신실하고. 음. 특SSS급 화신이야. 네가 안목이 좋긴 좋구나, 폐급인 줄 알았는데 저런 유능함을 감추고 있었을 줄이야.”
백강혁은 크라이의 눈이 아니라, 다른 신들의 눈으로 보아도 객관적으로 매우 뛰어난 화신이었다.
아무런 힘도, 지원도 받지 못하는데 저렇게 포교활동을 한다.
그 숫자는 십만 명이었고 전쟁 통 속에 하는 포교라서 그 믿음의 힘은 강렬했다.
“너 지금도 엄청 신력 벌고 있잖아.”
“…….”
부정할 수 없었다.
전쟁이란 극단적인 상황에서 생기는 신앙은 그 힘이 남다르다. 남다르기에 신들은 주기적으로 전쟁을 일으켜서 강제로 사람들에게서 신앙을 뽑아내고, 짜낸다. 괜히 테라의 신들이 자기들끼리 고의로 싸움을 만들고, 대리전쟁을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크라이가 승우에게 적립되는 신력을 보며 감탄했다.
“무시무시하게 신력이 들어오는걸.”
지금 백강혁이 모스크바의 시민들에게 짜내는 신앙은 어마어마한 것이고, 지구인들의 신앙은 지금껏 신력을 요구하는 신이 없어서 누적된 상태였다.
그것이 백강혁이 방아쇠가 되어 승우를 향해서 일직선으로 날아왔고, 전투 개시 단 40분 만에 타르젤리아 축제 이상의 신력이 모였다.
이미 지금까지 모아둔 신력의 두 배가 훌쩍 넘었다.
“저런 유능한 화신을 두고 있다니, 진심으로 부럽군.”
“그래그래. 그거라고, 그거!”
“뭐가?”
“지금 만약 내가 힘을 실어서 저 녀석으로 하여금 볼코프라는 녀석을 처치하게 해봐라. 그럼 어떻게 되겠냐?”
“어떻게 되긴 지구의 영웅이 되겠지.”
“그리고?”
“너의 신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겠지. 좋겠구나. 부럽네.”
“나는 그게 싫단 말이다!”
그렇게 되면 지구의 신이 되어버린다.
신으로서 군림할 생각은 추호도 없기에 그 상황만은 피하고 싶다.
승우는 어디까지나 밥집 아저씨, 이상한 음식을 파는 아저씨, 맛없는 거 좋아하는 아저씨로 남을 작정이었다.
이렇게 반강제적으로 신이 되는 일은 사절이다.
승우의 그 말에 크라이가 배를 긁었다.
“배불러 터진 소리 하고 자빠졌네.”
“…….”
“남들은 신이 못 돼서 지랄인데 넌 되기 싫어서 지랄이냐.”
“아, 남이사. 내가 싫으면 싫은 거지 말이 많아.”
“쯧. 그럼 화신끼리 대리전쟁하는 것도 싫다 하면 뭘 어쩌게?”
“뭘 어쩌기는.”
마지막 방법이 하나 있다.
승우가 검을 쥐자, 크라이가 안색을 굳혔다.
“너, 설마…….”
“설마고 뭐고, 이렇게 개판을 쳐놨는데 내가 그냥 보내줄 거 같아? 남의 행성에서 이런 짓거리를 했으면 자기도 칼 맞을 각오를 해야지.”
그가 내린 결론은 아주 심플하다.
화신인 볼코프에게 힘을 내려주는 신이 있다면, 신을 팬다.
신은 신끼리, 인간은 인간끼리 싸워야 급이 맞는 법.
“일단 저 신을 찾아야겠다.”
볼코프에게 힘을 주는 신의 배때지를 쑤시면, 힘을 못 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