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334)
괴식식당-334화(334/613)
334화. 혁명 (2)
지금으로부터 삼십여 년 전.
당시 승우의 파티는 크라이, 테오도르, 레나토를 영입하고 모험가 길드의 승인을 받아서 정식 모험가 파티로 움직이고 있었다.
실력 있는 마법검사, 전술 지휘가 가능한 정령궁사, 자가 치료가 가능한 기공투사, 신에게 사랑받는 신관의 조합은 사각이 없다.
어떠한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고, 생환할 수 있다. 그들은 레벨을 뛰어넘는 강함이 있었고, 그 바탕에는 끈끈한 신뢰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승급은 못 했다.
임무 성공률이 90%를 넘기고, 오만가지 궂은일은 다 했는데 승급하지 못한 이유는 단순하다.
신이 관련된 임무에 실패했다.
정확하게 말해서는 성공했는데, 보수를 주기 싫어서 포세이돈이 임무에 실패했다고 선언해 버렸다.
모험가 길드가 무슨 힘이 있어서 신이 하는 일에 저항하겠는가. 모험가 길드는 그 임무를 실패라고 고지했고, 승우 파티의 임무 성공률은 또 떨어졌다.
그리고 그 임무는 은(銀)급 모험가가 되기 위한 승급 임무기도 했다.
“두 달을 노숙과 야영을 반복하며 버텨왔는데, 돌아오는 건 임무 실패와 승급 실패. 하. 하하하하하. 하하하하.”
나지막하게 웃은 크라이는 술집의 술을 다 해치워 버릴 생각인지 짜증을 담아서 맥주를 위장에 때려 박았다.
커다란 나무 술통을 비우고는 으르릉거리는 모습이 상당히 무서워서, 그의 근처로는 누구도 다가가지 않았다.
평소라면 화내지 말라고 좋게 말할 승우나 레나토도 심기 불편하기는 마찬가지, 그들도 묵묵히 술을 씹어 삼켰다.
다들 기분이 좋지 않았다만, 역시 가장 열받은 것은 테오도르였다. 금발이지만 스스로를 빨갱이라고 부르는 이 엘프 궁수는 주먹을 높이 들며 외쳤다.
“역시 혁명뿐이야. 이 뭣 같은 세계는 불 싸질러 버려야 해.”
“지금만은 나도 저 빨갱이의 의견에 동의한다. 당하면 세 배로 돌려줘야 하는 법이지.”
크라이가 대꾸하며 다른 술통을 잡아들었고, 레나토는 힘없이 어깨를 늘어트렸다. 신앙심 그 자체인 그에게도 이 상황은 매우 버겁다.
“여신 가이아시여, 어째서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어째서기는, 우리는 찍힌 몸이니까 그렇지. 하여간 두고 보자고, 언제까지 올림포스 산에서 잘난 척할 수 있을 줄 알아? 강해지면 내가 놈들을 끌어내서 잘근잘근 씹어 먹을 거다. 어떻게 생각해, 리더.”
어떻게 생각하냐고?
승우의 이마에 굵은 혈관이 튀어나왔다.
“당연히 되갚아줘야지. 세 배? 웃기지 마. 백배로 갚아주지 않으면 분이 안 풀려. 내가 저 망할 올림포스 산은 반드시 반으로 쪼개 버린다.”
“그래야 우리 리더지. 그때는 반드시 나를 부르도록.”
“당연하지. 건배!”
“건배!”
둘의 잔이 교차했다. 요란한 건배였다.
다시 한 잔을 들이킨 승우가 입가를 닦았다.
“그나저나 테오 너 이 자식, 말끝마다 혁명 혁명 하는데 네가 하는 건 혁명이 아니라 그냥 반란이라고. 혁명은 다른 거란 말이다.”
“오호라. 오랜만에 프로페서 유의 혁명론인가. 기쁘게 경청하지.”
“좋아, 그럼 강의를 시작하지. 지금의 테라의 상황이 어떻냐면 철저한 계급주의야. 인간은 노예와 평민, 귀족과 왕족으로 계급이 나뉘어 존재하는데 이들은 죽을 때까지 이 고리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 테라의 사회는 사람에게 계급에 의한 억압을 넣어서 모두의 자유를 해치고 있지.”
탁, 하고 탁자에 빈 잔을 내려놓았다.
“자, 우리들의 상황은 어떻지? 우리는 이세계에서 온 존재이니 노예 계급이야. 자신의 무력으로 자신의 일신의 자유만을 간신히 허락받은, 존재를 용서받은 최하계급이지. 레나토 빼고는 다들 노예 경험이 있으니 알지?”
크라이와 테오가 인상을 썼다.
그때를 생각하니 다시 혈압이 오른다.
승우는 검투 노예였다.
테오는 엘프 노예로서 팔려가던 중에 기회를 노려 노예상의 머리를 도끼로 내려치고 도망친 경력이 있었다.
크라이는 왕국에서 쓰는 몹 몰이용 오크 노예였다. 먹이를 등에 짊어지고, 몬스터를 유인하는 최악의 노예다. 그는 몰래 감시자를 죽이고 도주했었다.
“용서할 수 없는 일이야! 불타는 혁명을! 피같이 붉은 혁명을!”
“아니지, 아니야. 자유를 갈망하며 자신을 해방하는 것은 혁명이 아니야. 그것은 혁명이 아니라 반역이다.”
“혁명과 반역은 다른 것인가?”
“반역은 자신을 괴롭히는 억압에 대한 저항이다. 자신의 자유를 되찾기 위한 발악이지. 하지만 혁명은 자유의 확립이다. 다시는 자신을 억압하고 괴롭히려는, 자유를 방해하는 요소가 나오지 않도록 체제와 환경을 바꾸는 것이 혁명이야. 이 둘은 근본적으로 다르지. 이해했어?”
테오도르가 턱을 괴고 진중하게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반역이란 지금의 테라의 신들에게 우리를 괴롭히지 말라며 활을 쏘고, 도전하는 일.”
“그렇지. 그럼 혁명은?”
“다시는 테라의 신 같은 놈들이 나오지 못하게, 싹 쓸어버리고 신이 없어도 되는, 계급이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
“잘 이해했군.”
승우가 박수를 쳤다. 테오는 코를 쓱 훔치며 으쓱거렸고, 레나토와 크라이는 골이 아프다는 듯 눈을 찌푸렸다. 그런 둘을 두고 승우와 테오는 대화를 이어갔다.
“하지만 조심해야 해. 계급이 없는 사회라고 해서 자유로운 세계는 아니야. 대부분의 혁명은 성공한다 치더라도 그게 올바른 의미의 성공이 아니야. 그저 계급의 이동에 불과하지. 아래에 있던 자가 위로 갔을 뿐이지 계급은 그대로 유지돼.”
“윽, 그게 무슨 혁명인가! 망할 놈의 계급주의!”
“어쩔 수 없지. 계급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에서도 생겨.”
“무조건 생기나?”
“가장 쉬운 예는 먹이사슬이 있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이것도 따져보면 힘에 의한 계급사회잖아.”
“아.”
“그러니까 무작정 혁명이라고 불 싸지르고, 계급주의자만 쪼개면 능사가 아니야. 단순한 권력의 이동이 되지 않게 제대로 된 시민 의식이 필요하고, 올바르게 돌아가는 사회와 문명, 사람과 사람 사이의 존중과 배려를 새겨야 하는데 이건 매우 어려운 일이지.”
“오호, 오호. 그렇군. 내가 그걸 할 수 있을 거 같지는 않아.”
“그런 거야.”
“그럼 명확한 해결법은 없는 건가?”
“어딘가에는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몰라. 애초에 나는 윤리 교사라서 이런 것은 전공도 아니야. 지금 이야기하는 혁명론은 결국 겉핥기 수준에 불과하지. 진짜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를 거야.”
“진짜 전문가들은 명확한 해결법이 있을까?”
승우가 잠시 생각을 하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진짜 전문가라고 해도 명확한 답은 없을 거다. 일단 내가 살던 세계에서는 확실하게 매듭지어지지 않았어. 계급도 없고, 우열도 없으며 개개인이 모두 자유로운 세계는 상상조차도 못 하겠네.”
현대의 수많은 사람이 대화하고 논의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다. 승우는 스스로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천재도 아니라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검의 천재임은 분명하지만 사회학, 정치학 같은 학문의 천재는 아닌 탓이다.
“이런,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떻게 하면 좋기는. 간단하지.”
테오가 귀를 쫑긋 세웠다. 그걸 보며 승우가 씩 웃었다.
“최악의 세상만 태워버리면 되잖아.”
“……!”
“여기는 진짜 글러먹었다. 가만히 둬서는 죽도 밥도 안 되겠다. 살려두기에는 쌀이 아깝다, 싶은 세상부터 공격하는 거야.”
세상은 넓다. 하지만 차원은 더 넓다. 모든 차원으로 시선을 돌리면 테라는 차라리 천국이었다.
생지옥을 방불케 하는 차원도 있었으며 멀쩡한 차원과 그런 차원을 비교해 보면 막장인 차원이 수백 배는 많았다.
“아, 알았다!”
벼락에 맞은 듯. 테오가 몸을 떨었다.
자신이 얼마나 시야가 좁았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혁명을 추종한다고 말을 하지만 그가 보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살던 세계에 불과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지옥 같은 환경에서 고통 받고 있었다. 테오보다도 훨씬 더 괴롭고, 억울하게 자유를 억압당한 채 고통에 빠져 있겠지.
“나는, 나의 사명을 알았다! 친구여! 내가 왜 태어났는지. 내가 왜 존재하는지! 그런 것이다. 그런 것이었다! 이 얼마나 로맨틱한 사명인가. 나는, 나는… 나는!”
그의 눈이 활활 타올랐다.
“나는 약하고 핍박받는 약자를 위해서 태어난 것이었다. 나는 온 차원에 혁명의 불꽃을 배달하는 기수가 될 것이니-! 으하하하-!”
“그래그래. 술이나 더 시켜라.”
* * *
승우가 시선을 피하며 설명을 끝냈다.
“…라는 일이 있었지.”
“세상에…….”
아테나가 경악한 눈으로 그를 봤다.
승우는 계속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돌렸는데, 귓불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아테나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그렇다면 당신이 혁명과 반역의 신에게 혁명을 가르쳐 준, 혁명의 선생님이었어요?! 소문의 불꽃의 혁명가 프로세서 유가 당신이에요?!”
“부정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매우 슬프네. 진짜 슬프다.”
“…….”
“변명을 하자면 그때는 나도 젊었어. 아니, 정말로 젊었다고…….”
누구나 젊은 시절에는 흑역사 하나쯤은 가지고 있지 않은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불을 차서 천장에 닿게 할 수 있는 씁쓸하면서도 부끄러운 일이 없는 사람이 더 드물다.
승우는 당시에는 매우 평범한 교사 출신의 청년이었고, 갑자기 이세계로 떨어진지라 정신적으로 몰려 있었다.
“그 상황에서 테라의 신들은 괴롭히지, 일은 안 풀리지, 승급은 매번 실패하지, 실수로 들린 엘프 공방에서 검이 달라붙은 덕에 엘프 장인들에게 수배범 취급받지, 밥은 더럽게 맛없지. 내 정신이 제정신일 리가 없잖아.”
“그 점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도 테라의 신 중 하나. 그 책임을 피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래서 어떠한 문제가 있어도 도와드릴 작정이었지만, 이건 이야기가 다르잖습니까. 제가 도와줄 문제가 아니었군요.”
아테나의 신명은 지혜.
넓고 포괄적인 신명은 그 효과가 미미하다는 신들의 통념대로 그녀의 신명은 썩 쓸 만한 신명이 아니었다. 전지(全知)하지도 않았고, 모든 것을 꿰뚫는 삼라만상의 지혜를 부여해 주지도 않았다. 그저 불현듯, 정보의 파편을 모으면 정답에 가까운 예지가 떠오르는 정도였다.
승우의 고백을 통해 정보를 얻자, 지혜의 예지가 작동했다. 그녀는 순식간에 승우가 말한 큰 문제와 혁명과 반역의 신의 관계를 예측했다.
“그는 당신을 죽이기 위해서 의뢰를 받은 게 아니군요. 의뢰는 그저 착수금을 챙기는 정도와 당신을 적대하는 신의 명단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네요.”
“아마, 그런 이유일 거야.”
“그리고 그의 진정한 목적은…….”
아테나가 식은땀을 흘리며 승우를 봤다.
“혁명의 스승과 같이, 혁명을 하기 위해서, 권유를 위해서였군요.”
“으, 응. 아마도. 그럴 거라고 생각해.”
“혹시 지금도 예전과 같은 생각이신가요.”
“내가 아직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면 테라가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 그렇겠군요.”
지금의 그는 원한다면 테라를 십 분도 되지 않는 시간에 소멸시켜 버릴 수 있었다. 모든 신이 모여 있어도, 옛신들을 부활시켜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예지능력을 쓸 필요도 없다.
“나이가 들고, 많은 경험을 하고, 신이 되어 보니까 알겠더라고. 고래가 움직이면 새우의 등이 터지잖아? 고래가 원하지 않아도 그렇게 되는데, 내가 움직이면 어떻게 되겠어. 누군가는 다치겠지. 그러니까 나름대로 조심하고 있는 편이야.”
“나름대로 조심하고 있는 편이라니, 상당히 애매한 개념이군요.”
“별 수 있냐. 그렇다고 내가 죄지은 것도 아닌데 눈치 보고 살 필요는 없잖아. 그리고 내 본성이 꽤나 테오와 닮아 있어서 말이지. 누군가가 누르면 튀어 오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네.”
승우는 그렇게 말하면서 곤란하다는 듯 한숨을 내뱉었다. 그의 시선 한구석에는 산더미처럼 쌓인 메시지가 있었다.
[리더, 답장해라, 오버.] [대장, 씹는 거야?] [야, 무시하냐?]물론 메시지를 보낸 것은 익히 잘 알고 있는 빨갱이 엘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