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34)
괴식식당-34화(34/613)
034화. 낚시터 (1)
퍼스트 오더 No.100, 백강혁.
그가 개인 사유로 휴가를 신청한 며칠 동안 많은 소문이 생겼다.
백강혁이 9명의 여자 친구와 문어발 연애를 하다가 걸렸다.
카지노에서 사채 쓴 게 발각돼서 도주 중이다.
성검 엑스빠루를 뽑고 용사가 되어 모험을 떠났다.
로또 당첨금을 나누기 싫어서 도주했다.
슬픈 옛 전쟁의 PTSD가 터져서 집안에서 술만 마신다.
즐겨하던 게임에서 아이템을 떨궈서 우울증에 걸렸다.
많은… 소문.
몹시 많은 소문이 말이다.
“네놈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겠다. 개자식들아.”
“자업자득이지.”
“야, 인마! 너는 팀장이면서 애들 입단속도 안 하고 뭐 해?!”
“흠, 구태여 내가 해야 하는 일일까? 네 체면보다는 팀원의 사기가 더 중요한 일이라고 보는데. 팀장의 입장으로써는 말이지.”
팀장의 입장으로써는?
“그럼 친구로서는 어떤데?”
“네놈이니까, 카지노 사채라고 생각했지.”
“…….”
이것도 친구라고.
강혁은 한숨을 쉬면서 민에게 신청서를 던졌다.
“랭킹전 신청서?”
민의 눈의 깜빡였다.
랭킹전 신청서라니?
“너 이거 한 번도 안 했었잖아.”
퍼스트 오더는 모두 다 넘버를 가지고 있다.
그 넘버가 곧 순위다.
랭킹전은 서로의 넘버를 가지고 싸우는 일을 말한다.
당연히 실제로 싸우지는 않는다.
부상, 사망의 위험을 줄이고자 극히 리얼한 가상현실에서 싸운다.
강혁은 지금까지 한 번도 랭킹전을 한 적이 없었다.
아니, 랭킹전뿐만 아니라 랭킹 외의 헌터가 도전하는 것도 전부 다 거절하고 있었다.
보통은 그렇게 할 수 없지만, 그는 이능력인 슈퍼스타가 가상현실에서 적용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특별히 허락된 상태였다.
그런 그가 랭킹전을 도전한다?
민이 눈을 가늘게 떴다.
“뭔가 있군?”
“이세계에 다녀왔다면 믿을래?”
“고작 며칠 사이에 귀환자가 됐다는 개소리를 믿어 달라고?”
그럴 줄 알았다.
우울증으로 휴가를 신청한 게 3일이고, 믿기지 않겠지만 테라에 다녀온 건 하루였다.
귀환자라고 주장하기엔 턱없이 짧은 시간.
강혁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웃었다.
“랭킹전 접수하고 99위부터 90위까지 전부 다 매칭 잡아줘.”
“보상은 뭘 걸 건데?”
랭킹전.
상위 랭커에게 도전하는 시스템이지만, 이건 도전은 받는 입장에선 불쾌하기만 한 일이다.
싸워서 이겨도 자신보다 낮은 랭커라면 도움이 안 되고, 지면 순위가 내려간다.
그럼 누가 랭킹전을 하려고 할까?
이런저런 핑계나 일정을 문제 삼아서 거부할 공산이 컸다.
그래서 나온 것이 바로 ‘보상’ 제도다.
랭킹전을 거는 낮은 순위의 대상은 상대가 납득할 만한 보상을 제시해야 한다.
그런 보상은 구하기도 힘들다만.
“이걸 걸 거야.”
강혁은 한 눈에도 범상치 않은 푸른 냉기가 맺힌 검을 꺼냈다.
겨울의 원한이 가득 담긴 검.
ISAC의 검사로 ‘A급’ 판정을 받은 마법 검이었다.
저 검의 출처는?
지금 이걸 어떻게 내 앞에서 숨겨두고 있었던 거지?
여러 생각이 민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답은 금방 나왔다.
민은 신청서와 검을 받아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인벤토리를 다룰 수 있다니, 진짜 이세계에 다녀왔나 보군.”
“너만 알고 있으라고.”
“알았다. 제길… 그렇다면.”
민이 혀를 찼다.
“카지노 설이 아니었단 말인가.”
엑스빠루…….
아니, 성검을 뽑고 모험을 떠났다가 정답일 줄이야.
돈 아깝게시리 내기에서 져버렸다.
민이 탄식하자 강혁의 이마에 굵은 힘줄이 솟아났다.
“내가 진짜 억울해서라도 팀 지원비 들고 카지노 간다.”
민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 * *
[자랑스러운 한국의 헌터, 슈퍼스타 백강혁의 랭킹이 수직 상승.] [92위에 등극했습니다.]TV에서 나오는 소리에 승우가 설거지하던 손을 멈칫했다.
‘90위는 찍겠다고 이야기하더니만, 결국 91위는 못 이겼나.’
하지만 92위라면 적절한 수준이다.
그가 돌아와서 레벨이 40대 후반이 됐다고 해도, 표준적으로 100위 안은 전원이 50레벨이 넘으니까.
오히려 잘 싸웠다고 할 수도 있다.
‘어쨌든 이걸로 녀석의 우울증이 나아서 다행이군.’
백강혁이 우울증에 빠진 건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힘들고 고된 일.
퍼스트 오더 100위가 감당하기에는 무거운 A섹터 에이스의 자리.
그리고 그에 따른 부담감.
승우의 초월적인 힘에 대한 경외심과 질투.
그 모든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와중에 101위로 강등될 수많은 위기와 날이 갈수록 성장해 가는 새로운 헌터들까지.
위아래, 좌우까지 어디 하나 안전하게 도망칠 공간이 없으니 망가질 수밖에 없다.
‘이제 92위가 됐으니 죽겠다고 징징거리지는 않겠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남이 잘되는 모습은 항상 좋다.
다만 여기까지다.
무기력하던 A섹터의 수호자를 부활시켰으니 더 도와줄 필요성은 없다.
‘가호와 권능은 회수하겠지만, 인벤토리는 기념으로 둘까.’
그의 인벤토리는 고작 10㎏!
그 정도는 귀환자의 상징과 기념으로써 남겨둘 만하지.
승우는 그렇게 생각하며 뽀드득 소리가 나게 접시를 닦았다.
“흐흠, 역시 설거지는 기분이 좋아.”
점심시간의 폭풍이 그친 후, 식당은 다음의 전장인 저녁 시간까지 한가해진다.
설거지와 기본 찬거리의 준비가 끝난다면 의외로 시간은 널널하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놀아보기에는 또 부족한 시간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이 시간을 효율적으로, 즐겁게 보내는 게 승우의 즐거움 중에 하나다.
“그럼 이제부터는 뭘 해볼까.”
영화, 게임, 독서, 요리.
나비와 놀기…는 은하에게 선수를 빼앗겼으니 어쩔 수 없고.
오랜만에 당구?
아니면 볼링?
‘이건 나가서 해야 되니까 가게를 닫아야 하잖아.’
그럼 뭘 하지?
그때였다.
고민하는 승우의 귓가로 매력적인 CM송이 들렸다.
[여울~낚시터~로 오세요~.][현재 환경 정비 기간으로 무료입장 가능합니다!]낚시터?
낚시?
낚시!!!
그가 앞치마를 벗었다.
낚시. 너무나 매력적인 단어다.
“좋아. 오늘 저녁은 휴업이다.”
가게? 닫지 뭐!
누가 취미로 하는 일 아니랄까봐, 승우의 가게 경영 철학은 한없이 느슨했다!
특히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는 끝없이!
볼링과 당구에 대한 유혹은 참을 수 있었지만, 낚시에 대한 유혹은 참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멀지 않은 곳에 낚시터가 있었다니!
“나비야. 오늘 가게 닫을 거니까, 은하랑 원 없이 놀아라.”
“알았다냐~ 집 잘 지키고 있겠다냐!”
“다녀오세요.”
꾸벅하고 허리를 굽히는 은하와 손을 흔드는 나비.
건너편의 건물 옥상에서 태지가 목을 가볍게 숙였다.
맡겨달라는 뜻이다.
그나저나 아일루로스인 나비는 그렇다 쳐도 은하는 아주 여기를 제집처럼 구는군.
그 당돌한 모습도 귀엽고, 나비의 앞발도 귀여워서.
승우는 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녀오마.”
마치 어린 자식들을 둔 기분이었다.
아버지란 이런 기분일까?
만약 그렇다면…….
‘집을 비우고 놀러가는 거니, 나쁜 아버지겠군.’
아버지란 힘든 거구나, 라고 중얼거리며 승우가 가게 밖을 나섰다.
* * *
낚시터는 크고 작은 곳을 가리지 않고 낚시터라고 한다.
낚시를 할 수 있는 곳이라면 낚시터!
하지만 실상을 알고 보면 의미가 아주 여러 가지다.
작은 카페만 한 곳에 적당한 어장을 만들어놓고 물고기를 풀어둔 곳도 낚시터.
아주 큰 웅덩이에 물고기를 풀어놔도 낚시터.
저수지나 개천도 낚시터다.
승우가 좋아하는 것은 저수지나 개천 낚시터다.
작은 카페에서 낚시하는 건 폐쇄감이 심하고, 물고기의 상태가 좋지 못하다.
그리고 그런 곳의 대부분은 물고기에게 코인을 물린다든가 해서 상품을 낚는 종류의 번외 게임이 주목적이다.
그런 낚시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큰 웅덩이 쪽은 개인이 물고기를 풀어서 운영하는 쪽이 많은데, 역시 인간이 풀어뒀다는 사실 자체가 싫었다.
그에 비해서 저수지와 개천 낚시터는 어떠한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자랑한다.
그래서 물고기가 유독 안 잡히지만 그게 자연이다.
저수지와 개천 낚시터의 장점은 또 있는데, 대부분 무료로 영업한다.
왜 무료인가,
그것은 저수지와 개천의 상태가 좋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긴 제법 심하군. 하하!”
저수지의 상태가 말이 아니다.
본래는 아름다웠을 저수지지만 주변에는 쓰레기가 널려 있고, 이끼가 무성하다.
예산이 부족해서?
그보다는 꽤 오랜 시간 방치된 느낌이 강하다.
“청소할 보람이 있겠는걸.”
이런 저수지 낚시터를 돈을 내고 이용할 사람은 적다.
그래서 가볍게 청소를 해주면 그게 바로 입장료다.
그럼 주인은 뭐 먹고 사는가 걱정하겠지만, 보통 음식을 팔아서 유지하거나.
낚시 도구 대여, 캠핑 장소 대여 등으로 먹고 산다.
“그나저나 여긴 안내문이 없네.”
입구에는 보통 안내문이 있기 마련인데 왜 없을까?
이 부서진 철봉이 설마 안내문이었을까.
승우는 부러진 철봉을 흔들어보았다.
위에 뭔가 달려 있었겠지만 부러져 있으니 알 길이 없다.
“자, 잠시만 기다리세요!”
승우가 관리실 앞에 서 있으니 관리인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상당히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였다.
그는 승우가 뭐라고 물어볼지 알고 있다는 듯이 바로 말했다.
“입장료는 없습니다만, 낚시 도구는 대여하셔야 됩니다. 대여해 드릴까요?”
여울 낚시터의 관리인인 할아버지가 그렇게 말하자, 승우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장비는 따로 챙겨 와서 괜찮습니다만, 미끼는 좀 필요하네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혹시… 헌터 자격증도 있으신지?”
“헌터 자격은 없지만 비슷한 건 있습니다.”
귀환자 자격증은 헌터 자격증의 기능도 가지고 있다.
그보다, 왜 헌터 자격증을 묻지?
의아하게 승우가 보니, 노인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게 나옵니다.”
“그게 뭡니까?”
“몬스터요. 아주 소형의 균열이 바닥에 있다고 하더군요.”
“소형의 균열이라…….”
ISAC에서 가만히 두는 거 보니, 심각한 균열은 아니겠지.
그리고 저수지에 사는 놈이다.
나와 봐야 작은 소형의 물고기 몬스터에 불과할 것이다.
즉 피라미 몬스터!
하지만 역설적으로 피라미이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
‘가치가 없겠군.’
헌터가 목숨을 걸고 몬스터를 잡는 건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책임감과 사명감 같은 대의를 위해서.
두 번째는 몬스터를 잡고 ‘돈’을 얻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런 소형 물고기 몬스터는 돈이 안 된다.
그리고 책임감과 사명감을 불태워서 고생할 만큼 큰 의미도 없다.
피해를 입어봐야 저수지 낚시터를 이용하는 낚시꾼과 땅 주인 정도겠지.
그러니까 위험하게 커지거나, 게이트화 할 걱정이 없다면?
이 저수지 밑의 작은 균열은 방치하는 게 옳다.
승우는 ISAC가 왜 여기를 방치하고 있는지 한눈에 이해했다.
“그래서 말입니다만.”
노인은 숨을 돌리더니만, 땀을 닦으며 이어 말했다.
“낚시 중에 몬스터가 나올 수 있으니, 헌터만 출입이 가능합니다.”
“그거야 상관없습니다. 그런데 몬스터가 나오는데 영업을 할 수 있습니까?”
TV 광고까지 하더만?
관리인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영업할 수 있습니다. 손님은 없지만요. TV 광고는 잘나가던 시절에 장기계약해 둔 게 남은 거죠. 그래봐야 2초짜리 광고잖습니까.”
“하긴 짧았었죠. 이해했습니다.”
승우는 밥집에서 본 광고를 생각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입장하실 생각이신지?”
관리인이 말했다.
여긴 망한 낚시터다.
아니, 몬스터 때문에 망해가는 낚시터다.
그래서 들어갈 생각이 있느냐고 묻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당사자의 선택임을 강조하는 태도였다.
확실히 몬스터가 나오는 저수지라면 꽤나 위험하겠지.
그런 관리인을 향해서 승우가 환하게 웃었다.
“물론이죠. 청소할 보람이 나겠는걸요.”
승우의 눈에는 보였다.
이곳이 깔끔하게 청소를 하면 얼마나 아름다운 저수지인지.
한때 잘나갔었다는 관리인의 말이 틀린 말이 아니다.
깨끗하게 정비하고 저 다 부서진 정자까지 개수한다면 멋질 것이다.
그런 저수지 낚시터가 가게 근처에 있다면?
최고의 힐링 장소다.
‘해볼까?’
승우는 자신만만하게 낚싯대를 어깨에 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