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354)
괴식식당-354화(354/613)
354화. 초급 괴식 (1)
화신의 일이 섬기는 신의 위업을 만천하에 퍼트리는 일이라고 한다면, 백강혁은 누구보다 뛰어난 화신이었다.
이번 일로 만천하(滿天下).
삼천세계에 검과 승리, 괴식의 신에 대한 공포가 퍼졌다.
가장 무서워하는 이들은 당연히 악마들이었다.
“모여 주셔서 감사하오.”
악마 중에서도 유명한 72악마 중 71명이 모였다.
이들은 네임드 중의 네임드.
하나하나가 독자적인 명(名)을 가진 신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런 악마들이 모여서, 떨었다.
“요즘 놈이 엄청 날뛴다지.”
“세 개의 신명을 가진 놈이 그리 횡포를 부려서야…….”
“우리 같은 약소 악마가 살아보겠다고 장사 좀 하는데, 와서 그리 까뒤집으면 쓰나!”
악마들이 마치 대기업의 횡포에 직면한 중소기업 같은 말을 하며 쪼그라들었다.
백강혁이 마구 난발하는 성전이라는 게 그리 가벼운 일이 아니다.
서로간의 존재를 걸고 대규모의 전쟁을 선포하는 성전은 인간에게 익숙한 개념으로 설명하자면 총력전이나 엘리전(elimination+戰)을 말한다.
“성전이라니!”
불구대천의 원수이거나, 너를 죽이지 못하면 내가 신명을 갈겠다 싶을 때나 선포하는 게 성전이다.
화신끼리 맞붙는 일은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다. 자신의 하수인과 하수인이 싸워서 노는 일은 재롱을 보는 일과 같다. 그런데 화신과 화신이 붙었다 하면 성전을 건다.
“미친놈이야, 미친놈.”
“아주 제대로 미친놈이지.”
세 개의 신명을 가진 무신이, 너 죽고 나 죽자라고 말하며 갈 때까지 가는 극단적 대규모 총력전을 눈만 마주치면 건다.
아주 미치광이 광신이 따로 없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성전을 거는 것은 승우가 아니라 화신인 백강혁이지만 피해악마들에게는 아무래도 좋았다.
승우의 본의가 아니라고 해서 처맞는 게 변하지는 않는 까닭이다.
화신이 하는 일은 신의 명령을 받아서 하는 일이니까 문제가 있다면 성전을 여는 권한을 압수하면 된다. 그런데 압수하지 않았다.
어차피 악마가 줄면 승우에게도 좋은 일이니까.
그러니 결과적으로 악마가 보기에는 그냥 승우가 악마를 미친 듯이 괴롭히는 일로 보였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지.”
“하하하. 그렇다면 지금 이 경우는 옷깃만 스쳐도 성전이라는 거군.”
“하하하하!”
“웃기냐? 이게 웃겨?”
공포도 이런 공포가 없다.
광신도 이런 광신이 없다.
절망의 신이 왜 신명을 잃었는지 모두가 납득했다.
왜 놈이 절망의 신명 획득자 대기열 3위인지도 이해했다.
저놈보다 높은 두 신이 뭘 했는지 궁금해질 지경이다.
“무서워서 살겠냐. 못 해먹겠군.”
“듣자하니 페넥스와 글라샬라볼라스에 이어서 이면공작 단탈리안도 성전에 걸렸다던데……?”
“소문이 늦군.”
“단탈리안은 소멸당했다네.”
“엇? 한 명이 부족한 이유가!”
“단탈리안이 특기인 언변으로 어떻게 해볼 생각이었나 보다만.”
“검신이 듣자마자 반으로 갈라버렸다오.”
“…….”
“검신은 ‘아니’로 시작하는 말은 안 듣는 병이 있다더군.”
옷깃이 스치면 성전.
살고 싶으면 재물을 바쳐야 한다.
재물이 아까워서 교섭을 걸면 악즉참(惡卽斬)으로 베어버린다.
선택지 따윈 없다.
검신의 아니로 시작하는 말을 안 듣는 병을 고치거나.
재물을 내놓던가.
소멸해라.
“노답이오.”
“알아서 기어봅시다.”
“화신체 단속이나 열심히 합시다.”
“그렇습니다. 지구로 못 가게 해야겠소.”
“하지만 게이트라는 게 우리가 원하지 않더라도 연결되곤 하잖소.”
“그야 그렇지, 멋대로 소환사가 불러내는 경우도 있고.”
“거기가 워낙 핫스팟이라 게이트 연결도 심심치 않게 되는데, 어쩔 수 없잖소.”
“단속한다고 해서 한계가 있고, 사고인 경우도 많소이다. 우리도 고의는 아니니까, 말만 잘하면…….”
“단탈리안의 예시를 듣고도 그런 말이 나오시오. 당신 단탈리안보다 말 잘해?”
“아니, 아가리의 악마와 비교하면 당연히 자신이 없지.”
“당신, 지금 아니로 시작하는 말을 했소이다. 이미 죽은 셈이오만.”
“…….”
참 쉽게 죽는다.
악마가 되어서 이렇게 쉽게 죽기도 힘든데 잘도 죽는구나.
싸늘하다. 공기가 싸늘해.
회의장이 조용해졌다.
한 악마가 조심스럽게 발언했다.
“고의성이 없다고 해서 검신이 우리를 봐주진 않겠지요.”
“그렇지.”
봐줄 가망은 없다.
그는 올림포스를 쑥밭으로 만들고 염전노예 삼아서 개처럼 부린다.
시야에 닿는 악마에게는 성전을 걸고, 탐욕과 절망의 신을 절망에 빠트린 공포의 군주다.
봐줄 가능성은 다시 생각해 봐도 한없이 0에 수렴한다.
“그냥 화신체가 지구와 연결되면 자살합시다.”
“지구인과 싸우게 되면.”
“자살 추천.”
“소멸보다야 자살이 낫긴 하구려.”
“자살이 낫겠구만. 그렇구만. 그런 거였어. 내가 그걸 몰랐네.”
“죽으면 되네. 응. 죽으면 돼.”
“쉽구만.”
그렇게 악마에게 새로운 규정이 생겼다.
1. 지구인은 건들지 마라.
2. 지구에 가지 마라.
3. 본의 아니게 위의 규정을 어기면 자살해라.
“드러워서 악마 해먹겠나.”
완성된 막장 규정을 본 악마들이 침을 뱉었다.
* * *
검 하나로 팔자를 고치는 경우는 은근히 있다. 민이 그런 경우다.
세컨드 오더에서 신급 아티팩트 하나로 10위권 내에 진입했다.
백강혁으로 말하자면 그는 지금도 퍼스트 오더 33위다. 원래부터 강자였는데 성운검이라는 최정상급 아티팩트가 더해졌다.
강한 놈이 더 강해졌다.
랭킹을 올려줄 수밖에 없는 상황.
거기에 공적도 장난이 아니었는데 최근 놈은 러시아에서의 공훈에 더해서 악마를 3체나 토벌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백강혁의 승급에 대한 회의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지구 반대편에서 분주하게 논의를 할 때 더욱더 분주한 곳이 있었다.
“와, 진짜 미쳤다, 미쳤어.”
아이템 감정단.
피닉스의 감정이 끝나기도 전에 A섹터의 연구진에게 악마 2체가 추가되었다.
“이게 다 얼마야…….”
백강혁이 토벌한 악마의 시체는 값어치가 너무나도 높았다.
10㎖만 있어도 최상급 포션을 정제할 수 있는 피닉스의 혈액.
노화 억제, 세포 재생력을 증폭시켜 주는 피닉스의 고기.
화염무기와 방어도구로 재련할 수 있는 피닉스의 깃털.
거기에 신종 몬스터인 박쥐에 날개가 달린 형태의 늑대는 그 가죽이 도검류에 대해서 절대적인 내성을 가지고 있음이 판명되었다.
방어구로 만든다면 엄청난 방검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근데 도검 내성이 높은 악마를 뭔 재주로 칼로 잡았대요?”
아이템 감정단의 신참, 강웅이 신기하다는 듯 늑대의 가죽을 살펴봤다.
칼로 잡았다는 것을 주장하려는 듯이 도검흔(刀劍痕)이 남아 있다. 마치 공간을 통째로 비틀어 짜낸 것 같은 강렬한 흔적이다.
고참, 이윤덕이 턱을 긁으며 고민하다가 목소리를 낮춰, 자신 없이 대답했다.
“슈퍼스타가 새롭게 칼을 얻었다고 했잖아.”
“방송 봤어요. 신이 줬다죠?”
“…….”
신이 준 무기라는 어감 자체가 굉장히 이질적이다.
이윤덕은 매우 이성적인 사람이었기에 종교를 믿으면 신이 힘을 주고 무기를 준다는 그 말 자체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지구의 감성은 대체로 이러했다. 하지만 사람이 불을 토하고 날아다니고, 게이트가 열리는 시대에 구세대의 관념에 잡혀 있으면 안 되지. 이윤덕은 스스로의 뺨을 톡톡 치면서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그 칼의 능력이 아닌가 싶어.”
“신이 하사한 무기니까, 진짜로 신급 아티팩트일까요.”
“그 무기의 감정은 우리가 아니라, 본부에서 했으니 잘은 모르겠지만…….”
신이 직접 내렸는데 신급 아티팩트가 아닌 게 더 이상하다.
방송을 본 사람은 누구나 알았다.
아니, 하늘에서 빛이 나면서 신상이 직접 건네주는 것처럼 검이 내려오는데 그게 뭐 신급 아티팩트가 아닌 게 더 웃기지 않나?
그리고 검이 통하지 않는 악마를 검으로 죽이는 일이 가능했는데, 만약 그게 검의 기능이 아니라면 백강혁은 지구 최강의 검사라는 뜻이 된다.
“그건 쫌.”
“그러네요.”
백강혁의 상승세가 무섭지만, 놈이 최강이라는 결론보다는 역시 검이 좋다는 쪽이 마음의 부담이 적다.
“검이 장난 아닌가 봐요.”
“그러게. 그런 걸로 치자.”
깔끔하게 화제를 봉합한 둘이 다시 박쥐 늑대를 감정했다.
이게 끝나면 다음은 머리가 열한 개나 달린 뱀파이어의 시체를 감정해야 한다. 할 일이 정말 많았다.
“어쨌든 세 개의 사체 모두 다 품질과 등급을 SSS급으로 선정해서 보고부터 하자.”
“감정이 안 끝났는데 보고부터 해도 되나요?”
“선보고 후조치, 인마.”
“엑, 그래도 그건 너무 성의 없지 않아요?”
“이렇게 해야 상부도 상급 감정단을 보내주지. 나보다는 좀 더 감정 스킬 등급이 높은 사람이 필요해. 나는 이거 감정할 자신이 없다.”
강웅이 입맛을 다셨다.
사람이 겸손해서 그렇지 이윤덕은 한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아이템 감정의 전문가다. 그의 감정 스킬 등급은 무려 상급이다.
‘조금 더 강하게 나가도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결정적이고, 등급 높은 아이템 감정에서 몸을 빼니까 승진이 늦은 게 아닌가.
아니면 정신력이 약한 걸지도 모른다. 스킬은 사용할 때 마력을 소모하지만, 정신력도 소모한다.
특히 그중에서도 감정 스킬의 경우에는 한 번 쓰면 도서관에서 몇 시간이나 공부를 하고 온 것 같은 정신적인 피로가 뒤따라오는 스킬이다.
‘소심하고, 정신력이 약한 건가?’
자신의 생각이 무례한 것을 알기에 입 밖에 내뱉지는 않았다.
그 정도의 분별력은 있다. 하지만 강웅의 입이 삐죽 나왔다. 맘에 안 드는 것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아, 맞아.’
냉장고에 넣어둔 그게 있다.
그걸 먹으면 저 약해빠진 정신력도 조금은 회복되지 않을까?
“선배, 이거 드세요.”
“응?”
“요즘 유행하는 스무디예요.”
“스무디? 됐다.”
“드세요. 좋아요.”
“내가 무슨 젊은 애들도 아니고 스무디냐. 이빨 시려, 인마.”
아, 진짜.
이 양반 말 더럽게 안 들어.
“아 하세요.”
“싫다. 남사스럽게 뭐냐 그게.”
“에라이.”
강웅이 이윤덕의 입에 빨대를 쑤셔 넣었다. 이윤덕은 눈을 찌푸리다가, 그 강렬한 신맛에 눈이 번쩍 떠졌다.
“셔! 뭐야, 이거. 빙초산이냐!”
“스무디라니까. 빙초산 아니에요.”
“너 인마! 무슨 짓이야!”
“킬러맨시 스무디라는 건데, 먹으면 정신이 번쩍 들어요.”
“번쩍 들긴 하네.”
“신맛이 너무 강해서 그렇죠.”
“아니야. 그런 게 아냐.”
“예?”
이윤덕은 프로 감정사다. 아이템을 감정하는 데는 도가 텄다.
“음. 흠. 호.”
그는 혀를 몇 번이나 수건으로 닦으면서 스무디를 확인했다.
이상한 일을 하시네. 왜 저러실까, 하고 보고 있으니 이윤덕이 입가를 떨었다.
웃음을 참지 못하는 표정이다.
“세상 참 좋아졌네. 이게 지금 시판되는 스무디라고?”
“예. 한 컵에 만오천이지만요. 비싸지만 마니아가 많아요. 줄 서서 기다릴 정도라니깐요.”
“비싸기는, 인마…….”
이 스무디는 각성제다.
먹는 순간 정신력을 그대로 회복시키는 최상급 각성제.
이러한 효과를 가진 포션은 개당 삼천만 원이 넘는다.
그게 지금 노점에서 만오천에 팔린다. 이윤덕은 세상이 바뀌는 것을 실감했다.
“신참아, 이거 어디서 샀냐?”
“아, 주둔군 근처 식당가요.”
“용사의 밥집이 있는 곳?”
“예, 맞아요. 거기 근처에 이런 거 파는 음식점 많아요.”
“그런 곳이 생겼구나…….”
“며칠 안 됐어요. 아직 공사 중인 곳도 많고요. 지금은 한 5개쯤 있던가?”
“이만 퇴근하고, 오늘 저녁은 거기서 먹자.”
“야근이 아니라 회식이에요?”
일도 안 끝났는데?
질책하는 듯이 이 건방진 신참이 쌓인 몬스터 소재를 돌아본다.
이윤덕은 피식 웃으면서 건방 떠는 신참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회식은 무슨 회식, 인마.”
“그럼요?”
“만오천 원짜리 스무디를 대접받았으니까, 저녁 정도는 사주려고 하는 거다. 먹고 와서 야근이지.”
“오, 만오천 원짜리 스무디 사주고 풀코스인가요.”
“풀코스 요리도 팔아?”
“아뇨. 길거리 음식 수준이지요. 그래도 배부를 때까지 먹으면 십만 원은 넘을 겁니다.”
십만 원 수준인가.
한 끼 식사치고 비싸지만, 비싸기만 하진 않겠지.
흥분으로 살짝 얼굴을 상기시키며 이윤덕이 코트를 걸쳤다.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