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374)
괴식식당-374화(374/613)
374화. 피스메이커 (3)
“다들 너무 호들갑이야. 그렇게까지 신경 쓸 일은 아니잖아.”
“신경 쓸 일이 아니라니요! 그 둘이 싸운다니까요?”
백강혁과 민 오키프.
퍼스트 오더 잠정 12위.
퍼스트 오더 10위.
A섹터를 책임지는 세 명의 사람 중 두 명이 싸우는데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니. 황지현이 안경을 고쳐 쓰면서 항변하자 승우는 따뜻한 커피를 내려놓았다.
“따지고 보면 남자 둘이 싸우는 건데, 큰일은 아니잖아.”
“그런 관점에서 보면 그렇지만…….”
“그리고 주변에서 이렇게 난리를 친다면 둘이 더 뻘쭘할 거야. 시간이 약이라고 지켜보는 게 낫겠지.”
“우으. 정석적인 답변이네요.”
승우가 피식 웃었다.
“왜, 정석적인 답변이 나올 줄 몰랐어?”
“예. 사장님이니까 뭔가 대단한 괴식을 만들어서 슥슥 해결해 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괴식으로? 뭘 어떻게?”
“요리 만화 같은 곳에서 자주 나오잖아요? 맛있는 것을 먹고 추억을 공유하거나, 오해를 풀고. 같은 감정을 느낀 후에 우리는 친구야! 하고 화해하는 그런 거요.”
“요리로 화해하는 이야기야 흔하지만, 나잇살 먹은 남정네 둘이서 그런 걸로 화해할 수 있겠냐. 술이라도 진탕 마시고, 진솔한 이야기를 하면 모를까.”
“으.”
맞는 말이다.
그럼 술이라도 먹일까?
황지현이 고개를 흔들었다.
가능할 리가 없다.
시선도 안 마주치는데 술자리를 만들라니. 그런 게 가능했다면 그야말로 사교의 신, 대인관계의 신이라고 불렸겠지.
유감스럽게도 황지현은 인싸와 아싸의 이분법으로 나눈다면 당당하게 아싸의 범주에 들어간다.
그녀는 매우 유능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에 대한 것. 인맥 관리나 사람과의 감정을 나누는 일은 서툴다. 중재를 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그럼 사장님이 술자리라도 주선해 주시면…….”
“할 수야 있는데, 내가 하면 위력에 의한 화해 강요 같잖아.”
“우으으…….”
오늘따라 이 사람이 되게 비협조적이다. 사실 황지현도 그 이유를 알고 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될 문제야.”
“으…….”
그렇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
둘 다 지금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지 못해서 저러고 있다.
시간이 흐르고 머리가 식으면 어떻게든 해결되게 되어 있다.
괜히 조바심을 내다간 오히려 갈등이나 오해의 골이 깊어진다.
“억지로 화해시키는 건 좋지 않아. 두 사람을 그냥 두라고.”
“그건 알지만! 알고는 있지만! 저 두 사람이 일을 안 하면 시민들의 안전이!”
“전력의 누수는 확실히 큰일이지. 하지만.”
승우가 상냥하게 황지현의 어깨를 두드려 줬다.
“든든한 보험이 있잖아.”
그녀는 강하다.
선천적인 소질과 괴식을 통한 성장으로 인해 퍼스트 오더 코트쯤은 입고도 남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백강혁과 민만큼 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저 둘이 일을 아예 안 하진 않았다. 협업을 하지 않는 것이지 맡은 바 일은 충실히 하고 있다.
그러니까 협업이 필요한 순간에만 황지현이 저 둘을 돕는다면 전력 누수쯤이야 손쉽게 막는다.
“으으으으-! 그게 싫은 거라고요!?”
“네 전투력을 썩히기에는 아깝지.”
“아악! 싫어-!”
그녀가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망했다.
믿었던 동아줄이 끊어졌다.
승우는 이 일에 조금도 관여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대로라면 끌려간다.
협업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현장에 끌려가서 죽도록 굴려진다.
그뿐인가.
한 번 현장에 끌려가서 선례를 남긴다면, 다음에는 무슨 핑계든 대서 현장으로 또 끌고 가겠지.
그게 몇 번 반복되다 보면 갈색의 세컨드 오더 제복이 검은색의 퍼스트 오더 제복이 되는 건 순간이다. 한 번 퍼스트 오더가 되면 벗기도 엄청나게 힘들지.
함정이다.
함정에 빠졌다.
승우를 두고 두 남자가 질투에 빠져서 싸웠는데, 뒤처리는 그녀가 해야 했다.
이대로라면 혼자서 덤터기 쓰고 망한다. 대안을 촉구해야 한다.
그녀의 회색빛 뇌세포가 맹렬하게 검색을 개시했다.
하나, 수가 떠올랐다.
* * *
“그래서 본인이오?”
“군자는 괴력난신에 의지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상황이 너무 급하니까 어쩔 수 없네요. 둘을 화해시킬 방법을 찾아줘요.”
“이번에도 또 이상한 일을 가져오는구려.”
한유성이 초췌해진 얼굴로 황지현을 보다가, 한숨을 내뱉었다. 정말이지 이 A섹터의 헌터 놈들은 사람을 부리는 게 험했다.
생각 같아서야 소금이나 좍좍 뿌리고 동서남북으로 침을 다섯 번 뱉은 후에 부적을 스무 장을 써서 가내평화와 만수무강을 빌고, 남는 부적으로 황지현을 저주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그랬다가는 내가 뒈지지.’
잊지 말자. 조선제일무당은 저 여자가 무서워서 죽었고, 그래서 조선제이무당이 됐다.
대적한다고 생각하니 손발이 덜덜 떨려온다. 본래 예로부터 호환(虎患)과 마마(媽媽)는 무서움의 상징이었는데 황지현은 딱 호랑이상이라 호환이라 불릴 법하다.
대적할 마음을 숨기고, 한유성이 주섬주섬 점을 준비했다. 쌀알을 한 줌 꺼내서 오얏나무 탁자에 부었다.
사르륵 하고 쌀알이 흩어진다.
“어디 보자, 그 수다쟁이 촐싹이의 사주를 보아하니 그쪽으로 접근하는 일은 좋지 않군. 흉(凶)한 길이야. 단단히 토라진 모양이요.”
“아, 진짜 사람이 쫌생이 같아서는…….”
우리 오더가 그렇지 뭐.
황지현은 자조하다가 팔짱을 꼈다.
“그럼 민 씨 쪽은 어때요?”
“그 성질 더럽고 살벌한 아저씨 쪽은 어떠하냐면…….”
흥흥흥, 하고 콧노래를 부르며 쌀알을 휘젓는다.
그러자 쌀알이 쩍- 하고 갈라졌다.
“대흉(大凶)이군. 그쪽으로는 얼씬도 하지 마시오.”
“민 씨가요? 그럴 리가 없는데…….”
황지현이 아는 민은 어른이었다. 감정을 절제할 줄 알고 공과 사를 구별하는 프로다.
그러니까 그를 통해서 접근하면 그나마 나을 줄 알았다. 하지만 오히려 백강혁보다도 더하다니?
한유성이 턱을 쓰다듬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귀하가 그 양반을 얼마나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점궤를 보자면 그 사람을 통해서 접근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소. 보자, 이 사람의 골조는 기본적으로 무관심이오.”
“무관심??”
“세상일에 관심이 없소. 되는 대로 되고,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흘러가기만 바라며 그저 묵묵하게 주어진 일과 해야 할 일을 구분하고 그것을 처리하며 살아갈 뿐이지. 좋게 말해서 명경지수의 경지에 이른 초탈한 도인의 삶이고, 나쁘게 말해서 세상 만물에 관심이 없는 자요.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형상을 한 기호나 정보의 덩어리로 보일 테지. 필요로 사람을 만나기에 정보량이 적거나 알 가치도 없는 자는 아예 손가락 인간으로 보일 거요.”
“손가락 인간이라면…….”
“그냥 말 그대로 손가락들이 걸어 다니는 거요. 관심을 가질 필요도 없고, 관심도 없지. 그 정도로 무신경한 사람이오. 약하게 나가거나 무관심하게 멍하니 있으면 사회생활이 힘들고 얕보인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후천적인 폭력성으로 무장하고 있기까지 하지. 아마 친구는커녕 만나는 사람도 없을 것이며 지금까지 살면서 사람에게 기대본 적도, 의지한 적도, 마음을 준 적도 없을 거요.”
청산유수로 말이 이어진다. 마치 심리치료학자, 심리학자 같은 말투다. 수백의 잡귀로 모아온 민에 대한 정보를 다시 수백의 잡귀들이 브레인스토밍하여 내린 결론을 읊는 것뿐이라지만 한유성의 인간 심리학에 대한 경지는 제법 높은 경지라, 석사 학위도 있었다.
“그런 사람이 진심으로 사람을 싫어하거나, 싸움을 벌이는 일은 거의 없는 일이오. 하지만 지금 그 드문 일이 일어났지.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하면?”
“복채 안 주쇼?”
“…….”
여기서부터는 유료라는 건가.
황지현이 이를 빠득빠득 갈면서 지갑을 열었다.
“카드 돼요?”
“카드는 10% 더 받소만.”
“탈세로 신고할까 보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복채를 냈다. 생살이 뜯기는 기분이다.
희희낙락하며 그가 말을 이었다.
“지금 둘이 싸운다, 그 이유는 십 중 구 할이 민 오키프의 몫이고 나머지 일 할이 백강혁의 몫이요. 어째서냐, 민 오키프는 평소에는 남에게는 관심이 없으니 그렇게 남과 날을 세울 일도 없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으르렁거리고 욕을 하고 안 되면 폭력을 행사하면 행사했지, 신경전을 할 이유가 없지. 그런데도 왜 이번에는 신경전인가. 그것은 바로 질투라는 감정이 들었기 때문이고, 처음으로 눈앞에 있는 백강혁을 인간으로 봤다는 거요.”
“처음으로 인간으로 보다니. 지금까지 잘 협력하면서 살아왔는데요.”
“그것은 단지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취급해 온 탓이오. 결코 백강혁 개인을 사람으로 본 게 아니지.”
“으음… 쓸쓸한 이야기네요.”
“그리고 그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성립하기 위해서는 백강혁의 양보도 필요하오.”
“아…….”
“지금까지는 아마 백강혁이 전부 양보해 왔겠지. 자격지심도 강한 편이고, 본인은 의외로 굽혀 주는 게 익숙한. 웃긴 놈, 광대 같은 위치였으니까. 그래서 둘의 관계가 여태껏 이어진 거요. 하지만 백강혁도 성장했고, 뭔가 다른 요인이 작용한 것 같지만 어쨌든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지. 그래서 평소라면 웃으면서 넘어갈 일을 정색을 해버린 거고. 그래서 싸움이 벌어진 거요.”
항상 굽히던 사람이 굽히지 않았다. 관심이 없어서 항상 깊게 파고들지 않았던 사람이 깊게 파고들어 버렸다.
“한쪽은 창, 한쪽 방패이기에 찌르고 막고 하면서 유지됐던 관계가 둘 다 창이 되어서 서로를 찔러버렸으니 파국이 생길 수밖에.”
지금의 현상을 정리한 한유성은 잠깐 어질했는지 눈가를 꾹꾹 눌렀다.
막 쓰러지려고 하는 것 같다.
“괜찮아요? 힘들어 보이는데.”
“안 괜찮소. 요즘 조상신님의 영력이 너무 강해져서 내 몸 하나로는 버티기가 힘들어서 이런 거요.”
“아, 조상신.”
황지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한유성의 뒤를 봤다.
우람하고 커다란 붉은 아나콘다 한 마리가 한유성의 등 뒤에서 똬리를 틀고 있다.
아까부터 희끗희끗 보이는 저 모습이 착시가 아니었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황지현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쨌든 저런 조상신을 모시는 무당이니까 영빨은 제대로 받을 테고, 한유성이 힘들든 말든 일단 영험하다는 걸 의미한다.
헛걸음은 아니겠구나. 하고 안도하는 마음도 있다.
“그래서 해결책은 어때요?”
“해결책은 지금으로서는 그냥 방치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보오만.”
“으…….”
“가만히 두면 서로 상처는 봉합될 것이고, 냉정하게 자신을 돌아본 후에는 아무렇지 않게 예전으로 돌아올 거요. 원래 사내라는 놈들이 그렇지 않소? 열이 식은 후에는 부끄러운 거지. 저러다가 술 한잔하고 주먹질하면 빨리 풀리는 거고, 늦게 풀리면 데면데면하게 한 달쯤 걸리는 거지.”
“그건 안 돼요. 너무 늦어요.”
한 달이면 저.
퍼스트 오더가 되어 버린다고요?
넘어지면 코 닿을 듯.
코트가 놓여 있다.
그 뒤에는 손짓하는 지부장.
옆에는 박수 치는 유승우.
밑에는 바닥을 뒹굴며 웃는 백강혁이 있었다.
그리고 검은 퍼스트 오더 코트를 입은 자신이 있다.
‘시, 싫어!’
불쾌한 상상을 한 황지현이 손을 달달 떨었다.
“다른 방법은요?”
“어디- 보자아하아.”
쌀알을 계속해서 붓는다.
쫙쫙 갈라지는 쌀알들.
죄다 좋지 않다.
그래도 점을 이어가다.
문득 한유성이 중얼거렸다.
“응? 어랍쇼?”
“왜요?”
“흠. 점을 보아하니까 아무리 해도 이 사태를 해결할 열쇠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구려.”
“그 사람이 누군데요.”
“누구긴 누구겠소. 귀축선인이지.”
“유 사장님이요? 아니, 안 하신다고 하셨는데…….”
한유성이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못 하는 게 아니잖소.”
“아.”
“안 하는 거라잖소.”
못과 안은 다른 말이다.
안 한다는 말은 맘만 먹으면 언제라도 할 수 있다는 말.
한유성이 피식 웃었다.
“본인보다 그 사람에게 먼저 갔던 모양이지만 돌고 돌아서 다시 그 사람에게 가야겠구려.”
일이 그렇게 됐다.
황지현은 눈앞에 게임의 선택지가 떠오르는 기분이었다.
1. 포기하고 퍼스트 오더.
2. 어떻게든 유승우를 설득.
고민할 필요가 있을까.
“2.”
어떻게든.
설득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