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38)
괴식식당-38화(38/613)
038화. 0식 (2)
게이트 주둔군의 지부장실.
지부장 이정훈은 날아갈 거 같은 기분이었다.
‘진짜로 성공할 줄이야.’
연구반의 분석 결과가 나왔다.
유승우가 호언장담한 대로 정말로 슬라임의 소멸이 확인됐다.
덤으로 균열까지 닫혔다.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결과였다.
정훈은 앓던 이가 빠지는 쾌감에 크게 웃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연구원의 말에는 웃을 수 없었다.
“지부장님. 혹시 그 독, 연구할 수는 없습니까? 그 독은 저희의 전략 병기로 쓰여야 합니다! 이건 세기의 대발견이에요!”
“…….”
“적어도 재료라도 알 수 있으면 재현할 수 있습니다. 모든 연구는 모방으로부터 시작하는 거고, 저희는 그러한 작업에 익숙합니다. 해낼 수 있습니다! 그것의 제작자와 접촉할 수 있게 해주십쇼!”
“…뿔.”
“예?”
“해내기는 개뿔!”
옛날 말로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라고 한다.
실없는 헛소리 중의 헛소리다.
정훈은 당황한 연구진에게 말했다.
“그 독의 재료 말이냐? 강준치와 소금, 후추 약간. 그리고 마늘이다.”
“…네?”
“다시 말해주랴? 강준치, 소금, 후추, 마늘. 끝이라고.”
“그, 그건?”
“내친김에 만드는 법도 가르쳐 주지. 물에 넣고 끓이면 된다.”
“그 재료와 그 방식으로는…….”
요리밖에 못하는데?
이정훈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믿기 힘들지만, 그 맹독은 그냥 요리다.”
강준치를 삶든 굽든 고아서 만 년쯤 우려내든 그런 독은 안 나온다.
연구원은 잠시 스스로의 상식을 재점검하고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보고서에는 모르겠음이라 적겠습니다.”
이건 지구의 과학력으로 될 게 아니다.
귀환자의 신비로운 요리 마법이지.
연구원은 그렇게 판단했다.
“그래. 그거면 됐다. 이해가 빠른 녀석이구나.”
‘귀환자의 독 요리로 슬라임을 퇴치했습니다!’라고 사실대로 보고서를 써보자.
당연하게도 윗선.
이정훈의 윗선까지 이야기가 닿을 수밖에 없다.
그만큼 이 독 요리는 압도적이고 간단하며 효율적인 성능을 보여줬다.
현대의 화학 병기 중에서 이만큼 효과적이며 목표만을 제거하는 병기는 없다.
그럼 그 병기를 어쩌면 좋겠는가?
분석하고 알아내야 하고, 대량 생산하고 싶어 할 것이다.
‘그러면 괜히 유승우를 자극하게 될 거 아냐.’
놈은 무엇인가, 인지를 초월한 존재다.
개인의 성격은 둘째로 미루고, 힘과 지식.
할 수 있는 일을 따지고 보면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그의 손에 닿는 범위인지 가늠도 안 된다.
그런 사람을 굳이 자극할 필요는 없다.
따라서 이건 임무 방기가 아니라, 효과적인 정보의 통제였다.
‘문제는 이렇게 되면 내가 처벌을 받겠지만, 이럴 때는 지부장이라서 정말 다행이라니까.’
지부장의 권한 중에 현장에서의 임의 판단 권한이 있다.
지금 중요한 건 이곳에 사는 시민의 안전이다.
얌전히 있는 귀환자를 뭐 하러 긁는가?
긁어 부스럼이란 말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다.
“그럼 전 이만!”
다행히 그의 뜻을 제대로 이해한 연구원은 경례를 하며 문을 나섰다.
그리고 그와 교대하듯이 민이 들어왔다.
그는 눈치도 빠르게 훗, 하고 입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이제 선생님의 실력을 잘 아시겠습니까?
라고 잘난 척을 해댔다
어째서 대번에 그 귀환자와 관련된 일인 것을 알고 있는 건가 싶었다만, 민이니까 납득했다.
저 망할 탐지계 능력자 놈들은 전부 감이 좋은 것인가?
어쩐지 감정을 쉽게 읽어낸다.
“제가 탐지계라서 읽는 게 아닙니다. 지부장님만큼 속내 알기 쉬운 사람도 없을 겁니다.”
“마음을 읽지 말게?! 자네 에스퍼였나!”
“아니, 지부장님이 쉽게 읽히는 거라니까요. 저는 그런 능력 없습니다.”
워낙 겉과 속이 같아야 말이지.
꽤 오래 붙어 있다 보니 이제 표정만 봐도 뭔 생각을 하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만큼 이정훈이란 사람이 거짓이 없고 꾸밈이 없는 사람이란 소리다.
똑같은 시간을 같이 있었던 백강혁은 아직도 뭔 뻘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크흠.”
이정훈이 크게 헛기침을 했다.
살짝 분한 마음도 있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왜 자네가 그렇게까지 그 사람을 인정하는지. 나도 잘 알겠네.”
직접 만나 보니까 잘 알겠다.
실력과 인품도 있지만, 무엇보다 안정감이 있다.
맡겨두면 뭐든지 다 해줄 거 같은 믿음직함.
실패 없이 최대한의 성공을 항상 내줄 거 같은 느낌.
말로는 다 설명 못 할 신뢰감이 느껴진다.
그런 사람을 안 믿으면 누굴 믿겠는가.
“이제야 제 말을 이해하셨군요.”
“솔직히 남자로서도 매력적인 사람이더군.”
“리더로서 보자면 누구와는 천지 차이죠.”
그 누구가 누군데?!
“그가 분명 매력적이고 유능한 건 사실이지만 리더로서는 아직 무엇 하나 증명된 게 없네. 해결사로서 유능하다는 것과 리더로서 유능하다는 건 다른 문제…….”
“지부장님과 비교한 게 아니라 백강혁이랑 비교한 겁니다.”
“그… 놈이랑 비교하면 대부분이 리더로서 뛰어나다만?”
“아무튼 말이 그렇다는 거지요.”
“그렇군. 살짝 자신이 없어질 뻔했네.”
“지부장님은 제가 아는 한 세 번째로 믿음직한 분이시죠.”
세 번째? 두 번째가 아니라?
민이 어깨를 으쓱했다.
“두 번째는 총장님이시죠.”
“아, 총장님. 그, 그래… 믿음직한… 분이시지.”
“선생님과는 장르가 다르시지만요. 믿음직은 하잖습니까?”
믿음직?
“…….”
“…….”
순간 이정훈과 민은 총장의 악마적인 모습을 떠올리고는 몸을 떨었다.
믿음직하기야 믿음직하지.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비정함.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허를 찌르는 순발력.
수읽기 싸움에서는 패배해 본 적 없는 신산귀모의 지혜.
ISAC의 총장은 그가 함께하는 한 어떠한 싸움에서도 반드시 이길 수 있다는 승리의 상징이다.
승리에 대한 믿음으로 치자면 어떤 부분에서는 유승우 이상이다.
다만 그 방식이 매우 다를 뿐.
“힐링 영화와 호러 영화 정도의 차이가 있네만.”
“정의의 용사와 다크 히어로 정도의 차이도 있죠.”
“이기기 위해서는 어떠한 방법이라도 쓰시는 분이니까.”
“지느니, 그냥 죽는다고 하시잖습니까.”
같은 편일 때는 누구보다도 믿음직한 사람이 총장이다.
그런 총장이 유승우를 만났을 때의 화학반응을 떠올리면 벌써부터 오금이 저려왔다.
“나는 감당할 수 없네.”
“저는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지부장으로서 자네에게 권한을 하나 주지.”
“뭡니까?”
“앞으로 귀환자 유승우에 대한 정보는 나에게 주지 말게, 공유할 필요도, 보고할 필요도 없어.”
그건 즉?
“혼자 알고 죽으라는 겁니까!”
“내가 알게 되면 총장님도 알게 된다. 그러니 때론 모르는 게 약인 법이지.”
이정훈은 눈을 감고 귀를 막는 시늉을 했다.
민이 눈을 가늘게 떴다.
미련한 곰인 줄 알았더니 이런 얄팍한 잔재주도 쓸 줄 알았군.
이런 얄미운 인간 같으니.
처음 보는 이정훈의 인간적인 면모였다.
“그럼 오늘의 보고를 해주게.”
이정훈이 헛기침을 하며 다시 말했다.
그러자 민이 싸늘한 말투로 대답했다.
“오늘 아침에 가게 근처를 지나가는데 말입니다.”
“가게? 설마 밥…….”
이 자식이 그건 보고하지 말라니까!
“거기 지하실 쪽에서 범상치 않은 물체가 감지됐는데 말이죠.”
“아아아아~ 안 들린다~”
“이게 사고로 번질까 두려워서 보고를…….”
“아아아~ 동~해물과~ 백두산이이~”
“…….”
망할, 끝까지 모른 척하겠다는 건가?
민은 빠득하고 이를 갈았다.
됐다, 보고 안 하고 말지!
민은 흥 하고 콧방귀를 끼며 문을 세게 닫고 나왔다.
“에이씨. 지부장님이 빡! 강혁도 아니고 저렇게 유치하게 굴다니!”
민은 투덜거리면서 걸었다.
하지만 지부장은 지부장이고, 일은 일이다.
‘그건 정말 뭐였던 걸까?’
밥집 지하실에 있던 거.
착각이 아니라면 몬스터 같았는데……?
항상 있었던 무해한 식용 슬라임이 아니라 마치…….
‘레이드 보스 같은…….’
* * *
밥집의 지하실은 다소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다.
지반을 유지하기 위한 기반을 제외하고는 벽도 칸막이도 없이 넓은 공간이다.
음식 쓰레기를 먹고, 맛있는 푸딩을 만들어내는 기적의 몬스터.
푸딩 슬라임을 키우다 보니 생긴 공간이다.
레나토가 공급해 준 푸딩 슬라임은 아주 우량종이어서 큰 공간이 필요했다.
이 푸딩 슬라임이란 녀석은 크기가 크면 클수록 많은 음식 쓰레기를 먹을 수 있는데, 재밌게도 크면 클수록 적은 양의 푸딩을 만들어낸다.
커다란 몸에서 나오는 압력을 이용해서 맛 성분을 응축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칼로리는 높지만 맛있는 푸딩을 생산하니, 이만한 공간을 차지할 만하다.
그런데 그런 푸딩 슬라임만을 위한 공간에 다른 슬라임이 있었다.
‘여, 여기까지 온 건 좋았는데 이제 어쩌지?’
0식은 지하실 모퉁이에 숨어서 눈치를 봤다.
그렇다.
0식은 살아 있었다.
행성을 덮었던 거대한 몸은 ‘강준치의 파멸’을 먹고 타버렸다.
하지만 와중에도 분열과 적응을 반복한 결과 살아남았다.
‘작아졌지만…….’
수없이 세포가 타들어 가서 이제는 정말 조금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도 살았다면 다시 증식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마침 운이 좋게도 커다란 게이트도 생겨 있었다.
그대로 게르니아에 있는 거보다, 새 세계로 가는 것이 훨씬 낫다.
그래서 넘어와 보니 이곳이다.
도착해 보니, 이럴 수가!
눈앞에는 맛있는 냄새가 풀풀 나는 녀석이 있었다.
푸딩 슬라임, 아마도 동족 내지는 아종 중에 하나겠지.
0식은 거대한 푸딩 슬라임의 몸으로 돌격했다.
그리고 한 톨도 안 남기고 모조리 흡수, 융합했다.
그런데.
‘왜 안 커지냐고.’
0식은 작달막한 자신의 몸을 꿈틀거려봤다.
그 큰 녀석을 다 먹었는데 몸이 조금도 자라지 않았다.
정말, 정말 조금도 안 커진다!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고 커질 생각이었는데 이러면 곤란하다.
계획이 시작부터 어긋났다.
‘이거 아무래도 화학 병기에 당한 후에 기능이 고장 난 거 같은데?’
흡수하는 건 문제가 없다.
배출, 분열하는 것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증식이 안 된다.
‘방금 먹은 녀석이 나와 비슷한 몸이라, 놈의 능력은 복제해서 쓸 수 있긴 하다만.’
0식은 정신을 집중해서 푸딩 슬라임의 능력을 사용해 봤다.
그러자 뿅- 하고 몸의 일부분이 떨어져 나왔다.
‘이게 다야.’
이건 단순 분열도 아니다.
온몸의 에너지를 모아서 응축, 결정체를 만드는 능력이다.
0식은 지금은 다 사라져 버렸지만, 이런 능력을 수도 없이 가지고 있었다.
대부분은 에너지를 폭발시키는 광범위살상 병기의 능력이다.
‘그런데 이건.’
그냥 동그라면서 몽글몽글한 물체다.
터지지도 빛을 내뿜지도, 타오르지도 않는다.
‘어, 어지러워.’
그런데 한 번 사용하자마자 머리가 띵하다.
이만큼 에너지를 소모했다면 보통의 능력이 아닐 텐데!
‘이게 대체 뭐지?’
“그건 푸딩이란 거다. 먹는 거지.”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0식은 후다다닥 몸을 감췄다.
하지만 따닥- 하고 소리가 나더니 어두운 지하실이 환하게 됐다.
그곳에는 승우가 서 있었다.
“내가 만든 게이트를 타고 온 건가? 심지어 살아서?”
재주도 좋은 슬라임이군.
승우가 중얼거리며 한 걸음씩 걸어왔다.
그 모습이 마치 사신처럼 보여서 0식은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승우는 출렁출렁하는 그 몸을 보면서 실소했다.
“발성기관이 없으니 말은 못 하나? 뭐, 그래도 대강 몸짓을 보면 이해할 수는 있지.”
‘히이익-! 오지 마!’
승우는 바디 랭귀지의 달인!
슬라임의 기분을 읽어내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건 그렇고 푸딩 슬라임을 잡아먹었나 보군.”
‘아니야! 안 먹었어!’
“그런데도 크기가 그 모양이라는 건 증식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다는 거고…….”
‘아니라고! 안 잃어버렸다고!’
“음. 아무튼 이건 조금 화가 나는군.”
본래 슬라임은 지능이 없는 몬스터다.
승우는 슬퍼한다기보단, 짜증이 앞섰다.
이 감정이 ‘슬라임에 대한 동정이냐’ 하면 또 그건 아니었나.
귀한 푸딩 슬라임이 없어진 것에 대한 짜증!
바로 그것이었다.
그는 어른이고, 인격자라 어지간하면 화를 내지 않는다.
하지만 귀한 푸딩 슬라임을 없앤 게 불쌍한 아이도, 사연이 있는 무언가도 아니었다.
그게 그저 한 세계를 멸망시킨 슬라임이라면?
“동정할 가치도 없지. 단번에 끝내주마.”
‘히이이익-!’
0식이 몸부림쳤다.
그러자 아까 만들어둔 푸딩이 데구루루 굴러, 승우의 발밑에 닿았다.
“…….”
기분 탓일까.
평소보다도 훨씬 작은 이 손가락만 한 푸딩에서 믿을 수 없을 만큼 맛있는 향기가 났다.
승우는 저도 모르게 한입에 푸딩을 털어 넣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