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380)
괴식식당-380화(380/613)
380화. 공평한 거래 (2)
황금의 가치는 테라나 지구나 같다. 귀한 금속이다. 그럼 금화 한 냥이면 집을 여러 채 살 수 있는가? 이것도 테라나 지구나 같다.
금화 한 냥이면 현관도 못 산다.
“뿌뿌. 아빠가 그랬다뿌? 은하 이빨 하나면 집도 여러 개 산다고 했다뿌.”
“그런데 고작 한 냥이냥? 양심 없냥? 털 났냥?”
매서운 눈으로 노려보는 슬라임과 도끼눈을 뜨고 보는 아일루로스.
대체 언제부터 눈치를 챘을까. 이빨 요정은 허둥지둥 손을 빼보려고 했다. 그런데 이 슬라임과 아일루로스의 힘이 보통이 아니다.
억지로 빼내려고 했더니 팔이 빠질 거 같다.
“악! 놔라!”
“해명부터 해라뿌?”
“변명이 없으면 즉결 심판이다냐.”
즉결심판?
떨리는 눈으로 나비를 보니, 나비가 반대 손으로 침대 밑을 가리켰다.
“!”
거기에는 옹기종기 모여서 머리를 박고 있는 다른 요정이 보였다.
분명 원산폭격이라는 자세였지.
요정의 수를 세었다.
하나, 둘, 셋, 와!
넷이나 있었다.
세상에, 동족이 네 명이나 있다니.
놀랍기도 하지만 분노가 먼저 샘솟았다.
‘헤르메스, 이 새끼! 날 속였어!’
분명히 자기에게만 좋은 정보를 준다고 속삭이지 않았는가. 그런데 왜 저기에 선객이 넷이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이 아일루로스와 슬라임은 왜 자는 척을 했을까.
뻔한 일이다.
함정이다, 함정에 빠져 버렸다.
“정말, 실망이에요.”
자는 척을 하던 소녀도 일어났다. 그러더니만 울상을 지으면서 요정을 보고 발을 동동 굴렀다.
“다섯 명이나, 다섯 명이나 왔는데. 죄다 강혁이 오빠 같은 요정뿐이에요! 왜 거래하지 않고 도둑질을 하려고 그래요?”
강혁이 오빠 같은 사람이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매우 욕같이 들렸다. 실제로도 욕으로 사용한 것이 확실하다.
슬라임과 아일루로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유 모를 모멸감에 요정이 얼굴을 붉혔다.
“아니, 잘 들어봐요. 금화 한 냥이면 충분히 비싸게 쳐준 거라고요. 요즘 금값이 말 그대로 금값이라 이만하면…….”
“뿌뿌. 아웃이다뿌.”
“즉결 심판이다냐.”
나비가 요정의 양팔을 잡아서 들었다. 그러자 자연히 만세 하는 모양으로 대롱대롱 매달리게 되었다.
영식이가 손을 뻗었다. 그러고는 손을 주걱 모양으로 만들어서 요정의 엉덩이를 마구 두드렸다.
“악악악악악악-!”
“나쁜 요정은 궁팡이다뿌.”
“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
“뿌뿌뿌뿌뿌뿌뿌뿌뿌.”
나비를 도와 이불의 먼지를 털던 실력으로, 신명나게 요정의 엉덩이를 두드렸다.
나비는 한참을 얻어맞은 요정을 잡아다가 침대 밑 친구들에게 데려다주었다.
“조용히 하고 머리 박아라냥.”
“히잉…….”
너도 왔구나, 라는 눈으로 보는 동족들. 요정은 한 방울의 눈물을 닦으며 머리를 박았다.
그런 요정들을 보고 은하가 한숨을 내뱉었다.
“에휴, 다들 나쁜 요정이에요. 착한 요정은 언제쯤 올까요?”
“뿌. 포기하지 말아뿌. 똥차 가고 벤츠 오는 거라고 했다뿌.”
“그거 그럴 때 쓰는 말 맞아요?”
“뿌? 사실 뭔 뜻인지는 모른다뿌. 냐는 알아뿌?”
나비도 앞발을 흔들었다.
“나도 모른다냐. 하지만 일단은 더 자는 척을 해보자냐.”
“맞아요. 아직 시간은 많이 있어요!”
“뿌뿌~ 알았다뿌.”
아이들은 꾸물꾸물 침대에 다시 누웠다. 다음 요정이 올 때까지, 끝말잇기라도 해야지.
* * *
소란스러운 윗층과는 다르게 1층은 제법 조용한 분위기였다.
은은하게 흐르는 재즈 음악과 향기로운 커피. 그리고 장기판을 사이에 두고 고민하는 두 청년.
태지는 가만히 장기판을 응시하다가 졸을 전진시켰다.
“장기, 잘 두시네요.”
“아버지가 장기를 좋아해서 나도 조금 둘 줄 알지.”
“저도 아버지가 장기를 좋아해서 꽤 뒀습니다만…….”
이 사람, 장기 되게 잘 두네.
태지가 떨떠름하게 볼을 긁었다.
승우는 슬쩍 보더니만 마찬가지로 졸을 움직였다.
“내 취미는 대부분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배웠지. 안 그런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만.”
“컴퓨터 게임은 안 하셨습니까?”
“음, 컴퓨터 게임보다는 몸을 움직이는 쪽이 적성에 맞았어. 그런 쪽의 욕구는 영화로 다 채워진 덕이겠지.”
“가상 게임은 어떻습니까?”
“흥미야 있었지만, 캡슐이 천만 원이 넘잖아. 일반 가정에서 쓰긴 좀 비싸지. 그러고 보면 너는 제법 집이 잘살았지?”
“아버지가 영관급 군인이시고, 어머니는 한복 디자이너시니까요. 유복한 편이었죠.”
이번에는 차를 움직였다. 수비적인 움직임이었는데, 전체적으로 말리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승우가 웃었다.
“흐흥.”
“어?”
역시 말리는 분위기를 쇄신하고자 억지로 움직인 차는 좋지 않았다.
즉시 반대편이 털려서 승우의 차가 한복판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걸 막으려면 일단 마를 움직이고, 으응, 마를 움직이면 저쪽의 아까 움직인 졸이 방해되는데.
어? 어?
“이거, 망한 거 같은데. 방금 차를 움직인 건 치명적인 실수였나요?”
“앞으로 팔 수 안에 끝나겠다.”
“으으, 졌습니다.”
“수고했어.”
태지가 어깨를 축 늘어트리면서 고개를 털었다.
이걸로 5연패.
못 이기겠다.
“사장님은 프로 기사 하셔도 되겠습니다.”
“이 정도로 프로는 무슨. 그나저나 슬슬 출출한데, 뭐라도 먹을까?”
“그러네요. 출출하긴 합니다. 아, 아이들은 괜찮을까요?”
태지가 걱정스럽다는 듯이 천장을 봤다. 아이들이 오늘 이빨 요정을 본다고 안 자는 것은 알고 있다.
승우도 있고, 나비도 있고.
영식이도 있다.
큰 문제야 없겠지.
사실은 은하도 이제는 경호가 필요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 싸우면 태지조차도 쉽게 제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노파심에 태지는 이렇게 나와서 경계를 보고 있다.
그 마음을 아니까, 승우는 웃으면서 태지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그럼 오빠로서 애들 요리라도 해주는 건 어때.”
“그건 좀… 제가 할 줄 아는 요리는 라면뿐입니다.”
“흐흥, 조금 실망인데. 요즘 세상에 요리 정도는 할 줄 알아야지.”
멋쩍게 태지가 뒷머리를 긁었다. 정말로 세상 분위기가 그렇다.
전반적으로 요리에 관한 관심이 높았다. 원래부터 사람들이 맛있는 걸 좋아하는 거야 당연한 일이지만, 이제는 맛없는 음식에도 관심이 높다. 이유야 당연히 이 사람과 백강혁 때문이다.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정말로 시간이 없어서요. 따로 배울 시간이 없네요.”
“백소향 씨에게 들었어. 전투 훈련 시간을 배로 늘렸다면서?”
“예. 아무래도 지켜줘야 할 사람에게 뒤처질 수는 없으니까요.”
은하보다는 강해져야겠지. 물론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안다.
주혁진의 피를 이은 천재가 이 세상 최고의 천재에게 가르침을 받고 있다.
은하의 성장 속도는 누구도 따라가지 못하겠지.
“하지만 불가능하더라도 그게 노력하지 않을 이유는 되지 못하죠.”
“으음, 멋진 말을 하는걸. 이 아저씨는 그런 말에 약하다고.”
승우가 씩 웃으면서 다시 한번 어깨를 두드리자, 태지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다시 생각해 보니 제법 멋들어진 소리를 해버렸다.
황급하게 몸을 추스르니 승우가 먼저 말했다.
“라면 이야기를 했더니, 라면이 먹고 싶어졌다.”
“아, 앗. 예. 저도 라면이 먹고 싶어졌네요.”
“애들도 라면은 좋아하니까, 야식으로 주면 되겠네. 좋아, 해볼까.”
주방에 들어서며 승우가 콧노래를 불렀다. 라면을 고르는 일은 참 중요한 일이다. 베이스가 되는 라면이 좋아야 튜닝하는 재미가 있다.
“흐음. 어떤 라면으로 할까나.”
승우가 좋아하는 전통과 역사의 스테디셀러. 푸라면은 매운 라면이라, 야밤에 먹기에는 좋지 않다.
왜냐면 맵고 짠 라면은 먹다 보면 저절로 물을 마시게 되어 있는데, 라면과 국물을 먹고 물을 잔뜩 마신다면 그만. 실례를 하고 만다.
은하와 나비, 영식이 중에서 이불에 지도를 자주 그리는 것은 의외로 영식이었다.
자기도 모르게 소화액을 쏴버리는 것은 슬라임의 습성 때문일까?
‘그럼 순한 맛 계통으로? 아니면 닭 육수 계통으로?’
뽀얀 국물의 꾸꾸면은 청양고추 맛이 기분 좋은 닭 육수 라면이다.
맵지는 않지만, 이쪽도 조금은 짠 편이라 물을 많이 마시게 된다.
그럼 짜장라면 계통으로 해봐?
의외로 승우의 고민이 길어졌다. 생각이 너무 많은 것이다.
잠자코 지켜보던 태지가 말했다.
“사장님, 아무래도 아이들이 오늘은 잘 생각이 없는 거 같습니다.”
쿵쾅쿵쾅, 또 위가 들썩인다. 새로운 요정이 들어온 모양이다.
역시 그놈도 날강도였는지, 엄청난 속도로 엉덩이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리 시끄럽게 굴어서야 확실히 잠자기는 글렀군.
승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은 일요일이니까. 아침까지 놀다가 자도 하루쯤은 괜찮겠지.”
원래 이렇게 몰래 놀다가 하루 밤새는 건 기억에 남는 재밌는 추억이 되게 마련이다.
딱히 만류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부추겨 주고 싶은 기분이다.
“좋아. 어차피 밤샐 거라면, 힘나고 맛있는 라면을 끓여주는 게 낫겠군.”
“아, 괴식은 아니군요.”
“괴식 라면이 먹고 싶은 거였어?”
“아뇨. 맛있게 부탁드립니다.”
“그럴 줄 알았어. 오늘은 내가 특별히 심술을 안 부리고, 맛있는 라면으로 해주지. 어디 보자, 응. 태지군은 지금까지 먹어본 라면 중에 제일 맛있었던 라면이 어느 거였어?”
맛있는 라면이라.
태지가 아련한 얼굴로 말했다.
“부모님이랑 같이 게임 할 때가 기억나네요. 이틀짜리 긴 레이드를 끝내고 급하게 끓여서 같이 먹은 라면이 최고였습니다.”
“오호, 그거 참 좋은데.”
“역시 좋은 추억이 있는 음식이 제일 기억에 남네요. 사장님은요?”
“나는 임용고시 보기 삼 일 전에 아버지와 낚시를 하면서 먹은 라면이 제일 맛있었어.”
“좋은 추억 때문이겠죠?”
“아니. 그날따라 낚시가 되게 잘돼서 오만가지 해물을 다 넣어서 끓였거든.”
“…….”
“그 동네 해녀분들이 지나가면서 이런저런 해산물을 또 추가로 주셔서 말이지. 말린 문어로 우린 육수에다가 전복을 넣었는데 맛이 없으면 사기지.”
“…….”
“그렇게 라면을 먹고 있으니 동네 이장님이 오셔서 굴도 주셨고, 새우도 주셨… 왜 그래?”
태지가 헛기침을 했다.
“아닙니다. 뭔가 살짝 사기당한 기분이 들어서…….”
“추억은 추억이고 맛은 맛이지. 한 그릇에 삼십만 원이 넘는 라면을 먹었는데 당연히 인생 최고 라면이지 않겠냐.”
“하지만 보통은 추억에 주안점을 두지 않냐고요.”
“요리사의 혀는 솔직한 법이야. 비싸다고 다 맛있지는 않지만, 대체로 비싼 것은 비싼 값을 한다고.”
“그럼 오늘 라면도?”
“응.”
기왕 먹는 라면이다.
화려하게 가자.
승우는 냉장고에서 갖가지 해산물을 꺼내기 시작했다.
새우, 전복, 꼴뚜기.
홍합과 바지락.
오징어와 문어.
그리고 대게-!
“이거 최고급 해산물이잖아요.”
“당연히 최고급으로 해야지.”
“이 대게 한 마리만 해도 삼십만 원이 넘겠네요.”
“눈썰미가 제법인데?”
“회장님을 모신 세월이 세월인지라, 눈만 높아졌죠.”
“고생이겠어~”
해물라면은 자칫 잘못 조리하면 비리고 짠 라면이 되기 십상이다. 조금이라도 위생 상태가 나쁘거나 신선도가 낮다면 비린내가 진동하고, 스프의 조절과 물 조절에 실패하면 짠맛 투성이에 소금 라면이 된다. 해물들은 원래부터 조금 짠맛이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승우가 그런 초보적인 실수를 할 리가 없지.
바로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요리의 완성은 빨랐다.
재료를 손질하고, 물을 끓이고 스프를 넣는다. 거기에 다시 재료를 넣고 면을 넣고 더 끓이기만 할 뿐인 단순한 작업.
실은, 요리라고 불릴 것도 없었다.
순식간에 라면을 다 끊인 승우가, 보기 좋게 한 그릇씩을 옮겨 담아 다섯 그릇을 만들었다.
한 그릇은 바로 태지에게 주었고, 자신이 먹을 것을 남겨둔 승우는 세 그릇을 쟁반에 올리고 아이들 방으로 향했다.
잠깐 노크를 하고.
“얘들아, 야식 먹을래?”
하고 물으니.
안에서는 재밌는 소리가 들려왔다.
“잡 보석 530㎏. 금괴 300개!”
“뿌뿌, 보석 530㎏이랑 금괴 300개 나왔다뿌.”
“토륨 주괴 260개!”
“토륨 주괴 260개 나왔다뿌!”
이 녀석들.
뭐 하고 있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