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388)
괴식식당-388화(388/613)
388화. 데이트 (4)
S급의 악마 게이트는 굉장히 드문 만큼 그 공략도 힘들어서 길드에게 하청 주지 않는다.
대신 수많은 전문가를 보유한 ISAC가 전담하는데, ISAC에서조차도 퍼스트 오더급이 아닌 이상 공략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안전을 위해서 최소 2명의 퍼스트 오더와 전속 팀을 파견하는 것이 ISAC의 규정이었다. 그러니 S급 악마 게이트는 데이트 장소로서는 상당히 부적절한 곳이었다만.
“흠, 디펜스 타입이네요.”
“지구에서는 이걸 디펜스 타입이라고 하는군요. 테라에서는 생존 유형이라고 하는데.”
게이트 공략의 달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국보급 헌터가 한 명.
그리고 게이트 공략의 신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귀환자가 한 명.
두 명의 파티였지만, 사람이 사람이다 보니 S급 게이트는 동네 뒷산보다도 안전한 곳이다.
아니, 일반인의 경우로 보자면 차라리 동네 뒷산이 더 위험했다.
뒷산에는 경사진 곳이 있어서 발목 골절의 위험도 있고, 야생동물도 있고, 나뭇가지에 살갗이 긁혀서 찰과상을 입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게이트는 어떠한가.
“꾸흐아아앙-!”
재밌는 소리를 내며 악마 추종자가 폭발했다. 몬스터의 내부에 마나를 때려 박아서 폭발시키는 선아의 기본 견제 스킬 마력폭진권의 효과다.
그것을 지켜보던 승우가 팔짱을 끼고는 개선점을 제안했다.
“마나를 내부에 침투시킨 후 폭발시킬 때는 정중앙보다는 조금 비스듬한 위치를 타격하는 게 좋습니다. 어지간한 몬스터는 인간처럼 심장 같은 기관이 있는데, 녀석들도 마나는 그런 기관에 보관하거든요. 그쪽을 타격하면 폭발력이 더 상승할 겁니다. 오로바스의 추종자는 심장이 인간보다 조금 오른쪽 아래에 있네요.”
“아, 아아. 이해했어요. 그럼 이렇게 하란 말이죠?”
또 하나의 악마 추종자가 폭발한다. 이번에는 확실히 아까보다 폭발이 거셌다. 승우가 싱긋 웃었다.
“훌륭합니다. 습득이 빠르시군요.”
“헤헤헤, 승우 씨가 잘 가르쳐 줘서 그래요.”
지구식 게이트 구분법으로는 디펜스. 테라식으로는 생존.
일정 시간까지 끊임없이 쏟아지는 악마를 상대로 버티고 버티다 보면, 게이트의 주인이 나타난다.
그 주인을 쓰러트리면 코어가 나타나서 탈출할 수 있다.
쉬지 않고 싸워야 하고, 적은 강하다. 그런데 사방에서 몰려오기까지 한 까닭에 수많은 게이트 유형 중에서 어렵기로 이름 높다.
심지어 이 게이트는 S급인데, 지형이 대초원이기도 하다. 엄폐물은 없고, 적의 발을 묶을 수단조차 없다. 하반신이 말과 비슷한 악마이기에 기동력까지 빠르다.
S급 중에서도 최상급으로 어려운 게이트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어려운 게이트에서도.
“좋아하시는 차라도 있으십니까?”
“커피만 아니면 뭐든 좋아요.”
“커피가 싫다면 제가 좋아하는 차로 준비하지요. 달콤? 씁쓸?”
“달콤이 좋아요.”
이들은 여유가 넘쳤다.
“흐흥♪”
콧노래를 부르며 대초원 위에 의자와 테이블을 설치한다. 푸른 초원과 잘 어울리도록 자연의 향이 가득 풍기는 가구가 좋겠다.
신목으로 만든 테이블과 통나무 의자면 딱이지. 통나무 의자를 두 개 설치한 다음에는 다기(茶器)의 선택이다.
노란색의 차를 마실 생각이니까, 색이 부각될 수 있도록 하얀 다기가 좋겠다.
다기를 꺼내고는 이제 차를 꺼냈다. 올림포스산 정상에서만 자라는 단풍나무. 천상의 황금수 잎을 정성스럽게 말린 티백이다.
이 차는 심신 안정에 탁월한 효과가 있어서 만년 발정기인 제우스의 발정기를 진정시키기 위해 헤라가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걸로도 제우스의 바람기는 가라앉지 않아 실패한 모양이지만.’
적어도 맛과 향.
그리고 효과는 훌륭하다.
끓는 물은 마법으로 하거나, 마력으로 데우면 그만이지만. 그래서야 운치가 없다.
‘드디어 써보는군.’
승우는 인벤토리에서 고양이 앞발 모양의 캠핑 버너를 꺼냈다. 슈퍼의 경품으로 받은 물건이지만 디자인이 귀여워서 언제 한번 써보고 싶었다.
물을 끓이고, 찻잔에 천천히 흘린다. 급하게 물을 부으면 황금수의 잎이 손상되며 쓴맛이 나게 된다.
진짜 제대로 마시려면 죽을 정도로 쓰게 만들어야 하지만, 평범한 사람은 데이트 중에 상대방에게 괴식을 먹이지 않는다는 상식을 어제 배웠다.
황지현과 은하가 좌우로 지겹게 말해서 귀에 아주 인이 새겨졌다. 되도록 맛있는 차를 대접해야겠지.
차의 준비가 끝난 승우가 싸우는 중인 선아에게 손짓했다.
“차 한 잔 하세요.”
“하지만 아직 몬스터 웨이브가.”
“괜찮아요.”
“몬스터가 저렇게 쌓여 있는데요.”
“괜찮다니까요.”
승우가 웃으며 몬스터를 봤다.
“괜찮지?”
“…….”
안 괜찮다고 하면 이 자리에서 전부 다 죽는 걸까. 흥분한 머리에 폭포수를 끼얹듯이 악마 추종자의 광신으로 마비된 이성이 순식간에 원래의 이성을 찾았다.
머릿속을 날카로운 칼날이 후비고 간 듯하다. 죽음의 공포가 밀려온다. 녀석들은 서로 눈치를 보다가 주춤주춤 물러섰다. 그러고는 다소곳하게 멀리 떨어진 곳에 앉아서 기다리기 시작했다.
“응. 봐요. 괜찮잖아요.”
“시선만으로 몬스터의 어그로를 정리할 수 있다니, 멋지네요.”
“언젠가는 선아 씨도 할 수 있게 될 겁니다.”
“그럴까요?”
“분명히 언젠가는.”
“그랬으면 좋겠네요.”
“자, 우선은 천천히 쉬면서 전투 방식을 조금 교정해 볼까요.”
전투 방식을 교정한다. 천하의 문선아에게- 교정을 한다?
다른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면 건방지다고 하늘의 별로 만들어줬겠지만, 승우가 하니 조금도 어색하지 않았다. 선아는 그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며 차를 마셨다.
차는, 매우 달고 맛있었다.
***
그날 저녁.
지현이 맥주잔을 입에 댄 채.
눈을 깜빡였다.
어처구니가 없다는 눈이다.
“저, 언니, 제가 지금 뭔 이야기를 들은 건지 모르겠는데요.”
“오늘 데이트 진짜 좋았다구.”
“예? 예?”
내가 잘못 듣고, 잘못 이해했나?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서.
몬스터를 흠씬 패 버리고.
더 잘 패는 법의 강의를 듣고.
그냥 나왔다는 걸로밖에 안 들리는데, 좋았어?
“선생님이 진짜 잘 가르치더라. 나도 내가 안 좋은 습관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어. 지적받는 대로 고치니까 효과가 눈에 보이는데 정말 깜짝 놀랐다니까. 헤헤.”
“…….”
부르는 호칭이 승우 씨에서 선생님으로 변했다. 본인은 자각이 없는 건가. 떨떠름한 얼굴로 황지현이 되물었다.
“유 사장님이 언니의 전투 방식을 교정해 주고 난 후에는요?”
“바로 몬스터와 싸워서 실전에서 테스트했지. 그걸 한참 반복하니까, 오로바스가 나타났는데.”
“혹시 걔도 자살했나요?”
“선생님이 노려보니까 한참 나랑 싸워주더라.”
순간 황지현이 연상한 것은 쿵푸도장에 있는 목각인형이었다. 격투가들은 훈련을 위해서 목각인형을 친다. 실전과 최대한 비슷한 감각을 내기 위해서다.
승우가 설마?
“악마를 협박해서 실전훈련용 목각인형으로 쓰다니 이게 뭔.”
“그렇게 한 시간쯤 싸웠나? 악마가 울먹거리다가 자살했어. 응, 결국 자살하긴 했네.”
“…….”
스멀스멀하고 올라오는 예감.
이런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
눈치 빠른 황지현은 순식간에 사태의 핵심을 짚어냈다.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악마가 자살하는 현상. 이 기괴하기 짝이 없는 일의 원인은 승우다.
‘그냥 그 사람이랑 싸우는 게 무서워서 자살하는 거였구나. 왜 자살하나 했네.’
덕분에 의문이 풀렸고, 조금 악마에게 동정심이 들었다.
어지러운 머리를 꾹꾹 누르면서 선아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녀가 재잘재잘 말했다.
“그리고 데이트가 끝나니까, 선아 씨에게는 이게 어울릴 겁니다. 라면서 무기를 주는 거 있지. 활이 될 수도 있고, 망치도 될 수 있는 무긴데, 내가 활은 처음이잖아? 그래서 조금 미심쩍었는데 막상 써보니까 딱 좋은 거야. 나 활이랑 진짜 궁합 좋더라.”
“언니가 활이요? 근접 전문가시잖아요.”
“화살에 마력을 담아서 터트려본 건 처음인데, 되게 잘 통하더라고. 처음 써봤는데, 쏘자마자 딱 감이 왔어. 소름이 돋을 정도로 나한테 맞아. 그런 무기를 선물하다니 어쩜 이렇게 로맨틱한지! 승우 씨는 얼굴만 잘생긴 게 아니라 완전 스윗해. 가르쳐 주는 것도 상냥하고.”
“…….”
로맨틱이랑 스윗이 다 얼어 터졌냐. 황지현은 욱 하고 치밀어 오르는 반론을 꾹 눌렀다.
‘무기를 줘??’
보통 데이트가 끝날 때는 무기가 아니라 꽃다발을 준다. 첫 데이트부터 꽃다발은 조금 과하지만, 어쨌든 그런 상식적인 선에서 주는 게 선물이다.
‘분명히 어제 유 사장님에게 데이트가 끝날 때는 선물을 주는 게 상식이라고 가르쳐 줬는데, 정확하게 꼬집어서 꽃다발이라고 해야 했나? 아니, 내가 무기를 줄 줄 어떻게 알아.’
무기를 주는 것은 상식 저편의 일이다. 백강혁조차도 그렇게까진 안 할 텐데…….
아마도.
승우는 어떤 부분에서는 백강혁보다도 궤멸적으로 상식이 부족했다.
하지만 선아의 반응을 보니, 확실히 그는 그래도 되는 사람이었다.
‘오더의 얼굴로 그런 짓을 하면 질색하겠지만, 유 사장님의 얼굴로 그렇게 하면 로맨틱이고 스윗이 되는 거구나. 망할 외모지상주의 같으니.’
역시 얼굴이야.
황지현은 그렇게 결론을 지었다.
“그래서 언니, 이번에는 그냥 게이트 공략만 하다가 끝이에요?”
“데이트 이후가 있어?”
“뭐 좀 더 친해졌다던가, 다음의 약속을 잡았다던가.”
“전혀 없는데?”
“그럴 줄 알았어요.”
연애도 해본 사람이 잘한다. 양쪽 다 처음 하는 건데 뭘 알겠나. 박수란 양쪽의 손바닥이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서로 시원하게 허공에 스윙하고 있는데 뭔 놈의 소리가 날까.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선아는 선아대로 데이트가 재밌었으니 그걸로 끝. 스포츠맨 같은 정신으로 시원하게 즐기고 그걸로 끝이다.
승우는 승우대로 새로운 취미 생활이라도 발견한 느낌이겠지.
“언니가 솔직히 재능으로는 어디 가서 안 빠지니까.”
“응응응? 칭찬하는 거야?”
“칭찬하는 거면서 비웃는 거기도 해요.”
“뭐야? 뭐야?”
승우의 본질은 교사다.
남 가르치는 일을 무진장 좋아한다. 그런데 그의 눈에 차는 학생이 몇이나 되겠는가. 선아는 보기 드물게 가르치는 맛이 있는 학생이니, 가르치는 게 재밌었겠지.
그런 의미에서 취미가 하나 늘어난 것에 불과하다. 연애? 연애?
“모쏠들이 무슨 연애야. 언니나 사장님이나 연애는 글렀네요.”
데이트의 여운에 빠져서 생글생글 웃던 선아의 표정이 굳었다.
“그러는 너는.”
“제가 왜요?”
“너 슈퍼스타 꼬맹이랑-!”
“그 이상 나랑 오더 엮으려고 하면 아무리 언니라고 해도 화낼 거예요. 선 넘지 마요.”
“찔리는 게 있으니까.”
“…….”
“와웅. 얘 좀 봐.”
다리에 진짜로 마나를 모으고 있었다. 못 보던 사이에 언제 저리 강해졌는지, 다리에 모이는 번개의 마력이 심상치가 않다.
선아가 입을 삐죽 내밀면서 맥주를 홀짝였다.
“근데 너 정말로 코트 입어보지 않을래?”
“언니까지 그러면 저 앞으로 언니 안 봐요. 안 입어요.”
“하지만 실력이 너무 아깝다. 진짜 아깝다. 그럼 특기부라도.”
“어차피… 어? 잠시만.”
“왜?”
폰을 확인한 황지현의 눈동자가 커졌다.
“S급 게이트가 발생했어요,”
하루 만에 S급 게이트가 두 개?
선아가 황급하게 일어섰다.
“위치가 어디야. 내가 갈게.”
“아, 그래도 언니가 나설 일까진 아닌가 봐요.”
“왜?”
“오늘은 오더랑 민 씨가 휴가잖아요? 언니도 휴가였고.”
“그렇지.”
사유는 다 데이트였다.
강혁은 둘의 데이트를 방해하러.
민은 데이트 방해를 저지하러.
선아는 데이트하러.
어쨌든 주요 전력 셋이 죄다 데이트로 쉬는 날이었다.
“그래서 블랙 호크가 대기하고 있었는데, 마침 딱 순찰 중에 게이트가 생겨서 바로 진입했다네요.”
“블랙 호크, 윤은형 꼬맹이인가. 꼬맹이 혼자서 S급 게이트 처리가 되겠어? 거들어줘야지.”
“완전 무장 상태고, 어차피 악마 게이트라니까. 또 자살하겠죠. 그럼 큰일이야 있겠어요?”
“그럴까나……. 한 잔 더?”
“한 잔 더. 콜.”
둘 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맥주잔을 들었다.
실제로도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악마와 윤은형에게는 심각한 일이었다. 특히 악마에게는.
***
“또냐! 또! 왜!? 왜 나만 이러는 건데! 벌써 열세 번째야!”
페넥스가 울부짖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