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398)
괴식식당-398화(398/613)
398화. 혁명과 반역의 별 (1)
사라졌었던 오십일만 명의 혁명가들이 대체 무엇을 봤는가.
많은 사람이 의문을 품었지만, 의문은 해소되지 않았다.
그들이 하나같이 ‘착하게 살아야지’, ‘혁명의 이름은 함부로 품으면 안 돼’, ‘이웃을 사랑하자’ 따위의 말을 하며 성실하게 살기 시작한 까닭이다.
어르고 달래도 그때의 일은 말하지 않으니, 주변 사람들만 답답할 수밖에. 어쨌든 그렇게 반동분자, 테러리스트들은 삶의 방향성을 바꿨다. 덕분에 세상은 조금 더 평화로워졌다.
잘됐구나, 잘됐어.
“진짜로 이런 결말이어도 되나?”
주혁진이 망연자실하게 중얼거렸다. 수없이 떠오르는 정보와 정보의 해일 속에서 내린 결론이 이거다. 지구가 좀 더 살기 좋아졌음.
그야 테러리스트들이 이웃의 착한 친구가 되었으니 더 살기야 편해졌지. 결론은 알겠다만, 이래도 되나 싶은 마음이 더 강하다.
아서 시스템이 대꾸했다.
“주인, 통제 불가능한 상황을 보면 미쳐 버리는 것이 컨트롤프릭 증세고, 주인이 중증의 컨트롤프릭 환자인 것은 안다. 하지만 등록된 한국어 사전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
“뭔데?”
“좋은 게, 좋은 거다.”
“…….”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흘려 넘기는 게 좋다.”
AI 주제에 뭐라는 거야.
울컥한 마음에 뭐라고 하려던 주혁진은 반박을 포기하고 눈가를 꾸욱 눌렀다.
피로가 몰려온다.
이젠 킬러맨시 에이드로도 안 되는 거 같아. 밀려오는 피로감과 허탈감, 다 던져 버리고 게임이나 하고 싶은 마음과 집에 가서 은하의 볼따구살이나 만지고 싶은 마음이 회오리친다.
“아, 진짜 은하 보고 싶다.”
주혁진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정말이지, 요즘 세상은 이해가 안 된다니까.
이해할 수 없는 걸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격언을 떠올리며, 그는 오랜만에 잠을 청했다.
그리고 10분 후.
그의 잠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아서 시스템의 모든 감시 시스템이 작동했다.
화면 가득한 붉은색의 경고를 보며, 주혁진이 눈을 부릅떴다.
“이런 미친.”
* * *
백강혁의 하루는 바쁘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가벼운 목욕과 식사를 마치고 스트리밍을 켠다.
그리고 전 세계의 신도들과 같이 아침 기도를 한다. 교황으로서 아침 미사를 마치면 다음은 퍼스트 오더로서 ISAC의 A섹터 지부로 출근이다.
출근하면 우선은 가볍게 순찰을 나서고, 이변이 생기면 게이트에 투입된다.
A섹터는 세계 3대 마경이라 불리는 곳이기에 하루에 최소 열 개에서 최대 오십 개까지의 게이트가 생긴다. 그중 20%가량이 백강혁의 몫으로 떨어진다.
신나게 싸우고, 싸우고, 싸우다 보면 해가 진다. 해가 진다고 게이트가 사정을 봐주지는 않지만,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휴식이 필요하다.
A섹터에는 세 명의 퍼스트 오더가 있으니, 삼 일에 한 번은 야근이고, 남은 두 번은 집에 갈 수 있다.
집에 가는 길에는 반드시 용사의 식당에 들른다. 저녁 6시만 되면 가게 문을 닫지만, 몇몇 헌터들은 문을 닫아도 들어갈 수 있는 특혜가 있다. 사실은 그냥 승우가 봐주는 것에 불과하지만 문전박대는 안 당하니까 특혜라면 특혜다.
그렇게 괴식을 먹고, 빵빵한 배를 두드리며 집에 들어가면 9시다.
이제부터는 드디어 자유 시간.
스트리밍을 켜서 저녁 미사를 드리고, 고민 상담을 받아주고, 가끔은 신상을 깎는 모습을 라이브로 중계한다. 그렇게 12시가 되면 이제는 훈련의 시간이다.
훈련과 실전은 별개의 것이다. 흔히들 실전만 한 훈련은 없다지만, 실제로는 훈련을 하지 않으면 실력이 엄청난 속도로 떨어진다.
살기 위해서 임기응변을 발휘하고 발악하다 보면 안 좋은 버릇이 몸에 남는다. 그 흔적을 훈련해서 원래대로 교정해야 한다.
가르침을 떠올리며 혼자 훈련할 때가 대부분이지만, 일주일에 세 번은 반드시 크라이의 도장에 들러서 수업을 받는다.
임페리얼 오크 기준으로는 평범한 훈련이라지만, 인간의 기준으로는 죽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 개빡센 수업이라, 갈 때마다 살이 10㎏씩 빠진다. 그러니까 부지런하게 먹어서 살을 채우는 것도 일이다.
그렇게 투덜거렸더니 황지현은 로우킥을 냅다 갈겼다만…….
그렇게 훈련이 끝나면 새벽 3시.
각성자용 초고칼로리 아이스크림을 퍼먹으면서 검색엔진에 자신의 이름을 적고, 반응을 확인.
댓글 조작도 하고, 자신의 기사에 빠짐없이 좋아요를 박는다.
가끔 악플을 발견하면 날을 새서라도 반박하고, 키보드 배틀을 벌인다. 이러다 보니 잠드는 시간은 대체로 새벽 5시쯤이다.
그리고 아침 7시. 2시간의 수면을 끝내고 기상.
이것이 백강혁의 하루다.
백강혁은 오늘도 루틴에 맞춰서 몸을 움직였다. 오늘의 특이사항은 일주일에 세 번 있는 크라이와의 훈련 날이라는 것.
널찍하고 튼튼하게 지어진 도장 안으로 들어섰다. 무의 시작은 예로 시작하여 주먹으로 끝난다.
예(禮)란 인사가 중요한 법. 강혁은 오른손으로 왼쪽 가슴팍을 두 번 치는, 오크식 인사를 하며 입을 열었다.
“따거, 저 왔어요. 응? 오늘은 손님도 있네요.”
평소처럼 도장에 정좌하고 있는 크라이의 옆에 널브러진 남자가 있다. 따거의 친구겠거니, 하고 지나치려는데 실루엣이 굉장히 낯이 익다.
뒤적뒤적하더니 놈이 몸을 일으켰다. 반짝반짝한 금발머리, 염색한 백강혁과는 다르게 진짜 금발이다. 긴 귀, 엘프군. 잘생겼다. 마음에 안 들어, 나보다 잘생긴 놈은 다 죽었으면 좋겠다. 따위의 생각을 하며 보고 있으니 놈이 말했다.
“따거어? 뭐야, 싹수가 있다 싶었는데 크라이 네 제자였어?”
“내 제자이기도 하고, 승우의 제자이기도 하지. 아는 사이냐?”
“지난번에 슬쩍 봤었지. 인상적이었어.”
“네가 인상적이라고 하면 꽤나 불안해지는데 말이야…….”
크라이가 인상을 쓰고, 테오는 웃었다. 백강혁은 빤히 테오를 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누구시더라?”
“기억 못 한다니, 굉장히 섭섭한걸. 나만큼 눈에 확 들어오는 엘프는 드물 텐데.”
“제가 엘프 친구는 없는디…….”
테오가 다가와서 강혁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러고는 씩 웃으면서 말하길.
“멋진 혁명 혼이었어. 자네도 혁명하지 않겠나?”
“아, 아아아아아아! 그때의 그!”
“맞아, 인사하지. 나는 혁명과 반역의 신. 테오도르라고 하네. 보다시피 크라이의 친구고, 승우의 친구지.”
“…….”
보통 사람이라면 ‘신이라고? 이거 대박 미친 놈 아냐?’ 하고 경계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백강혁은 보통 사람도 아니었고, 이래저래 상당히 많은 신을 보아왔다.
아레스와는 의형제를 맺기도 했다.
승우의 영압에도 버텼고, 오래 신들의 곁에 있다 보니 내성이 굉장히 쌓여 있었다.
그래서 신이라고 하길래, 그렇구나, 라고 생각했고. 역시 싸장님의 인맥은 끝내주네, 까지 도달했으며, 종국에는 ‘역시 검과 승리, 괴식의 신을 모시는 내가 친하게 지내려면 신은 돼야 급이 맞지’까지 생각이 닿았다.
태연하게 악수를 하며 백강혁이 미소를 지었다.
“반갑습니다. 검과 승리, 괴식의 신을 모시는 화신 백강혁이라고 합니다.”
“뭐? 이 자식, 끝내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잖아. 잘도 그 까다로운 녀석의 눈에 들어 화신 하고 있구나.”
“제 신과도 잘 아는 사이신가 봅니다?”
“죽고 못 살지. 아주 그냥, 내 영혼의 반쪽이라고나 할까.”
영혼의 반쪽이라고?!
백강혁이 꾸벅 허리를 숙였다.
“혀,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음음, 좋아, 좋아.”
품평하듯, 테오의 시선이 위로, 아래로 이동했다. 그러고는 휘파람을 불면서 감탄했다.
“아니, 그 녀석이 어떻게 이런 화신을 구했지. 나나 크라이도 이런 화신은 못 구했는데, 잘도 구했어. 어떻게 생각해, 크라이?”
“확실히 이 녀석은 유능하지. 레나토도 이 녀석에게 몇 번 물먹었다고 하더라.”
“레나토가? 그래. 그래 보인다. 이 자식 능력은 진짜 이상하네.”
신의 눈으로 봐도 백강혁의 능력, 슈퍼스타는 어째서 저렇게 생겨 먹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사람을 감별하는 스킬을 가진 승우조차도 본질을 이해 못 했으니, 당연한 일. 감탄하면서 보던 테오가 입술을 핥았다.
“이거, 매력적인데. 아주 매력적인 혁명 혼이야.”
“칭찬 맞죠?”
“칭찬이지, 당연히. 이렇게 활활 타오르는 순수하고도 아름다운 혁명과 반역의 혼은 오랜만이야.”
“예? 제 안에 그런 게 있던가요?”
“혁명과 반역의 신 앞에서 마음은 숨길 수 없지. 자자, 내 눈을 바라봐, 너는 혁명하고 싶어지고. 내 눈을 바라봐, 넌 반역하고 싶어지고. 내 눈을 바라봐.”
홀린 듯, 백강혁은 테오의 눈을 봤다. 깊고 깊은 푸른색의 눈.
그 안에 흐르는 붉은 깃발과 활활 타오르는 불꽃. 농기구를 치켜들고 소리치는 농부들, 곡괭이를 들고 열망하는 광부들.
나라의, 만국의, 지구의, 이름 모를 차원의 노동자들.
“윽.”
백강혁이 크게 휘청거렸다. 최면술에 제대로 당했다. 백강혁은 엄청난 정신방어막을 가진지라 본래라면 당하지 않았을 테지만, 마음에 혁명과 반역의 의지가 있는 한 테오의 권능이 수십 배는 더 강하다.
멍하니 있는 백강혁에게 테오가 물었다.
“무엇을 봤지?”
“혁명, 크고 뜨거운 혁명의 불.”
“그리고.”
“반역, 거세게 부는 반역의 바람!”
“지금 너의 욕망은 무엇이지.”
“돈-! 돈-!”
거, 엄청나게 저열한 열망이군.
크라이가 중얼거리자, 백강혁이 시무룩하게 어깨를 늘어트렸다.
그러자 테오가 화를 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돈보다 더 중요한 열망이 어디 있다고 그래! 자부심을 품어라, 노동자여! 일하면 일한 만큼의 보수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해가 뜨면 날이 밝고, 해가 지면 밤이 되는 것처럼 일하면 그만큼의 대가가 와야 함은 자명한 이치!”
“…그렇죠?”
“무상 노동-! 임금 동결-! 공짜로 노동자를 부려 먹는 것이 권력자가 추구하는 최고의 이치임은 알고 있으나, 그렇기에 용납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혁명의 시작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 반역의 시작은 권력자에게 자신의 무기를 치켜드는 것이다. 자, 생각해 봐라. 너의 부당함을! 떠올려라! 너의 분노를!”
“내, 분노… 임금, 동결.”
백강혁은 100위였던 자신의 순위를 최근 빠르게 상승시켰다. 퍼스트 오더는 13위부터는 아예 대접이 다르다. 하지만 그 바뀐 대접을 전혀 받고 있지 못하다.
“나는 11위, 민은 10위. 근데 월급은 어째서 민이 8배 많은 거야…….”
“어째서라고 생각하느냐, 어째서 권력자가 너의 임금을 동결시켰다고 생각하느냐!”
“몰라, 아무도 몰라. 대머리도 모른다고 했어.”
“권력자가 너의 권리를 착취했다면, 너는 어떻게 하고 싶으냐.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내 돈 내놔. 월급 줘요, 총장님. 신상값 내야 해. 이러다가 또 차 팔아야겠어. 총장님 나빠요.”
“너의 분노는 정당하다. 혁명과 반역의 신인 내가 인정한다. 너의 월급 동결 문제는 부당하다. 내가 그리 선언하겠노라.”
광기, 광기가 치솟는다. 만나서는 안 될 두 사람이 만났다.
테오가 양팔을 벌려 백강혁을 끌어안았다.
“나아가라, 아들아! 진군하라, 아들아! 나의 피인 혁명을 나눠 받고, 나의 눈물인 반역을 받아 돌진하라! 너의 권리를 쟁취하라! 나는 혁명과 반역의 신. 혁명과 반역을 주창하는 자의 신이며, 그들의 무기, 그들의 방패가 될지니!”
테오로부터 엄청난 불꽃이 휘몰아쳤다. 그 불꽃은 백강혁에게 빨려 들어갔다. 혁명과 반역의 신의 가호가 깃든 것이다. 강자에게는 의미가 없으나, 약자가 강자를 상대할 때 무한정 강해질 수 있는 가호다. 백강혁의 눈으로부터 붉은 불꽃이 타올랐다.
“으오오오오-! 월급 동결 풀어주세요-! 총장님-!”
한줄기의 불꽃이 되어, 백강혁이 하늘 높이 날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