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399)
괴식식당-399화(399/613)
399화. 혁명과 반역의 별 (2)
이날, 리히텐슈타인의 밤하늘은 붉었다. 달을 가르고 떨어지는 한줄기의 붉은 유성.
한국에서 발사된 백강혁은 불과 수 초 만에 리히텐슈타인에 도달했다. 제일 먼저 반응한 것은 대공 방어 시스템이었다. 리히텐슈타인의 고층 빌딩 옥상에 빼곡하게 설치된 곡사포가 불을 뿜었다.
본래부터도 한 발 한 발이 전차를 꿰뚫고 폭격기를 떨구는 강화 포탄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최첨단의 과학 기술로 만들어진 포탄에는 붉은 스티그마가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다.
지구에 표류한 표류자 중 하나, 레드후드 고블린 샤먼이 새겨 넣은 고블린 문자다.
그들의 언어로 아프다, 엄청 아프다, 잘 맞는다, 빠르다, 무진장 빠르다, 어떻게든 맞춘다, 맞으면 죽는다 따위의 문자가 빼곡하게 새겨진 이 포탄들은 보통의 포탄과는 격이 다른 성능을 자랑했다.
샤먼이 새긴 그림에는 힘이 깃든다. 그러니까, 인첸트다.
초당 200발. 첨단 과학 병기와 고블린 샤머니즘이 결합된 +9강 포탄이 하늘을 수놓는다.
미국이 자랑하는 최신예 스텔스 전투기조차도 1초면 걸레짝을 만들 수 있는 화력이다.
그런 화력을 상대로도, 백강혁은 물러섬이 없었다.
“지키련다~ 내 월급~! 해골이 두 쪽 나도 지킨다~! 혁명의 깃발 아래 뭉친~ 나~!”
묘한 노래를 흥얼거리며 백강혁이 양팔을 휘둘렀다. 바람을 가르고 진공의 칼날이 무수하게 날아간다.
마법의 힘을 휘감은 +9강 포탄이, 고블린 샤먼의 신앙이 무색하게도 갈기갈기 찢어진다.
강습 저지 실패, 대공 방어 시스템이 빠르게 백기를 들었다. 녀석의 GG 신호를 받아 리히텐슈타인의 방위 시스템이 바톤을 넘겨받았다.
양자컴퓨터가 상황을 분석한다.
주혁진이 머무는 곳은 리히텐슈타인 지하 깊숙한 곳의 벙커.
저 의문의 붉은 유성이 지면에 처박히면 큰 참사가 나온다. 최선의 방책은 녀석의 지하 돌입을 저지하는 것. 지상 충돌을 억제하는 게 급선무다.
[2차 방어선 작동.]신호등으로 위장했든, 바리케이드로 위장했든, 우편함으로 위장했든 방어 시설이 모습을 바꾼다.
그것은 포획기였다.
페카라고 불리는 거미가 만들어 내는 거미줄에 그래핀과 텅스텐, 나일론 등을 배합하여 만든 그물망을 초고속으로 발사한다.
이 정도의 숫자가 모이면 이론상 알기라스가 네 번 진화한 초거대 개체, 엘기라스조차도 저지할 수 있다.
그런 거대 공룡조차도 저지할 수 있으니 지금 강습해 오는 인간쯤이야.
방위 시스템의 판단으로는 저놈을 포획기로 저지할 확률이 99.5%에 달했다.
백강혁의 시야가 새하얗게 변했다. 수백 개의 포획기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거미줄이 시야를 메운다.
볼링공에 급브레이크를 걸 듯, 거미줄이 백강혁을 막는다. 하지만.
“혁명의 불꽃 앞에, 이깟 거미줄이 대수일까-!”
혁명의 속성은 무엇인가, 불꽃이다. 노동자의 의지, 분노, 울분은 붉은색을 띠고, 붉은색은 곧 불을 의미한다.
백강혁이 가진 불꽃에 대한 높은 적성은 혁명과도 일치하여 엄청난 시너지를 보였다.
마치 혁명과 반역을 위해서 태어난 게 아닐까 싶은 남자, 백강혁.
그런 백강혁이 두른 것은 혁명의 불꽃. 불꽃은 거미줄을 녹인다.
2차 방어선은 아주 잠깐도 그를 막지 못했다.
0.5% 당첨.
방위 시스템이 사람이었다면 비명을 질렀을 것이다. 하지만 녀석은 사람이 아니었기에, 비명 대신 경고등을 울렸다.
벌떡- 하고, 잠깐의 꿀잠을 자던 주혁진이 일어났다.
* * *
쿠웅- 하고 대지가 울린다. 리히텐슈타인의 지면에 묻어둔 강화 합금과 백강혁이 충돌하는 소리다. 온 지하 벙커가 흔들리는 파괴력. 주혁진은 흔들리는 책상을 잡으며, 정신 줄을 붙잡으려 했다.
“이게 뭔 미친 상황이야!?”
화면에 붉게 방위 시스템의 GG 문자가 연달아 떠오른다.
지하 벙커의 방위 설비는 총 20단계. 지상 충동을 저지하려다가 실패한 2단계를 시작으로 하여, 몸을 일으키는 사이 4단계까지 단숨에 붕괴했다.
고룡의 습격을 상정하고 만든 방어 시스템이, 이리도 무력하게? 경악하면서도 주혁진은 생각을 이어갔다.
생각을 멈추면 죽는다, ISAC의 생존 수칙 1조항이었고, 주혁진의 신조이기도 하다. 그는 세계 최고의 사고 가속 능력자였다. 1초면 책 한 권을 통으로 읊을 수 있을 만큼 생각을 빠르게 정리할 수 있다.
잠들었다가 막 일어난 최악의 상태였지만, 그는 정신 줄을 잡았으며 곧 상황을 읽었다.
“백강혁, 이 미친놈이 월급 동결시켰다고 테러를!?”
스크린에 백강혁의 모습이 보인다. 이마에는 불타는 붉은 머리띠를 메고, 불꽃의 날개를 펄럭이며 천천히 자유낙하 중이다.
그 두꺼운 합금 벽을 벌써 녹였단 말인가. 저 패기 넘치는 작태에 위장이 따끔거린다.
손톱을 잘근잘근 물어뜯고 있으니 아서 시스템이 말했다.
“방위 설비 5단계 작동, 긴급 소환 프로토콜 온라인, 검성-이시형 공간 이동 개시.”
긴급 소환 프로토콜은 대외적으로는 한 번도 공개한 적이 없는 기능이다.
수십 명의 공간 이동 능력자를 모아, 그들의 혈액과 모발 등으로 만들어낸 특수한 오브젝트를 제작. 이 오브젝트를 가지고 있는 자를 원격으로 소환해 낸다.
그걸 위해서 공간 이동 능력자를 모은 센터도 만들었다.
ISAC 총장이 있는 지하 벙커가 직접적으로 공격당하고 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긴급 소환 프로토콜.
지금 소환할 전력이라고 한다면 당연, 퍼스트 오더 랭킹 1위 이시형이겠지.
합리적으로 만들어진 시스템이 합리적으로 작동했다. 하지만 결과까지 합리적이진 않았다.
주혁진이 눈을 크게 뜨며 프로토콜의 취소 키를 연타했다.
“소환하지 마! 하지 마!”
“어째서인가, 주인. 검성이 설마 슈퍼스타에게 지진 않겠지.”
“야, 이 빡대가리 AI야, 저게 그냥 백강혁으로 보여?!”
그 말대로였다.
지금의 슈퍼스타 백강혁은 그냥 슈퍼스타 백강혁이 아니었다.
혁명과 반역의 슈퍼스타다.
혁명과 반역의 별은 강적을 만나면 더더욱 빛나리니…….
* * *
긴급하게 소환된 이시형이 검을 뽑으며 백강혁을 향해 달렸다. 지시 사항은 빠르게 전달받았다.
지하 벙커가 습격당했고, 습격한 테러리스트는 백강혁이다. 어째서 일이 이렇게 됐는지 인과관계는 모르겠지만 적이 누군지만 알면 검사는 그걸로 족하다.
“저놈도 스승님의 제자였지. 동문 대결은 썩 내키지 않지만, 일에 사감을 두진 않겠다.”
이시형의 검이 마력의 번개를 둘렀다. 승우에게 배우기 전부터 스스로가 만들어낸 검술, 검성기다.
자력으로 검성기를 깨우친 이 천재는, 승우와의 만남으로 벽을 넘었고 예전보다도 곱절은 강해졌다.
지금이라면 당당하게 자신이 지구 최강이라 말할 수 있겠지. 지구 최강이 자신 있게 자신의 필살기를 내질렀다. 그러자 백강혁이 같은 기술을 펼쳤다.
필살기와 필살기.
검의 신으로부터 직접 전승된 검과 검이 마주쳤다.
폭음이 뒤따랐고, 충격파가 퍼졌다. 그 충격파에 휘말린 방어벽은 산산이 부서졌으며.
“…꿱.”
바람개비처럼 날아간 이시형이 벽을 꿰뚫고 꼴사나운 모습으로 처박혔다.
퍼스트 오더 랭킹 1위, 검성이라는 칭호가 무색할 정도로 안쓰러운 꼴이었다.
* * *
예상된 참극을 보며 주혁진이 눈가를 가렸다.
“이렇게 될 거 같았다고…….”
“이해 불능, 데이터 없음. 에러, 에러, 에러.”
“저게 그냥 백강혁으로 보이냐. 딱 봐도 씨바, 안 좋은 거 처먹은 백강혁이지.”
아무래도 헝멍의 붉은 책이라도 읽은 모양이다. 아니지, 저놈의 꼬라지를 보건대 붉은 책을 읽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신내림이라도 받은 모양새다.
황급하게 주혁진이 백강혁의 바디캠 데이터를 확인했다.
아니나 다를까, 놈과 헝멍의 신이 만나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이런 망할, 미친 신을 봤나.”
척 봐도 백강혁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아마도 마음속의 응어리나 한을 자극하여 행동 패턴을 조작하는 유형의 정신 공격에 당한 모양이다.
흔히들 최면술이라고 불리는 녀석이다. 상황이 더 안 좋다.
최면술이나 정신 공격에 당해서 저지르는 범죄는 심신미약이 인정되어 경미하게 처리된다. 그러니까, 이 사태를 잘 헤쳐 나간다고 해도 백강혁을 크게 처벌할 수가 없다.
“그,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잠시 현실도피를 했군.”
“그래서 저놈은 누구야, 주인.”
“저놈은 지금 신의 힘을 직접적으로 받은 반신이야. 저걸 대체 어떻게 막지?”
랭킹 1위 이시형이 한 방에 날아가는 강적이다. 1초도 저지를 못 했다. 저걸 대체 누가 막을 수 있단 말인가!? 당황한 마음에 소파의 뒤를 봤다.
웰시 코기 같은 똘망똘망한 눈으로 이들을 보는 리비가 있었다.
“맞아, 경호실장. 네가 있었지.”
“예? 왜요?”
“그러고 있지 말고, 가서 막아.”
리비의 능력은 시간.
시간 유리(有離) 능력으로 백강혁을 박리시킬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사태는 막을 수 있겠지. 저 무적 같은 반신 상태가 영구적인 것은 아닐 테니.
그런 기대로 말했지만 리비가 질색을 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제가요? 싫어요.”
“뭐?”
경호실장이 말대꾸?
경호를 거부하는 경호실장이라니, 상정하지 못했다.
“이봐, 너는 경호실장이고. 나를 지키는 방패야. 방패가 총알이 날아온다고 피하면 어떻게 해.”
“혁진 씨, 솔직히 말해서 총알이 날아오면 저는 혁진 씨 대신 총알을 맞을 거예요. 우리가 그만큼 나쁜 관계가 아니잖아요? 저도 직업윤리가 있으니까 혁진 씨는 최대한 지키고 싶어요.”
“그런데 왜 안 가는 건데?”
“한국에 이런 말이 있잖아요.”
리비가 천천히, 또박또박 말했다.
“그게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냐고.”
“…….”
“제가 시라노 씨 만나러 가서 느낀 게 뭐냐면요. 저기 저 백강혁이라는 사람은 상종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저 사람은 바이러스예요. 다가가는 게 누구든지 다 하찮게 만들어 버리는 극악한 바이러스 보균자라고요.”
“…….”
“천하의 시라노 베르그송도 저 사람이랑 마주치면 시라노 하찮은송이 되거든요? 좀 전에 이시형 씨가 하찮아지는 거 봤어요? 저런 걸 봤는데 제가 지금 백강혁 씨 막을 거 같아요? 마주치면 저도 하찮아지는데? 저는 경호실장 이전에 한 PMC를 운영하는 CEO고, 그들의 대장이며 자부심이거든요? 부하들 보는 눈도 있는데 저~얼~대~로 하찮아질 생각이 없어요.”
이 똑똑한 새끼.
주혁진이 빠득 이를 갈고는 리비로부터 시선을 돌렸다.
그럼 어쩔까.
진짜 미친 척하고 용왕기의 시동을 켤까?
아니면 이차원에 봉인해 뒀던 인피티니 스톤을 꺼낼까?
지구 멸망의 위기까지 아껴뒀던 제2, 제3, 제4의 수단이 떠오른다.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쓸 수 없는 수단이다.
쓰는 순간 월드 레벨은 폭등, 지구의 위기가 더 커진다. 계단식으로 천천히 월드 레벨을 조절하던 ISAC의 총장이다. 그렇게 아끼고, 아꼈는데. 빨간 맛에 미쳐 버린 백강혁 때문에 최종 수단을 쓴다고?
이게 말이 돼?
가속된 사고가 번뇌를 가속한다. 태어나서 이토록 냉정함을 잊어본 것은 처음이었다. 공황에 빠져 있으니 리비가 쿠쿠쿳, 하고 웃으면서 즐거워했다.
“솔직히 이건 혁진 씨가 나빴다. 월급 동결이라니, 불 빠다 맞아도 인정각이죠.”
“조용히 해.”
“저 사람이 나쁜 짓 했으면 처벌을 해야지, 노동력이 아깝다고 일은 일대로 시키고, 월급만 동결하다니. 혁진 씨, 무슨 사탄이에요?”
“조용히 아가리 하라고.”
“우우우, 무조건 닥치래. 언론 통제. 나쁘다아~”
죽일 수 있다면 우선 리비부터 죽였다. 주혁진이 짜증을 부리며 번뇌하는 사이, 빠르게 스크린이 점등했다.
“이번엔 또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