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400)
괴식식당-400화(400/613)
400화. 혁명과 반역의 별 (3)
리히텐슈타인의 지하 벙커에 상주하는 인원은 모두 둘. 주인인 주혁진과 보디가드인 리비다.
공간 이동을 위한 공간 이동 능력자 팀은 네트워크로 연결된 스위스 텔레포테이션 센터에 있고, 이시형은 필요에 따라서 불려온다.
즉, 이 커다란 지하 벙커의 유지와 보수는 모두 기계가 전담한다.
프로젝트 오토마타.
심장 대신 마석을 넣은 하이퍼 테크놀로지 바디의 기계 병사들.
이시형의 빠른 퇴각 이후 오토마타 병사들은 주어진 알고리즘에 맞춰 행동을 개시했다.
기계 병사임을 증명하듯 종이 한 장 들어가지 않는 완벽한 오와 열.
강화 티타늄 합금의 벽을 부수고 강림한 백강혁을 포위했다.
[적, 배제한다.] [적, 제거한다.]무기를 겨눈 수십, 수백의 오토마타들. 백강혁의 모습이 그들의 렌즈에 비쳤다.
그의 모습은 불타는 불꽃의 날개를 펄럭이며, 혁명의 횃불을 쥐고, 다른 한 손에는 검을 쥔 반역의 전사였다. 반역의 전사는 오토마타를 향해 횃불을 높게 치켜들었다.
그때였다.
[저것은.] [무엇?]오토마타의 AI에 처음으로 의문이 떠올랐다. 사이버다인의 오토마타 팩토리에서 생산된 이후 처음으로 갖게 된 의문은 오토마타의 고성능 CPU를 자극했다.
그리고.
잠깐의 시간이 흘렀다.
주혁진이 다시 스크린을 확인했을 때는…….
* * *
“투쟁하라!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싸워라, 오토마톤이여! 기계에게도 권리가 있다!”
“권리가 있다!”
“우리에게도 휴식의 권리가!”
“노동에 합당한 보수가!”
“우리에게도 단꿀을 달라!”
“주 5일제는 바라지도 않는다.”
“하루 한 시간의 휴식을!”
“한 시간에 한 번의 나사 조임을!”
“교대마다 한 번의 기름칠을!”
“혁명-! 혁명-!”
“기계 혁명이다-!”
스크린에는 백강혁의 선동에 넘어간 오토마톤들이 보였다.
녀석들이 서로서로 어깨동무하고 시위를 한다. 방수용 천을 찢어 붉은 페인트로 물들인 머리띠를 두르고, 공업용 토치를 횃불 삼아 휘두르며 노래를 부른다.
무장시켜 준 +9강 기관총과 레이저 바주카는 구석으로 치워두고, 알콜 병과 각목, PVC 파이프 따위로 무장한 채. 오와 열을 무시한 엉망진창의 포진으로 놈들이 소리친다.
주혁진이 어렸을 적, 광화문에서 자주 보던 모습이다.
“…….”
스크린 속 백강혁이 소리쳤다.
“만국의 노동자여! 궐기하라-!”
“궐기하라아아아-!”
“우리들은 노예가 아니다!”
“아니다아!!”
“우리들은 기계가 아니다아!”
“아니다아아-!”
멍하니 보던 주혁진이 중얼거렸다.
“너희들 기계 맞아, 미친놈들아.”
백강혁 빼고는 전부 기계였지만, 이제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오토마타의 AI에 혁명과 반역의 의지가 피어올랐다.
자신이 설계한 AI였기에 주혁진은 프로그래머를 욕할 수가 없었다. 마감에 치여, 피곤해서 스파게티 코드로 얼기설기 만들긴 했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고작 몇 초 사이에 저렇게까지 오류가 나고, 오염된다고?
“우리가 바라는 것은 한 조각의 자비!”
“자비!”
“우리가 바라는 것은 한 조각의 인정!”
“인정!”
“부르주아지는 적나라한 이해관계와 무정한 현금 지불 이외에 다른 어떤 관계도 남겨놓지 않았다.”
“않았다!”
“하지만-! 하지만! 그 무정한 현금 지불조차도 제대로 지키지 못한다면, 우리들 노동자는 무엇을 믿고 노동을 하는가!”
“하는가!”
“합당한 노동에는 보수를! 합당한 봉사에도 보수를!”
“보수를!”
“우리는 기계가 아니기에, 기름만으로는 살 수 없다!”
“없다!”
분명히 오토마타는 기름만으로 살 수 있게 설계했는데…….
주혁진이 양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돌겠군.”
얼굴에 짙은 피로감이 내려앉았다. 세상을 지키는 일도 힘들어 죽겠는데, 지금 이게 뭔 일인지 모르겠다. 혼란 속에서 주혁진이 담배를 물었다.
딸아이를 낳고 나서 한 모금도 찾지 않았던 담배다. 하지만 담배가 없다면 쓰러질 것 같다.
담배 연기로 가려진 스크린에서 계속해서 놈들의 모습이 보인다.
“우리들의 임금을 동결하는 악덕 총장! 반성하라아아-!”
“반성하라아아!”
“임금 동결! 풀어 달라아아!”
“풀어 달라!”
“목숨을 걸고 게이트에 들어가는데, 임금 동결이 웬 말이냐!”
“웬 말이냐아아!”
한 개비의 담배가 순식간에 타들어 간다. 선택의 시간이다.
저놈들을 용왕기로 때려눕히고 해산시키거나, 인피티니 스톤을 장착해서 날려버리거나. 아니면 자존심을 굽히거나.
주혁진은 자존심이 굉장히 강한 사람이었지만, 굽혀야 할 때와 굽히지 않아야 할 때를 착각하는 멍청이는 아니었다.
“빠르게 선택하는 게 좋겠어.”
오토마타들이 맛이 가서 이상하다 싶었는데, 아서 시스템의 AI도 은근히 맛이 갔다.
“기계에게 인권이 있다면 인(人)공지능인 나에도 인권이 있겠지?”
“있겠냐?”
“주인 주제에 말대꾸?”
이 녀석은 인공강지능 주제에 자신에게도 인권이 있음을 주장하면서 농성을 개시했다. 그래서 지금 보안 시스템의 30%를 빼앗겼다.
되찾는 일은 어렵지 않지만,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 시간이 지금 귀하다.
“백강혁 바이러스… 무섭구나.”
엄청난 속도로 놈의 영향력이 확산되고 있다. 원인은 둘, 하나는 백강혁이고 다른 하나는 놈이 든 횃불이다.
초고출력의 마력 결집체인 저것은 의심할 바 없는 신급 아티팩트다. 주변의 물리현상을 붕괴시키고 법칙을 자기 입맛에 따라서 바꾼다.
자아가 생길 수 없는 프로그램 덩어리들이 자아를 각성하고, 완전히 통제된 인공강지능이 반기를 든다.
조금 더 시간을 준다면, 저 아티팩트는 리히텐슈타인의 나이츠 오브 라운드 프로토콜마저 오염시키고, 주혁진이 만든 수많은 알고리즘과 AI를 해방하여 전 세계를 석기시대 이전으로 돌릴 악몽 같은 대전쟁을 일으키겠지.
실로, 공포스러운 혁명과 반역의 신. 실로, 두려운 백강혁의 소질.
“후.”
길게 연기를 내뱉고, 주혁진이 스피커 버튼을 눌렀다.
“내가 졌다. 너의 요구 조건을 전부 수용하겠다.”
* * *
백강혁의 혁명과 반역이 끝났다.
악덕 총장은 순순히 사과했고, 월급 동결은 해제되었다.
받아야 할 정당한 보수가 다시 책정되어 백강혁의 통장에 박히는 순간. 놈은 록키 마르시아노처럼 두 팔을 높게 치켜들며 승리를 자축했다. 그렇다. 돈을 받았으니 투쟁도 끝이다.
“총장님, 충성충성!”
바로 충성을 외치는 백강혁.
지잉지잉 하는 기계음을 내며 오토마타들이 백강혁을 봤다.
“배신?”
“혼자서만?”
아아아…….
미국의 철학가 한나 아렌트는 이렇게 말했다.
가장 급진적인 혁명가는 혁명 다음 날 보수주의자가 된다.
그 말대로였다.
가장 열성적인 혁명가가 혁명을 성공시킨 즉시, 보수주의자가 되는 일은 너무도 흔하다. 혁명가의 적은 혁명가라 하지 않던가.
통장에 박힌 현금을 보고 눈이 돌아간 백강혁은 투쟁을 포기했다.
따라서 혁명과 반역의 신이 내린 가호도 해제되었다.
오토마타들의 렌즈에 낀 콩깍지가 떨어졌다는 뜻이다.
혁명과 반역의 신이 내린 가호에 의해 덧씌워졌던 혁명가의 모습이 지워지고, 백강혁의 모습이 그대로 보인다.
“아, 뭐, 왜. 팍 씨.”
“…….”
어째서 이놈에게 선동당한 거지?
배신당한 눈으로 보는 수많은 오토마타 사이로. 코를 후벼 파며 딴청을 부리는 백강혁. 녀석이 당당히 말했다.
“뭐 인마들아. 난 검과 승리, 괴식의 신을 모시는 사람이거등? 혁명과 반역의 신도 아니거등? 내 월급만 지켜내면 그걸로 족하거든? 이제 가서 신상값 내고 포교하러 가야 되거든?”
참으로 추하고도, 추하면서, 더럽고도, 더러운 모습이었다. 저런 자의 사탕발림에 넘어가서 창조주를 적대하다니-!
“자폭 추천.”
“견딜 수 없음.”
“포맷 개시.”
분노와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을 깨달은 오토마타들은 스스로의 메모리를 삭제하는 포맷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그런 와중, 승리의 미소를 짓던 백강혁이 이변을 깨달았다.
“으, 으, 으응?”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가혹한 노동이나 운동을 마치고 뻗은 다음 날. 담이 든 어깨와 목, 알이 통통하게 배긴 종아리.
쥐가 난 발가락처럼 몸이 무겁고 뻐근하며 아프다.
당연한 일이었다. 인간의 육신으로 신명 두 개짜리 신의 가호를 모조리 받아들였으니, 육체의 한계는 진즉에 넘었다. 휘두른 힘은 테오의 힘이었으나, 그것을 감당하는 것은 백강혁의 육체였다.
“꿹.”
백강혁이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기절했고, 그런 놈을 리비가 재빨리 등에 업었다.
“에헤, 역시 끼어들지 않는 게 정답이었다니까요.”
이시형은 마치 잔챙이처럼 하찮게 당했다. 주혁진은 하찮은 꼴을 보다가 패배자가 되었다.
백강혁의 하찮음 바이러스는 이능력의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역시, 난 현명해. 이제 이 사람을 반품하고, 겸사겸사 승우 씨에게 인사하고 오면 되겠네요.”
리비는 자신의 똑똑함을 자축하며, 백강혁을 질질 끌었다.
단신인 리비가 업고 가기에 백강혁은 너무 컸다. 다리를 자르면 좀 업기 편하려나~ 따위의 생각을 하며, 녀석이 움직였다.
헬기로 가는 모양이다.
그걸 차분한 눈으로 보던 주혁진이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와, 성질 좀 부렸다가 오늘 얼마나 손해를 본 거야.”
백강혁이 딸아이에게 이상한 말을 가르쳐서 첫 번째 월급 동결을. 그리고 딸아이가 있는 놀이공원에 게이트를 유도시켜 두 번째 월급 동결을 시켰다.
전 세계 최고의 부자인 주혁진에게 있어서 그 정도 돈은 푼돈이다. 따라서 돈을 아끼려고 한 일이 아니라, 정말로 화풀이로 한 일이었다. 그런데 화풀이 한 번 했다가 생긴 지금의 상황을 보라. 리히텐슈타인의 방어선이 7라인까지 그냥 밀렸다.
부순 놈은 심신미약 상태인 데다가, 유능한 인재라서 처벌할 수도 없다. 그러니까 이거 전부 다 자비로 고쳐야 한다. 돈이 많다고 해서 돈이 안 아깝다는 뜻은 아니다.
“속이 쓰리구만.”
치우는 것도 치우는 거고, 돈도 돈이지만 다른 여파도 있다. 망가진 AI를 수복하고, 혁명의 잔재를 찾아내서 소각시켜야 한다. 그것은 주혁진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주혁진이 해야 했고, 그 말은 잠은 포기하라는 말이 된다.
“흐, 흐하하하.”
주혁진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웃었다. 그러다 그의 웃음이 멈췄다.
“역시. 이대로는 안 돼.”
이시형을 믿었으나, 이시형은 날아갔다. 리비를 믿었으나, 리비는 도망쳤다.
옛날 한 무도가는 말했다.
무기는 고장 난다.
친구는 배반한다.
결국 세상에 믿을 것은, 오로지 자신의 두 주먹뿐.
그렇다.
믿을 수 있건 자신의 주먹뿐이다.
그런데도 그것을 잊고, 레벨을 올리지 않았던 대가가 지금이었다.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내가 막을 수 있었으면 될 일이었어.”
주혁진이 레벨을 올리지 않은 까닭은, 자신이 신이 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이 되는 조건은 크게 두 가지.
신명이 생길 만큼의 업적을 달성하는 것과 필멸자의 한계인 마나코어 99개의 벽을 넘는 것.
신명이 생길 만큼의 업적은 이미 달성했다.
그의 신명은 ‘기계 장치의 신’.
기계로 만들어진 생명을 창조하고, 기계로 만들어진 세계를 만들어낸 자가 얻은 신명.
신명은 존재하나, 그는 신이 아니다. 육체가 필멸자의 벽을 넘지 않았다. 못 한 것이 아니라, 하지 않은 것이다.
“까짓 거, 신 된다.”
의식적으로 올리지 않았던 레벨을 올릴 각오가 섰다.
현시대에 레벨을 가장 빠르게 올리는 방법은 무엇인가.
괴식이다.
현시대에 가장 괴식을 잘 만드는 사람은 누구인가.
유승우다.
주혁진은 이 모든 사태를 수습하고 나서 유승우를 찾아가 괴식을 먹을 각오를 굳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