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405)
괴식식당-405화(405/613)
405화. 로스트 파워 (5)
“푸하하하하하하하하!”
“빨갱이 엘프, 그렇게 웃다가는 턱 빠진다.”
“그러는 너는 그렇게 참다가 볼 터지겠다.”
“크, 크크크큭.”
시원하게 잔디 바닥을 구르면서 웃는 테오도르와 웃음을 참기 위해서 얼굴에 힘을 빡 준 크라이.
표정을 숨기기 위해서 고개를 돌리고 어깨를 떠는 승우까지.
전설의 용사 파티 네 명이 모여 술자리를 벌인다. 게르니아의 넓은 잔디밭에서 꽃 구경과 바다 구경을 하며 마시는 즐거운 술자리다.
화기애애하게 분위기도 좋고 모두가 즐거웠지만, 레나토는 아니었다. 숨기려고 했던 치부 탓이다.
레나토는 어질어질한 머리를 부여잡고, 술잔을 잡았다. 드워프의 화주다. 독하기로 이름난 술인데, 쓰지도 독하지도 않았다.
마치 벌꿀처럼 달달했다.
인생이 험난해서 그런가 보다.
망할.
“오랜만에 다 모였는데 이러기입니까?”
“하지만, 하지만!”
테오가 깔깔 웃다가 장이 꼬였는지, 온몸을 비틀었다. 크라이가 참다 참다 못 참아서 껄껄 웃고는 대꾸했다.
“하지만 우리 성실한 성직자님께서 걸레 맛을 알고 있다는 건 웃음을 참기 힘든 이야기지.”
“…….”
“심지어 그 걸레를 먹어본 이유가… 큭큭.”
대지의 신을 모시는 신전을 닦은 걸레다. 대지는 만물의 어머니고, 생명의 요람이다.
그렇다면 신전을 닦았던 이 걸레는 가장 고결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닌가. 가이아의 온기가 담긴 세상 만물을 닦고, 최고로 신성하며 성스러운 신전의 오물을 닦았다.
오물조차도 가이아의 은혜라고 생각한다면, 이 걸레는 신성한 것이 아닐까. 레나토는 일 년간 신전을 닦은 나무껍질 수건에서 대지의 신 가이아의 아가페를 느꼈다.
아가페- 절대적인 사랑-!
“그런 이유가 있다고 그걸 먹는 미친놈이 어디 있나 싶다만.”
“뭐어, 드문 일은 아니야, 크라이. 내가 교생 실습할 때도 종종 있었어. 좋아하는 여자애의 리코더를 분다든가 하는 아이가 꽤 있지. 의외로 보편적인 감성이라고.”
“차라리 리코더를 먹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러고 보면 리코더의 맛이 궁금하군. 다음 안주는 리코더로 부탁해.”
“아, 쫌, 웃음 참는데 담담하게 찌르고 들어가지 마. 터질 뻔했네.”
숨 넘어가듯 꼴딱꼴딱거리며 죽어가는 테오. 어깨를 부르르 떨면서 웃음을 참는 승우와 이제는 그냥 대놓고 웃는 크라이를 보고 레나토의 이마에 굵은 핏줄이 솟아올랐다.
“이 사람들이……!”
누가 제일 얄밉나 하면 크라이가 가장 얄미웠다. 테오야 원래 저런 놈이고, 승우는 미안한지 되지도 않는 변명을 해주고 있으니 고맙기라도 하다. 하지만 담담하게 깊숙하게 태클을 찌르고 들어오는 크라이는 진짜 너무, 너무 얄밉다.
벌컥벌컥 술이 계속 들어간다.
생각할수록 크라이가 얄밉다.
‘자기는 뭐 바보 같은 이야기가 없는 줄 아나!’
레나토가 드물게 짜증 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비싼 돈 주고 산 아이라바타를 첫날에 폐차시킨 사람이 할 소리입니까?”
“뭐야? 뭐야? 아이라바타? 어떤 바보가 그 비싼 걸 폐차시켰어?”
테오가 벌떡 일어나서 주변을 봤다. 시선이 크라이에게 모였다.
하기야 그 아이라바타다.
불사불멸한다는 전설의 성수.
여기에 모인 신이 넷이지만 아이라바타를 한 방에 죽일 수 있는 공격력은 크라이와 승우밖에 없다.
시선을 느낀 크라이가 입가를 바르르 떨었다.
“그러니까 그건. 그거다, 그거.”
“그거가 뭡니까?”
“그, 남자에게는 물러설 수 없는 순간이라는 게 있는 거다.”
“남자와 바보를 같은 의미로 사용하지 말아 주세요.”
“같은 의미로 사용해도 된다. 걸레 먹은 바보와 혁명에 미친 바보가 여기 있고, 괴식에 미친 바보도 있다. 어차피 여기 있는 남자는 다 바보야.”
“…그거 제법 논리적이군요.”
레나토가 이해했는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다들 바보 같긴 했다.
하지만 테오는 납득하지 못했다,
녀석이, 테오가 다시 한번 자지러지게 웃었다.
“악악, 엘프 살려! 나 죽네! 뭐야, 이 바보들은!”
“얌마, 슬슬 감정 상하겠다. 그만 웃어.”
“하지만 걸레 먹은 바보랑 아이라바타 죽인 바보가 있는데 어떻게 참아!”
“야야야.”
“리더, 우리 파티 이래도 괜찮은 거야? 바보 균 옮지 않을까?”
저걸 그냥 확…….
레나토와 크라이의 눈이 예리해졌다. 그리고 술을 퍼마시는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말없이 술을 마시는 둘.
승우가 어깨를 으쓱하고는 인벤토리를 열었다.
“그러면 여기서 안주를 추가하지.”
“걸레야, 아니면 리코더야?”
“아니라고, 이 자식아. 너희도 아이라바타는 먹어봐야 할 거 아냐.”
“그건 그렇지.”
“평범하게 만들 거야. 애초부터 아이라바타는 괴식에는 안 맞아. 너무 맛있어서.”
평범한 비스킷을 한 장 깐다.
그 위에 초콜릿 무스를 뿌리고, 종잇장처럼 얇게 저민 아이라바타의 고기를 올린다. 그리고 마무리로 넥타르 호숫물의 벌꿀을 한 방울.
마시멜로처럼 부드럽고 달콤한 아이라바타의 고기는 식사보다는 디저트에 어울린다. 이렇게 초콜릿 디저트로 만드는 편이 좋다.
와작와작하고 초콜릿 디저트를 씹어먹은 세 명이 엄지를 세웠다.
“내 아이라바타. 맛있구나. 맛있어지고야 말았구나…….”
먹는 게 아니라 타고 싶었다.
회한이 뚝뚝 떨어지는 크라이의 목소리. 물기까지 느껴진다.
테오가 손을 뻗어 한 개를 더 먹고는 입술을 핥았다.
“어떤 바보 덕분에 이 귀한 것도 먹어보네.”
“일 절만 하자, 빨갱아?”
“알았다, 바보 오크.”
“너 진짜 한번 싸워보자는 거냐.”
그래도 먹을 게 들어가니까 분위기가 한결 낫다. 아까까지는 이러다가 진짜 싸움 나나 싶었다.
원래라면 싸우게 두겠다만 여기는 게르니아다. 부서지면 아깝다.
쩝쩝하고 입맛을 다신 크라이가 와인을 마셔보고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단 디저트를 먹으니까, 짠 술이 땡기는걸. 와인이 안 어울려.”
“아, 크라이. 제 인벤토리에 이스터 소금주가 있습니다.”
“이스터 소금주! 그거 좋지.”
안주를 먹고, 술을 먹고, 안주를 먹는다. 그러다 보면 화가 가라앉게 마련이다.
레나토의 나무껍질 수건 이야기와 크라이의 아이라바타 일격당수 참살의 여운이 사라질 때쯤, 문득 레나토가 말했다.
“그러고 보면, 요즘 악마들의 동향이 수상하더군요.”
“수상해? 녀석들은 항상 수상하지. 하루 이틀 일이야?”
나무 위로 올라가서 나뭇잎으로 풀피리를 불던 테오가 대꾸했다. 동감하는지 크라이도 고개를 조금 끄덕였다.
“이번엔 조금 방향성이 달라요. 게티아의 악마들이 한 곳에 뭉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곳 지구에서요. 승우라면 이미 알고 있겠지만, 이건 명백하게 이상 사태예요.”
악마와 협동성은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악마의 세계에는 지배와 군림만이 있을 뿐이다.
게티아의 72주, 이제는 70주의 악마들은 순위는 있으나 바엘 왕을 빼고는 어디까지나 같은 항렬이었다. 지배하고, 군림할 수 없는 같은 격의 악마. 그렇기에 그들은 협력하거나 협조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주 위험한 순간에는 결국 협력하기도 하지. 자존심 세우다가 고사할 정도로 멍청하진 않으니까.”
“맞아요. 그러니까 저는 이 일련의 사태가 악마에게는 무엇인가, 매우 중요한 일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악마를 심문해 보았습니다.”
“힘도 잃은 녀석이 무리하기는…….”
“제가 아니라, 다리아가 무리했지요. 어쨌든 그래 보니 악마가 말하더군요. ‘초마왕이 돌아온다. 우리는 그런 예언을 받았다.’라고요.”
“초마왕이라…….”
레나토는 술을 마시면서 평온하게 내일 날씨를 말하는 친구처럼 말했다. 다들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테오가 풀피리를 접으면서 피식 웃었다.
“초마왕이 부활한다고 뭐 달라지긴 하나? 녀석들도 되게 쓸데없는 노력을 하네.”
“맞아요. 지금 와서 대체 뭐 하는 일인가 싶네요.”
레나토도 빠르게 순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예전에도 잡아본 초마왕이다. 그때 잡았는데 지금 못 잡을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크라이가 한입에 술을 털어 넣고는 웃었다.
“지금이라면 승우, 너 혼자서도 이길 수 있지 않아?”
“으으음. 못 할 것도 없지.”
힘을 회복하지 못한 레나토와 변죽에 따라서 레벨이 오락가락하는 테오는 그렇다 치더라도, 크라이는 굉장히 강해졌다.
승우의 경우엔 자기 자신도 어디까지 강해졌는지 파악 못 할 지경으로 강해졌다. 초마왕이라고 해도, 긴장되질 않는다.
그래서 태평하게 술자리 안주 삼아 이야기하는 것이다. 테오가 말을 이었다.
“초마왕 해서 생각났는데, 초마왕으로는 요리 못 하나?”
“그거 사체가 남긴 했어?”
“워낙 격전에 엉망진창으로 싸워서 기억도 안 나네요.”
“나도 잘 기억 안 나는데, 있어도 요리는 안 한다.”
그야 그거 먹고 싶지는 않지. 그걸로 초마왕에 관한 이야기는 끝이었다.
하지만 대화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서로 죽고 못 살던데, 결혼은 언제 해?”
“아무래도 결혼을 하긴 해야겠지요. 플로라 님에게 부담이 되니까 천천히 하고 싶습니다만.”
“한 발만. 딱 한 발만. 저 커플 놈에게 쏠게. 쏘게 해줘, 리더.”
“참아라, 솔로 부대 대원수.”
화제가 끊어지는 일은 없었고, 술과 안주가 떨어지는 일도 없었다.
연회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물론 끝이 없는 연회는 없다.
결국 보다 못한 영식이와 나비가 난입해서 술고래들을 끌어냈다.
술이 떨어지는 것 외에 연회를 끝내는 법을 몰랐던 네 명의 용사들의 술 잔치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
연회의 끝은 압도적인 숙취였다.
넥타르 호숫물의 바닥이 보일 때까지 마셨으니, 숙취가 없을 수가 없다.
오랜만의 폭주 음주로 숙취 공격을 직격으로 맞은 레나토는 입을 막은 채로 아왈트와 다리아의 호위를 받아 돌아갔다.
테오는 숙취로 다 죽어가는 몸이었지만, 혁명의 요청을 받아 이차원으로 몸을 던졌다.
마음만 먹는다면 숙취 정도야 신력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이런 일에 신력을 쓸 바보 신은 없다.
걸레를 먹어도, 아이라바타를 폐차시켜도, 혁명에 미쳐도, 괴식에 미쳐도 멍청이는 아니다. 신력은 그렇게 쓰기엔 너무 아깝다.
그렇다고 마력으로 풀기에는 벅차다. 워낙 강력한 술을 많이 마신지라, 이놈의 숙취가 마법에 저항한다. 그러니 참을 수밖에.
나비가 끓여준 해장국을 마시며 크라이가 길게- 숨을 내뱉었다.
“오늘만큼 은퇴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 둘이 불쌍하게 보이더군.”
“나도 오늘만큼 휴식이 절실한 날이 없어. 아, 진짜 너무 마셔버렸네. 술이 떨어질 때까지 마시는 버릇을 고치든가 해야지…….”
발동이 걸리면 마을의 술을 다 없애버릴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용사의 술 파티란 그런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술이 무한에 가까웠다. 다들 술을 좋아하는지라 인벤토리에 각국의 술이 가득하다.
한숨을 쉬고 있으니 찰싹찰싹 소리가 울려 퍼진다. 영식이다.
“앗. 앗. 미안해. 영식아, 봐주라.”
뿌뿌뿌 하고 울면서 승우의 등을 팡팡 때리는 영식이의 분노는 타당했다.
잠깐 한잔하고 온다는 사람이 며칠을 틀어박혀서 나오지를 않았다.
밥이야 나비가 해주지만, 그래도 잠깐 갔다 온다던 사람이 안 오는데 화가 안 날 수가 없다.
“미워.”
“앗…….”
“잠깐이라면서.”
“앗앗…….”
영식이가 화났다. 공기를 내뿜는 버릇조차도 잊을 만큼 화가 났다.
푸른 몸체 안에 공기가 뽀글뽀글 돌아다닌다. 내뱉지 않은 공기가 고여 있는 거다.
이거야 원, 단단히 화가 났구나. 유칼립투스 나무에 매달린 코알라처럼 승우의 등에 찰싹 붙어서는 계속 때린다.
“내가 죄인이지. 미안해.”
“미워.”
“그래그래. 용서해 줘. 그런데 나비야, 은하는 어제 부모님 집에 갔다며? 뭔 일이래?”
나비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그게 말이다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