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407)
괴식식당-407화(407/613)
407화. 혁명과 영혼, 그리고 괴식 (2)
주혁진은 레벨을 올리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괴식을 먹으려고 했다.
마침 레나토가 비슷한 고민을 했기에 슬쩍 그 덕을 보려고도 했었다. 하지만 허사였다.
레나토의 고민 해결을 위해서 승우가 만든 것은 인간은 먹을 수 없는 양자 폭탄 같은 괴식이었다.
숙취로 죽어가는 레나토가 입 댈 생각조차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며 테라로 돌아갔으니, 먹어봐야 좋은 일이라고는 없겠지.
어쨌든 그런 이유로 괴식에 관한 관심은 뒤로 미뤄둔 상황이다.
당장 급한 것은 AI와 오토마타의 반란이다. 레벨 업은 늦어져도 큰 지장은 없지만, AI와 오토마타는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다른 일을 처리할 수 없다. 그러니 이쪽이 훨씬 더 시급한 문제였다.
그래서 괴식을 포기한 찰나였다.
사랑하는 딸아이가 요리해 준다고 한다. 저번에는 개구리 요리였지.
그런데 이번에는 정말 작정한 모양이다. 은하는 그 짧은 사이 괴식 스킬을 익혔다.
이번에는 빈손도 아니었다. 은하가 인벤토리에서 여러 가지 도구를 꺼내서 주방에 넣었다.
귀환자의 특권인 인벤토리가 부럽다는 생각이 1초. 많이도 가져왔구나 하며 감탄하는 게 1초.
이거 아무래도 먹고 죽는 일이 있어도 먹어야겠구나 하고 단념하는 데 1초. 총 3초 만에 생각을 정리하고, 주혁진이 입가를 조금 올렸다.
“기대, 되는구나.”
“헤헤헤.”
야무지게 땋은 갈래머리를 흔들면서 은하가 주방에 섰다.
* * *
승우는 말했다. 당분간 레벨 업에 관련된 괴식은 만들지 않을 거라고. 이유를 찾자면 우선 질렸다.
다들 제 코가 석 자라고 레벨 업이 다급한지라, 레벨 업에 대한 괴식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너무 많이 만들었다.
장인은 한 가지의 일을 깊게 파서 그것만을 추구하는 장인이 있고, 얇고 넓게 파는 장인이 있다.
하나만 죽자고 파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승우는 하나를 만들면 바로 그것을 완벽하게 익히는 재능이 있다.
구태여 여러 번 같은 것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또 하나. 이번에 레나토의 부탁을 받아서 아이라바타를 손질해 본 결과 이 이상의 레벨 업 요리는 없다는 결론이 섰다.
비록 미드가르드 오름 액젓의 함유량을 실수하여 경쟁의 술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오류가 있었지만, 오류를 인지한 시점에서 이미 개량책과 개선책이 완벽하게 떠오른다. 두 번이나 만들어볼 필요는 없다.
더 대단한 재료를 얻기 전까지 아이라바타 이상의 레벨 업 요리는 없다. 그리고 그 이상의 요리를 연구할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했다.
따라서 그는 레벨 업 요리에 대한 의뢰나 부탁을 받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주혁진의 번민을 모르지는 않았다. 승우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게 일 시키고 보수를 주지 않는 거다. 일했으면 반드시 보수를 줘야 한다.
주혁진이 먼저 잘못했기에 백강혁의 반역을 눈감아 줬을 뿐이지 주혁진의 노고는 인정한다.
그가 없었으면 지구는 예전에 멸망했다. 조금의 과장도 없는 확실한 사실이다. 자신을 갈아서, 자신의 인생을 바쳐서 지구를 지키고 있다.
그런 그가 레벨을 올리고 싶어졌다면, 레시피 정도는 줄 수 있었다. 고향을 지켜준 보답으로 말이다.
승우는 은하에게 레시피를 넘겼다.
“좋아. 해볼까.”
은하는 승우처럼 말하며 승우처럼 웃어 보였다. 맨날 주방에서 보는 모습을 흉내 내는 것이다.
그러고는 자신 있게 어린이용 과도를 승우처럼 잡았다. 검고 하얀 고양이가 프린팅된 귀여운 칼이지만, 거기에 검기가 서리니 명검이 부럽지 않았다.
“이렇게, 이렇게 하면…….”
꾸물텅 꾸물텅. 검기가 일렁거린다. 의지를 가진 것처럼 검날부터 검 자루까지 두어 번을 왕복하다가 면도날처럼 날카롭게 날을 세운다. 승우가 습관적으로 하는 검기 반응 체크다.
윤은형이 따라 해보았으나, 죽어도 하지 못했던 그 검기 제어다.
“세상에…….”
주혁진이 식은땀을 흘렸다.
‘이시형이 검기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된 게 재작년이었지?’
이시형이 재작년에 해냈다는 것은, 지금 저게 가능한 검사는 나이츠 오브 프로토콜에 기록된 검사 중에 이시형을 뺀다면 한 명도 없다는 의미다.
의식적으로 무시하고 있었던 나이츠 오브 프로토콜의 수많은 제안이 떠오른다. 당장에라도 코트를 입혀야 한다고 인재 관리 프로그램이 난리를 친 이유가 이해가 가는 재능이다.
아버지의 번뇌를 아는지 모르는지, 은하는 콧노래로 기사를 탄 슬라임의 노래를 부르면서 재료를 꺼냈다.
“유부 주머니?”
유부 주머니는 물기를 제거한 두부를 기름에 튀겨서 만든 유부에 고기나 야채, 버섯 따위를 넣은 주머니다. 그런데 저건 그냥 유부 주머니가 아니었다.
“매우 크군.”
커다란 유부 주머니다. 얼마나 큰지 거의 은하 정도의 크기였다.
지켜보고 있으니 은하가 앙증맞은 과도에 검기를 두르고, 유부 주머니를 갈랐다. 스윽 하고 긋는 것 같지만 소리가 대단했다. 그라인더로 철 파이프를 가르듯이 엄청난 소리가 퍼졌다. 기기기긱 하고 불똥마저 튄다. 주방이 아니라 공사판 같은 모습이다.
은하가 재빨리 용접 마스크를 꼈기 때문에 위화감이 더 커졌다.
쩍-!
한참의 소음 끝에 유부 주머니가 반으로 갈라졌다. 그 안에는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초록빛 옥이 수도 없이 촘촘하게 박혀 있다.
못 해도 수백 개는 된다.
보석함일까? 신기해서 눈을 빛내고 있으니, 은하가 미리 꺼내둔 장갑을 꼈다.
주혁진은 범상치 않은 눈썰미로 저것이 신명 무구임을 눈치챘다.
“끙차, 끙차.”
끈적끈적한 점액질 사이로 녹옥을 꺼낸다. 그러고는 키친타올을 꺼내 녹옥을 정성스럽게 닦았다.
매끈매끈한 녹옥이 제대로 모습을 보였다. 헤에, 하고 은하가 웃으면서 자랑스럽게 녹옥을 보였다.
“예쁘죠?”
“그래, 아주 예쁘구나. 보석을 먹는 거니?”
보석을 사용한 괴식은 몇 번 보았다. 리비가 연구하는 주 과제가 보석 마법 괴식인 까닭이다.
확실히 대왕 그리마 따위의 이상하면서도 토 쏠리는 괴식보다는 보석을 먹는 게 차라리 나았다. 보석 드래곤 같은 풍취도 느껴지기도 하고 멋도 있지 않은가.
무난한 괴식이겠구나, 하고 안도의 숨을 쉬고 있으니 은하가 고개를 흔들었다.
“이거 보석 아니에요.”
“응?”
누가 봐도 보석으로 보인다.
매끈매끈한 타원형의 녹옥. 안쪽에는 눈동자 모양의 결정체도 있다.
“이게 보석이 아니면 뭐야?”
“이거 사마귀 알이에요.”
“사, 사마귀 알!”
삐걱거리며 갈라진 유부 주머니를 봤다. 갈색의 형태, 자세히 보면 타원형의 자국이 층층이 남아 있다. 알을 낳으면서 완충제로 삼았던 거품이 굳어서 남긴 흔적이다.
어린 시절 다큐멘터리에서 본 사마귀알집을 부풀린 모습과 똑같다.
“괴물 사마귀래요!”
“괴물 사마귀…….”
천진난만하게 딸아이가 재잘재잘 괴물 사마귀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삼촌이 지난번에 잠시 놀아주었던 친구(절망과 탐욕의 신)가 키우는 사마귀(대량 살육 병기)의 알집인데, 보기보다 영양소(마나)도 풍부하고, 맛도 좋아서(괴식적으로) 아주 좋은 재료란다.
“자라나면 엄청 커진대요.”
“그렇겠지. 응, 그렇겠네.”
골전도 이어폰으로 시뮬레이터가 속삭였다. 괴물 사마귀의 예상 크기가 빌딩만 하다고 한다.
‘진짜 싫다. 판타지.’
실제로 사마귀와 같은 신체 구조를 가지고 거대화만 한다면 중력이나 호흡기관, 발열과 영양 섭취의 효율 때문에 지상에 서는 것조차도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게 가능하니까 마법이고 마력이고, 이세계인 것이다.
‘물리법칙은 항상 무시되니까…….’
논리와 과학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계장치의 신은 생각을 포기했다.
아무튼 몬스터 사마귀 알이다. 그것도 아직 지구에는 출현하지 않은 높은 월드 레벨의 알.
그것만 알면 되겠지.
주혁진이 빠르게 머리를 정리하니, 은하가 콧김을 내뿜었다.
“요리는 금방 끝나요.”
오, 금방 안 끝났으면 좋겠는데.
주혁진의 기도에도 불구하고 요리는 착착 진행되었다. 처음에 생각했던 대로 무슨 공업사 같다.
“직화로 구울게요!”
녹옥, 아니, 괴물 사마귀 알을 불판에 올린 은하가 방염 마스크를 끼고 화염방사기를 들었다. 요리용 토치가 아니라 진짜로 화염방사기다. 요리용 토치로는 사마귀 알이 안 익는 까닭에 화염방사기를 쓰나 보다. 치이익 하고 녹옥이 익는다. 좀 전까지는 녹옥의 색이 연녹색이었는데 익으니 완전히 진한 녹색이 되었다.
그렇게 수십 개의 알을 익힌 은하가 이번에는 페인트를 들었다.
공업용 붉은 페인트다.
“자, 잠깐, 잠깐. 공업 페인트는 왜 쓰니?”
“붉은색으로 만들어야 해요.”
“왜?”
“붉은색이 되면 효과가 세 배만큼 좋아져요.”
“이게 무슨 붉은 혜성 땅에 떨어지는 소리야. 요리와 붉은색이 무슨 관곈데.”
“저도 몰라요. 삼촌이 그랬어요.”
“백 보 양보해서 붉은색을 쓰면 효과가 좋아진다고 치자. 적어도 식용색소를 쓰면 안 되겠니?”
“식용색소는 대체로 곤충을 갈아서 만드는데, 그러면 효과가 떨어진다고 그러셨어요.”
그야 그렇지. 대부분의 식용색소는 곤충을 갈아서 쓴다. 그걸 모르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
그런데 곤충의 소재에 곤충의 소재를 더하면 효과가 늘어나는 게 아니라 줄어드는 건가? 괴식의 법칙은 전혀 이해 불가능하다. 하지만 주혁진도 이해할 수 있는 게 있다.
‘공업용 페인트는 그냥 유독 성분 덩어리라고.’
식용색소라는 단어에서 식용은 먹어도 된다는 뜻이다.
공업용 페인트의 공업용이라는 말은 공업용으로 쓰라는 뜻이다.
먹으면 바로 응급실 가야 하는, 그런 물건이다.
그걸 왜 굳이 발라야 하는가.
설마 딸아이의 손을 빌려서 나를 제거하려는 유승우의 음모인가.
‘큭, 그렇다면 매우 효과적인 음모라고 할 수 있겠군.’
딸의 저 반짝이는 눈을 보면 안 먹는다는 선택은 불가능하니까.
아버지의 마음을 노린 매우 교활하면서도 악랄한 계략이다.
적어도 승우가 그런 악마 같은 모략을 꾸미진 않겠지.
귀환자 유승우는 인격자니까!
예전엔 선생이었으니까!
아닐 거야!
제발…….
살려주세요.
기도하는 마음으로 주혁진이 눈을 감았다. 그리고 딸아이의 외침에 눈을 떴다.
“이제 금방 끝나요!”
“…….”
붓을 들고 페인트를 찍어서 사마귀 알을 붉게 칠한다.
이게 진짜 요리란 말인가. 머릿속에 물음표가 계속해서 떠올랐다.
딸아이의 기행은 멈추질 않았다.
다음에는 또 다른 하얀 유부 주머니를 꺼냈다.
저것도 설마 사마귀 알인가?
“괴물 흰개미 알집이에요.”
“…….”
이번엔 괴물 흰개미…….
검기를 두른 과도가 알집을 가른다. 이번엔 다이아몬드 같은 하얀 알이다. 확실히 사마귀 알보다는 작았다. 손가락 반 마디만 하다.
은하는 개미 알을 박박 긁어내더니만, 그것을 소쿠리에 담아 물에 씻었다.
그러고는 프라이팬에 올리고 기름을 둘렀다. 올리브유다. 하지만 가스레인지는 쓰지 않았다.
또 화염방사기다.
화염방사기로 5초 굽고, 설탕을 뿌린다. 다시 5초 굽고, 버터를 올렸다. 마지막으로 5초.
그리고 간장을 뿌렸다.
요리의 완성이 코앞인지, 땀 범벅인 은하가 온몸을 꼼지락거리면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제 이걸, 이렇게 하고, 이렇게 하면.”
쪼물쪼물.
작은 손으로 지금까지 만든 것을 조립한다.
볶고 굽고, 난리를 친 흰개미 알을 장갑을 끼고 조물거려서 타원형으로 만든다. 그리고 페인트를 칠한 사마귀 알을 공업용 본드로 하나하나 붙였다.
이렇게 되니 무엇을 만드는 건지 주혁진도 알 수 있었다.
“이쿠라?”
연어알 초밥이다.
쌀밥을 연상케 하는 흰 개미 알 볶음 위에 홍옥같이 아름다운 연어알, 아니, 사마귀 알을 올린 연어알 초밥. 은하가 땀을 훔치며 괴식을 내밀었다.
“다 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