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413)
괴식식당-413화(413/613)
413화. 과잉 (2)
아티팩트에는 혼이 서린다. 자아가 생길 수도 있고, 영혼의 그릇이 될 수도 있다.
죽은 검성, 죽은 대마법사, 죽은 성녀, 등선한 선인이 아티팩트를 매개체 삼아 부활을 꾀했던 일이나, 그러한 전승(傳承)은 셀 수 없이 예가 많다.
“확실히 네가 만드는 아티팩트는 굉장하겠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마인 볼코프와 싸우던 당시, 백강혁의 괴식교 선언 후 반나절 만에 모인 힘만으로도 승우의 3번째 신명 무구가 만들어질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보다 더하다.
허니스시로 인한 괴식 열풍.
악마를 물리치고 지구를 지킨다는 괴식교 신드롬이다.
블라디보스토크 때와 비교하자면 수백 배가 훌쩍 넘는 힘이다.
너무나 엄청난 힘이기에 제어는 불가능. 아티팩트를 만들려고 시도하는 순간, 통제력을 벗어난 힘이 멋대로 아티팩트에 집중되겠지.
“네 역량조차도 뛰어넘는 방대한 힘으로 만들어진 아티팩트라면 초마왕이 들어가기엔 충분하겠군.”
가능성은 있다. 아니, 충분하다 못해서 확실하다.
죽기 직전에 최후의 도박으로 검이나 갑옷에 영혼과 힘을 부여하는 케이스는 너무 흔해서 일일이 예를 들기도 피곤하다.
대체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영웅들의 아티팩트 중 20%가량은 그런 경우다. 특히나 마족들, 악마들은 육체에 대한 집착이 적은 편이기에 쉽게 이동한다.
“리치같이 자신의 영혼을 다른 곳에 저장한 채 육체만 갈아타는 종족도 있고, 저주받은 마검, 배회하는 갑옷처럼 아티팩트의 형상으로 있다가 착용자의 육체를 빼앗아서 생을 이어가는 종족도 있지. 승우, 초마왕의 종족에 관해서 아는 거 있어?”
“나는 몰라.”
크라이는 전투 전문.
레나토는 회복 전문.
승우는 모든 것을 총괄하는 지휘관이자 리더였지만, 자신이 직접 정보를 모아오는 척후병은 아니다.
정보를 모아오는 일은 테오도르의 일이었다.
“테오에게 물어봐야 하나?”
“조금 더 확실한 놈이 있어.”
“누구?”
“부르면 바로 오는 놈이야. 지금 부를게.”
크라이가 의문을 표하는 것보다 승우가 놈을 부르는 게 빨랐다.
승우가 손가락을 튕기고, 펄럭 하는 날갯짓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상공에 나타났다.
“헥헥헥. 부르셨습니까, 주인님. 주인님의 충실한 충견이 도착했습니다!”
전령의 신, 헤르메스였다.
* * *
헤르메스는 올림포스의 신들 중에서도 가장 비참한 상황이다.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다 자기가 잘못한 탓이다.
모두가 힘들 때 같은 신들을 팔아먹고 혼자서만 튀려다가 잡혔다.
그래서 제우스에게 혼나고, 아프로디테에게 귀싸대기를 처맞고, 헤라에게 드롭킥을. 아레스에게 절교당하고, 자식에게 뒷칼빵을 먹었다.
그 후에는 지금까지 게르니아에서 노역을 하고 있었다.
어쨌든 그는 이제 남은 거라고는 두 개의 빠른 날개뿐인, 거지. 거지 중의 상거지가 되었다.
승우와의 가늘고도 얇은 인연을 소중하게 하는 것 말고는 살아남을 길이 없다. 그래서 녀석은 상당히 헌신적으로 행동해 주었다.
초마왕 바알을 조사하라고 명령한 후 고작, 삼 분.
라면 하나가 익을 시간에 스물한 개의 차원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정보망을 확인하고 돌아왔다.
평소라면 여기서 자신의 공적을 뻥튀기하기 위해 약간의 준비와 너스레를 떨었겠지만, 헤르메스는 욕구를 꾸욱 참았다.
‘여기서 개짓했다가는 순살치킨 된다. 미사여구 줄이고, 최대한 간결하게 브리핑해야 해!’
평소에도 검신 유승우는 미친 듯이 무서운 자였지만, 오늘은 특히나 더 무섭다.
맨정신으로 있기 힘들어서 오는 길에 술 좀 빨고 왔다.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수만 개의 면도날로 살을 회 뜨는 기분이 든다.
1㎜ 간격으로 촘촘하고 꼼꼼하게 퍼지는 저 살기 속에서도 멀쩡하게 있는 크라이의 정신력이 존경스럽다.
축축한 날개를 펄럭이며 헤르메스가 조신하게 말했다.
“지금까지 출연했던 초마왕의 모습이나 행적을 모두 조사해 왔습니다. 공통적으로 역시 강함이 부각되는 신화 전승이 많은데요, 그 전승 속에서 바알의 모습은 딱히 고정적이지 않았습니다.”
넘치는 힘을 억누르며 미간을 구기는 승우 대신 크라이가 물었다.
“중요한 건 역시 기물로 나타난 적이 있느냐 없느냐겠지. 어때?”
“있습니다. 방랑하는 갑옷 무사라고 아시죠?”
“알지.”
방랑하는 갑옷 무사는 체인메일처럼 상반신만 막아주는 갑옷이 아니라, 풀 플레이트 아머처럼 전신 판금 갑옷에 깃들어서 인간처럼 활동하는 몬스터다.
갑옷에 깃든 만큼 방어력이 높은 대신 둔하다. 전시 중에는 인간인 척 무리에 섞여 들어가서 난전을 유도하고, 급습을 노린다.
몬스터 중에선 그리 높은 등급은 아니지만, 생전 영웅이 쓰던 갑옷이나 유명한 지휘관의 갑옷에 깃든다면 상당히 골치 아파진다.
“방랑하는 갑옷 무사처럼 불굴의 용사 알렉스라는 자의 갑주로서 현현한 적이 있다네요.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는, 그다음에는 용자의 검에 깃든 적도 있고요. 무기물에 깃드는 일도 할 수 있나 봅니다.”
“쯧. 역시나…….”
“당연히 벨 일족 자체도 조사해 봤는데, 그쪽은 지금 대표자가 터져 죽어서 그런지 무주공산이더라고요. 내친김에 혈족보도 다 보고 왔습니다.”
인간이 족보를 따지듯이, 악마도 족보를 따진다. 오히려 인간보다도 몇 배는 더 혈족을 중시하는 게 악마였다.
신화와 전승, 전설로 신력을 수급하는 신과 악마가 혈족을 중요시하는 것은 당연하다.
홀몸으로 움직여서 얻을 수 있는 이득보다, 가문, 혈족 단위로 움직여서 얻는 이득이 더 많기 때문이다.
바알의 가문은 정확하게는 ‘벨’.
벨 일족이다.
“벨 일족 전부는 시간이 부족해서 조사를 못 했지만, 일단 초마왕 바알의 친동생, 바엘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빙의는 벨 일족의 종족적인 특성이 아니라 바알만의 능력이라고 보는 편이 옳겠죠.”
“고유능력이 갑자기 튀어나오는 경우가 오히려 드물 텐데?”
“혈족보를 보니까 아득히 윗대에 사령신(死靈神)이 있더라고요.”
크라이의 손끝이 움찔했다.
“사령신? 리치 같은 거?”
“예. 이름은 먹선으로 지워서 확인이 안 되는데 엘드리치급인 거 같습니다. 리치는 영혼을 보관하는 능력이 탁월하지 않습니까? 그게 벨 일족의 핏속에 잠재되어 있다가 우연히 바알 대에서 발현한 걸로 보입니다요.”
바알의 모습을 상기해 본 크라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런 쪽의 피가 이어진 듯한 사이한 놈이었지, 죽은 자를 부리고 힘을 회복하고, 벼락과 폭풍까지 썼다.
“벨 일족은 악마로 영락하기 전에는 본래 폭풍신, 우레신이었다고 하니까. 혈족 능력은 벼락과 폭풍을 부리는 기상 조작 능력이었을 겁니다.”
“그래. 할 줄 알더라.”
들을 이야기는 다 들었다.
잠자코 이야기를 듣던 승우가 매듭을 지었다.
“자,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말해서 아티팩트를 만들면 거기에 놈이 깃들 가능성이 크다는 거군. 만들면 안 되겠어.”
“그럼 어떻게 할 생각이냐?”
“별수 있냐. 원론적이면서도 기초적인 방법을 써야지.”
정말로 하기 싫은 모양인지, 승우가 한숨을 내뱉었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짐작한 크라이도 고개를 털었다.
헤르메스가 되물었다.
“그게 뭔데요?”
“젓가락질.”
“예?”
“젓가락질 훈련이라고.”
* * *
승우의 아버지 세대에는 초등학교가 국민학교라는 이름이었다. 이 시절의 교육은 재밌는 게 참 많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젓가락질 훈련이다.
젓가락 훈련이란 말 그대로 젓가락으로 제한 시간 내에 콩을 옆 그릇으로 옮기는 훈련이다.
이 훈련은 놀랍게도 각성자에게 좋은 훈련이 된다.
마나의 배분, 손가락을 통해서 젓가락을 다룰 때 들어가는 힘의 배분. 마력과 완력의 컨트롤 능력을 기를 수 있다.
힘이 적게 들어간다면?
콩을 놓친다.
힘을 과하게 준다면?
콩이 부서진다.
제한 시간 내에 빠르게 콩을 옮기는 일은 생각 외로 힘들다.
이 훈련은 많은 초보 각성자가 하고 있다. 이걸 끝낸다면 자신의 힘을 온전히 쓸 수 있다는 뜻이기에, 가장 먼저 넘어야 할 산이기도 하다.
그런 초보자나 할 법한 훈련을.
승우가 힘겹게 이어가고 있다.
“끄, 으으으응.”
이런 훈련으로 애를 먹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이 훈련은 이론은 알고 있지만 해본 적은 없다.
할 필요가 없어서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힘에 휘둘리지 않는다.
민도 그렇고, 윤은형도 그렇고, 심지어 백강혁같이 애매하게 뛰어난 오성을 지닌 사람도 이 훈련은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제어할 수 있으니까!
‘내 레벨에 이런 훈련이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만.’
엄청 힘들다. 너무너무 힘들다.
머리카락을 집어 드는 정도의 힘을 줘도 안 된다.
먼지를 치운다는 느낌으로.
힘을 아예 주지 않는 느낌으로,
조심조심한다.
그런데도 부서진다.
‘망할. 차라리 젓가락으로 바다를 가르는 게 쉽겠네.’
잡생각이 잠깐 드는 순간.
파각 하는 소리를 내며 콩이 부서지고, 젓가락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백강혁이 그걸 지켜보다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와, 저게 부서지네.”
승우가 젓가락으로 옮기는 콩은 그냥 콩이 아니다. 다이아몬드보다도 단단해서, 타격력을 증가시키기 위해 망치 따위에 장식으로다는 콩, 금강콩이다.
자연계의 곡물 중에서 단단하기로는 단연코 최고. 견과류 중에서 가장 단단한 금강 호두처럼, 식재료가 아니라 무기 강화용으로 취급받는 놈이다. 그걸 젓가락으로 부순다.
살살 힘을 조절한다고 노력한 끝에 반으로 분질러 버렸다.
“작정하고 부수려고 해도 안 부서지던데…….”
백강혁이 모든 힘을 모아서 검성기로 내려찍어 봤지만 금도 안 갔다.
“젠장.”
어이없게 보고 있으려니 승우가 거칠게 부서진 금강콩을 입에 털어 넣었다.
빠각빠각 하고 돌 씹히는 소리가 난다. 맛이 없는지 승우가 얼굴을 구겼다.
“싸장님, 그거 맛없어요?”
“응.”
“요리하면 좀 낫지 않을까요.”
“요리하면 더 맛없어져.”
아침에 황지현을 만난 것부터 시작하여 헤르메스를 만나고, 또 하루가 지났다.
이틀 동안 몸에 쌓이는 힘이 늘면 늘었지, 줄지를 않는다.
그의 옆에는 반으로 부러진 금강콩이 수북하다.
주르륵 하고 흐르는 땀을 닦으며 승우가 한숨을 내뱉었다.
“요리하면 더 맛없어지긴 하는데, 이 많은 금강콩을 버릴 수는 없으니까. 뭐라도 만들긴 해야겠다.”
뭔가를 만들면 초마왕이 깃들까 걱정이 된다만, 설마 괴식에 깃들지는 않겠지.
깃들면 깃드는 대로 웃긴 일이다.
파전에 깃든 초마왕이나, 라면에 깃든 초마왕, 제육볶음에 깃든 초마왕은 한 번쯤 보고 싶기도 하다.
“그럼 뭘 만들까.”
멍하니 창밖을 봤다. 새소리가 들리고, 화창한 햇빛이 내린다.
힘 조절이 안 돼서 제대로 된 요리를 못 할 것 같으니, 오늘은 임시 휴업이었다.
휴업인데도 꾸역꾸역 백강혁이 찾아왔다. 하여간 한가한 놈이다.
약간 더운 게 흠이지만.
어쨌든 날은 좋다.
승우가 허리를 펴며 금강콩을 바라봤다.
날도 좋고, 콩은 많다.
“콩국수나 해볼까.”
“오, 콩국수. 좋죠.”
콩국수를 만들기 위해서는 콩을 불린 후 맷돌로 갈아서 콩 국물을 만들어야 한다.
저 많은 금강콩을 맷돌로 갈다 보면 힘이 좀 빠지지 않을까?
그럴 리는 없지만, 뭐라도 해야겠지. 승우는 떨어지는 낙엽조차 피하는 말년병장의 기분으로 조심조심 몸을 움직였다.
“윽.”
아주, 아주 조금 힘이 들어갔다.
파삭 하고 탁자가 소멸했다.
마치 무슨무슨 스톤을 다 모은 우주 최강자가 손가락을 튕긴 것처럼, 우유에 녹여 먹는 초코 가루처럼 탁자가 파사삭 하고 흩어졌다.
“싸, 싸장님?”
닿으면 똑같은 꼴이 되는 게 아닌가 싶어서 백강혁이 까치발로 물러섰다. 승우는 그런 녀석을 보고 뭐라고 변명하려다가, 이내 포기했는지 고개를 푹 떨궜다.
“그래. 다가오지 마라.”
어떻게든 힘을 빼지 않으면 안 되겠다. 사고 칠 것 같은 예감이 팍팍 드는 그런 오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