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415)
괴식식당-415화(415/613)
415화. 과잉 (4)
그나저나 백강혁이다.
민은 몹시 불안해졌다.
이 녀석이 대체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들은 걸까. 기감을 닫아놔서 뒤로 접근하는 것조차 몰랐기에, 언제부터 있었던 건지 모른다.
떨리는 목소리를 억지로 부여잡으면서 놈에게 추궁했다.
“어, 언제 왔냐.”
“싸장님이 유명세 때문에 괴롭다고 말할 때쯤?”
다행이다. 승리의 신에 관한 이야기는 전혀 못 들은 눈치다. 민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하긴 그 이야기 할 때 뒤에 있었으면 선생님이 제지하셨겠지.’
백강혁은 검, 승리, 괴식의 신이 승우라는 사실을 모른다. 모르는 편이 모두에게 좋기 때문이다.
백강혁이 그 이야기를 들을 거리까지 접근했다면 승우가 막았을 게 당연하다.
“…….”
승우가 땀을 뻘뻘 흘렸다.
“선생님?”
“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설마 몰랐던 건 아니겠지?
“아무튼 네 의견은 글러 먹었어.”
일단 백강혁의 아이디어는 1초 만에 기각됐다.
공중파 방송에서 그런 일을 한다는 것엔 어떠한 이득도 없을뿐더러, 승우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고. 그런 일을 한다고 유명세가 늘면 늘었지 줄지는 않는다.
긍정적인 유명세에 부정적인 유명세 한 스푼이 더해지는 정도일까.
민이 팔짱을 끼고 놈을 응시했다.
“하여간 도움이 안 되는 놈이구만…….”
“왜 이래, 나도 가끔은 도움이 된다고.”
“너란 놈은 대체 왜 예상하지 못할 때는 도움이 되면서, 어째 도움이 되겠다 싶을 때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거냐?”
“그건. 음. 나도 몰루.”
신경 쓰지 않으면 도움이 되고, 신경 쓰면 도움이 안 된다. 아마도 그러한 별 아래에서 태어난 운명이겠지.
백강혁이 코를 파며 민의 말을 귓등으로 흘리다가 승우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요약하면 힘이 제어가 안 된다는 건데, 그냥 다른 데 막 힘을 쓰면 어때요. 아무 곳이나 가서 그냥 다 때려 부숴 버리면….”
“그렇게 부술 만한 곳도 없을뿐더러, 부숴 봐야 좋지 않을 거다.”
승우에게 물었지만, 답은 민에게서 나왔다. 틀린 말은 없었다.
부수기에 적당한 곳은 악마들의 세력권 정도인데, 그나마도 대부분은 문명이 아직 남아 있는 터라 현지인만 무수히 죽을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생기는 공포는 고스란히 신력으로서 다시 반환된다.
“그럼 지금 문제는 우리의 신님이 넘치는 힘을, 싸장님에게 떠넘겨서 생기는 일이잖아요?”
“…뭐, 그래.”
백강혁은 승우가 첫 번째 검의 화신인 것으로 알고 있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게 이상하지 않았다.
떨떠름한 얼굴의 승우에게 백강혁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럼 그 넘치는 힘을 같은 화신인 저에게 떠넘기는 건 어때요? 하청의 하청인 거죠!”
실제로는 하청이 아니라 원청이었지만. 민이 듣기에도 제법 일리가 있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기대감을 담아서 봤더니, 승우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다가 너, 죽는다.”
“왜요?”
“몇 번이나 말하지만, 지금의 나는 힘 조절이 안 된다.”
지금의 승우는 힘 조절이 되지 않는다. 백강혁이 견딜 만한 힘을 요령 좋게 빼서 줄 수가 없다.
“내가 지금 1의 힘을 빼서 너에게 주려고 하면 대뜸 1조의 힘이 들어가는 형국이다.”
지금의 승우는 고장 난 ATM기였다. 정확한 수치의 힘을 배분하는 것이 불가능.
막힌 댐에 구멍이 뚫리면, 그 구멍으로 막대한 물이 빠져나와서 구멍을 넓히고. 이윽고 댐은 붕괴한다. 같은 이치였다.
1의 힘을 빼기 위해서 밖으로 내보내면, 그 순간 그 통로로 통제 불가능한 힘이 빠져나간다.
당연히 그 힘을 백강혁이 견딜 수가 없으니 놈의 몸은 공기를 잔뜩 주입한 타이어처럼 폭발할 것이다.
“웜매…….”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였다. 하긴, 몸도 못 가눌 지경이라 요리도 못 했지. 백강혁이 땀을 뽈뽈 흘리다가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그럼 정말로 유명세를 가라앉히는 거 말고는 답이 없네요?”
“아마도.”
“가라앉히는 게 되려나…….”
지금 지구는 거의 용비어천가 수준으로 승우를 찬양하고 있다. 이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게 가능할까. 반전시켜도 또 부정적인 방향으로 반전시키면 안 된다. 말 그대로 조용하게 만들어야 한다.
“적어도 내가 익숙해질 수 있는 시간이라도 벌면 좋겠네.”
“아, 시간이 있으면 되나요?”
“지금 문제는 내가 힘에 적응하는 것보다, 힘이 늘어나는 속도가 빠르다는 거야.”
“약간만 정체시키면 되는 거군요. 그럼 뭐, 제가 해보겠습니다.”
“어떻게?”
놈이 씩 웃으면서 가슴팍을 쳤다.
“아, 저만 믿으시라니까요. 딱 방법이 있어요.”
“…….”
“…….”
저놈을 대체 어딜 보고 믿어야 하는가. 민이 빙하시대를 연상케 하는 눈빛으로 싸늘하게 백강혁을 응시했고, 승우는 포기했는지 어깨를 늘어트리고는 손을 흔들었다.
“뭔지 모르겠지만. 네 맘대로 해봐라.”
뭘 해도 이보다 나빠지진 않겠지.
오산이었다.
바닥에는 바닥이 있다.
뭘 해도 이보다 나빠질 수 있다.
막장의 끝에는 막장이 있고, 심연의 끝에도 심연이 있는 법.
그 끝을 본 승우는.
다음 날, 밀려오는 힘과 후회감에 사지를 비틀었다.
* * *
동시 시청자 천만 명.
백강혁은 뮤투브계의 신화다.
지금은 정식 종교 가입자만 육천만 명에 이르는 괴식교의 공식 라이브 방송은, 한 번 방송할 때마다 동시 시청자 기록을 매일같이 경신하고 있다.
요즘은 방송이 뜸하구나, 라고 신자들이 걱정할 때.
스트리밍 버튼이 활성화됐다.
“다시 돌아온 괴식교의 교황, 백강혁의 라이브 스트리밍 시간입니다. 요즘 악마를 퇴치하는 스시가 있다고 해서 핫하죠? 대통령 표창도 얘기도 나오고 아주 난리더라고요. 참 고마운 일입니다.”
“악마라는 놈들이 여간 처치하기 힘든 게 아닌데, 스시만 있으면 아주 슥삭슥삭 제거됩니다. 곰팡이 잡는 락스같이 말이죠.”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저도 본업은 퍼스트 오더니까 요즘은 악마 잡느라 바빴어요.”
“악마는 정말 정말 귀찮은 놈들입니다. 아주 끈질겨요.”
“그런데 그거 알고 계십니까? 그 허니스시의 창조자로 유명한 셰프는 말이죠,”
“사실은 제 선배입니다.”
“선배가 뭔 뜻이냐고요? 에이 참, 제가 뭐 사관학교를 나왔겠습니까. 당. 연. 히! 괴식교의 선배라는 뜻이죠.”
“제가 교황인데 선배가 있을 수 있냐고요? 물론 있지요. 바로바로바로바로. 그분이 저보다 먼저 신의 화신으로 임명되신 분입니다.”
“대단하죠? 쩔죠?”
“근데 중요한 게 있어요. 여러분이 지금 계속해서 제 선배를 칭찬하고, 찬양하고, 빨아주고 그러는데 말입니다. 대단한 건 그 선배가 아니란 말입니다.”
“진짜 대단한 건 말이죠!”
“바로 우리의 신이란 말입니다!”
“괴식의 신이 전수한 레시피로!”
“신의 화신이 만들었습니다.”
“그럼 누가 대단한 거죠?”
“맞습니다! 신이 대단한 거죠.”
“그러니까. 선배에 대한 찬양과 기도를 올리고 대단하다며 보내는 칭찬도 좋지만요. 근본을 잊지 맙시다. 괴식의 신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리자구요.”
유승우에 대한 칭찬과 감사, 찬양을 괴식의 신에 대한 감사와 찬양으로 바꾸자.
그러면 괴식의 신에게 힘이 갈 것이며 승우에게 주어지는 힘은 약해질 것이다.
승우는 강력한 화신이었지만, 존재 자체가 무적이고 최강이고 아무튼 킹킹왕왕한 괴식의 신에 비할 바는 아니다.
승우가 견디지 못해도 괴식의 신은 당연히 견딘다. 우리 신은 무적이기 때문이다.
승우에게 갈 부담을 줄이고, 신에게 바치는 공물은 늘린다.
백강혁의 아이디어는 자신이 생각하기에 완벽한 방법이었다.
이런 생각을 한 자신이 천재라고 자뻑하기도 했다.
하지만 근본적인 착오가 있었다.
“아, 아아아. 이런 멍청한.”
승우가 바닥을 기었다.
신력이 샘솟는다.
미친 듯이 몰려든다.
승우에게 갈 부담은 줄이고, 괴식의 신에게 갈 부담을 늘린다고?
“세, 세상에. 이런 멍청한 말이 또 어디에 있어.”
유승우가 괴식의 신이고.
괴식의 신이 유승우인 것을.
백강혁만 모르는 정체.
정보의 불일치가 참극을 불렀다.
이 방송 이후.
유승우에 대한 찬사는 줄었으나, 괴식의 신에 대한 찬사는 다섯 배로 늘었다.
자연히 승우의 몸에 걸리는 부담도 다섯 배 늘었다.
“아아아아아아악-!!!”
넘치는 힘이 도가 지나쳐서 이러다가는 죽는다.
생각 같아서는 에메랄드 태블릿의 신의 경매장 기능이라도 켜고, 위에서부터 아무거나 다 사고 싶은 마음도 든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할 수 없다. 신력을 적당량 쥐어짜서 물건을 사는 행위조차 어렵다.
어제까지는 할 수 있으나 하지 않았는데, 이젠 그냥 할 수가 없다.
정말로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이 견디고, 견디는 거 말고는 하나도 남지 않았다.
고통을 참으며 이 고통에 익숙해져야 한다. 이 힘을 다룰 수 있도록 적응해야 한다.
그게 죽을 만큼 힘들다.
“그냥 가르쳐 줬어야 했나?”
내가 신인 것을 말해줬으면 이런 꼴은 안 당해도 됐을까.
모르겠다.
끝 모르게 밀려오는 힘 탓에 정상적인 사고 판단이 불가능하다.
의식이 끊어질 듯 말 듯.
희미하게 이어진다.
현재로서 확신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다.
견디지 못하면.
죽는다.
“이, 이렇게 바보같이 죽는다고? 내가? 말도 안 돼.”
누군가가 말했었다.
백강혁이랑 어울리면 하찮아진다고. 놈의 하찮음 바이러스는 상대의 면역을 뚫는다.
시라노가 하찮아졌고, 주혁진이 하찮아졌으며, 올림포스의 신이 하찮아졌다.
승우는 자신 또한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미, 미친…….”
백강혁과 엮이지 않으면 하찮아지지 않는다. 현자, 지혜, 똑똑함, 슬기로움의 신명 대기목록에 리비의 이름이 오르는 순간이었다.
“어쨌든… 버, 버틴다.”
이렇게 어처구니없게 죽을 수는 없다. 승우는 이를 악물고 힘을 견뎌냈다.
난관, 고난.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고행.
셀 수 없이 많았던 강적.
승산이 없는 전투와 전쟁.
무수한 전장.
별처럼 많은 시련.
그것을 모조리 이겼다.
모조리 이겼기에, 이 자리에 섰다.
평생을 이겨왔는데, 여기서 바보같이 백강혁의 헛발질로 죽는다니.
이런 죽음은 있어선 안 된다.
납득도 되지 않는다.
죽어도 눈을 못 감는다는 말이 있다. 승우의 생각이 딱 그거였다.
“이, 이대로는 못 죽는다!”
꺼져가는 모닥불에 기름을 붓듯이.
승우의 투쟁심에 불이 붙었다.
* * *
게티아 72위, 악마의 왕 바엘은 죽었다. 꿀 범벅인 홀리스시로 한 방에 갔다. 그의 공석은 지금까지 채워지지 않았다.
따라서 악마 회의는 2위인 타천공작 아가레스와 3위인 천견대공 바사고가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2위부터 5위.
아가레스, 바사고.
가미긴, 마르바스.
최상위 악마 넷의 회의는 지금까지 전례가 없을 정도로 단출했다.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악마들의 경기가 별로 안 좋아서 그렇다. 유승우라는 존재한 적이 없었던 재난 탓이다.
“점점 한적해지는구만…….”
검은 갈기를 가진 사자, 마르바스가 쓸쓸하게 중얼거렸다.
지구를 향한 총공세 때문에 회의를 치장할 여력이 없다. 호위 병력도 없고, 관객도 없다.
악마로서는 어깨에 힘이 빠지는 광경이다.
“그래서 바사고 공, 그대의 예언만 믿고 모든 악마의 명운을 건 도박을 하고 있소만. 그대는 뭐가 그리 기쁘오? 표정에 웃음이 가득하군.”
“기쁘지. 기쁘고말고. 내가 설계한 판이 이렇게 아름답게 돌아가는데 기쁠 수밖에 없지 않겠소.”
바사고가 뼈만 남은 머리를 달그락거리며 웃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웃음이다. 가미긴이 성질을 내며 탁자를 쳤다.
“우리 세력의 80%를 갈아가면서 만든 이 미친 짓이 대체 뭔 의미가 있는지. 설명해 봐.”
“물론. 자, 다들 여기를 보시게.”
바사고가 마법의 거울을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