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422)
괴식식당-422화(422/613)
422화. 돌아온 괴식 (3)
대나무 대롱은 상당히 길고 얇았다. 길이는 강혁의 상반신 정도였으나 굵기는 오백 원짜리 동전만 했다.
승우는 조심스럽게 대롱을 주방에 눕혀두고는 다른 재료를 꺼냈다.
알록달록한 피망. 길고 짧고, 동글동글하고 정신이 없는 다양한 버섯들. 이름도 모를 다양한 버섯은 지구산 버섯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희귀한 버섯이겠지. 희귀한 이세계의 버섯을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민과 황지현은 주변을 경계했다. 이제는 버섯을 보자마자 놈들이 떠오른다. 놈들은 물론 버섯 파이브다.
“아, 이젠 이런 걸로 경계할 필요도 없는데 말이에요.”
황지현이 자기가 생각해 봐도 어이없는지, 너스레를 떨면서 말했다.
민도 헛기침을 하곤 다시 자리에 앉아 스푼을 잡았다. 뒤늦게 버섯 파이브를 떠올린 백강혁이 물었다.
“아, 버섯 애들. 그러고 보니까 걔들은 요즘 뭐 해?”
녀석들은 무지개 버섯을 먹으면 무적 상태가 되는 스킬을 이용당하여, 러시아에서 버섯 실드가 되어 적지 않은 활약을 했다.
퍼스트 오더들은 이런 대규모 작전 후에는 가상현실을 이용해서 전투를 몇 번이나 복기한다.
다른 쪽에서 활약했던 백강혁도 가상현실에서는 민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볼코프와 싸웠었다.
그때 버섯 실드를 몇 번 써봤는데 진짜로 사기적인 스킬이었다. 그런데 그런 사기적인 스킬을 가진 거치고 요즘은 어째 소식이 없다.
황지현이 포크로 크림 파스타를 말면서 말했다.
“다섯 놈 다 수감됐어요.”
“엉? 수감?”
“오더는 모르겠지만, 옥스퍼드에는 영국 왕실이 경영하는 길드가 있거든요. 거기에 신종 버섯이 몇 개 들어왔는데, 그걸 노리고 버섯에 미친 광인 다섯이 침입했대요.”
“아니, 이런 미친놈들을 봤나.”
버섯 파이브가 들었다면, 네놈에게 들을 말이 아니라고 격하게 화낼 말이었다. 하지만 백강혁은 그래도 나름대로 법은 지키고 사는 사람이다. 영국 왕실 길드의 창고를 터는 일은 범죄이지 않은가.
“범죄는 저지르면 안 되지.”
“오더 입에서 그런 말 나오니까 되게 어색하네요.”
“에이, 난 도둑질은 안… 안…….”
차마 말을 잇지는 못했다.
왕실 보물 창고도 털어봤고, 괴도 짓도 해봤다. 천성이 도둑놈이라고 뭇 신들이 인정할 만한 재능도 있었고, 적성에도 맞았다.
황급하게 말을 끊고, 백강혁이 되물었다.
“그래서, 성공했대?”
“성공했어요. 그리고 앉은 자리에서 버섯을 죄다 먹어 치우고 활짝 웃으면서 체포됐죠. 지금은 보드민 감옥에 수감 중이에요.”
“보드민 감옥은 또 뭐야?”
강혁이 묻자, 민이 날 선 말투로 대꾸했다.
“VIP들이 가는 감옥이다. 화려하고 안락한 감옥이지. 넌 그런 것도 모르냐.”
“그런 걸 내가 어떻게 아냐. 아는 게 이상하지. 근데 왜 VIP 감옥에 간 거야?”
“퍼스트 오더니까.”
“아.”
퍼스트 오더는 충분히 VIP라고 불릴 만한 사람들이다. 황지현이 미간을 꾹꾹 누르며 말을 이었다.
“아, 진짜 생각만 해도 어이가 없다니까요. 외교 문제로 번질 뻔했어요. 다섯 놈 다 한국인에다가 퍼스트 오더라서 한국 정부랑 ISAC 본부랑 다 나서서 그놈들 뒤처리해야 했죠.”
“어이고, 어이고.”
“결론적으로 수감 생활이 끝나면 그놈들 전부 다 시라노 사령관님 밑에 직속으로 배정될 예정이래요. 노예 생활의 시작인 거죠.”
“잘됐군. 해피엔딩이네.”
“해피엔딩일까요.”
그 다섯 놈들을 통제하려면 시라노도 머리털이 빠질 것이다. 버섯만 보면 눈이 돌아가는데 뭔 재주로 막을까. 셋이 그렇게 얘기하는 동안 승우는 요리를 시작했다.
프라이팬에 버터를 올리고 녹인다. 황금빛의 버터가 입혀진 프라이팬 위로 색색의 피망과 버섯이 떨어진다. 치익치익 하는 옅은 소리를 내며 버섯과 피망이 익는다.
그 위로는 약간의 엑스트라 버진 오일과 소금을 뿌린다. 마치 평범한 버섯 소테 같다. 하지만 평범하진 않았다.
“프라이팬이 두 개군요.”
승우가 꺼낸 프라이팬은 두 개였다. 버섯을 볶은 프라이팬의 불을 끄고, 이번엔 다른 쪽 프라이팬을 올렸다.
올리브유를 뿌린 프라이팬에는 양파와 생바질이 들어갔다. 페페론치노도 넣고, 마늘을 한 주먹이나 넣었다. 으깬 토마토에 생크림. 약간의 꿀. 제법 많은 양의 화이트와인.
계속해서 무엇인가가 늘어난다. 건성건성으로 만들었던 버섯 소테와는 다르게 이쪽은 제법 힘을 주어서 만드는 느낌이다.
“싸장님, 이번에는 두 개 먹는 거예요?”
“왜? 부담돼?”
“아뇨, 뭐 싸장님 괴식이니까.”
괴식 스트리트의 괴식 수련생 요리를 두 개 먹으라면 도망가겠지만, 승우의 요리라면 열 개라도 환영한다.
맛이 없다면 맛이 없는 대로 절륜한 효과가 있겠고, 어지간하면 맛조차도 뛰어나다.
거부할 이유가 없다.
프라이팬을 주시하던 승우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하나만 먹으면 돼.”
“아, 그럼 이 두 개는 나중에 합치는 거?”
“아니. 이 버섯 요리는 네가 먹을 요리가 아냐.”
“그럼 누가 먹어요?”
적당히 버섯 소테가 식었다. 승우는 버섯 소테가 담긴 프라이팬을 들고는 아까 처음에 꺼냈던 대나무 대롱을 향해 걸었다.
그러곤 대롱의 끝을 막은 마개를 살짝 들어 올리더니만, 버섯 소테를 안에 흘려보냈다.
“이 녀석이 먹지.”
쩝쩝쩝.
쩝쩝쩝.
대나무 대롱 안의 무엇인가가 버섯 소테를 먹는 소리가 재즈 소리에 섞여 퍼졌다.
식당이 조용해졌다.
뭘까, 저건?
몬스터인가?
대롱에 들어갈 크기의 몬스터가 뭐가 있지? 먹기로 약속이 되어 있는 백강혁의 눈알이 데굴데굴 굴러가며 좌뇌와 우뇌를 풀가동하기 시작했다.
“감도 안 잡히는데.”
“모르겠네요.”
전혀 모르겠다, 라는 민과 황지현이 내놓는 답과 똑같은 ‘나도 모르겠다.’라는 대답조차도 늦었다.
백강혁의 뇌 내에 설치된 검색 엔진은 민의 검색 엔진보다 성능이 좋지 않기에 생긴 일이다.
지식백과 사전급의 정보를 자랑하는 저 둘이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 하고 정신 승리를 시전한 백강혁이 물었다.
“저거 뭐예요?”
“솔직히 말한다고 네가 알 리가 없잖아. 이세계의 몬스터인데.”
“그건 그렇지만, 그렇게 말하면 섭섭한데요.”
“너 말고도 다 모를 거야. 지구에는 출연한 적 없는 몬스터야.”
승우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열심히 만들고 있던 쪽의 프라이팬을 다시 흔들었다.
다양한 재료와 대량의 화이트와인. 요즘 요리 공부를 하던 중인 민이 눈을 빛냈다.
“소스를 만드시나 보군요.”
“오, 정답. 공부 꽤 했나 보네.”
“프렌치와 중화요리를 중점으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제일 대중적인 걸 공부하는구나. 하지만 현명하다.”
괴식의 기법은 테라 요리가 원류였고, 테라 요리의 기법은 프렌치 요리와 가장 비슷하다. 익힌다면 프렌치를 익히는 편이 낫다. 그리고 굽고 찌고 하는 기초적인 요리는 중화요리가 가장 스펙트럼이 넓다. 바퀴 달린 것 빼고는 다 먹는 중국의 특성상, 이런저런 특이한 재료에도 쉽게 적응할 수 있어서 추천할 만하다.
“자격증 따려고?”
“자격증은 따두는 편이 이득이라고 생각해서, 다음 달쯤에는 따둘 생각입니다. 그리고 다음엔 괴식도 배워보려고요.”
“그래그래.”
노골적으로 프렌치와 중화를 배우는 시점에서 눈치챘다. 민은 괴식을 배우기 위해서 체계적으로 단계를 밟는 중이다. 후배 요리사가 생기는 것도 나쁜 기분은 아니지.
승우가 작게 콧노래를 부르며 프라이팬을 저었다. 소스가 조금씩 몽글몽글하게 뭉치고 있었다.
“자, 그럼 이제 요리를 마무리 지을 때가 됐구나. 먹을 준비는 됐나?”
“예? 마무리요? 소스만 만들었잖아요.”
“아냐. 이제 마무리가 맞아. 저 대롱 안의 녀석을 적당히 썰어서 소스를 뿌리면 그걸로 끝이야.”
“아. 아, 그런 요리인가요.”
조림장에 생새우를 적셔 먹는 즉석 간장 새우나 뜨거운 소스에 육회를 넣어서 먹는 테라식 샤브샤브인가 보다. 백강혁이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되면 이제 문제는 하나만 남는다.
“저 대롱 안에는 대체 뭐가?”
“궁금해할 것도 없지. 지금쯤이면 버섯의 효과도 돌았을 테니, 꺼낼 거야.”
승우가 대롱을 들었다. 그리고 반 바퀴 돌려 대롱을 거꾸로 했다. 안에 든 녀석이 츄르르르 하는 기묘한 소리를 내며 빠져나왔다.
도마 위로 떨어져서 꿈틀거리는 그것. 그것은 너무도 기괴한 모습이었다. 백강혁이 멍하니 말했다.
“지렁이?”
“아니, 지렁이일 리는 없어요. 주름이 없잖아요. 오히려 뱀에 가깝다고 보는데요.”
“뱀도 아냐. 비늘이 없잖아.”
반문한 황지현의 말을 다시 민이 받아쳤다. 녀석은 정말 기괴하게 생겼다. 하얀 통짜 몸에는 눈도 없고 주름도 없었다.
일자 몸 주변에 젖꼭지 같은 게 두 개 있는 걸 제외하면 정말 새하얀 모습뿐. 입이라고 부를 것에는 작은 균열만 있고 이빨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생물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다.
설명을 구하는 셋의 눈빛에 승우가 씩 웃었다.
“맞히면 소정의 상품이 있습니다. 이 몬스터는 지구의 어떤 생물과 비슷할까요?”
“엑, 이거랑 비슷한 생물이 있긴 해요?!”
“응. 비슷한 생물이 진짜로 있어.”
상품이라는 말에 바로 황지현이 반응했다.
“눈과 입이 퇴화한 칠성장어!”
“땡, 틀렸어.”
백강혁이 손을 들었다.
“보톡스 맞은 지렁이.”
“…땡.”
“쳇.”
둘 다 아쉬운 마음에 손가락을 튕겼다. 봐도 역시 모르겠다. 입맛을 다시고 있으려니 묵묵히 있던 민이 손을 들었다.
“저, 혹시. 이거… 굴, 아니면 조개입니까?”
“오? 정답이 있어. 하나로 줄여봐.”
“…조개?”
“정답이야!”
승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다들 승우를 돌아봤다. 맞힌 민조차도 당황한 눈치였다.
“저, 정말 조개였습니까?”
“응. 조개들은 보통 껍질로 몸을 보호하잖아? 그거랑 같아. 이 녀석은 카스나우라고 하는데 껍질 대신 나무에 파고들어서 자신을 지키는 습성이 있어. 그나저나 용케 알았네?”
“그, 몸 주변에 두 개의 젖꼭지가 마치 조개관자처럼 생겨서 추측해 봤습니다.”
“실제로 조개관자는 그런 모양이지. 대단하네.”
“그런데 이런 생물이 진짜로 지구에도 있습니까?”
“있어. 카스나우처럼 크진 않지만, 타밀록이라고 나무에 사는 조개가 있지. 맛있어.”
“하…….”
“상은 나중에 챙겨주도록 하고. 자, 그럼 이야기는 이쯤 할까.”
생으로 먹는 요리는 신선도가 생명이다. 소스가 완성되었으니 본격적으로 먹어야 한다. 승우가 칼을 들어서 카스나우를 썰었다.
백강혁의 상반신만 한 길이의 카스나우가 단숨에 일곱 토막으로 잘렸다. 자르기 전에는 엄청나게 기괴했지만, 자르고 보니까 그렇게까지 기괴한 모습은 아니다.
마치 커다란 굴 같았다.
통통하게 물이 오른 생굴은 전 세계의 사람이 좋아하는 영양 간식이다.
제법 먹을 만한 요리로 보인다. 잘린 카스나우의 조각을 큰 대접에 올리고 아까 만든 소스를 뿌리니 더더욱 괜찮아 보인다.
“초장 같아…….”
술꾼인 황지현이 그리 말했다. 민도 백강혁도 같은 생각이라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초장을 뿌린 생굴 맛은 절대 아니겠지.
승우가 씩 웃으면서 대접을 백강혁의 앞에 놓았다.
백강혁은 요리를 빤히 보다가 승우를 올려다보았다.
“이거, 먹으면 진짜로 잘생겨지는 거죠?”
“내가 거짓말하디?”
“하긴. 믿습니다, 싸장님.”
이게 아무리 맛이 없어도.
아무리 역해도.
잘생겨질 수 있다면 뭐든 먹을 수 있다.
싸나이 백강혁은 주먹을 불끈 쥐고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