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429)
괴식식당-429화(429/613)
429화. 눈이 오면 (2)
눈이 오면 전투 눈싸움을 한다. 작년부터 시작된 A섹터 주둔군의 전통이다. 알음알음 눈이 올 때마다 개최해서 이제는 4회째가 된다.
전투 눈싸움은 역사는 짧지만, 보상은 만만치 않다. 우승팀은 최소 B급부터 시작하는 승우의 아티팩트 컬렉션(신급 미만) 중에 하나를 받을 수 있다.
보상이 강하니.
의욕도 강하게 마련.
왼눈에 아티, 오른눈에 팩트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보이는 주둔군의 헌터들.
놈들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정훈이 마이크를 잡았다.
“이번에는 제발, 전치 6주 이상의 부상자는 나오지 말길 바랍니다. 2회 차에 내장 터진 놈. 3회 차에 대가리 깨진 놈. 놈들 뒷수습하다가 진짜 고생했습니다. 또 그런 일 터지면 가만 안 둘 겁니다.”
“우우우우, 대머리. 하야하라.”
“아무리 아티팩트가 좋다고 해도 적당히 하라고, 자식들아.”
“우우우우. 대머리, 머리에 핫팩 붙여라. 보는 우리가 춥다.”
“그래. 눈싸움하다가 뒤지든 말든. 니놈들 팔자지. 콱 죽어버리렴.”
“우우우우. 대머리, 그래도 걱정은 해줘야지. 하야해라.”
“망할 놈들. 눈싸움을 시작한다. 지금부터 서로 죽고 죽여라.”
개회사를 끝으로, ‘죽여라.’ ‘짓뭉개라.’ 따위의 살벌한 기합을 내지르며 사방에서 눈 덩어리가 쇄도했다. 하루가 갈수록 주둔군의 헌터는 실력이 늘고 있다.
삼대 마경이라고 불리는 가혹한 환경과 세계에 딱 네 군데에 지어진 괴식 특구 중 하나, 괴식 스트리트의 시너지 효과다.
싸우고, 괴식 먹고, 싸우고, 쉰다.
강해지지 않으면 이상한 로테이션 속에서 오늘도 헌터들은 실전 훈련을 방불케 하는 눈싸움을 한다.
이번이 네 번째.
횟수가 더해질수록 눈싸움이 과격해진다.
헌터들이 레벨 업하고, 스킬을 익혀가면 익혀갈수록 피해는 커진다.
마하의 눈 덩어리.
마그마를 휘감은 눈 덩어리.
맞는 순간 수백 개로 분열하는 눈 덩어리.
수류탄처럼 폭발하는 눈 덩어리.
“이거 한 30회쯤 되면 주둔군의 기지가 남아나질 않겠구나.”
이정훈이 탄식하다,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이 자리에 빠진 사람이 많다. 황지현도 빠졌고, 문선아도 빠졌고, 민도 빠졌고, 백강혁도 빠졌다.
주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많은 사람이 빠졌다. 놈들이 빠졌기에 이정훈은 빠질 수 없었다. 눈싸움의 개최사는 해야 했으니까.
“으. 나도 빠지고 싶었는데.”
녀석들이 빠진 이유는 다 같았다.
용사의 밥집에.
김장하러 갔다.
* * *
눈이 오면 김장이 떠오른다.
어린 시절, 승우의 집은 항상 눈이 오는 날 김장을 했다.
소방관인 아버지는 눈 오는 날이면 항상 사고가 늘기 때문에 집에 없으셨다. 그래서 김장은 어머니와 승우의 일이었다.
어린 승우는 왜 하필이면 아버지도 없는데 김장을 하나, 의문이었다. 하지만 나이가 조금 들고 철이 들 무렵에는 알게 되었다.
맞벌이인 승우의 집은 아버지나 어머니나 항상 피곤하고 바쁜 사람이다. 김장은 상당히 힘든 중노동이다.
어머니는 안 그래도 힘든 아버지가 쉬길 바라셔서 굳이 눈 오는 날에 김장하는 거였다. 그게 가능했던 건 놀랍게도, 어머니의 직장은 김장 휴가라는 휴가가 있었기 때문이라 한다.
‘아버지는 김장 휴가가 없었다지.’
내심 아버지도 하고 싶어 하던 눈치였다.
어쨌든 그래서 어머니만 혼자 힘드셨나, 하면 그건 아니었다.
어머니는 손재주도 좋으셨고, 주변에 인기도 많았다. 김장하는 날이면 동네에서 아주머니들이 모였다.
어머니의 친구 중엔 손이 크기로 유명한 아주머니가 몇몇 있어서, 김장은 정말 엄청난 규모로 치러졌다.
올해는 배추가 비싸다, 하면 수백 포기였고. 배추가 싸다 하면 천 포기도 훌쩍 넘었다.
당연히 다 먹을 수 없어서 항상 만든 김장김치의 백 포기 이상은 고아원이나 보육원으로 배달됐고. 그래도 남으면 주변 사람에게 돌아갔다.
나이가 들고, 어른이 되고.
신이 된 지금도.
승우는 눈이 오면 김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걸로 이곳에 와서 네 번째의 눈이다. 지금까지는 혼자서 슥슥 김장을 해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
어머니처럼 사람들과 같이 천천히 하고 싶어졌다.
왜 이런 심경의 변화가 있었을까.
아마도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겠지.
그렇게 혼자 결론을 짓고 마당에 쌓이는 눈을 보다, 승우가 홀짝 생강차를 마셨다.
따뜻한 온기가 몸 안을 따뜻하게 해준다.
옆에서 생강차를 마시던 민이 후- 하고 하얀 입김을 내뱉었다.
“폭설이지만, 그래도 심하게 춥지 않아 다행입니다.”
“그러게. 정 뭐하면 실내에서 할 생각이었는데, 이 정도라면 괜찮을 거 같아.”
가게 앞마당에 여섯 개의 천막을 지었다.
천막에는 삼천 포기 가까이 되는 배추가 쌓여 있고, 김장을 위해서 필요한 각종 도구가 즐비 해 있다.
천막 사이사이에는 피닉스의 열기를 직통으로 이은 히터가 설치되어 있고, 탁자에는 몸을 데우기 위한 생강차나 일하면서 먹을 주전부리가 준비되어 있다.
오늘의 김장을 위해서 세팅한 모습이다.
“으하하. 준비 완료입니다, 싸장님.”
빨간 장갑에 빨간 앞치마. 약간 치렁치렁해진 금발 머리를 고무줄로 묶고, 운동복을 입은 백강혁이 다가왔다.
퍼스트 오더 코트를 벗은 모습은 다들 오랜만이다. 민이 가만히 보다가 눈을 찌푸렸다.
“이 자식, 별나게 어울리네. 너 설마 김장 해봤냐?”
“한국인이니까 당연하쥐. 울 엄마도 너 낳고 잘 낳았다고 생각할 때는 김장할 때뿐이라고 말했다고. 내가 무채 하나는 기가 막히게 썰지.”
“너희 어머니도 상당히 말을 막 하시는구나. 하긴, 네놈의 막장 유전자가 어디서 왔겠어.”
“그만둬. 엄마 욕은 해도 되지만, 내 욕은 하지 마.”
“그래. 이번엔 내가 말을 좀 심하게 했… 뭐?”
잘못 들었나?
민이 흠칫 놀라서 돌아보자, 백강혁이 눈을 슬쩍 피하곤 승우에게 다가왔다.
“싸장님, 그럼 저는 무채 파트 맡을게요.”
“오? 자신 있나 봐.”
“제가 대림동 하이퍼 믹서기라고 불리던 남잡니다.”
“그래. 잘 부탁한다, 하이퍼 믹서기.”
“솔직히 각성하기 전의 이야기니까. 지금은 진짜로 믹서기보다 빠를걸요. 보이십니까, 이 근육이? ”
백강혁의 손 근육 중 엄지와 검지 사이에 있는, 무지대립근과 단무지외전근은 빨간 고무장갑 밖에서도 보일 만큼 뚜렷했다. 승우가 신기하다는 듯이 손을 봤다.
“아니, 여긴 정상적으로는 잘 발달하지 않는 근육인데. 잘도 이만큼 단련했네.”
“후후, 혹독한 단련의 결과지요.”
“굉장하네. 확실히 여기가 단련되면 좋지. 두 근육은 악력에 큰 영향을 주거든. 거기에 주로 쓰는 손인 오른손이 아닌, 왼손을 단련한 것도 좋았어. 근접전에서의 그래플링을 상정한 훈련이군.”
“으, 하하하. 맞아요. 그런 겁니다. 하. 하하하.”
승우의 칭찬을 듣고, 백강혁이 핫핫핫 하고 웃었다. 민은 ‘그거 딸ㄱ…’까지만 말하고 말을 삼켰다.
차마 승우에게 말해줄 수 없는 단어였다. 그렇게 민이 말을 삼키는 동안 백강혁은 재빨리 무채 담당 파트로 빠졌다.
민이 장갑을 끼면서 물었다.
“그럼 저는 뭘 하면 좋을까요?”
“너는 물 마법도 쓸 줄 알고, 감각도 예민하니까 양념장을 만들자.”
“그거, 어렵지 않겠습니까?”
“글쎄. 내가 보기엔 실패하기가 더 힘들 거 같아.”
염분의 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물 마법. 그리고 염분의 농도를 읽을 수 있는 탐지 능력이 있는데 양념장 배합에 실패할 가능성은 매우 적다.
결국 양념장은 고춧가루, 젓갈, 찹쌀풀이란 기본적인 재료에 단맛을 낼 재료를 넣고, 젓갈과 소금, 생강으로 깊은 맛을 내는 것이다.
이 비율만 잘 조절할 수 있다면 양념장은 대부분 성공한다.
승우가 미소를 지으면서 종이에 배합량을 적었다.
“일단 내가 도와주러 가기 전에, 한번 이대로 만들어봐.”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선까지는 안 해도 돼. 적당히 편하게 하자고. 쉬엄쉬엄. 놀면서 말이야.”
물론, 전혀 알아먹은 기색은 없었다. 민은 절제된 움직임으로 양념장 배합 작업을 시작했다.
* * *
김장의 단계는 아주 간단하게 말하면 딱 네 단계였다.
많은 배추를 소금물에 절인다.
양념장을 많이 만든다.
잘 절인 배추에 양념장을 채운다.
먹는다.
작전명 ‘눈 오는 날은 김장’의 브리핑을 받고, 업무분장을 받은 숙련된 전사들이 움직였다.
백강혁은 산더미만큼 쌓인 무 앞에서 채칼을 들었다.
그의 임무는 무채 만들기.
레벨 97, 퍼스트 오더 10위.
단련된 근육을 가진 백강혁의 속도와 힘을 버티기 위해 채칼조차도 미스릴이었다.
비가 오는 것처럼 무채가 늘어난다. 하나의 무를 완전히 갈아버리는 데 1초도 걸리지 않는다.
실로 가공할 만한 속도였다. 단숨에 수십 개의 무를 갈아 대야 가득 무채를 만들고, 그것을 한쪽 구석에 쌓는다. 텀이 없다. 미리 작업 동선을 외운 것처럼 움직인다.
왼손을 뻗어 무를 잡고, 오른손으로 채칼을 잡는다. 그리고 들리는 그라인더 소리.
위이이잉 소리가 끝나면 무는 사라지고 무채만 남는다.
마법처럼 사라지는 무. 그리고 빠르게 차오르는 대야. 질서정연하게 쌓인 철 대야는 감동적이다.
녀석의 기계적이면서 정밀한 동작에 문선아가 감탄했다.
“아니, 저 새끼는 평소에는 뻘짓만 죽어라 하더니. 왜 저렇게 일을 잘해. 뭐야? 프로 주방러야? 뭔데 저렇게 잘하는데.”
“그건요. 우리 오더는 일을 시키면 뻘짓을 하지만, 강자 앞에서는 시키는 일만 해서 그래요. 저 사람이 원래 시키는 일만 딱 하면 잘해요. 피지컬은 좋잖아요.”
칭찬이지만 칭찬이 아니었다.
문선아의 미간이 꿈틀하고 떨렸다.
“잠깐. 그건 선생님보다 내가 만만하다는 뜻일까?”
“알잖아요. 오더, 깡 하나는 좋은 거. 총장님한테도 월급 동결 풀어달라고 테러 건 인간인데 누가 무섭겠어요. 유 사장님 말고는 아무도 안 무서워할걸요.”
황지현에 말은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다. 배추 담당의 문선아는 튼실한 배추를 네 등분으로 썰며 눈을 가늘게 떴다.
“역시 언제 한번 군기를 잡아야…….”
“이젠 그것도 힘들지 않을까요?”
“그건 그래, 이젠 힘들겠다. 뭔 레벨이 저렇게 콩나물처럼 쑥쑥 오르는지 원.”
“오더가 언니보다 레벨 높죠?”
“응. 그래도 내가 이기긴 해.”
문선아의 경험은 백강혁보다 훨씬 높고, 이능력도 직관적으로 강력하다. 그래서 모의전 결과는 6전 5승 1패였다. 1패, 1패.
방심으로 당한 1패를 생각하니 스트레스로 정수리가 아프다.
“저 망할 놈이 나대던 거 생각하니까 다시 머리가… 윽.”
“민 씨도 1패 당했다던데, 귀신같이 1번은 꼭 이기네요.”
“저 거머리 자식, 사람 놀려먹으려고 이기는 거야.”
남들이 싫어하는 일을 할 때는 귀신 같은 힘을 보여주는 게 백강혁이란 놈이다.
지긋지긋한 녀석. 앓는 소리를 내며 선아가 기계적인 손놀림으로 배추를 썰었다.
그 옆에 앉아 차분하게 같이 배추를 썰던 황지현이 화제를 바꿨다.
“오더 이야기를 해봐야 화만 나잖아요. 좀 즐거운 이야기 해봐요.”
“군바리 생활에 즐거울 게 뭐가 있냐.”
“언니는 왜 눈싸움 안 가고 여기 왔어요?”
“그야 당연히 눈싸움보다는 김장이지.”
김장은 고된 노동이지만, 헌터에게는 그렇게까지 고된 노동은 아니다.
레벨 낮은, 이능력이 좋지 않은 헌터들의 끝은 베링해의 게잡이다.
그 힘든 게잡이조차 헌터에게는 힘든 일이 아니다. 그것과 비교하면 김장은 쉬운 일이지.
“김장하고 나면 그게 있잖아?”
츄릅, 하고 문선아가 침을 삼켰다.
김장하고 나면 먹는 돼지고기 수육, 굴김치, 홍게는 선아가 제일 좋아하는 먹거리다.
갓 담근 김치와 수육.
굴김치는 그 자체가 필살기인데, 담그는 사람이 승우?
“이건 못 참지.”
“맞아요.”
제사보다 잿밥에 관심이 많은 두 여자는 이후에 있을 만찬을 생각하며 입가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