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443)
괴식식당-443화(443/613)
443화. 결혼 (1)
동해안까지 영토를 수복한 이후, A섹터의 물류 보급은 조금 더 다채로워졌다. 활기 넘치는 재래시장은 언제봐도 좋다.
승우는 큼지막하게 감자가 붙은, 도깨비방망이처럼 된 감자 핫도그를 하나 물고 시장길을 걸었다. 그러고 있으려니, 그를 알아보고 주인아주머니가 말을 걸었다.
“오늘은 갈치가 상당히 좋아. 갈치조림 좋아해?”
“아주 좋아하죠. 실은 갈치보다는 무를 더 좋아하지만요.”
“아이고, 우리 양반처럼 힘도 세더니만, 취향도 똑같네. 얼굴은 다르지만 말이야.”
주인아주머니는 시원하게 웃었고, 승우는 희미하게 웃으며 갈치를 보았다.
확실히 실하고 좋은 갈치다. 오는 길에 좋은 무를 봤었다.
여기서 갈치를 사고, 돌아가는 길에 무를 사서 갈치조림 하면 딱 좋겠다. 열 마리면 되겠지.
주인아주머니가 아이스박스에 열 마리의 갈치를 담아, 승우에게 건넸다. 승우는 현금으로 계산하다가 그녀에게 물었다.
“그런데 사장님의 선생님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에고고, 그냥 할아버지지 남사스럽게 선생님은 무슨 선생님이야.”
“하하하.”
“그 양반 이름은 오만득이라고 해. 촌스러운 이름이지.”
본래 페링기들이 소환했어야 할 할아버지 이름이 오만득이었다. 근력 강화 능력자에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
페링기의 말대로라면, 아마도 두 달 후면 죽을 운명이다. 혹시나 해서 찾아왔더니 역시나다.
찾아와 보길 잘했어, 하고 승우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아주머니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근데 우리 잘생긴 총각이 우리 양반은 왜 찾아?”
“아, 제가 아는 사람이 오 선생님을 뵌 거 같아서요. 거리에서 양문형 냉장고를 들고 다녔다고…….”
“냉장고! 에휴휴. 말도 마셔. 그 냉장고 때문에 아주…….”
“뭔 일이 있었나요?”
“그 양반이 늘그막에 각성해서 힘 세다고 이것저것 번쩍번쩍 들고 다니고 그러거든. 예전에는 커다란 조개도 들고 와서 총각에게 팔고 그랬잖아.”
“그랬었지요.”
“이번에 냉장고 들고 까불다가 그만 허리를 접질리고 말았지 뭐야.”
승우가 살짝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남편이 허리를 다쳤다는데, 표정이 과하게 좋다. 그래서 떨떠름하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어째 썩 나쁜 일은 아니었나 보네요?”
“거, 옛말에 새옹지마라고 하잖아. 허리 다쳐서 병원에 갔더니만, 의사가 갑자기 종합검진을 하자네? 하자는 대로 했더니 암이 튀어나왔어.”
“암? 어떤 암입니까?”
“췌장암. 의사 말이 두어 달만 늦었어도 죽었을 거라고 하더만. 어쨌든 우리 양반은 일찍 발견해서 조기 치료 하고 요양 중이야.”
췌장암은 조기 발견이 힘들고, 발병하면 거의 사망에 이르는 무서운 병이다. 하지만 초기에 발견한다면 치료가 어렵지 않다.
절제하고, 재생하면 그만이니까. 병원에 입원은 했어도 죽을 가능성은 적겠지. 승우가 미소를 지었다.
“정말, 새옹지마네요.”
“맞아. 인생 모른다니까. 꽁치도 조금 줄까?”
“두 마리만 주세요.”
살 사람은 어떻게 해도 사는 법이다.
굳이 치료해 줄 필요는 없었구나.
승우는 품에 넣어두었던 치료용 버섯을 인벤토리에 던졌다.
그러고는 아이스박스를 들었다.
“장사, 번창하세요.”
“총각도.”
* * *
갈치는 칼치, 도어(刀魚)라고 불린다. 칼처럼 생긴 까닭이다.
그것은 동양과 서양을 가릴 것 없는 공통적인 감상이라, 서양에서도 같은 식으로 이름이 붙었다.
커틀러스 소드처럼 생겼다고 해서 커틀러스 피쉬, 태도처럼 생겼다고 해서 태도어 따위로 불린다.
승우가 갈치를 손질하는 모습은 묘하게 무서웠다. 신문지를 들어도 무서운 사람인데, 칼처럼 생긴 갈치를 들었으니 오죽 무서울까.
백강혁이 꿀꺽 하고 침을 삼켰다. 맛있는 갈치를 생각해서 삼킨 침이 아니다. 쫄아서 삼킨 침이다.
“벼, 별나게 무섭네요. 갈치가 무슨 칼처럼 보여…….”
“실제로 갈치는 무기로 쓸 수 있어. 어지간한 검보다 나아.”
“옝??”
“바다에서 무기가 없어서 갈치를 잡아다가 써봤는데, 쓸 만했지.”
당시에도 아이온은 있었으나, 그냥 평범한 불량품 철검에 지나지 않았다.
원래 가난한 용병이나 기사는 쓰다가 망가질까 무서운 나머지, 바다에서는 철로 된 무기를 쓰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승우처럼 갈치를 쓰진 않고, 대체로 목검이나 나무창을 애용한다.
승우가 미소를 지으며 옛일을 떠올렸다. 갈치로 서펜트를 잡은 것은 제법 강렬한 기억이라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생생하게 기억났다.
“갈치라, 갈치라. 나도 갈치로 검성기를 쓸 수 있으려나…….”
백강혁이 이리저리 갈치를 보며 견적을 내보았다. 역시 힘들겠구나, 하고 고개를 털었다.
승우는 단숨에 열 마리의 갈치를 손질하고는 갈치조림을 만들 준비를 했다. 간장에 고춧가루를 넣고 고추장도 넣는다. 물엿을 살짝 넣으면 달착지근해져서 좋다.
슥슥 양념장을 흔들고 있으니, 다시 백강혁이 말했다.
“그리고 보니까 싸장님, 혹시 내일 시간 되세요?”
“내일? 딱히 바쁜 일은 없어.”
“그럼 결혼식에 와주실래요. 제 동생이 내일 결혼해요.”
승우의 젓가락질이 잠시 멈췄다.
“얼마 전에 그런 이야기를 들은 거 같은데. 벌써 결혼해? 그것도 내일? 너무 빠르지 않아?”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도 있고. 원래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 게 우리 집 가훈이거든요. 부랴부랴 식장을 잡는 건 알았지만, 진짜 결혼을 내일 한다는 건 저도 어제 알았어요.”
“급한 성질은 집안 내력이었군.”
“맞아요.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오는 법이지요.”
그렇다면 백강혁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정상은 아니라는 건가.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저런 놈이 돌연변이가 아니라 유전으로 나온 거라면 그것은 재앙이다. 앞으로 제2, 제3, 제4의 백강혁이 태어난다는 소리니까.
승우가 피식 웃었다.
“내 추측이지만, 너희 부모님은 그 속담을 매우 싫어하시겠군.”
“완전 점쟁이시네요. 엄청 싫어하십니다.”
“그럴 거 같았어.”
“얼마나 싫어하냐면요. 그 속담을 없애 버리려고 서명도 모은 적이 있어요. 말도 안 되는 헛소리가 속담이라는 껍질에 숨어서 사실인 양 군다고 국립국어연구원에 항의 서신도 보냈죠. 안 들어주니까 국민 청원도 하고. 급기야는 피켓 들고 시위도 했어요.”
“…….”
상상을 초월하는 행동력과 실행력이다. 싫다고 해도 보통 거기까지 하나?
“네 부모님이 맞긴 하시구나.”
“그래요?”
“본인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속담의 신뢰성을 올리고 있다는 걸 모르시나 보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옛말은 틀린 게 없구나.
승우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홍고추를 조금 썰어 넣어 양념장을 마무리했다. 그러고는 냄비에 무를 큼지막하게 썰어 넣었다.
“내일 몇 시?”
“점심이요. 11시부터 시작해서 1시까지 해요.”
“알았어. 아, 영식이는 가도 되나?”
“오히려 꼭 부탁드립니다.”
“왜?”
백강혁이 침을 꼴깍 삼키며 냄비를 보았다. 무를 깔고, 그 위에 갈치를 올린 후에 양념장을 뿌렸다.
물을 넣고 끓이고 있으니 냄새와 모습에 침샘이 자극되어 침이 줄줄 흐른다.
홀린 듯 냄비를 보다가 백강혁이 아차, 하고 한 템포 늦게 대꾸했다.
“영식이는 인기 많아요. 그 만화가 대히트했잖아요. 한 번쯤 진짜 용사 슬라임을 보고 싶다고 친척들이 성화예요.”
“알았어.”
“근데 그건 언제 끝나요?”
“막 끓기 시작했어. 참아.”
“끄으으으으으응…….”
보글보글 끓는 갈치조림.
저걸 눈앞에 두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니-!
당장에라도 저 국물을 한 입 맛보고, 하얀 쌀밥을 듬뿍 입에 넣고 싶다.
새하얀 갈치 속살을 국물에 적셔서 입에 넣고, 또다시 쌀밥을 한 입 가득. 잘 졸여진 무를 잘라서 한 입! 쌀밥을 한 입!
국물을 밥에 비벼서 한 입! 매울 때쯤 녹차 한 잔을 마시고 다시 처음부터!
하지만 참아야 한다.
덜 익었으니까.
“이건 뭐, 고문이구만.”
번갯불에 콩을 구워 먹는 가문의 장남이 투덜거렸다.
* * *
승우는 나이에 비해서 사회 경험이 적은 편이다. 주민등본상의 나이와 실제 나이의 괴리감도 굉장하지만, 테라와 지구 사이의 괴리감은 더 크다.
지구에서 나이 서른 중반이면 친구들의 결혼식에 상당히 자주 다녔겠지. 하지만 테라에서 40년을 보낸 승우는 결혼식에 참석한 경험이 별로 없었다.
끽해야 어렸을 때 친척들 결혼식에 참가한 정도일까? 어쨌든 결혼은 신성한 일이다. 축하해 마땅한 자리다.
축하의 마음은 예법에서 나온다. 예법에 맞춰서 깔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었다. 그 모습에 영식이가 폴짝폴짝 뛰었다.
“멋있다뿌.”
“너도 오늘 멋있어.”
“진짜뿌?”
공기를 마시고 몸을 크게 펴는 영식이, 녀석의 가슴에는 검은 나비넥타이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나비가 빌려준 나비넥타이다. 보기보다 고급품이라 들었다.
파란 슬라임에 검은 나비넥타이는 제법 어울렸다.
“그래서, 음. 분위기가…….”
승우가 슬쩍 결혼식장을 훑었다. 좋은 분위기다. 과하게 품을 들이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인색하게 굴지도 않았다.
식사는 뷔페식이었는데 조금 식었지만 제법 먹을 만했다. 입맛이 까다로운 영식이도 마음에 들었는지 떡갈비를 낼롬낼롬 먹었다.
식장의 분위기는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하객들의 분위기는 조금 아니었다.
‘등 뚫리겠네.’
엄청난 시선이다. 마치 눈에서 레이저빔을 쏘는 듯하다.
신부 측의 친구들은 마치 먹이를 보는 사자처럼 용맹한 시선으로 승우의 등을 봤고, 신랑 측의 친구들은 부모님의 원수처럼 승우를 봤다.
어째서 그런지 승우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백강혁은 알았다.
“뭐긴 뭐예요. 신부 측 친구들은 싸장님이 일등 사냥감이니까 노리는 거고, 신랑 측 친구들은 관심을 싹 가져가니까 질투하는 거지.”
“그, 그래?”
“너무 깊게 반응 안 하셔도 돼요. 어차피 잠깐 저러는 거니까.”
정말이었다. 시선이 금방 사라졌다. 백강혁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유명인이나, 잘생긴 사람이랑 엮여보려는 사람이 한둘이겠어요. 아무래도 제 동생이 신랑이니까, 조금 질 나쁜 사람이 섞여 들어왔네요. 동생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제가 퍼스트 오더라서 그래요.”
백강혁은 퍼스트 오더고, 퍼스트 오더의 동생 결혼식이니까 참석하는 면면이 제법 화려하겠지.
백강혁 본인도 있고, 직장 동료 대표로 참석한 윤은형과 권능하도 있다. 이 화려한 면면과 인맥을 트려고, 엮이려고 모이는 사람이 있다는 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신성한 결혼식의 부정적인 측면이었다. 승우는 슥 보고 구조를 이해했다. 귀족들의 모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근데 왜 민이 아니라 저 둘이 온 거지?”
“일단 저놈들이 참석한 이유야, 학교 땡땡이 치려고 온 거구요. 민이 참석하지 않은 이유는 눈물이 없으면 들을 수 없는 사연이 있습니다.”
“뭔데?”
“저랑 민이 사귄다는 소문이 있어서요.”
“…….”
“같이 오면 그 소문이 참, 안 좋은 방향으로 커지겠죠? 제 동생은 민에게 부케 주려고 벼르고 있던데… 싯펄놈이 진짜 디질려고.”
참으로 눈물이 없으면 들을 수 없는 사연이었다. 한심한 마음에 포도 주스를 머금으며 식장을 구경하고 있으니, 있어서는 안 될 하객도 보였다.
“쟤는 여기 왜 있냐?”
“희라 누나요?”
“그래.”
“그야, 제가 초청했죠.”
승우가 백강혁을 멍하니 봤다. 그러다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알고 한 건 아니겠지만, 잘했다.”
헤라의 가호 중에는 결혼의 축복이 있다. 그녀의 축복을 받으면 좋은 결혼 생활을 할 수 있겠지.
승우가 그렇게 말하니, 강혁이 헤헤 하고 웃었다.
“여기서 희라 누나에게 부케를 받게 하고, 제가 달려가서 다이아몬드 반지를 내밀 생각이었는데. 역시 싸장님이 봐도 좋은 프로포즈인가 보군요!”
“그건 하지 마라.”
얜 또 웬 미친 소리를 하고 있어.
승우가 눈을 찌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