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447)
괴식식당-447화(447/613)
447화. 결혼 (5)
남남, 여여가 노는 현상은 흔하다. 이성에 대한 면역력이 없는 애들은 원래 그러고 논다.
그러니까 미니게임이라는 백신이 필요하다. 1차, 2차, 3차 백신을 투여하면 그다음부터는 어색함이 지워지고 충분한 친밀함이 생긴다.
그때부터가 본방이다.
다른 손님이라면 백신 투여 따위는 필요 없겠지만 어쩔 수 없지.
헌터니까, 내추럴 모쏠이니까!
김태윤의 생각은 정석 중의 정석이었고, 커플 매니저라면 누구나 할 법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게 착각이었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 없었다.
“우이씨. 짜증 나…….”
빠드득 하고 이를 가는 문선아는 진심으로 분해 보였다. 감정을 숨길 생각도 없다. 그럴 법도 하지.
미니게임을 시작한 이래 한 번도 이기질 못했다.
그녀뿐만 아니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안테나라는 여성도 만만치 않게 열받은 상황이다. 새빨개진 머리 위로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른다.
한계까지 치솟은 짜증이 마나 코어를 달궈 땀을 증발시키는 것이다. 만화적인 연출로 알고 있었는데, 진짜로 저게 가능하다는 건 처음 알았다.
‘근데 저거 뭐 하는 인간이야?!’
김태윤이 경악한 눈으로 승우를 봤다. 승우가 씩 웃으며 머리를 쓸어 올렸다.
“또 내 승리로군.”
지질 않는다. 카드, 보드, 마피아 게임을 비롯하여 눈치 게임까지 유승우라는 인간이 모조리 이기고 있다.
어떠한 게임을 줘도, 어떠한 미니게임을 시작해도 저 인간이 이긴다. 김태윤이 눈을 껌뻑였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 이게 말이 돼? 저 사람은 무슨 게임의 신이나 도박의 신 같은 건가!’
MT, 술자리에서의 미니게임은 실력보다는 운이 중요하다.
어차피 다 공평하게 확률적으로 지고, 패자와 승자가 빠르게 순환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한 명의 독주 따위는 확률적으로 불가능하다.
김태윤이 제공한 미니게임은 죄다 그런 류의 게임이다. 한 명이 무조건 이기는 건 불가능한 게임들.
그런데 그걸 무시하고 한 명이 계속해서 이기는 기현상이 눈앞에서 발생하고 있다.
‘미취겠네. 이래서는 미니게임을 한 의미가 없잖아. 왜 미니게임이 확률 게임으로 만들어졌는데!’
완벽하게 이기는 사람도, 완벽하게 지는 사람도 없이, 패배와 승자가 번갈아 나와야 한다. 그래야 분위기가 안 망가진다.
놀자고 하는 미니게임인데 한 명이 싹 이기면 어떻게 되겠는가?
‘분위기가 곱창 나지.’
그래서 곱창 났다.
눈에 띄게 열받은 두 여성과 ‘흐흐헤헤, 내가 싸장님한테 어케 이김?’ 하며 승부를 포기한 한 남자와 미니게임의 승리에 눈이 먼, 미친 게임의 신이 있다.
곱창이 날 수밖에 없다.
“…….”
“…….”
“흐헤헤헤. 싸장님, 겜 넘 잘하시네.”
곱창 난 분위기 속에서 더욱더 분위기를 조지는 한 남자의 추임새.
진심으로 열받은 저 두 여성을 보라. 김태윤은 둘의 프로필을 상기하고는 손톱을 깨물었다.
‘조졌다.’
미니게임은 글러 먹은 선택이었다.
‘이 매칭, 힘들 거라고 예상하긴 했지. 맴버가 이 모양이니까.’
애초부터 이 인선은 비정상적인 인선이긴 했다.
문선아는 한국의 희망으로 불리는 전쟁영웅인 동시에, 프로필 기록에 좋아하는 것: 격파(클수록 좋음. 탱크 극호.) 따위의 미친 소리를 당당하게 적는 과격파다.
힘이 세고 과격하니 커플 매칭 난이도 등급으로 치자면 당당히 별 네 개를 줄 수 있다.
백강혁은 어떠한가. 녀석은 퍼스트 오더인 주제에 한국의 수치라 불리던 결격 헌터다.
그러다가 갑자기 성공해서 엄청나게 도약했다만, 문제가 있다.
‘사이비 종교 교주!’
놈은 교주다.
사이비 종교라고 해도 괴식교는 이제는 가입자가 일억 명이나 되는 거대 규모의 종교다.
사이비라고만 취급할 수는 없지. 하지만 창립한 지 반년도 안 되는 종교 단체에 대한 색안경은 여전히 남아 있다.
본연의 지랄 맞은 성격과 방탕했던 과거의 기록도 있다. 커플 매칭 난이도 등급으로 치자면 별 다섯 개. 만땅이다.
‘이 둘은 확실히 힘들어 보였지. 하지만 남은 두 사람은 괜찮았단 말이야.’
안테나는 프로필 기록 특기사항에 당당하게 ‘급하다’고 적었다. 프로필에는 나이 23세라고 적혀 있고 어려 보이는 외모지만, 김태윤이 커플 매니저 경력 12년을 걸고 맹세하기를 무조건 30세는 넘었다.
청순하고 수줍어 보이는 외모는 나이에 걸맞았지만, 프로필 작성자가 그녀의 어머니였다.
‘경험상 이런 사람은 노처녀야.’
어머니가 빨리 결혼하라고 매칭을 잡는 사람은 대개 그렇다. 그러나 매칭 상대도 나이가 많았고 워낙 외모가 빼어나기에 커플 매칭 난이도로는 별 한 개쯤 되는 낮은 난이도다.
‘저 사람도, 겉은 괜찮았는데!!!’
유승우는 모자란 부분이 없는 사람이었다. 솔직히 이런 사람은 매물로 내놓으면 1초 만에 사라진다.
우수상품이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특상, 특특특상. 특을 오십 번 붙여도, 부족해도 부족한 매물이다.
내놓으면 승리가 보장되는 조커 같은 남자다. 그래서 매칭 난이도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래서 방심했다.
‘설마, 승부가 되면 눈 돌아가는 인간이었다니!’
가끔 이런 인간이 있다. 그 유명한 마이클 조던이나 타이거 우즈 같은 승부사다.
평범하게 있다가 승부욕이 불타면 무조건 이겨야만 직성이 풀리는 인간. 초등학생과 농구 경기할 때도 덩크를 사정없이 메다꽂고, 축구를 하면 오버헤드킥을 갈기는 그런 사람이다.
‘설마 백강혁이 제일 다루기 쉬울 줄이야. 제일 멀쩡한 사람이 제일 엉망이야!’
김태윤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미니게임은 실패다.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 이럴 때는 말을 통해서 공통된 화제를 찾고, 친밀함을 느끼도록 유도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커플 매니저 경력 12년간 수행한 풍둔 아가리술을 펼칠 때! 둘의 어색함을 없애고 그것을 친밀함으로 바꾼다!
“…….”
그것조차 실패였다. 주둥이에 시동을 걸고 있을 때 승우가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고 보니까 지난번에 같이 김장한 김치 있죠? 잘 익었더라고요. 슬슬 가져가세요.”
“아, 정말요? 겉절이로도 엄청 맛있었는데, 기대되네요!”
문선아가 마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뭔가 이상하다.
김태윤이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저 회원님들? 아시는 사이인 건 알았습니다만. 같이 김장도 하셨어요?”
“예. 제가 식당하잖아요.”
“…….”
친밀함은 이미 쌓일 만큼 쌓인 상태였다. 같이 김장까지 하는 사이였다.
‘이 이상 쌓을 친밀함이 있나?’
김태윤의 동공이 떨렸다.
상황이 이해가 안 된다.
커플 매칭 하러 나왔는데, 서로 김장도 같이하는 사이라고?
그거 짱친 정도가 아니지 않나?
나랑 울 자기는 청첩장 돌리고, 다음 날 같이 첫 김장 했는데? 같이 김장할 정도면 혼약자 아닌가?
이해가 되지 않으니 둘이 신비로운 생명체처럼 느껴졌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모쏠이라고 생각했는데 몬쏠(몬스터 솔로)이었다. 인간이 아니다.
‘아무리 12년 경력 커플 매니저라고 해도 몬쏠은 무리다. 버거워.’
이렇게 되면 표적을 좁혀서 어떻게든 백강혁과 안테나만이라도 이어줘야겠다! 방침을 정한 김태윤이 조심스럽게 백강혁에게 접근했다.
“회원님, 혹시 마음에 드는 분 있으십니까?”
백강혁이 조심스럽게 안테나를 보았다. 김태윤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딱 좋다.
하지만 이어지는 백강혁의 말에 귀를 의심했다.
“저 사람의 엄마.”
“예??”
“저 사람의 엄마가 좋다고.”
아니, 이 미친 새끼가?
쌍욕을 내뱉지 않은 것만으로도 김태윤의 프로의식은 칭찬할 만했다.
백강혁이 아련하게 말했다.
“내 혼도 바칠 수 있는 사람이지. 후후후. 부케 작전은 실패했지만, 반지도 준비했으니까. 이번에야말로 그녀에게 청혼하겠어!”
“이런 새끼가 왜 여기 나오고 지랄이지?”
하하, 응원합니다, 고객님.
생각과 말이 바뀌어 나왔지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다른 셋은 같은 기분이었고, 백강혁은 어차피 남의 말 따윈 듣지 않기 때문이다.
‘환장하것네. 싯팔.’
김태윤은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아무래도 이번 커플 매칭은 조졌다. 다시 생각해 봐도 조졌다.
그게 김태윤의 결론이었다.
“열 번을 실패해도~ 열한 번째에는 불사조처럼 날아오르리~”
피닉스 시스템의 사가를 부르며, 김태윤이 천천히 밖으로 나갔다.
* * *
김태윤의 낙담과는 다르게 분위기는 좋았다. 승우나 문선아나 승부욕이 엄청났지만, 승복도 빠르고 뒤끝을 남기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게임은 의외로 아테나가 편하게 말할 수 있게 되는 효과가 있었으니, 결과도 나쁘지 않았다.
“사실, 어머니가 성화라서 나왔지만. 이런 자리는 꽤 좋네요.”
“맞아요. 저도 동경하고 있긴 했어요. 테나라고 불러도 되요?”
“괜찮아요. 저도 선아라고 부를까요?”
“좋아. 그럼 반말도?”
“해도 돼.”
아테나와 문선아는 제법 죽이 잘 맞았다. 그리고 애초에 승우와 문선아도 죽이 잘 맞았다. 자연스럽게 셋은 동화되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거리감도 좁혀져서 거리낌 없이 이야기도 할 수 있게 됐다.
“승우 씨의 가게는 다 좋은데, 조용함이 부족해요. 빡강혁 놈이 매일 있는 것도 그렇고, 손님이 너무 많아서 시끄러워요. 재즈 음악은 좋지만, 손님들 이야기랑 섞이면 소음이 된다구요?”
문선아가 일침하자, 승우가 윽 하는 소리를 냈다. 내심 신경 쓰고 있던 부분이다. 아테나가 자연스럽게 조언했다.
“제 경험상 그럴 때는 구역을 나누는 게 좋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럼 폐쇄감이…….”
“그건 인테리어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에요. 고심하면 어렵지 않을 거예요.”
“인테리어, 좋지. 아, 그런데 이러고 있는 게 아니라, 슬슬 장소나 바꾸자.”
미니게임도 하고, 밥도 먹고. 두런두런 이야기하고 있으니 시간이 쏜살같이 갔다. 해가 질 무렵이다.
셋은 잠시 서로를 본 후에 피식 웃었다. 커플 매칭이라는 웃기는 장소에서 모였지만 어차피 모르는 사이도 아니다. 기왕이면 편한 자리에서 만나는 쪽이 좋겠지.
“가게로 돌아가서 한잔할까?”
“그러죠.”
“좋네요. 그런데 백강혁은 어디 갔죠?”
백강혁이 은근슬쩍 없어졌다. 다시 생각해 보니, 김태윤이라는 커플 매니저가 낙담하고 자리를 비울 때부터 안 보였던 거 같다.
문선아가 고개를 갸웃하니, 승우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복수전 하러 갔어.”
* * *
칠전팔기(七顚八起).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째에는 일어난다.
백강혁은 넘어진다고, 거절당한다고 해서 포기하는 종류의 인간이 아니었다.
희라 누나가 거절했어?
그럼 또 고백한다.
또 거절했어?
또 고백하면 된다.
헤라는 백강혁에게 아테나와 같이 맞선 자리에 나가달라고 부탁했다.
부탁을 들어줬고, 그 보답으로 데이트 한 번을 약속받았다. 데이트에 나서기 전, 백강혁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결혼을 전제로 사귀어 주십시오!”
무릎을 꿇고, 반지를 내민다.
희라누나가 당혹스럽게 웃었다.
웃는 얼굴도 이쁘다.
콩닥거리는 가슴으로 대답을 기다린다. 하지만 이번에도 대답은 같았다.
“지난번에도 이야기했지만, 나는 결혼과 가정의 신이야. 그런 내가 불륜할 수는 없어.”
“누나, 이제 저도 신에 대해서는 조금 알아요.”
신명이 두 개인 신은 주신급이라고 해서 굉장히 강한 신이다.
주신은 신격에 맞는 책임이 있다. 그녀는 심지어 결혼과 가정의 신이기에 불륜도 그렇고, 이혼은 더욱 용납이 안 되는 일이라고 한다.
아무리 남편이 성기능 장애를 가진, 폭력성이 짙은 최악의 남편에, 위력 강간에 의한 결혼이라고 해도. 세간의 눈도 있고, 면이 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몇 번이나 거절했다. 그러나 이번엔 강혁도 각오하고 왔다.
“누나, 이혼까지는 바라지 않아요. 전 세컨드면 돼요.”
“뭐, 뭐, 뭐, 뭐??”
“누나의 신명이 두 개잖아요? 신명이 두 개인 신은 화신도 둘이잖아요? 그러면 남편도 둘 두는 게 어떨까요?!”
강혁의 폭탄 발언에 헤라의 눈이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