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452)
괴식식당-452화(452/613)
452화. 심연의 괴식 (1)
게이트가 출연하면서 이세계의 마나가 대기 중에 섞이게 됐다. 마나에 노출된 사람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아픈 사람,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 다양한 반응 중에서, 낮은 확률로 신기한 능력을 얻은 자가 있다.
사람들은 그들을 각성자라 부른다.
각성자는 자신의 능력을 고를 수 없다. 누군가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생뚱맞은 능력으로 각성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자신이 꿈에 그리던 능력을 얻기도 하며, 누군가는 자신도 알지 못하던 숨겨진 재능이 깨어나는 능력을 얻기도 한다.
여기, 한 여성이 있다.
이름은 신유라.
직업 장의사.
능력 네크로맨시.
직업과 재능과 능력.
완벽하게 삼박자가 맞아떨어진.
기적과도 같은 사람이다.
그녀에겐 고민이 있다.
그것은 바로…….
“저 사기당하는 거 같아요.”
* * *
황지현은 눈가를 누르면서, 민원자. 신유라를 보았다. 본래 민원 상담은 황지현의 일이 아니다.
‘아니, 내 짬에 고민 상담이라니.’
그녀는 이래 보여도 A섹터 내에서는 상당히 높은 직책을 가지고 있어서, 민원 상담 같은 자잘한 일까지 할 급이 아니다.
심지어 요즘은 어떤 사디스트 대마왕 때문에 일이 두 배로 늘었기에, 민원 따위를 볼 시간이 없다.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번 민원은 특별하다.
신유라. 국가공인 자격증을 소유한 한국 유일의 진짜 네크로맨서. ISAC 가입을 수차례나 무르고 한국에 남은 각성자라, 이 업계에서는 제법 유명인이다.
‘그렇다고 해도 선아 언니와는 조금 다른 케이스지.’
문선아는 ISAC에는 가입하지 않았으나, 군에 몸을 담고 협조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녀가 가입하지 않은 이유는 오로지 애국심 때문이고, 조국 수호를 위해 결국은 최전선에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신유라에겐 애국심의 편린조차 없다.
그냥 가업인 장례식장 운영 때문에 가입을 안 했을 뿐이고, 전선에 나서려 하지 않는다.
그런 그녀의 고민을 풀어주고, 은근슬쩍 ISAC에서 활용할 수 있게 하면 일이 줄지 않을까?
황지현은 상당히 음흉한 의도로 그녀의 고민에 귀를 기울였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까 영 좋은 생각은 아니었다.
‘저 사람이 가입한다고 내 일이 줄어들 리가 없잖아?!’
어차피 황지현의 업무는 망자가 대신 할 수 없는 서류 업무다. 내가 지금 일에 치여서 제정신이 아니구나, 하고 자조하면서 황지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떤 사기를 말씀하시는 거죠?”
“그, 혹시 제가 하는 일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아시나요.”
황지현이 잠깐 말을 멈추고 생각을 정리했다. 신유라의 네크로맨서 라이센스는 국가 공인이다.
이 라이센스는 국제 표준 규격을 그대로 따왔다. 한국에서나 그녀가 유일한 네크로맨서지, 타국을 포함하면 네크로맨서는 백 명이 넘는다. 한국에 네크로맨서가 유독 적은 이유는 불명이다만, 어쨌든 네크로맨서들은 ISAC가 만든 네크로맨서 법을 준수해야 한다.
“네크로맨서들은 네크로라이즈라는 스킬로 사망한 사람들의 유골에서 해골 병사들을 일깨워서 다룰 수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네. 맞아요.”
“예전에 법이 생기기 전에는 무덤에서 멋대로 시체를 소생시키거나, 복수를 위해서 네크로맨시를 사용한 경우가 있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법이 생겼고, 신유라 씨는 법을 준수해서 아직까지 한 번도 불법 네크로맨시를 한 적이 없지요?”
“맞아요. 저는 법을 지켜요.”
준법정신이 투철해서 그런 게 아니다. 법을 어기면 막대한 벌금을 문다. 그것뿐인가.
현재 한국은 전시 상태이기에 전쟁에 소집될지도 모른다. 신유라는 성장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레벨 업과 먼 생활을 유지하여, 레벨 5를 고수하고 있다.
“법 규정상, 제가 소생해도 되는 것은 생전에 사망 후 뼈 기증을 약속한 기증자뿐이에요.”
인간은 쓸모가 많다. 시체조차도 쓸모가 많다. 지금은 상당히 평화로운 시기라서 여유가 있는 편이지 사 년 전쯤에는 동의서도 없이 소생 작업에 들어갔다.
소생 방법은 다양하다. 네크로맨시만이 아니라, 몸에 기계장치를 달아서 움직이게 하는 기계 병사나, 전극을 때려 박아서 강제로 주어진 동작을 반복하게 하는 마리오넷 소생술도 있다.
시간이 지나서 여유가 생겼기에 그녀의 능력을 소소하게 활용하는 것뿐.
위험한 상황이었다면 분명히 강제 소집을 당했으리라.
황지현이 잠자코 두서없는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동의서가 있는 사람을 소생시키면, 국가가 그 병사를 데려가요. 어차피 뼈에도 수명이 있어서 유지 보수를 잘한다고 해도 2년이면 뼈가 닳아서 거동 불가능이 되니, 그때가 되면 다시 장례를 하죠. 소생한 사람의 유가족은 상당한 지원금도 받을 수 있고, 국가는 어려운 일을 도맡아서 할 군사력을 가질 수 있으니 더 좋은 일이죠.”
“예. 이해하고 있습니다.”
소생한 해골 병사들은 공포를 모르고, 어떠한 일이라도 시키면 한다. 위험한 폐기물 처리, 폭탄 처리, 바디 캠을 이식한 후 선발대로 사용, 진지 보수나 상하차 등의 단순 노동 등. 활용성은 끝이 없다.
“그 활용성 때문에 국가에서는 해골 병사를 늘리려고 해요. 저도 수익이 늘어나니까 불만은 없는데요…….”
이제야 본론인가 보다. 신유라가 황지현에게도 지지 않을 법한 퀭하고 지친 눈으로 말했다.
“이미 죽은 사람에게 동의를 구하는 걸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게 무슨… 아, 설마 한유성 씨 말하는 거예요?”
“한유성 씨를 알고 계시나요?”
“잘 알죠.”
요즘은 사력을 다해서 도망 다니는지라 일을 못 시켰다만. 같이 동업도 한 사이다.
한유성은 질색하겠지만, 황지현은 그를 제법 마음에 들어 했다.
후려쳐도 말을 안 듣는 누구랑은 다르게 후려치려고 하면 말을 들으니까.
“그 사이비, 그 사기꾼 같은 무당쟁이는 자기가 영혼이랑 소통할 수 있다고 주장해요.”
“주장하는 것만은 아닐 거예요.”
한유성은 실제로도 할 수 있다. 그 또한 국내 유일의 진짜 무속인 라이센스 보유자다.
수많은 종교 지도자, 무속인, 영적 치유사, 교감사라는 사람들 사이에서 한유성은 국가 공인을 받은 진짜다.
그래서 녀석이 돈을 버는 거지.
황지현이 한유성을 옹호하는 듯하자 신유라는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미간을 구겼다.
“하지만 신용할 수 없는걸요.”
“그건 그래요.”
“그 사람이 죽은 사람의 영혼을 불러와서 동의를 구하고. 동의를 구했다면서 제 쪽으로 시신을 보내와요. 그럼 저는 그걸 해골 병사로 소생시키는데…….”
“찜찜하다 이거죠?”
“예. 사실 동의 같은 것은 개뿔 없고, 그냥 무작정 보내서 망자들의 안식만 방해하는 게 아닌지. 그 걱정에 잠을 잘 수가 없네요.”
황지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애국심은 없으나 최소한의 직업윤리 의식은 있는 모양이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하긴 수치심 없이 자기만 아는 인간이었다면 국가 공인 자격증이 나올 리가 없지.
황지현이 요점을 정리했다.
“요는 한유성 씨가 진짜로 동의를 구하는 게 아니라, 동의를 구한 척하고 위조 동의서를 작성하는 것 같다는 거네요.”
“예. 어떻게 안 될까요?”
“어떻게든 될 거 같네요.”
“될 거 같아요!?”
“예. 빠른 방법과 느린 방법이 있는데 어떻게 하실래요?”
한국인치고 빠른 방법 싫어하는 사람 없다. 신유라가 망설임 없이 대꾸했다.
“빠른 방법요.”
“그럼 당장 한유성 씨를 찾아가서 진실의 방으로 끌고 갑시다.”
“예?”
“그 사람, 얼굴은 잘생겼지만 얼굴값을 전혀 못 해요. 조금만 위협적으로 굴면 바로 진실을 토할 겁니다.”
번개, 번개를 찬양하라.
번개에는 진실을 말하게 하는 힘이 있다.
번개만 조금 모아도 한유성은 경기를 일으키면서 진실을 말하리라.
신유라가 정색했다.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부탁드려요.”
“Be 폭력?”
“비(非)폭력이요.”
“그럼 느린 해결책밖에 없네요.”
“느려도 폭력적이지 않다면 그게 좋아요.”
“진짜요?”
“진짜요.”
후회할 텐데?
* * *
승우가 말했다.
“그렇다고 뭔가 문제가 있을 때마다 나를 찾는 건 곤란해.”
“제가 생각해도 뻔뻔하긴 한데요. 하지만 남의 고민 해결해 주는 거 좋아하시잖아요.”
“좋아하긴 하지. 매번 잘도 이렇게 고민이 안 겹치는 사람만 오는구만.”
“솔직히 사장님 말고 누가 해결할 수 있는 고민이겠어요.”
죽은 사람을 보고 싶다. 요즘 세상에서는 참 흔한 바람이다. 그래서 나름대로 방안이 있긴 하다.
“증강현실 장치로 죽은 사람들을 다시 보게 해주는 서비스나, 위안이 될 법한 말을 해주는 서비스도 있지만. 그건 싫어하는 사람이 더 많아요.”
“진짜가 아니니까.”
“맞아요. 그렇게 해서 마음이 편해지더라도 그 편해지는 것 자체가 불편하다는 사람도 있어요.”
“마음이야 이해해. 그래서 결국으로는 유령이 보고 싶다는 거지?”
“힘들까요?”
승우가 난감하다는 듯 눈을 반쯤 감았다. 귀신을 보게 해주는, 영안(靈眼)이 생기는 괴식을 만드는 건 어렵지 않다만…….
“힘들진 않아. 예전에도 귀신을 보는 괴식은 몇 번 만들어봤어.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복합적인 괴식이 필요하겠네.”
“응? 복합적이요?”
“귀신들은 대부분 반쯤 미쳐 있어. 죽는 순간의 기억이 수도 없이 플래시백 되면 어떤 기분일 거 같아?”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의 귀신은 교통사고를 계속해서 겪으며, 수도 없이 죽는다. 반복된 죽음의 공포가 혼에 각인된다.
미치지 않기가 더 힘든 일이다.
“귀신을 보게 해주는 괴식을 해줘 봐야, 좋지 않은 꼴이 날 거야. 전투 훈련은 하지 않았지?”
“네…….”
신유라가 모기 같은 소리로 웅얼거렸다. 그녀의 입장으로선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레벨을 올리면 끌려간다. 레벨을 올려서는 안 되니까 전투를 피한다. 그리고 원체 싸움과는 연이 없는 소극적인 사람이다 보니 싸움과 어울리지도 않았다.
“원래 네크로맨서들은 다들 강해. 자신이 사역하려고 하는 영혼을 이겨야 하고, 심지어 다대일이 기본이야. 영적 장악력이 약하면 단번에 몸을 빼앗기고 주종관계가 역전돼. 보니까 스켈레톤 솔져, 네크로라이즈로 해골 병사를 만드는 게 전문인가 본데.”
“예. 그게 제 주 스킬인데요…….”
“성향에 맞는 스킬을 잘 골랐어. 해골 병사들을 사역하려면 그다지 강할 필요도 없고, 영 능력이 강할 필요도 없지. 혼이 빠져나간 육신은 순종적이지. 난폭하지도 않고.”
해골 병사로 시체를 소생하고 다루는 일은 초급 스킬이다. 그리 난도가 높지 않다.
“하지만 갑자기 영혼을 보려고 하는 건 성격에도, 스킬에도 안 맞는 일이야. 해골 병사를 만들고 다루는 것과 영혼을 보는 건 다른 일이라고.”
“아…….”
“그리고 고스트와 스펙터 제어는 네크로맨서 스킬 중에서도 상급이야. 지금의 숙련도로 도전할 바에는 차라리 포기하라고 하고 싶네.”
생생한 경고다. 신유라는 이 사람이 네크로맨서에 대해서 아주 잘 안다는 걸 깨달았다. 네크로맨서 스킬이라도 있는 걸까?
사실은 네크로맨서를 많이 잡아본 쪽에 속하지만, 어쨌든 승우는 네크로맨서를 잘 아는 게 분명하다.
그런 사람의 경고니까, 따르는 게 옳겠지. 신유라는 마음을 굳혔다. 어차피 대단한 사명과 의지로 해본 고민 상담이 아니다.
그냥 찜찜함을 해소하는 정도?
포기를 종용하니, 마음이 동했다.
“예, 그렇다면 포…….”
“하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망자를 이해하려는 정신이 마음에 들어.”
“예?”
포기한다니까?
“좋아, 협력하지. 일단은 귀신을 보게 하는 영안을 트게 해주고, 상대를 평온하게 만드는 스킬을 넣어주면 되겠지. 아무래도 아로마 계통의 스킬이 적당하겠어. 흠흠. 그럼 그 괴식을 해볼까.”
“아니, 포…….”
“그래.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중요하지.”
승우가 씩 웃으면서 신유라가 내민 손을 마주 잡았다.
“나만 믿으라고.”
아니.
포기할 거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