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457)
괴식식당-457화(457/613)
457화. 놀아보자 (3)
검과 주먹이 충돌하는 순간 뻗어 나간 새하얀 빛을 보며, 생각했다.
‘뭐야, 왜 이렇게 약해?’
“뭐야, 왜 이렇게 약해?”
배려라는 걸 아는 어른인 승우는 말을 참았다. 하지만 크라이는 입 밖으로 튀어나오고 말았다.
굉장히 실례되는 말이었지만, 상상한 것의 반도 안 되는 힘이었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찰나의 순간.
검과 주먹이 떨어지는 0.001초.
둘은 동시에 오류를 찾았다.
‘마법!’
‘차크라-!’
승우는 습관처럼 두르고 있던 마법의 가속 효과가 없어졌다는 걸 깨달았고, 크라이는 자신의 플라나 호흡법이 어긋났다는 걸 알았다.
크라이가 이빨을 보이며 미소를 지었다.
‘인간과 임페리얼 오크는 기경팔맥과 차크라의 생김이 다르군.’
기경팔맥은 기가 흐르는 통로를 말하고, 차크라는 정신과 육체가 합일하는 중심지점을 말한다.
인간은 물라다라, 스바디슈타나, 아나하타, 비슈타, 아즈냐, 사하스라라, 마니푸라, 스바디슈타나의 여덟 차크라였고, 임페리얼 오크는 거기에 바슈바디, 아후라다의 두 차크라가 추가된다.
오크와 비교하면 인간은 두 개가 부족하다. 그런데도 무작정 평소처럼 호흡했으니, 꼬일 만도 했다.
그는 즉시, 호흡을 고치며 차크라를 회전시켰다. 그러자 몸에서 황금의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런 한편 승우는 잠깐 난감하다는 듯 눈을 찌푸렸다.
‘마법은 반칙이겠지?’
호흡법만 바꾸면 되는 크라이와는 다르게 이시형은 마법에 대한 소양 자체가 부족하다.
물론 마법은 마(魔)의 법(法)이기에 승우의 지식이 있는 한, 이시형의 육체로도 못 할 거야 없다
하지만 마법 사용은 취지와 어긋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임시변통으로 해볼까.’
가속과 강화는 싸움에서 필수라고 할 수 있고, 호흡 또한 인간이 인간인 이상 필수다.
해야 할 일을 이 셋으로 압축했다. 그러나 이시형의 마나로는 가속과 강화, 호흡을 위한 마나가 부족하다. 승우는 재빨리 움직이면서 발생하는 여분의 마나만으로 자신의 육신을 보조하는 새로운 마나 컨트롤 요령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보고 있던 퍼스트 오더들이 깜짝 놀라 모니터에 바짝 붙을 만한, 가히 천재적인 센스였다.
공기가 파열하는 소리가 퍼지기도 전에, 튕긴 검과 주먹이 다시 균형을 이루곤 서로를 향해 쇄도했다.
이번엔 아까보다도 훨씬 빠르고 강력했다. 충격음이 거의 겹쳐서 들렸다.
관측하던 퍼스트 오더들은 이 공격이 한 호흡에 50여 번이 넘게 이뤄졌다는 걸 모의전 시스템의 내비게이션을 통해 알았다.
50여 번이라는 부정확한 숫자, 시스템이 정확한 수치를 측정하지 못한 이유는 연산의 과부하가 왔기 때문이다.
이대로는 모의전을 유지할 수 없다. 시스템 관리자는 이 모의전은 다른 모의전 수만 번보다도 가치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즉시, 전 세계의 모의전 시스템이 다운됐고, 여분의 데이터 패킷과 연산장치가 전부 이 모의전으로 투입되었다.
승우의 검과 크라이의 주먹이 바쁘게 움직이는 것만큼, 물밑에서는 관리자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 노력 덕에 서버 다운은 면한 채, 싸움이 이어진다.
검과 주먹의 싸움은 호각.
검기와 권기도 호각.
창 리엔후와 이시형 간의 육신 차이는 미세하다.
그런 만큼 둘의 싸움은 기술의 차이가 크게 영향을 준다.
호각을 이룬 시점에서 크라이의 전투 기교가 물이 올랐다는 걸 알았다. 승우가 히죽 웃으며 검을 역수로 쥐었다.
‘역 십자 베기!’
역수로 쥔 검을 아래에서 위로 긋는 것과 동시에 발로 십자를 그리는 검성기다.
발로 차는데 검성기라고 하는 건 어폐가 있는 듯했지만, 승우가 말하길 발뼈의 날 부분에 기를 담아 만들면 그것 또한 검기라 했다.
‘족도(足刀) 차기라는 말에는 칼 도(刀) 자가 들어가긴 하지.’
쓸데없는 상념을 지우며, 크라이는 왼팔과 오른팔로 원형을 그려 승우의 검을 막아냈다.
쩍- 하고 크라이의 등 뒤 공간이 열십자로 갈라진다.
이시형 본인이 보아도 이해가 안 되는 파괴력이다.
자신의 검성기와 비교했을 때 위력치가 삼십 배가 넘게 차이 났다.
마나 컨트롤의 차이에 감탄하는 사이, 크라이가 아주 세련된 행동을 했다.
음의 플라나를 두른 왼팔과 양의 플라나를 두른 오른팔로 승우의 역 십자 베기를 완전히 상쇄하여 고스란히 돌려준 것이다.
지켜보던 창 리엔후가 ‘태극권?!’이라고 비명을 질렀으나, 크라이는 이 기술을 원래부터 쓰고 있었다.
그가 부르는 이름은 귀문반(鬼門反)이다.
역 십자 베기를 쓰는 순간,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귀문반을 준비한 크라이.
귀문반을 쓸 거라는 걸 알고 있다는 듯이 역 십자 베기를 연발하여 또 상쇄한 승우.
둘의 싸움은 해일과 해일이, 폭풍과 폭풍이 격돌하듯 격렬했다.
상상도 못 할 기술이 연이어서 펼쳐진다. 서버가 비명을 지르고, 구경꾼이 탄성을 지른다.
그런 와중에도 둘은 차분하고, 신중하게 움직였다.
장기를 두듯, 체스를 두듯. 육신은 움직이나 정신은 평온했다.
‘이런 로우 레벨의 싸움은 얼마 만이지? 20년은 됐나?’
검을 휘두르면 상대가 베인다. 회피와 막기, 상쇄를 생각하지 않고 싸워온 시절이 너무 길었다.
원래 싸움은 이런 거지.
승우가 호쾌하게 웃으며 검을 휘둘렀다. 사이사이를 매섭게 찌르고 들어오는 크라이의 반격을 막고, 흘리고, 되친다. 그 모든 과정이 즐겁고, 즐거워서 견딜 수가 없다.
반면에 상대하는 크라이는 즐거운 와중에 곤욕스러움도 느끼고 있다.
‘여전하구만. 저 망할 천재 놈.’
승우의 최고 강점은 압도적인 센스다. 놈은 상대의 공격을 한 번 보면 그대로 흡수하거나, 이해해 버린다.
같은 수를 두 번 쓰는 일은 자멸에 가까웠다. 유효타를 내고 싶으면 녀석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기발한 수를 써야 한다.
같은 수로 두 번 기발할 수는 없고, 승우와 크라이는 서로를 너무 잘 안다.
의표를 찌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저 방패, 거슬리는군.’
장갑처럼 생겼지만, 마나를 주입하면 방패가 생긴다. 작은 방패라 얕보일 수도 있지만, 원래부터 승우는 방패를 잘 쓴다.
한손검과 방패는 용사의 기본 장비고, 승우는 최강의 용사니 당연한 일.
‘검도 까다로워.’
검기를 두르지 않아도 검 자체가 상당히 날카롭다. 단분자 코팅이라는데, 원리는 크라이도 이해할 수 있게 단순하다. 그저 엄청 얇고 날카로운 칼에 지나지 않는다.
초과학력의 면도날이라고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사용자가 승우다.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
좋은 방패. 좋은 검.
미칠 듯한 센스.
크라이에게 불리한 것 덩어리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싸움이 성립하는 까닭은, 크라이는 승우가 모르는 임페리얼 오크의 신으로서 쌓은 수천 년의 전쟁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크라이는 지금 그 전쟁 경험을 털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가면 가산 탕진도 순식간이다.
‘속도 차이!’
이시형의 육체와 창 리엔후의 육체는 비등하나, 속도 하나만은 이시형이 월등하게 뛰어나다.
이 속도의 차이가 넘을 수 없는 깊은 골을 만들어낸다.
‘심지어 저놈은 같은 속도에서도 나보다 두 배는 빠르게 움직여.’
동작에 낭비가 없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상대하기 때문이다.
육신의 속도 차이, 본래의 효율성.
모든 걸 고려했을 때 둘의 공격 횟수는 8배가량의 차이가 있다.
그래도 상대가 가능한 이유는 크라이의 장점은 공격보다는 방어에 있고, 리엔후의 육신 또한 방어에 특화된 강철의 성벽 같은 내구성이 있는 까닭이다.
“계속 막기만 할 거야?”
파묻힌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검기의 폭풍에 파묻혀서 매몰된다.
상상할 수도 없는 연격이다.
지치지도 않고, 허점도 없으며 끊어지지도 않는다.
간격을 재는 다리의 움직임, 종횡무진으로 움직이는 검과 균형을 잡는 팔과 머리.
반격을 용인하지 않는 완벽한 거리 조절. 방어 이상의 행동을 봉쇄하는 공격의 예리함.
그것은 얼마 전의 전투를 떠올리게 한다. 수세에 몰린 후 한 번도 공세를 잡지 못해서 행성이 폭발할 때까지 얻어맞기만 했던 치욕스러운 그 전투를.
그때는 결국 그렇게 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크라이는 초심을 찾았다. 아무리 발버둥 쳐봐야 승우를 속도와 감각으로 이길 수는 없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힘이었고, 투지였다. 이길 수 없는 전장에서 싸워 봐야 승기는 멀다.
필요한 것은 힘.
압도적인 힘과 살을 베이더라도 뼈를 가져가는 육참골단(肉斬骨斷)의 투지.
‘돌아라, 스바디슈타나-!’
일순, 크라이의 차크라가 맹렬하게 회전했다. 모든 힘을 한 곳에 집중한다. 승우의 검은 교활하기 짝이 없어서 힘을 모으면 그것을 피해, 주변을 얇게 저민다.
남보다 빠른 판단력과 속도가 있기에 가능한 기예다. 크라이는 그 공격을 그냥 몸으로 받아냈다.
조금의 방어 기술도 없이, 날것의 공격이 몸으로 들어온다.
그런 와중에도 크라이는 참았다. 바로 반격하면 승우는 칠 거 다 치고 빠진다.
놈의 속도로는 자신의 움직임이 정지 화상처럼 보일 거다. 실리를 취하고, 빠지는 일은 쉽다.
때문에 크라이는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계속해서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때가 왔다. 승우의 검이 크라이를 난도질하는 순간, 크라이의 달아오른 몸에서 피와 땀이 증발하여 피어올랐다.
그것은 황금의 안개였다. 안개는 크라이의 플라나와 마력이 담겨 있어서 자체가 족쇄와도 같다.
안개가 승우의 발을 묶는다.
“엇!”
승우의 몸이 처음으로 멈췄다. 그 순간 크라이의 왼발이 대지를 박차며 격렬한 진각을 내디뎠다.
“파(破)!”
포탄처럼 왼팔의 팔꿈치가 승우의 명치를 때렸다. 팔극권(八極拳)에서 말하는 이문정주다.
마치 벼락같은 충격파가 승우의 몸을 꿰뚫었다. 그리고 큐브의 벽면을 타고 흘렀다.
크라이는 그 풍경을 승우의 몸 너머로 보았다. 녀석의 몸에 난 거대한 구멍은 똑똑히 큐브의 벽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의심할 바 없는 치명상.
‘이겼나?’
그러나 말이 나오질 않았다. 그런 크라이를 내려다보며 승우가 입가를 올렸다.
“팔극권이라니, 멋진데?”
데구르르, 하고. 크라이의 목이 바닥을 굴렀다. 크라이가 승우의 명치를 때린 순간 그의 목을 베어버린 것이다.
육참골단의 각오는 크라이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승우 또한 찰나의 순간에 각오를 마쳤다.
반쯤 죽고, 상대는 죽이기로.
이렇게 승부가 났다.
한없이 무승부에 가까운.
하지만 승우가 이긴.
그런 싸움이었다.
* * *
무인으로서 가장 치욕적인 것이 무엇일까. 크라이는 자신의 패배를 가치 있는 패배라 포장할 때 치욕이 생긴다고 여겼다.
아무리 좋은 말로 치장해 봐야 패배는 패배, 승리는 승리.
패배에는 어떠한 가치도 없다. 하지만 이 패배에는 가치가 있었다.
그, 유승우에게 치명상을 입혔다.
신들은 화신에게 지시하여 대리전을 한다. 그걸로도 성에 차지 않으면 화신에게 직접 강림하여, 화신의 육체로 싸우는 일도 있다.
이번의 가상현실 전투는 그것과 다름이 없었다.
즉, 크라이는 화신전에서 유승우에게 치명상을 입혔다. 이기기 일보 직전까지 갔다. 이것만큼 알기 쉬운 업적이 있을까.
“큭…….”
크라이가 가슴을 움켜쥐었다.
투드득 하고, 가슴속에서 무엇인가가 쪼개지는 소리가 들렸다.
벽이다. 세 번째 신명으로 가는 벽이 무너지고 있다.
몸의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시작된 균열이 전신으로 퍼진다. 하지만, 벽이 무너지지는 않았다. 딱 한 발자국, 한 걸음이 부족하다.
이 균열을 깰 무엇인가.
마지막 하나가 필요하다.
그것은…….
“밥 말고 뭐가 있겠어.”
망할 친구 놈이 씩 웃으면서 어깨에 팔을 둘렀다.
“야, 놀았으니까 밥 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