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461)
괴식식당-461화(461/613)
461화. 그것 (3)
일 인분을 해치울 때마다 조금씩 벽에 균열이 새겨진다.
투두둑, 투두둑.
계속해서 흔들리는데 변화는 없다. 크라이가 어금니를 빠드득 갈며 성질을 냈다.
“아주 오크를 미치게 하는구나!”
될 듯, 안 될 듯.
안 된다.
정말 미치겠는 건, 아예 효과가 없지만은 않다는 거다.
확실하게 벽이 흔들린다.
그저 아주 조금 부족할 뿐.
승우의 말대로 먹다 보면 벽은 넘을 수 있겠지. 그건 확실하다.
하지만 그게 언제인가.
얼마나 더 먹어야 벽을 넘을 수 있을지, 확신은 없다.
이럴 줄 알았다는 듯이 수십만 인분의 고기를 준비해 둔 승우의 준비성은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번개만 견디면 맛있는 음식이기에 참고, 참고, 또 참으며 크라이가 묵묵히 입을 우물거렸다.
한참을 그러고 있으니 똑똑 하고, 노크 소리가 들렸다.
누군지는 이미 안다. 은하라는 이름의 꼬마 아이다. 꿀꺽하고, 크게 한 입을 삼키고 물었다.
“무슨 일이야?”
문이 조금 열리고, 빼꼼 하고 은하의 머리가 들어왔다. 은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삼촌 찾는 중인데요. 삼촌 어디 계신지 아셔요?”
“아, 녀석 말이야? 글쎄. 나도 잘 모르겠군. 갑자기 사라져서.”
승우는 크라이에게 밥을 먹이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아. 맞아.’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사라졌다.
대체 어디로 갔을까?
잘은 모르겠다만 이거 하나는 확실하다. 꼬르르륵 하고, 은하의 배에서 소리가 났다.
아니, 이 녀석이 아이들 밥도 안 주고 어디를 간 건가.
“배고프면 너도 이거 먹을래?”
“우. 아뇨. 지금 언니 오빠들이 다 있어서 혼자 먹기는 미안해서요.”
“상관없어. 많아.”
진짜 많다. 라이트닝 스피어를 스테이크 사이즈로 만들어보니 양이 어마어마하다. 몇 인분 부족하다고 벽을 못 넘을 것 같지는 않다.
되짚어 생각해 보면 승우도 괜히 많이 만든 게 아니다. 아이들이나 헌터 놈들 챙겨주라고 많이 만든 거겠지.
그리고 그게 아니면 또 어떤가.
‘혼자 먹기는 억울해.’
용사파티의 기본 방침은 ‘나만 당할 수 없지.’였다. 리더인 승우가 만든 방침이다.
크라이는 리더의 방침을 충실하게 따르는 좋은 파티원이다. 혼자 먹는 것보다 다른 사람이랑 같이 먹는 게 좋다.
은하가 활짝 웃었다.
“감사합니다!”
과연 감사할까?
크라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그 녀석이 갑자기 서두르고 말이야.’
뭔가, 급한 일이 있나?
* * *
신이 되는 건 어렵다. 하지만 신의 자리를 유지하는 일은 더 어렵다.
통계적으로 신의 자리를 차지한 후 백 년간 신명을 지키는 신은 8.5%에 불과하다. 나머지 91.5%는 신명을 빼앗긴다.
빼앗는 이유는 가지각색이다. 검, 승리 같은 좋은 신명은 원래부터 노리는 자가 많아서 경쟁이 치열하다. 자신이 가지고 싶으니 상대를 실각시킨다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발상이고, 행동력이 있다면 언제라도 할 수 있는 행동이다.
나쁜 신명이더라도 빼앗는다. 신의 숫자는 적으면 적을수록 좋다는 이유다.
이러한 경향은 질서의 신이건 혼돈의 신이건 가리지 않고 존재한다. 실은 대다수의 생각이 이렇다.
따라서 신명을 가진 자는 자신의 신명을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지켜야 한다.
그게 바로 신의 의무였다.
그리고 여기.
테라의 한구석.
끝없이 펼쳐진 킬러맨시 밭에는 한 신이 산다.
번개라는 최상위급 신명과 마찬가지로 최상위급인 하늘의 신명을 갖춘, 주신 제우스는 먹음직한 사냥감이다.
하나만 제거하면 하늘과 번개를 얻을 수 있다. 원 플러스 원이다.
제우스는 이제 충분히 영락했다. 신력의 보충이 끊어진 지는 한참 됐고, 그를 비호해 줄 세력은 없다. 본신의 힘은 약해졌고, 남자로서도 약해졌으며, 신명무구조차도 잃었다. 그렇다면 제거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오히려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게 이상한 일이다.
크라이의 다음 목표는 번개 관련의 신명이다. 번개에 관한 신명을 알아보던 승우는 제우스의 제거 계획이 물밑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첩보의 출처는 헤르메스.
이 양아치 놈은 제우스 제거 작전을 펼치는 놈들에게 제우스의 정보를 팔고는, 재빨리 승우에게도 보고했다. 양다리라면 양다리지만 승우 쪽에게 상당히 무게를 둔 양다리다.
아마 살고 싶은 발버둥이리라.
‘헤르메스는 둘째 치고, 제우스가 죽어서는 곤란해.’
물론 제우스가 죽어도 심적으론 하등 문제가 없으나, 킬러맨시의 공급이 끊어지는 건 상당한 문제다.
그리고 번개의 신명도 문제다. 죽어서 신명을 빼앗길 바에는 그냥 크라이가 승계하는 게 좋다.
‘번개의 신명이 아까워.’
번개는 이면신명처럼 미사여구나, 돌려서 말하는 말장난이 일절 없다. 손에 꼽히는 정말 강한 신명이다. 제우스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 다른 신이 가지는 게 좋고, 그 다른 신이 가지는 것보다는 친구가 가지는 게 좋다.
‘크라이가 밥 먹는 사이에. 신명 승계 작업을 미리 해놔야겠어.’
승우는 제우스를 찾아 공간을 가르고 밭 위에 섰다. 검으로 공간좌표를 갈라서 이동하는 이 방식은 지구에서는 한 번도 쓴 적이 없는 난폭한 공간이동법이다.
휘말려서 베일 수 있기 때문에 사용을 자제했지만, 지금은 자제할 필요도 없겠지. 검을 다시 인벤토리에 집어 넣으며 승우가 주변을 돌아봤다.
‘크군.’
거의 어지간한 중소도시 하나만큼의 규모다. 하지만 당연한 일이다.
이 정도 규모가 되어야 지구 전역에 킬러맨시를 공급할 수 있다. 킬러맨시 스무디는 ISAC의 지원 아래 전 세계에 기호식품으로 당당하게 자리매김한 히트 상품이다.
그 수요를 감당하려면 공급도 어지간한 규모가 되어야 한다.
밭에는 많은 사람이 있었다. 제우스의 권속들이다.
‘부자가 망해도 삼 년은 간다더니, 아직도 추종자가 상당하네.’
이들이 밭을 관리하고, 제우스가 벼락을 공급하는 구조일까?
수요가 늘어 혼자서는 승우의 요구를 감당할 수 없어지니 가족과 추종자를 모은 모양이다.
승우의 시선이 사람들을 지나, 중앙의 벽돌집으로 향했다. 스무 채의 집 중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벽돌집은 딱 제우스의 거처답다.
화려하다고 해도 벽돌집.
한때 한 차원을 호령한 신의 영락한 모습이다.
‘저기에 있겠군.’
한숨을 쉬니 헐레벌떡 한 사람이 다가왔다.
“스승님!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누군가 했더니, 너구나.”
죠르주 아스트레이드.
승우의 제자인 동시에 아스트레이드국의 국왕이다.
“예, 접니다!”
“근데 네가 왜 여기 있어?”
녀석의 옷차림은 그야말로 농부였다. 편한 옷과 까맣게 탄 피부. 왕의 모습이 아니다.
승우가 묻자 죠르주가 하하하, 하고 어른스럽게 웃었다.
“축출당했습니다.”
“그건 그렇게 활기차게 말할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만.”
과거 죠르주가 한 일은 상당히 멍청한 일이었다. 아일루로스들의 돈을 횡령하다가 걸려서, 그만 역풍을 처맞고 국고가 홀라당 털렸다.
그 이후에 녀석의 어머니가 어떻게든 아득바득 허리띠를 졸라매며 국가 재정을 정상화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대리청정을 마친 그의 어머니가 다시 왕위 계승을 준비한다고도 들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축출된 모양이다.
확실히 좋은 일은 아니었다만 죠르주는 환하게 웃었다.
“아닙니다. 좋은 일이었습니다. 그게, 제가 나라를 파산시켰잖습니까. 저는 국왕의 그릇이 아니었던 겁니다.”
“국왕의 그릇은 아니지만, 농부는 적성에 맞는다?”
“예. 제 천직은 농사였던 겁니다. 국왕도, 검사도 아니라 농부가 딱 좋습니다.”
죠르주는 얼굴에서 독기가 쭉 빠진 모습이다. 녀석이 주먹을 불끈 쥐고 말했다.
“노력하면 킬러맨시는 배신하지 않습니다! 번개를 내려주면 그만큼 성장하고, 맛있어집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킬러맨시가 지구로 가서 모두의 사랑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제가 다 기쁩니다.”
“이건 놀랍군.”
어지간히 농경 생활이 마음에 든 모양이다. 녀석이 사랑이 듬뿍 담긴 시선으로 킬러맨시 밭을 돌보았다.
쿵, 하고 낙뢰가 떨어진다.
아스트레이드 가문은 제우스의 병적이고 편집증적인 보살핌 속에서 뇌신의 피가 흐르게 되었다.
번개를 다루는 게 익숙한 혈통이다. 방금의 낙뢰도 훌륭했다.
킬러맨시가 노란색의 빛을 내뿜으며 크게 만개했다. 싱싱한 킬러맨시, 제우스가 만든 것과 거의 동등한 품질이다.
승우가 눈을 가늘게 뜨고 킬러맨시 하나를 뽑아서, 흙을 대충 털고는 크게 깨물었다.
싱싱하다. 그리고 깊은 맛이다.
“이거 요즘 납품받는 킬러맨시랑 같은 등급인데. 혹시 요즘 이 밭의 관리는 네가 해?”
“예. 요즘은 제가 합니다.”
“제우스는?”
“헤라 님과 대판 싸우신 후로는 실의에 차서 술만 드십니다.”
승우가 미간을 꾹 눌렀다. 왜 싸웠는지는 안 봐도 알겠다. 승우의 세대 말로는 안 봐도 비디오라고 한다. 요즘은 블루레이인가?
아무래도 좋겠지. 승우가 우드득 하고 주먹을 쥐었다. 눈치도 없이 죠르주가 분노에 불을 끼얹었다.
“저도 참, 처음에는 어이가 없었죠.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는 중인데 갑자기 제우스 님이 저를 불러서는 농사를 지으라고 하는데… 하하하하. 알고 보니까 저만 그런 게 아니더라고요.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 다 그렇게 온 겁니다.”
“납치?”
“처음에는 납치였죠. 하지만 알고 보니까 죄다 가족이었습니다.”
“…….”
제우스가 세상에 뿌려둔 씨앗이다. 아폴론이 언젠가 노래로 불렀듯이, 세상에 친척이 아닌 놈이 없다고 했던 이유가 있었다.
경악한 승우가 다시 한번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이백 명이 넘는다.
“이게 다?”
“엄청나죠?”
말이 안 나온다. 백강혁 문제로 헤라와 제우스가 싸웠다고 생각했는데, 틀릴지도 모르겠다.
경악하는 승우를 뒤로하고 죠르주가 팡팡 가슴을 치며 말했다.
“어쨌든 우리 가족이 모여 이제는 자주적으로 농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래. 잘 운영되는 거 같다. 킬러맨시가 싱싱하네.”
“제우스 님처럼 간단하게 만들 수는 없지만, 저희가 삼 교대로 내내 낙뢰를 떨구면 그 정도 품질은 유지할 수 있습니다.”
제우스가 쉬면서 대충 내리는 낙뢰와 제우스의 자식들 이백 명이 삼 교대로 내리는 낙뢰가 비슷하다, 여럿이 단결하여 번개의 신만큼의 힘을 내다니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그 놀라운 일은 하나의 결과를 의미했다.
“제우스 좀 끌고 와라.”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스승님.”
“왜?”
“저기, 살기가 장난이 아니신데. 이유를 여쭈어봐도 괜찮겠습니까.”
“킬러맨시를 재배하는 것만이 삶의 이유였던 놈이 일하지 않는다면, 살 필요가 없지 않을까?”
제우스가 없어도 농장이 돌아간다면, 제우스는 없는 게 낫겠지.
* * *
우직하게 천공룡의 라이트닝 스피어를 먹는다. 꾸역꾸역, 계속해서 먹는다. 그러고 있는 크라이 앞에 공간이 갈라졌다.
익숙한 승우의 손이 튀어나오고는 뒤이어 피떡이 된 제우스가 튀어나왔다. 발로 뻥 하고 제우스의 엉덩이를 찬 승우가 주먹에 묻은 피를 털었다.
“……?”
크라이가 멍하니 제우스와 승우를 교대로 보다가, 눈을 꿈뻑였다. 말문이 닫힌 모양. 승우가 그런 크라이에게 계약서를 한 장 내밀었다.
번개의 신명에서 제우스의 지분을 전부 다 크라이에게 양도한다는 계약서다. 의도는 알겠다.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도 전해졌다.
하지만.
“너란 놈은 여전히 싫어하는 녀석에게는 가차 없구나.”
저놈에게 미운털 박히면 국물도 없다. 크라이는 그 사실을 상기하며 펜을 들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크라이는 세 번째 신명, 번개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