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463)
괴식식당-463화(463/613)
463화. 제우스 (2)
제우스의 분노는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원래 가진 게 많은 자는 잃을 것도 많게 마련.
주신으로서 누구보다도 강한 힘과 권력. 그리고 재산과 가정을 가진 제우스였기에 많은 걸 잃었고, 그러니 화날 만했다.
딸과 아들이 아버지를 공경하고, 아내와 남편이 서로 사랑하는 단란한 가정이야, 애초부터 자신의 방종한 행실로 인해서 날려 먹었으니 할 말이 없다.
그저 아들의 생각 없음과 딸의 포기, 아내의 관용으로 유지되던 가정에 마무리 일격이 가해져서 쪼개졌으니 누굴 탓하겠는가.
하지만 힘과 권력, 재산은 다르다. 이것은 타의에 의한 강탈이다.
권력은 정권교체로 인해서 홀라당 날려 먹었다. 재산은 승우에게 빼앗겼다. 그렇게 해서 남은 거라고는 힘 하나가 전부였는데, 그 힘조차도 빼앗겼다.
킬러맨시 당근 농사를 소홀히 했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에서였다.
제우스의 생명줄을 잡고 있었던 게 당근 끈이라니 비참한 일이다.
더 비참한 일은 번개의 신명을 양도하는 과정에서 있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번개의 지분을 크라이에게 양도한다는 건 어쩔 수 없다. 번개의 신명은 매력적이지, 노리는 것도 이해가 된다. 그러니 여기까지는 좋다.
하지만 파급효과는 예상 못 했다.
하늘의 신명.
승리의 신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승리가 요구되듯이, 하늘의 신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절대자’로서의 위엄이 필요하다.
하늘(天). 본래 하늘은 지배를 의미하며, 군림과 절대적 왕권을 상징한다. 가장 높은 곳, 모든 것을 덮는 뚜껑. 약자는 아래에, 강자는 위에. 하늘이란 절대자를 말한다.
그런데 타인에게 신명을 양도하는 서약을 물리적인 협박과 폭력에 의해서 작성한 자에게 절대자의 위엄이 있을까.
그런 자를 과연 지배자라고 할 수 있을까. 군주라고 할 수 있을까. 왕이라고 할 수 있을까.
결단코 아니다. 하늘을 가지기에 제우스는 모든 게 부족했다.
하여 제우스는 하늘의 신명을 박탈당했다. 그리고 차순위권인 디에우스 프테르에게 부여되었다.
디에우스 프테르는 오랜 세월 제우스와 하늘의 신명을 두고 다퉈온 라이벌이다.
예전의 승자는 제우스였기에 디에우스의 신명은 이면신명인 천공(天空)이었다만, 이제는 디에우스가 하늘이다.
오랜 숙적과의 싸움이 이런 어이없는 방향으로 정리됐다.
제3자, 그것도 육십 살이 갓 넘은 뉴비의 손에 결론이 지어졌다.
디에우스의 조소가 차원을 넘어 느껴진다. 녀석이 마시는 승리의 미주의 단내가 여기까지 풍긴다. 제우스의 상심이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뭐. 나더러 그 고충을 알아주라고?”
승우가 살짝 눈가를 구겼다. 크라이가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그냥 그렇다는 거다.”
“내가 알 바냐.”
심기가 불편한 모양이다. 그도 그렇겠지. 한때의 가해자가 몰락했다. 그걸 피해자보고 알아주라고 하는 것 자체가 불쾌하겠지.
오히려 예전에 당했던 게 새록새록 떠올라 분노가 그라데이션으로 치밀어 오르는 중이다.
“안 그래도 너는 선을 넘으면 봐주는 게 없는 놈이니까.”
“솔직히 살려두고 있는 것만으로 나는 관대하다고 생각해.”
“인정한다. 하지만, 불쌍한 건 불쌍한 거야. 전사로서 동정을 금할 수 없구나.”
신명과 레벨의 관계는 상당히 오묘하다. 일정 이상의 레벨을 채우지 못하면 신명을 얻을 수 없다. 그리고 신명이 없다면 필멸자의 한계 캡에 걸려 일정 수치 이상의 레벨로 올라갈 수도 없다
그걸 벽을 넘는다고 한다. 그럼 신명을 잃으면 어떻게 되는가.
“레벨이 내려가잖아.”
신명을 잃으면 그간 쌓아 올린 힘이 사라진다. 허무할 정도로 간단하게 바스러지며 없던 일이 된다.
그래서 신명을 잃은 아레스가 여전히 99렙인 것이다. 한때 200레벨도 넘던 제우스가 그 행렬에 끼게 되었다.
이제 제우스의 레벨은 99다. 무시하고 얕보던 필멸자의 대열에 제우스도 합류했다.
크라이가 불쌍해하는 것도 이해는 된다. 승우가 팔짱을 끼고는 입을 조금 내밀었다.
“놈이 살아 있는 게 용하긴 하지.”
신명을 잃을 때는 사지가 뜯기는 고통을 느끼는 일도 있다. 아예 충격으로 폭발 사산하여 흔적도 없이 소멸하기도 한다. 제우스가 아직 멀쩡하게 있다는 것만으로 그가 가진 신격이나 힘이 보통이 아니었음이 증명됐다.
“썩어도 준치라고, 한 세계의 최강자를 하던 짬이 있다는 건가.”
“어쨌든 숙적의 몰락이다. 이제 어떻게 할 건가?”
크라이의 질문에 둘 사이에 침묵이 돌았다. 침묵이 이어진 까닭은 방침 때문이다.
용사파티의 리더는 승우였고, 승우의 방침은 언제나 같았다.
선을 넘은 자, 적으로 규정지은 것에는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는다. 후환을 남기지 않는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우를 삼간다.
조기 진압이야말로 바른 대처다.
용사파티의 숙적이라고 할 수 있는 제우스는 지금 힘을 잃었다. 하지만 아직 가락이 남아 있다.
초임 도덕 교사로서 이세계에 뚝 떨어져서 치트도 힘도 없이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 쳤던 승우보다는 제우스의 상황이 좋다.
레벨은 99.
스킬도 남아 있다.
헌터로 치자면 최상위 0.00001%다. 녀석의 재기, 복귀는 불가능의 영역이 아니다.
저러다 다시 신명을 얻는다면?
재능과 격을 타고나, 방만하게 살아도 두 개의 신명을 얻고 테라의 주신이 된 제우스다.
녀석이 전보다 강해질 가능성은 0이 아니다. 승우보다도 강해져서 복수할 가능성도 0이 아니다.
미래를 생각한다면, 그냥 제거하는 게 옳다.
승우가 고개를 흔들었다.
“제거까진 하지 말자.”
“왜? 살려두고 두고두고 괴롭히겠다는 건가?”
“내가 그렇게까지 한가하지는 않아. 그냥 저대로 둬도 해는 없을 거 같아.”
“그러다가 나중에 저 녀석이 성장해서 복수라도 한다면?”
“하라지.”
그 또한 재밌는 일이 되겠지. 승우가 덤덤하게 대꾸하자 크라이가 이마를 쓸었다.
“그래도 가닥이 있던 놈이야. 더 강해질지도 몰라. 너무 방심하는 거 아냐?”
“내가 방심? 그럴 리가.”
승우가 씩 웃었다.
“이건 여유라고 하는 거야.”
강자로서의 오만이 느껴진다만, 그는 그래도 되는 힘을 가진 자였다. 크라이는 그의 말에 수긍하고는 손을 풀었다.
“알았다. 그럼, 슬슬 할까?”
“그럴까.”
지금 둘이 있는 곳은 질서의 세력과 혼돈의 세력이 싸우는 격전지다. 둘이 이곳에 있는 이유는 그 항쟁에 참여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냥. 한판 붙기 위해서다.
여기서라면 박살이 나도 그다지 아쉬운 일이 아니니까.
“이번엔 봐주는 거 없이 간다.”
승우의 손에 아이온이 쥐어졌다. 크라이는 함박웃음으로 그 검을 반겼다.
* * *
세 개의 신명을 가진 신끼리의 싸움은 격전이었다. 질서와 혼돈의 전장이 전부 날아가고 소멸하는 대격전.
하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승우의 완승이다.
역시 세 개의 신명을 갓 얻은 크라이와 이미 네 번째의 영역에 도달한 승우의 사이에는 엄청난 격차가 있었다.
크라이가 예상한 것 이상의 격차다. 그러나 크라이는 만족했다.
처음으로 놈에게 한 방 먹여줬다. 주먹으로 몇 대 때린 수준이 아니라 뚝, 하고 팔이 잘리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다.
비록, 아무리 치명적인 부상이라고 해도 치유의 성검으로 1초 만에 나았지만. 치명상을 입힌 게 어디인가. 놈의 한 팔을 가져간 대가로 자신은 반으로 쪼개졌었다만, 크나큰 발전이다.
승우는 부활을 마친 크라이를 대동하고, 지구로 돌아왔다.
부활의 격통이 아직 남아 있다. 크라이가 얼굴을 매만지며 의자에 앉으니 은하가 경계의 시선을 보낸다.
“아차.”
크라이가 눈을 감았다. 은하가 크라이를 경계하는 이유는 밥 때문에 그렇다.
지난번에 배고파할 때, 먹던 천공룡의 라이트닝 스피어 요리를 나눠준 적이 있는데. 사전에 경고하지 않은 터라, 요리를 먹은 사람들은 난데없이 입 안에서 터지는 번개 쇼에 정신을 못 차렸다.
그야, 크라이조차도 깜짝 놀란 번개다. 아프기도 엄청나게 아프다. 그런 걸 갑자기 먹으면 누구라도 놀란다.
특히나 영식이와 은하가 놀란 모양으로, 둘은 크라이만 보면 깜짝 놀란 고양이처럼 등을 세우고 까치발을 하며 숨는다.
막상 진짜 고양이는 담담하게 가게 일을 하고 있는데 말이지.
승우가 히죽 웃었다.
“이게 다 업보 아니겠냐.”
“만든 건 넌데 왜 내가 업보를… 그래, 설명을 안 한 내 잘못이겠지.”
“알면 됐다.”
“얄미운 놈.”
“밥해주는 사람에게 얄미운 놈이 뭐냐.”
“더 얄밉구나.”
한바탕 요란하게 싸웠으니, 이제는 밥을 먹을 때다. 밥때가 돼서 돌아온 승우를 나비와 아이들이 반겼다. 나비가 호다다닥 달려와서 현황을 보고했다.
“오늘은 물고기가 많다냐.”
“물고기? 웬 물고기야?”
나비가 티비를 가리켰다. 동해안에 떨어진 낙뢰에 관한 뉴스가 이틀째 나오고 있다.
어업 피해가 심각하다는 뉴스다. 승우는 뉴스를 보고 왜 물고기가 많은 건지 알아차렸다. 하지만 나비가 가져온 물고기를 보고는 웃음을 참기가 힘들었다.
“이거이거, 물고기를 나눠준 게 아니라. 조사를 부탁한 거구만?”
“부냐아아.”
ISAC에게 받아서, 나비가 가져온 물고기는 보통 물고기가 아니었다. 커다란 입에 이상한 더듬이. 징그러운 눈과 불쾌한 껍질 색을 가진 심해어였다.
심해어, 심해에서만 사는 특이한 물고기들이다. 이런 물고기는 어떠한 특성을 숨기고 있을지 모른다.
시장에 팔 수도 없고, 그렇다고 버리기에도 아깝지. 승우에게 올 만해서 온 녀석들이다.
“좋아. 그럼 오늘은 이걸 요리해 보자. 커다란 놈이니까, 다 먹어도 남겠네.”
“으엑.”
짜부라진 개구리 같은 소리는 은하의 입에서 나왔다.
승우가 웃음기를 지우지 않고 은하를 보니, 은하가 입을 막고는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진짜로 먹기 싫은 모양이다.
“왜 그래?”
“으으으, 으으으.”
“먹기 싫어?”
“네.”
“왜?”
은하가 손발을 흔들면서 말을 삼켰다. 하고 싶은 말은 참 많다.
저 물고기는 이상하다. 생긴 것도 무섭다. 막 괴물처럼 생겼다. 크기도 어찌나 큰지 은하의 두 배는 크다. 몸의 반이나 되는 입은 쩍 벌어져서는 다섯 겹의 뾰족한 이빨이 돋아 있다. 가시나 창처럼 날카롭고 뾰족한 이빨이다.
겉은 미끌미끌거리는 점액으로 뒤덮여 있는데, 비린내도 엄청나다.
거기에 물고기면서 코가 있다. 인간처럼 뭉툭한 코에는 콧구멍이 세 개나 있다.
머리에 달린 혹? 더듬이는 또 어찌나 이상한지 기다란 대롱에 수박을 걸어둔 것처럼 생겼다.
껍질 색은 또 어찌나 징그러운지 독에 중독된 것처럼 얼룩덜룩하다.
갈색, 빨간색, 까만색, 흰색, 파란색이 멋대로 섞인 저 색을 보라!
‘으에에에, 싫다.’
진짜 먹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래서 먹고 싶지 않다고 말할 수도 없다. 은하에게 저게 먹지 않아야 할 이유이듯이, 승우에게는 저게 먹어야만 할 이유가 되니까!
삼촌은 그런 사람이니까!
도움을 구하듯이 크라이를 봤다.
“크, 큼.”
슬며시 크라이가 눈을 돌렸다. 저 오크 삼촌은 믿음직스럽게 생긴 모습과는 딴판으로 강혁 오빠만큼이나 도움이 안 된다.
믿음직하지 않은 사람이다.
‘맞아, 믿음직한 사람이라면 민 오빠가 있지!’
은하는 눈으로 헬프-!를 외치며 민을 돌아봤다.
그러자 민이 말했다.
“꼭 부탁드립니다.”
아, 맞아.
민 오빠는 이런 사람이었지.
“실망이에요.”
“…응? 왜?”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민이 눈을 깜빡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