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469)
괴식식당-469화(469/613)
469화. 분노조절장애 (1)
승우는 천천히 메시지를 확인했다.
[凸.凸]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한자 두 개. 우선은 번역기의 고장이 아닌가 싶어 번역기를 다시 한번 점검했다. 놀라운 일이었다.
“한자네?”
번역기 오류로 이상한 글자가 출력됐나 했더니, 정말로 철의 한자 9번이다. 이 말이 무엇인가.
디에우스는 메시지를 보낸 사람이 직접 승우임을 확인하고, 지구인임을 확인하고, 한자 문화권인 걸 확인한 이후에 친히 한자로 한땀 한땀 철 두 개를 날려주셨다는 의미다.
번역기 오류도.
실수도 아닌 확신범이다.
“…….”
승우의 마음속에 꽃핀 것은 분노가 아니었다. 놀라움, 경의였다.
신명 두 개를 단 이후 처음으로 받는 도발에 감탄이 터졌다. 신기한 마음에, 정말로 신기하고 놀라운 마음에 친구들에게도 보여줬다.
테오가 쓰러졌다.
“으히히히히힛. 이거 우리 문자로는 주석이 엄청나게 달리네. 볼록볼록이라고 읽고 교미교미의 뜻이 있다고 적혀 있는데 지구인에게도 그런 의미냐? 이거 완전 미친놈이네. 제우스랑 라이벌 관계라더니 성격까지 닮은 건가. 레나토, 이 녀석 평판이 어때?”
숨죽여서 입을 가리고 웃던 레나토가 힘겹게 입을 뗐다.
“그, 좋지만은 않습니다. 그가 있는 차원은 노쇠한 차원이에요. 후계 차원 뻘인 리그베다에게 당해서 여력도 없고, 그래서 차원 소속 신에게 박하게 대하고 다른 차원에 대한 약탈로 연명하는 곳입니다.”
“그런 놈이 잘도 중립이군.”
“질서도 털고 혼돈도 터니까요. 약하면 다 먹이로 봅니다.”
“그럼 그런 놈이 잘도 살아 있네.”
이곳저곳 시비를 걸고 약탈하고, 적은 많은데 본 차원이 노쇠했다면 먹잇감이다.
지금까지 살아 있다는 게 놀라운 일. 크라이가 이마를 긁으며 대꾸했다.
“이 녀석, 상당히 강해.”
“그래?”
“제우스보다도 강하긴 할 거다. 뇌정(雷霆)과 천공(天空)의 디에우스 프테르면 알아주는 무신이야. 같이 일해본 적도 있는데 상당했어.”
“적이었냐, 아군이었냐.”
“아군이었지. 지금은 천공이 아니라 하늘로 바꿨을 터이니, 예전보다는 더 강해졌을까.”
물론 강해져 봤자, 승우의 상대는 안 된다. 크라이는 잠깐 셈을 해보고, 3분이면 피떡을 만들 수 있겠구나라고 결론지었다. 승우가 하면 3초면 되지 않을까. 테오가 실실 웃으면서 승우를 봤다.
“그래서, 이 꼴뚜기 3초 피떡 같은 놈을 어떻게 할 거야? 요리하러 갈 거야?”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내가 무례했던 거 같아.”
“잉?”
“힘들게 얻은 신명을 양도해 달라고 하면 누구나 화나는 일 아니겠어? 거기다가 신력으로 산다고 하면 불쾌할지도 몰라. 가치라는 게 신력이 전부가 아니잖아.”
“거, 돈 준다는데도 지랄이네.”
“누가 너한테 돈 줄 테니 혁명의 신명을 팔라고 하면 어떻겠어?”
“내장으로 줄넘기하고 싶나, 이런 개새… 아.”
승우가 팔짱을 끼며 한숨을 내뱉었다.
“그런 거야.”
“그런 거군. 그래도 약탈이나 하는 놈에게 그렇게 체면 차릴 필요가 있을까.”
“그래도 내가 무례했던 건 사실이지. 미안하게 됐어.”
레나토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근데 승우는 조심해야 해요.”
“왜?”
“신명 대기 목록이 너무 안 좋아요. 그리고 그중에 약탈도 있어요. 이러다가는 약탈의 신이 될 지경인걸요.”
“잉? 쟤 성격에 뭔 약탈이야. 지금까지 약탈은 별로 안 하지 않았어? 오히려 우리 오크 씨가 약탈은 더 했잖아. 소문으로는 아주 난리라서 진짜로 약탈 신명 달릴 뻔했담서.”
크라이의 이마에 굵은 혈관이 돋아났다.
“그 약탈 신명 달릴 뻔한 오크를 털어먹은 게 우리 리더님이시다.”
“아항…….”
약탈의 횟수는 적었으나, 승우가 턴 신은 하나하나가 걸물이었다.
크라이, 제우스, 탐욕과 절망의 신인 맥티그까지. 남들을 털어먹던 이들을 털었다.
승우 자신은 약탈이라고 하기보다는 정당한 전리품 획득으로 여기고 있었으나 문제는 그가 너무 강하다는 것이다.
크라이도 제우스도 맥티그도 승우보다 너무 약했기 때문에 승전 전리품이 아니라, 약탈로 보일 소지가 너무 컸다. 적어도 에메랄드 태블릿은 그리 판단했다.
“너무 세도 좋은 게 아니구만.”
“그런 이유만은 아니지만.”
“우리끼리 있는데 가식 떨 거야?”
“그래그래. 그 이유가 절반은 된다.”
부정적인, 악신 같은 신명 대기열이 폭발 직전이다. 나름대로 선량하게 살고 있다고 자부했지만, 에메랄드 태블릿은 냉혹하다.
절대적 강자가 하는 일은 모든 게 다 악명이 된다. 가볍게 말해도 상대가 무서워하니 협박이 되고, 숨만 내쉬면 겁박이고, 주먹이라도 쥐면 간접 폭행이다.
진짜로 때렸다? 약자를 괴롭히는 아주 나쁜 놈이 되고 만다.
테오가 누워 있다가 뒹굴 하고 몸을 뒤집었다.
“그럼 오히려 그 와중에 중립을 유지하는 게 대단한 거 아닌가?”
“그렇지. 나만 해도 에메랄드 태블릿의 분류상으로는 악신이다.”
“우리 오크 씨는 악신 맞으니까 어쩔 수 없고요. 임페리얼 오크 자체가 악한 종족이잖아. 분류에서 보니까 몬스터드만.”
“네놈의 종족인 와일드 엘프도 얼마 전에 몬스터로 분류됐다고 들었다만.”
“경사스럽게도, 기득권층의 편견 가득한 분류 항목에서 드디어 몬스터로 등록되었지. 힘들었어.”
“그게 경사냐.”
“놈들이 착하다고 하는 것보다는 악하다고 하는 게 혁명의 투사에게는 좋은 법이란다.”
잔디밭을 뒹굴며 잡담을 주고받는다. 오늘은 술은 없다. 간단한 요깃거리만 있다.
영식이가 요즘 후각 강화 스킬을 얻어서 코에 힘주고 알콜 냄새를 찾는다.
술 냄새를 풍기면 매우 화를 내며 등을 때리기 때문에 아파서라도 술을 못 먹는다.
잡담을 나누고, 다들 디에우스 프테르가 보낸 메시지를 보며 웃는다. 크라이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보면 볼수록 명문이군. 고작 두 기호지만, 심금을 울려.”
“맞아. 이거 인쇄해서 우리 신전에 걸어둘까?”
“승우, 테라에 있는 당신의 신전에도 장식해 두는 건 어떨까요?”
“그럴까. 욕먹은 기념으로 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낄낄 웃으면서 쉬는 네 명의 신이 잡담을 이어갔다.
그리고, 이 순간.
아주 먼 차원에선.
* * *
“저질렀다.”
디에우스가 공포에 떨고 있다.
사시나무 떨 듯.
폭풍을 직면한 갈대처럼 떤다.
이렇게 무서워할 거라면 凸.凸을 지르지 않으면 되는 일이었다만, 어쩔 수 없다.
어떻게 손에 넣은 하늘의 신명이던가. 제우스와 싸우기를 수천 년.
기나긴 세월을 싸워오다 기어코 얻은 신명이다.
비록 놈이 몰락한 틈에 어부지리로 얻은 신명이지만, 노력이 보상받은 기분이었기에 디에우스는 날아오를 듯이 기뻤다.
근데 이 웬걸, 어떤 잡놈이 신명을 달라고 한다.
눈이 돌아간 디에우스는 메시지를 보낸 놈을 찾아내서, 상대의 차원과 국가, 언어 체계까지 확인하고는 가장 효과적인 거절 메세지를 보냈다.
이성은 참으라고 말했으나, 감성이 참지 못했다. 제우스나 디에우스나 감성이 이성을 지배하는 타입의 신이다.
본래 뇌정, 벼락, 번개, 폭풍 같은 초자연현상의 신명을 가진 이들은 격정적인 성격이 많다.
디에우스의 격정적인 면은 제우스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그래서 분노로 가득 찬 감정을 견디지 못하고 승우에게 메시지를 내던진 건 좋다.
분노가 식으니 뒤늦게 찾아온 냉정이란 녀석이 뇌를 괴롭힌다. 제우스보다 디에우스가 우월한 것은 분노를 식히는 시간에 있다.
제우스가 식는 데 몇 년이 걸린다면 디에우스는 하루면 충분하다. 냉각기 성능이 좋다고 요약할 수 있다.
“으으. 내가 대체 무슨 짓을.”
막말을 싸질렀는데 상대가 하필이면 검과 승리 괴식의 신이다.
절망, 파산, 공포, 멸망, 재앙, 파멸, 학살, 종말, 탄식, 멸살, 혼돈, 종언 중 하나의 이름을 가지게 될 신에게 빠큐를 날려버렸다.
“그 지구의 영어라는 걸로 보냈으면 복유(福You)의 오타라고 우겨볼 텐데, 하필이면 한자로 철 두 개를 보내다니. 나 새끼 미쳤나…….”
후회가 깊다. 시간을 되감을 수 있다면 되감고 싶다.
하지만 시간의 신은 죽어서 없으며, 시간의 신이 있다고 하더라도 시간을 되감으려면 만신의 동의가 필요하다.
요컨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누가 놈의 머리에서 1초만 지워주면 좋겠군.”
뭐, 그게 가능하다면 그냥 죽여주면 좋겠다. 디에우스가 후회와 공포. 그리고 절망에 빠져서 머리를 쥐어뜯을 찰나.
메시지 함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무엇인가 하고 봤더니, 악신들의 연맹에서 보낸 항의 문자다.
[야 이, 생각 없는 새끼야-!] [뭘 처지르고 지랄이냐-!?] [마왕에게 좋은 신명 붙여줄 기회였는데, 그걸 네가 차? 미쳤지?] [다시 생각해 봅시다. 정말 그게 현명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슬기로운 선택이었다고 자신합니까?] [아직 안 늦었습니다. 백기 들고 빌러 갑시다. 그리고 공짜로 하늘의 신명을 주는 겁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정말 늦기도 합니다만, 지금은 시간을 맞출 수 있습니다.] [빨리 네가 총대 메고 하늘 바치라고, 개자식아.]절절한 항의문과 욕설들. 이유가 있었다.
이들의 목표는 절망, 파산, 공포, 멸망, 재앙, 파멸, 학살, 종말, 탄식, 멸살, 혼돈, 종언 같은 살벌한 신명이다.
목표치를 채우지 못해서, 혹은 승우 때문에 신명을 못 얻고 있는 악신들은 승우가 빨리 신명 후보자 목록에서 내려오길 원한다.
승우가 하늘의 신명을 가져간다? 그럼 자연히 저 많은 신명을 노리는 모든 악신들의 후보 순위가 한 단계 올라간다.
승우에게는 얻기 싫은 신명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신생의 목표다.
[놈이 제 발로 빠져준다는데!] [절호의 기회를 날려?!] [다 너 때문이야.] [넌 뒈졌다.] [진짜 뒈지기 싫으면 빨리 가서 신명 팔아라.] [아니, 줘.] [야, 씹냐.] [삼가 아뢰옵니다만, 지금 자살길에 오르고 계십니다.] [정신 줄 붙잡고 빨리 비셔야 합니다.]악신들이 괜히 악신이겠는가. 악신들은 승우에게 풀지 못한 분노와 설움을 토해낼 기회만을 노리고 있었다.
빌미를 제공한 디에우스에게 분노가 집중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 사방에서 쇄도하는 비난, 욕설의 메시지 폭풍.
그리고 그 욕설을 얻어맞은 격정적인 뇌정의 신.
“염병할! 이 자식들이 나를 물로 봐?! 어디다가 화풀이야!”
좀 전까지 자책하고 있던 게 거짓말처럼 디에우스의 분노 병이 그새 도졌다.
디에우스는 엄청나게 빠른 손놀림으로 메시지를 보낸 놈을 추적, 녀석들의 차원과 행성, 언어까지를 전부 파악하고 하나하나에 맞춤형으로 욕설 답 문자를 보냈다.
검과 승리, 괴식의 신에게도 쌍욕을 박는 디에우스다.
악신들에게 쌍욕 박는 일은 너무나 쉬웠다. 뇌정의 신명에 걸맞은 번개 같은 속도의 답장 배송 능력. 각지의 악신에게 맞춤형 쌍욕이 날아간다.
그 욕을 먹은 악신들은 승우와는 다른 반응을 보였다.
[안희, 이 망할 놈이 진짜 뒈질라고 환장을 했나!] [디에우스? 그 새끼, 어디 살아.] [찾아! 찾아서 매달아 버려.]욕을 먹으면 화가 난다.
자기가 잘못했기 때문에 욕을 먹어도 화가 난다.
그런데 상대가 잘못했는데도 내가 욕 먹으면 곱절은 화난다.
분노한 악신들의 연맹은 그대로 디에우스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신들의 대전쟁이 시작됐다.
* * *
친구들과 한바탕 웃고 헤어진 지 이틀째. 승우는 늘 그렇듯 오늘의 메뉴를 준비한다.
오늘은 두부다.
“흐으음, 이 고소한 콩 냄새…….”
두부는 만들자마자 먹는 게 맛있다. 마침 새로 시장에 두부 가게가 생겼는데, 사장 부부의 솜씨가 매우 야무지다.
“이 두부라면 그냥 간장만 뿌려 먹어도 맛있겠어.”
순두부, 두부 부침, 된장찌개에 넣어도 좋겠고 김치찌개에 넣어도 좋다. 두부는 만능이다. 어디에 써야 제대로 쓰는 걸까.
승우가 미소를 지으면서 고민하고 있으니, 테오에게서 연락이 왔다.
[야, 태블릿 확인해 봐. 뇌정이랑 하늘의 신이 공석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