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472)
괴식식당-472화(472/613)
472화. 분노조절장애 (4)
그래도 그렇지, 음식 쓰레기를 먹으라는 건 너무하지 않을까. 디오나가 살짝 힐난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비난의 말은 꾹 참았다.
요리사는 음식 가지고 장난치지 않는다. 어느 차원에서도 공통적인 관념이다.
괴식의 신이 설마 음식 가지고 장난질을 할까.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보니 승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 녀석에게 그 인내심의 반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군.”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래서 진짜로 음식 쓰레기를 먹이는 건 아니겠죠?”
“천천히 설명해 줄게. 우선 저걸 먹이는 건 맞아.”
“으.”
“하지만 저건 음식 쓰레기가 아냐. 게의 부산물이지.”
크레블 게는 커다란 몬스터 게지만 어쨌든 게다. 승우가 곤란하다는 듯, 게 껍데기를 들면서 이어 말했다.
“게라는 녀석은 큰 문제가 있어.”
“징그럽다는 거요?”
“그건 작은 문제야. 진짜 큰 문제는 먹을 부위가 없다는 거지.”
크레블 게가 엄청나게 커서 살이 실한 것이지, 게라는 놈은 원래 먹을 수 있는 부분이 극도로 적다.
다리만 하더라도 껍질이 대부분. 껍질은 딱딱하고, 살은 한 입 거리다. 배를 뜯어도 마찬가지. 게장은 적고, 아가미와 껍질만 많다.
“게를 먹고 난 자리에는 수북하게 게 껍데기만 쌓이지. 게는 제법 귀한데, 이게 아깝지 않겠어?”
“아깝기야 하겠네요.”
“그래서 몇몇 나라에는 게의 껍데기도 먹는 요리법이 있어.”
한국인은 소를 머리부터 꼬리 끝까지 먹는다. 뼈는 골수까지 빨아낸다. 한 번 꽂히면 정말 모조리 먹어 치우는 게 한국인이다.
“우리나라의 일부 지방에는 게를 잡아서 아가미만 떼어낸 후에 껍질째로 갈아서 죽으로 끓여 먹는 요리가 있지.”
“그런데 아가미는 왜 안 먹죠?”
“기생충이 있어서 안 먹어.”
그거 참 합리적이군. 디오나가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세계의 문화를 배우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승우가 어쩔 수 없다는 어깨를 으쓱했다.
“생각 같아서는 그 게죽을 끓여줄까 했는데.”
“했는데?”
“양념게장이 먹고 싶어져서.”
살이 없는 상태로 게죽을 끓이면 개도 안 먹는 음식이 나온다. 살도 껍질도 모조리 끓이지 않으면 게죽은 정말 맛이 없다.
“그래서 비스크를 해줄 거야.”
“비스크?”
“갑각류, 절지동물류의 껍질을 끓여서 만드는 요리야.”
조개, 새우, 랍스타, 게. 맛있고 비싼 이 해산물들의 특징은 양이 적다는 것이다. 많이 먹으면 되겠지만, 그렇게 하면 돈이 많이 든다.
사람들은 생각했다. 그 특유의 맛은 껍질에도 있다. 껍질을 푹 우려서 맛을 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그걸 비스크라고 해.”
“비스크…….”
“소스처럼 만들면 비스크 소스. 스프로 만들어도 되고, 리조또로 만들어도 되지. 바로 시작할게.”
손님을 더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된다. 물론 디에우스 따위는 얼마나 기다려도 상관없다-는 마음도 있지만, 이 이상 지연되면 정말 곤란해진다.
다른 이유가 아니다. 디에우스가 문제다. 지금도 디에우스는 거품을 물고 달려들고 있다. 고양이에게 얻어맞은 게 참을 수 없는 모양이다.
“지치지도 않는구냥…….”
“크아아악-! 죽인다! 죽이고야 말겠어!”
철썩 하고 꼬리로 디에우스를 후려치는 나비. 정월 대보름의 달 토끼가 떡 메치듯, 찰진 소리를 내며 디에우스가 날아간다.
낙법을 칠 여력이 없는지, 아니면 낙법 따윈 배운 적이 없는 건지. 머리부터 추락한 디에우스가 로켓 같은 코피를 뿜었다.
하지만 그래도 지치지 않는다. 백 덤블링으로 일어나서는 이번엔 물어뜯으려고 덤빈다.
이러다가 늦으면 나비가 살신묘가 된다. 서둘러야지.
“최대한 서두르마.”
승우는 커다란 솥을 꺼냈다. 단순한 솥이 아니었고, 평소에 쓰던 마녀의 솥도 아니었다.
이번에 꺼낸 것은 지구에서 쓰는 압력솥이다. 다만 인간이 아니라 페로처럼 커다란 수인들에게 팔기 위해서 만든 초대형 압력솥이라 무진장 컸다.
솥에 물을 채우고, 거기에 손질하고 남은 크레블 게의 부산물을 채웠다. 원래라면 끓인 물에 넣어야 하지만, 크레블 게의 껍데기는 철 강판 수준으로 딱딱해서 물과 같이 끓여도 맛의 손실이 없다.
감자, 당근. 양파와 버터. 약간의 밀가루와 생 모짜렐라 치즈 두 덩어리. 그리고 맛의 밸런스를 잡아줄 소금 한 바가지.
‘아, 단맛이 모자랄지도.’
모짜렐라 치즈로는 단맛이 부족할지도 모르겠다. 생크림도 한 버킷 통째로 집어넣었다. 승우가 만들려는 건 크림치즈 비스크 스프다. 이대로 끓이면 매우 맛있게 되겠지.
거기에 프란츠베르크 가의 마력 술식을 역산하여 재구성한 정신 안정의 술식을 불어넣으면 완성이다.
하지만 무엇인가 부족한 느낌도 든다. 잠깐 생각해 본 승우가 손가락을 튕겼다. 지금 이 스프에는 크게 두 가지가 부족하다.
첫째는 볼륨감이다. 스프는 원래 볼륨감보다는 식사 전에 위장의 워밍 업을 위해서 먹는다. 하지만 디에우스에게 풀 코스를 대접해 주고 싶지는 않다. 그러니까 스프 하나로 만족감을 느끼게 만들어야 한다.
‘뭐, 놈에게 만족감 따윈 느끼게 할 필요 없지만.’
그래도 승우의 성격상 밥 먹으러 온 애를 굶주리게 해서 돌려보내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볼륨감을 추가하기 위해 배부르고 식감 좋은 녀석을 더해야겠다.
이럴 때는 의외로 말미잘이 좋은 재료가 된다. 말미잘은 탱글탱글하고, 쫀득쫀득하다.
그 말미잘 살이 스프를 머금으면, 부드럽고 기분 좋은 식감에다가 배까지 부르게 된다.
솜씨 좋게, 말미잘을 잘라서 넣었다. 디오나의 얼굴이 새파랗게 됐다. 그쪽에서는 말미잘도 안 먹는 모양이다. 참 편식하는 차원이군, 하고 생각하곤 승우가 손가락을 튕겼다.
요리에 부족한 두 번째 파편을 채우기 위해서다. 두 번째 부족한 것은 바로.
‘화력!’
단순히 장작을 태워서는 만족스러운 화력이 나오지 않는다. 조금 더 뜨거운 불꽃이 필요하다.
요즘 승우가 쓰는 요리의 불은 거의 다 피닉스의 불꽃이다. 피닉스의 불꽃에 익숙해졌으니, 장작으로는 만족이 안 되는 게 현실.
승우의 핑거 스냅은 피닉스 소환의 신호다. 자신의 차례가 됐음을 안 피닉스가 재빨리 소환에 응했다. 하지만 평소와는 달랐다.
게이트를 열고 나타나는 것은 불의 새, 피닉스가 아니라 게티아 1위에 등극한 마왕 페넥스였다.
화신체들이 소환에 응하기도 전에 본체가 소환에 응해 버린 것이다.
“응?”
“영광입니다, 신이시여.”
페넥스가 아름다운 목소리로 말하며 핑그르르 돌았다. 마계의 인사였다. 승우가 어이없다는 듯 그를 응시했다.
“너 안 불렀어.”
“피닉스를 부르시지 않았습니까? 피닉스가 할 수 있는 일은 저도 전부 다 할 수 있습니다. 그야, 피닉스는 제 분신이니까요. 본체인 제가 할 수 있는 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명령은 무엇입니까. 기쁘게 받아들이겠습니다.”
페넥스는 이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언제라도 신의 부름에 응하여 봉사할 이 기회를!
안타깝게도 마왕의 자리가 안정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고, 승우가 뭔가를 호출하는 때가 적어서 지금까지 나타나지 못했을 뿐이다.
“아니, 요리하는데 불이 부족해서 그러는 건데 피닉스가 와야지.”
“아, 아! 불입니까. 알겠습니다.”
페넥스가 아름다운 자색 눈을 희번덕 빛내며 압력솥을 보았다. 저 솥, 저 솥을 끓이라는 뜻이겠지.
“영차, 영차.”
그가 엉금엉금 기어서 네 발로 압력솥 밑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엎드려뻗친 자세로 몸에 불을 머금었다. 그의 등을 통해서 고열이 방출되고 압력솥이 끓는다.
“어떻습니까! 신이시여!”
피닉스 본체보다도 강력한 화력. 압력솥이 고장 날까 두려운 화력이다. 알리스터가 마개조한 압력솥이 아니었다면 진즉에 녹아서 망가졌겠지. 하지만 상정한 화력이다.
저거라면 충분하다. 훌륭한 크림치즈 비스크 스프를 만들 수 있다.
“어떻습니까! 신이시여!”
재차 열정적으로 묻는 페넥스의 호령은 놀랍게도 듣기 좋았다. 목소리에 관한 스킬로는 거의 신급이라더니만, 이런 순간조차도 감미로운 목소리다. 승우의 어깨 위에서 잠든 영식이가 꼬물거렸다. 그러고 보면 영식이도 있었지.
“어떠냐고 하면, 응… 숭하네.”
“예? 숭해요?”
“가극단 사람처럼 화려한 옷을 입은 중성적인 매력의 아름다운 사람이 엎드려뻗쳐서 압력솥을 데우면, 숭하지.”
정말로 숭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숭하다.
“뒤집어서 브릿지 하고 있을까요?”
“그건 보는 내 허리가 아프다.”
“그럼 엎드릴 테니 솥을 조금 내려주시겠습니까?”
“인도의 고행승이냐…….”
몇 번 자세를 바꿔보고는, 결국 처음의 자세로 돌아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남에게 보여주기 좋은 모습은 아니고 애들에게 보여줄 모습도 아닌지라, 승우는 조용히 어깨 위에서 잠든 영식이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엎드려서 압력솥을 끓이는 페넥스를 황당하게 보던 디오나가 물었다.
“결국. 그렇게 요리하시는 건가요? 저분으로?”
“응.”
“이상하지 않나요?”
“요리할 때 화력은 필요하고, 그걸 제공해 주는 게 피닉스건 페넥스건 맛만 좋으면 상관없잖아.”
“…….”
이걸 그릇이 크다고 해야 해, 아니면 그릇이 망가졌다고 해야 해?
마왕을 가스레인지처럼 쓰는 작태를 대체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그런 와중에 페넥스가 즐겁다는 듯이 물었다.
“두 분 다 요리되는 동안 지루하실 테니, 노래라도 불러드릴까요?”
쟨 진짜 사는 게 즐거워서 좋겠다.
디오나는 진심으로 그리 생각했다.
그리고 승우는.
“블루스 계통도 부를 수 있어?”
“저 혼자서도 8인 합창까지 할 수 있습니다.”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가스레인지가 제법 마음에 들었다.
* * *
크림치즈 비스크 스프는 재료를 넣고, 술식을 짜서 넣은 후에 늘러 붙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고화력으로 끓여주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요리다.
승우는 다섯 시간이나 나비에게 덤볐다가 나가떨어진 디에우스의 뒷목을 잡아들었다.
“윽! 놔라?!”
“지금부터 너한테 밥을 줄 거거든? 예의 바르게 안 먹으면 일단 한 번 죽는다고 생각해라.”
덤덤하게 말하는 톤이 별로 협박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칼날 같은 살기가 디에우스의 심장을 뚫고 지나갔다.
분노조절장애고 뭐고,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가까스로 턱을 까닥이자 뒷목을 움켜쥔 손이 떨어졌다.
잠깐 사이, 사신이 만지고 간 듯하다. 놀랜 심장을 달래고 있으니, 나비가 테이블과 의자를 가져왔다.
그리고 페넥스가 블루스를 흥얼거리며 테이블 위에 테이블보를 둘렀다. 어디서 가져온 건지 고급 식기가 놓여진다.
은 수저, 은 나이프. 은 포크. 셋 다 무기가 될 수 있는 녀석이다.
디에우스가 순간 살심을 가지고 나이프에 시선을 뒀다. 그러자 노래하듯 페넥스가 말했다.
“그만두시지요. 그러다가 죽으면 당신만 손해입니다.”
“뭐야, 너부터 죽을래?”
“오, 오, 오. 이 천박함. 교양의 터울조차도 느껴지지 않는 식사 예절. 정말이지, 주신이었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추하군요. 강자라면, 신이라면 품격을 갖추는 게 좋습니다. 예절은 그 시작이지요.”
죽이겠다,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뇌가 내린 명령에 몸이 거부하는 것이다.
당황하며 버둥거리는 동안 차분하게 식사가 준비된다. 유리 글라스에 담긴 물. 가볍게 곁들일 빵, 샐러드. 그리고 황금빛 그릇에 담긴 크림치즈 스프.
음식을 보자 위가 반응한다. 배에서 꼬르르륵 소리가 났다.
분노로 잊혀졌던 허기가 밀려온다. 그러고 보면 필멸자가 된 이후 한 끼도 안 먹었다.
몸은 한계를 예전에 넘었다. 신체의 각 부분에서 통증이 밀려온다. 그러나 그 통증도 잊혔다.
“냄새가.”
스프의 냄새가 끝내준다.
홀린 듯 시선이 빨려간다.
페넥스가 디에우스의 손에 숟가락을 쥐여 줬다.
“짐승처럼 마시지 말고. 우아하게, 귀족답게.”
뭐라고 한마디 해줄 시간조차 아깝다. 디에우스는 묽은 스프를 한 숟가락 떠 입에 머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