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475)
괴식식당-475화(475/613)
475화. 페넥스 vs 슈퍼스타 (2)
질투는 꼴사나운 감정이지만, 막강한 에너지이기도 하다. 백강혁의 정수리부터 시작된 분노의 에너지가 미잘까지 도달했다.
벼락처럼, 질풍처럼. 빠르고 강력한. 그야말로 내장이 뒤집히고, 창자가 꼬이는 분노다.
어째서 이리도 백강혁은 분노하는가. 천천히 짚어보면 분노하지 않는 게 이상했다. 백강혁은 검과 승리, 괴식의 신을 모시는 사도로서 정말로 열과 성을 다해서 살았다. 하지만 같은 화신인 승우에게는 별반 칭찬을 받지 못했다.
수없이 조각한 석상 중에서도 특A급만 골라서 진상했으나, 승우는 달가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부담스럽다는 듯이 시선을 피했다. 절대로 받지 않으려고 해서, 막상 용사의 식당에는 신의 신상이 없다.
그야, 당연한 일이다. 백강혁이 승우에게 건네는 상은 항상 승우의 얼굴을 쏙 빼닮은 신상이다. 정신머리가 어떻게 된 자아도취, 나르시시스트가 아닌 이상 부담스럽다.
승우가 ‘나도 나름 자아도취적인 면이 있긴 하지. 하하하.’ 하며 웃었지만, 정도라는 게 있다.
자기 가게 앞에 자기 신상을 두는 짓은 독재자나 즐기는 짓이다. 전력으로 거절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건 승우의 입장이다. 백강혁의 입장으로 보면 다르다.
신을 섬기지 않는 화신의 식당이다. 신상도 없는 화신의 가게다!
그것은 십자가 없는 교회. 피시방을 절이라고 우기는 스님 같은 모습이다.
그렇게 쌓인 미묘한 불만 속에서, 악마가 노래하고 있다.
노래의 악마가 사람을 현혹하는데 방치하다니! 거기다가 석상은 싫다고 했으면서 노래와 음악은 즐긴다.
재즈가 무어고 오페라가 무어고, 비밥은 또 뭔가! 밥 딜런?! 루이 암스트롱?! 찰리 파커!?
듣도 보도 못한 양놈들 노래를 들으며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승우의 모습이 배알 꼴린다.
그래. 변명하지 않겠다.
“으아아아아! 질투 난다!”
쌓였던 불만의 화살이 승우에게 돌아간다. 하지만 역시 무섭다.
그런 이유로 분노의 화살은 방향을 바꿔 페넥스를 가리켰다.
“밉다! 저 해로운 새가 미워!!”
몰락의 신명 예비 후보자 1위.
백강혁이 포효했다.
“페넥스. 네놈을 파멸시키고야 말 것이다아아-!”
질투. 질투!
페넥스를 파멸시키고, 녀석이 가져간 내 몫의 관심을 모조리 되찾을 것이다.
민이 싸늘하게 대꾸했다.
“여기에 네 몫의 관심 같은 거 없어. 가져간 게 아니야. 저건 그냥 페넥스가 자기 힘으로 쟁취한 거라고.”
“일일이 딴지 걸지 마라, 배신자!”
“나는 너의 편인 적이 없으니, 배신이 아니다만…….”
“두고 봐라, 소울 브라더. 너도 페넥스에게 매료당한 거 같지만, 너의 하트도 내가 반드시 되찾을 터이니.”
“사람이 말하면 좀 들어. 네가 뭔데 내 하트 타령이야?!”
항상 그랬듯이.
민의 지적을 무시하고, 백강혁은 자신만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 * *
집으로 돌아온 백강혁은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했다. 그는 헌터고, 그것도 프로 헌터 중에서도 최강이라는 퍼스트 오더다.
사냥은 전략이 필요하다. 모든 전략은 전쟁 개시 1초 후에 붕괴한다고 해도, 기초 전략은 중요하다.
차분하게, 냉정하게.
덫을 짜야 한다.
“불닭으로 만들어주마, 빌어먹을 자살새 놈.”
전략의 기본은 서로 간에 가진 패의 확인이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관찰한 결과, 페넥스가 가진 패는 예술 중에서도 연주와 노래. 음악 전반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유명한 음악가, 예술가의 모창과 흉내에 능하다.
승우가 요구한 모창과 관객이 요구한 대중가요까지도 모조리 재현 가능했다.
재현만이 아니다. 오히려 부분적으로는 더 뛰어난 변주, 변곡, 개량까지 할 수 있다. 노래의 악마라는 이름은 허명이 아니다.
“끄으으응. 일단 내가 하는 것도 같은 예술 카테고리에 속하지만, 조각은 아무래도 어필 포인트가 약하단 말이야. 만들기도 오래 걸리고, 임팩트도 약해.”
조각은 그야말로 생노가다다. 정과 끌로 돌을 깎는다. 그냥 깎는 것도 진짜 힘든데, 예쁘게 깎으려면 토 나오게 힘들다.
조각은 정말이지 신앙심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짓이다. 괜히 수많은 예술가가 종교적인 신념에서 조각을 시작하는 게 아니다.
이렇게 기절하게 힘든 게 조각인데. 거기에다가 정신 나간 의뢰주가 걸리면 후드라든가, 망토라든가, 흩날리는 천이라든가 망사 따위를 요구한다.
돌에 천의 질감을 새기는 건 초초초초초고급 기술이다. 후드 뒤집어쓰고 하늘하늘한 레이스 천을 두른 조각 따위를 만들면 백강혁의 허리가 활처럼 휜다.
이런 망할 의뢰주의 대표 주자가 바로 민이다. 하도 후드와 망토 퀄리티에 집착하는 터라, 백강혁은 마음속으로 민을 후드 집착 변태 도착증남이라고 부르고 있다.
“뭐, 돈이 되니까 조각에는 불만은 없다만.”
백강혁의 조각은 팬이 많다. 실은 거의 부르는 게 값인 수준으로 세계 각지에서 의뢰서가 빗발친다.
퍼스트 오더 수익과 비슷한 금액이 벌리니까 노력의 대가는 있다. 재미도 있고, 뿌듯하기도 하다.
“하지만 역시 음악과 조각의 대결은 음악의 승리지. 임팩트가 달라. 싸장님의 만족도도 달라.”
신에게 바치는 조각이지만, 승우의 반응은 매우 중요하다. 과연 첫 번째 화신이라서 그런지 승우가 기뻐하면 신도 기뻐하고, 승우가 짜증 내면 신도 싫어하는 기색이 느껴진다.
아마도 신과 승우의 취미와 호불호는 완벽하게 겹치는 게 아닐까.
그래서 승우의 얼굴로 조각하는 버릇이 든 거지만, 아무튼 승우는 조각보다 음악을 더 좋아한다.
백강혁은 그리 판단했다.
“그렇다면 나도 음악을 해야겠군.”
노래로, 싸워서 이긴다. 잃어버린 관심을 노래로 쟁취한다.
노래의 악마의 홈그라운드에서, 정정당당하게 겨뤄서 완전한 승리를 거둔다.
할 수 있다.
나라면 할 수 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 차오른다.
“으랏촤아아아-!”
백강혁이 거칠게 자신의 뺨을 후려쳤다. 이 차오르는 뽕과 근거 없는 자신감은 독이다.
자신감과 오만은 한 끗 차이다.
오만한 헌터에게 승리는 없다.
적을 너무 높여서도 곤란하지만, 낮춰서도 곤란하다.
초보자가 프로를 이긴다는 생각 자체가 오만한데, 노래의 악마를 이겨? 가당치도 않은 소리다.
그렇다. 백강혁은 지금 진지하게 생각이란 걸 하고 있다.
페넥스의 몰락을 위해서, 페넥스를 이겨서 다시 한번 사람들의 관심을 독차지하기 위해서.
지금의 백강혁은 그냥 백강혁이 아니라 몰락의 백강혁이다.
“이대로는 안 돼. 필패다. 백 번 싸워 백 번 진다.”
이글이글 불타는 눈의 백강혁이 떨리는 손으로 폰을 잡았다. 그의 손이 누군가를 호출했다.
그리고 잠시 후, 호출받은 자가 도착했다.
그는 놀랍게도 최우수였다. 천사 같은 미소를 집어던진 최우수가 고운 콧잔등을 구기며 백강혁에게 물었다.
“왜 불렀어요, 선배. 패배 선언이에요?”
“패배 선언은 네가 해야지, 망할 꼬맹아.”
둘의 싸움은 현재진행형이었다. 저주로 최우수가 뻗은 이후로도 계속해서 싸웠다.
이 싸움에 긍정적인 효과는 일절 없었다. 최우수도 망하고, 백강혁도 망했다. 그래도 피해가 어느 쪽이 크냐고 한다면 단연 최우수가 타격이 컸다.
최우수의 팬클럽은 전성기의 10%도 남지 않았다. 그에 반해 백강혁의 팬클럽은 절반이나 남았다.
평소부터 워낙 막장 짓을 하던 터라, 백강혁의 팬들은 인내심이 무척이나 강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진흙탕 싸움은 서로에게 피해만 주고 있다. 이제 화해해야 할 때다.
최우수는 그렇게 판단했고, 백강혁도 그렇게 판단했다. 하지만 먼저 손을 내밀긴 싫다.
최우수나 백강혁이나 체면, 가오로 살아가는 터라 더더욱 먼저 손을 내밀 수 없었다.
특히나 최우수는 제우스였으니, 어찌 필멸자에게 고개를 숙이겠는가. 앞에서 후배인 척, 아이인 척 가증을 떠는 거야 원래부터 잘하던 짓이었으니 자존심이 상하지는 않지만. 고개 숙이는 건 다르다.
덕분에 무한하게 이어지는 싸움이었으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백강혁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서로 손해 보는 짓은 그만하고, 이제 휴전하자.”
“조건은요? 적어도 분당 백화점 거리는 받아야겠는데요.”
A섹터는 게이트 유도기가 있는 터라, 어지간하면 유도기가 설치된 지역에 게이트가 발생한다.
하지만 가끔은 게이트 유도기를 벗어난 게이트가 생성되게 마련이고, 그때는 각 퍼스트 오더마다 설정된 의무 방어 구역이 있어서 담당 퍼스트 오더가 해당 지역의 게이트를 처리한다.
최우수가 말한 분당 백화점 거리는 돈 많고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팬클럽 중에서는 큰손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구역이다.
한 번 게이트가 생기고 출동하면 좋은 어필을 할 수 있다. 백강혁의 팬 밭이다. 그의 팬클럽의 정모도 여기서 한다.
거길 달라고 하니, 백강혁이 얼굴을 와락 구겼다.
“이 자식이 알짜를 받아 가려고 하네. 안 돼. 은평구는 어떠냐?”
“거기 학교만 많은 곳이잖아요. 돈 없는 꼬맹이들 지역은 필요 없는데요.”
“꼬맹이가 꼬맹이를 무시하다니, 이거 웃기는 놈이네.”
“흥. 그래도 주는 거니까 받죠.”
“잘 생각했다.”
“하지만 어째서 손을 내민 거죠? 선배님이라면 죽을 때까지 진흙탕 싸움을 할 줄 알았는데요.”
최우수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승우가 부리는 몰락, 멸망, 재앙, 종말의 짐승 같은 백강혁이 이성적인 판단을 하다니 놀라운 일이다.
못 보던 사이에 경이로운 지능 상승을 이루고야 말았는가?
“선배 능지로는 화해할 생각 같은 건 못 할 거라고 생각했었죠.”
“이 망할 꼬맹이 말하는 거 봐라. 너 그렇게 말하는 거 신문기자는 아냐?”
“그거 협박이에요? 선배, 법정에서 진짜 보고 싶어서 그래요? 촉법 맛 좀 보여줘?”
“후. 말을 말자. 지금 상황이 안 좋아. 너랑 내가 싸우는 동안 굴러들어온 돌이 식당에 무혈입성했다.”
“…천천히 설명해 봐요.”
백강혁이 페넥스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다 들은 최우수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노래, 음악. 그런 접근 방법도 있었군.”
검신을 무력이나 음모로 어떻게든 해보려고 머리를 맞대보았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었다.
하지만 녀석이 좋아하는 취미로 접근하여 쥐락펴락하다니. 생각도 못 해본 방식이다. 페넥스가 순간 천재처럼 느껴졌다.
백강혁이 혀를 찼다.
“싸장님도 아주 홀라당 넘어갔다니까.”
“그래서는 곤란한데…….”
현시점에서 최우수의 최종 목적은 괴식교의 교황이 되는 일이다. 승우가 허락하지 않아도 괴식교의 교황은 될 수 있다.
많은 신자들의 지지를 받으면 되는 아주 간단한 일이다. 검신이 괴식교와 자신의 연결고리를 부정하고 있기에 실현 가능한 계획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말로 승우를 방치하면 안 된다. 승우가 맘만 먹으면 그딴 거야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그러니 식당에 접근해서 접점을 늘려야 한다.
문제는 그 접점을 늘리기도 전에 백강혁의 저주 빔 크리로 최우수가 뻗어버렸다는 거고, 그래서 계획이 밀려 상황이 이렇게 됐다.
그런 상황에 한발 앞서서 페넥스가 무혈입성이라니!
용사의 식당을 점거하고 연주와 노래로 관심을 산다?
이러다가 페넥스가 교황이라도 돼버리면 수습도 힘들다. 허점투성이, 약점투성이인 백강혁이 교황으로 있는 쪽이 더 성공 확률이 높다.
“저로서는 선배가 교황인 게 더 좋은데요.”
“새끼, 보는 눈은 있구나. 그러니까 협조해라.”
“좋아요.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니까 협조하죠.”
둘이 굳게 악수했다. 일이 끝나면 다음 너다, 라고 동시에 생각하면서 한 악수라 의리나 협조성은 티끌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최우수가 금발의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물었다.
“그래서 계획이 있나 본데, 뭘 하면 되죠?”
“잘 물어봤다. 우리가 할 것은 이거다.”
백강혁이 TV를 가리켰다. 거기에는 가요방송이 나오고 있다. 흠칫하고, 최우수가 놀란다.
“설마?”
“그래. 우리는 2인조, 아이돌 그룹이 된다.”
“이 새끼가 미쳤나.”
일순 필터링 없이 튀어나온 욕설에 둘의 공기가 멈췄다.
못 들은 척하고, 백강혁이 말을 이었다.
“천천히 들어봐라. 이게 다 형님의 깊은 계략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