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488)
괴식식당-488화(488/613)
488화. 전설의 괴식 (2)
생선 대가리 카레는 ‘너는 자유인이다’라는 자유를 찾아 여행하는 교양 TV 프로그램에 나온 음식으로 한국인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는 전설적인 괴식이다.
너무 전설적이고 유명해서 민도 그 존재를 알고 있다.
‘만드는 법은 알아. 안다고 말하기도 민망하지.’
생선 대가리 카레 만드는 법은 어이없을 만큼 쉽다.
생선의 대가리는 상품성이 없어서 보통은 손질하면서 버린다. 그러니까 집에서 생선을 손질하면 대가리만큼의 음식 쓰레기가 나온다.
수산물 시장이나 가게에 손질해 달라고 해서 사 오는 편이 이롭다. 그래서 시장에는 생선 대가리가 널려 있다.
시장에서 주워 온, 거저 받은 생선 대가리를 계곡물 같은. 하여간 흐르는 물에 담가 둔다.
그리고 야채를 썰어서 냄비에 담는다. 물을 넣고, 카레 가루를 넣고 팔팔 끓인다. 거기에 물에 담가둔 생선 대가리를 꺼내 넣으면 생선 대가리 카레의 완성이다.
‘30초 카레, 라면 수준이지.’
그냥 넣고 끓이는 게 전부다. 요리라고도 할 수 없다. 그래서인지 맛도 요리라고 할 수 없다.
비리고, 아리고, 떫고, 먹어선 안 될 것의 맛이 난다고 한다.
당연한 일이다.
생선은 물 위로 올라오는 순간부터 부패가 시작된다. 물기는 그 부패를 가속화하는 부스터다.
계곡물에 담가두는 시점에서 부패는 그냥 두는 거보다 10배는 빨리 부패한다.
부패가 무엇인가.
썩었다는 뜻이다.
썩은 생선 대가리로 카레를 했으니 당연히 상했고, 상했으니까 먹어선 안 될 것의 맛이 난다.
‘그건 괴식이라고 부르기보다는 음식 쓰레기라고 부르는 편이 옳아.’
그런데 그걸 하라고 한다. 민은 뇌의 스위치를 넣고 생각의 속도를 더 빠르게 올렸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이건 아마도 시험이야. 무얼 위한 시험일까. 고민할 이유도 없지, 화신이다. 화신 자리를 줄까 말까 고민하시는 게 분명해.’
민은 학교에 다녀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용병이나 군인이나 어쨌든 시험은 본다. 시험이라면 자신 있다. 인생에서 시험이라는 단어가 걸려 있을 때 실패해 본 적이 없다.
‘시험의 기본은 절대적인 정답을 도출하는 게 아니라,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여 그 핵심을 짚는 것. 선생님은 나에게 어떠한 걸 요구하시는 걸까.’
대중문화, 시류를 읽고 정확하게 테마대로 요리하는 합리성과 정직함을 요구하실까.
그도 아니면 지식인가.
지식, 지식이라면 생선 대가리 카레는 원래 근본 요리다.
‘일전에 공부해서 기억이 나는군. 피쉬 헤드 커리(Fish Head Curry). 분명히 인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의 전통 요리였지.’
한국인에게 생선 대가리 카레 때문에 안 좋은 선입견이 생겨서 그렇지, 피쉬 헤드 커리는 원래 맛있는 요리다.
현지에서는 피쉬 헤드 커리를 만들 때는 도미, 연어, 방어 같은 고급 어종의 머리를 쓰는데, 이 물고기들은 하나같이 대형종이고 비싸며 살이 많은 어종이다.
어두육미(魚頭肉尾).
물고기는 대가리가 맛있고, 고기는 꼬리가 맛있다는 말도 있다.
비싸고 살 많은 대형종의 대가리 고기는 무조건 맛있다.
‘물류가 풍부해져서 대가리를 먹을 필요가 없어져서 안 먹게 됐을 뿐. 원래 생선 대가리는 맛있는 거니까. 그리고 조리법도 합리적이야.’
피쉬 헤드 커리를 조리하기 전에 머리를 위생적으로 멸균, 살균하고, 붙어 있는 내장과 아가미, 비늘을 제거하고 소금에 절인 후 열탕 처리까지 한다. 이렇게 하면 비린내는 사라지고 감칠맛이 남는다.
‘30초 카레 수준으로 대강 만드는 생선 대가리 카레와는 다르게 진짜배기 요리지. 맛없기가 힘들어.’
민은 단숨에 머릿속으로 요리과정을 끝냈다. 할 수 있다. 어렵지 않다. 그만큼은 연습했다.
‘그렇다면 선생님은 나에게 생선 대가리 카레가 아니라, 피쉬 헤드 커리를 요구하시는 건가. 하지만 피쉬 헤드 커리는 괴식이 아니야. 그냥 훌륭한 일품요리지. 으으으, 모르겠군. 모르겠어.’
머리가 복잡하다. 가위바위보를 할 때 상대의 수를 예측하는 것과 비슷하다. 어쨌든 이렇다 할 확실한 답이 없다. 그러니 의도를 읽는 게 중요하다만.
힐끔, 승우를 본 민은 절망했다.
‘선생님의 표정이 안 읽어져.’
민의 특기는 감지 능력으로 상대의 표정이나, 근육의 흐름을 포착하고 생각을 읽어 내는 일이다. 이건 그 사람을 많이 알고, 많이 볼수록 정확도가 오른다.
그런데 승우를 거의 일 년이나 보아 왔는데도, 민은 여전히 승우의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그는 평소에는 감정을 숨기지 않지만, 숨기려고 하면 근육 하나하나를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고 있으니, 승우가 스윽 입가를 올렸다.
“꼼수 말고, 실력을 보여 줘.”
“윽… 알겠습니다, 선생님.”
이렇게 되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 보는 수밖에 없다. 민은 손목을 걷어 올리고, 주방에 섰다.
요리의 시작이다.
* * *
중요한 것은 생선. 요리의 중심이 생선의 대가리임으로 생선이 제일 중요하다.
민은 굴착어(掘鑿魚)를 골랐다.
굴착어는 ISAC가 만든 몬스터 데이터 베이스에 ‘환경 동물’로 지정된 녀석으로 크기는 약 80cm. 생김새는 방어와 닮았다.
얼핏 보면 평범한 생선처럼 보이지만 이 녀석의 특징은 물이나 바다가 아니라 흙 속에 살아간다는 것이다.
마치 두더지처럼.
흙 속에서 살아가는 생선, 굴착어.
굴착어가 어떻게 바다를 떠나 흙에서 살게 됐는가. 굴착어가 발견된 지 오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논쟁거리다.
어쨌든 흙 속에서 사는데도 생선으로 분류된 이유는 생김새와 유전자가 놀랍도록 생선과 같은 덕이다. 맛은 흙 맛이 느껴지고, 비린내는 아예 없다.
민은 이 녀석의 비린내가 없다는 특징을 눈여겨보고 선택했다.
생선은 특이한 걸 골랐으니, 채소는 평범한 것을 쓰기로 했다.
당근과 애호박, 감자. 매운맛을 내기 위한 고추는 쥐똥고추를 골랐다. 프릭끼누라고 불리는 이 고추는 천천히 올라오는 매운맛이 매력적인 고추다. 끝맛이 강한 탓에 혀를 리셋시키기에 좋다.
탁탁탁, 능숙하게 하르페로 채소를 썬다. 당근을 한입 크기로 썰고, 감자는 큼지막하게 썬다.
그러면서도 민은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계속해서 커리의 배합을 고민한다.
‘하필 커리라니.’
커리는 요리계의 과학 상자라고 불린다. 수만 개의 향신료와 조미료를 조합하여, 자신만의 맛과 향을 가진 커리를 만들 수 있다.
배합의 재료가 수만 개가 넘는 만큼, 그 조합의 숫자는 무한하다.
승우가 예전에 웃으면서 말해 주기를, ‘나는 커리를 좋아하는데, 너무 좋아해서 정신을 놓으면 삼시 세끼 내내 커리만 만들어 버려. 그래서 의식적으로 자제하고 있어’라고 했다.
‘선생님이 그렇게까지 말했다면, 선생님은 진성 커리광인이야.’
커리광인.
일 년 열두 달을 커리만 먹어도 질리지 않는 커리 매니아들!
그런 사람 앞에서 그럴듯한 커리를 만들어야 한다. 부담이 크다.
‘침착하게, 냉정하게, 차분하게.’
커리에 사용되는 향신료 중에 몇 개는 지금 필수로 들어가야 한다.
강황, 생강, 후추는 기본요소다. 이 기본요소에 다른 향신료를 넣어 오리지널리티를 가미해야 한다.
‘굴착어와 잘 어울리는 향신료 반, 잘 어울리지 않는 향신료 반으로 구성하자.’
완벽하게 어울리면 그것은 괴식이 아니라 요리가 되어 버린다.
피쉬 헤드 커리는 원래 맛있는 요리인 만큼 있는 그대로 만들면 맛있어진다. 맛있다고 해서 괴식이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민은 겸허하게 자신의 수준을 인정했다.
‘내 주제에 맛있는 괴식 커리를 만드는 건 무리야. 맛과 효과를 동시에 추구하다가는 넘어진다.’
맛있는 요리를 맛없게 만들면서 효능을 챙긴다. 정석이고, 그게 민의 최선이었다.
마음을 정하자 향신료의 선택에 탄력이 붙었다.
향을 정갈하게 해 주는 바닐라. 향을 화려하게 만들어 주는 샤프란.
일년초 꽃봉오리를 식초에 절여 만든 케이피는 겨자와 같은 풍미를 내 주면서, 정신을 맑게 해준다.
촉초, 사천후추라고 불리는 초피는 얼얼한 맛을 가미해 프릭끼누의 매운맛을 세 배로 강하게 만들어 준다.
아티초크의 줄기는 갈지 않고 마지막에 쑥갓과 같이 뿌려 아삭아삭한 식감을 더하자.
분명 감자와 당근의 포슬포슬한 식감과 맞물려서 거지같은 식감을 만들 것이고, 그 거지같은 식감은 마법 효과에 상승작용을 더해 줄 것이다.
‘좋아.’
준비가 차근차근 된다. 냄비에 물을 넣고 불을 올렸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민은 탄산수를 뿌려 냄비에 물의 마법진을 그렸다. 뿌릴 수 있는 탄산수는 냄비의 1/7 가량. 이 안에 마법진을 모두 그려야 한다. 그리는 마법진은 소용돌이, 회전의 마법진이다.
탄산수가 요리를 부드럽게 만들어 주는 한편 마법의 힘을 부여해 줄 것이다.
보글보글하고 물이 기묘하게 끓기 시작했다. 마법진의 모양이 닿는 곳은 끓지 않는다. 이쪽은 차갑다. 물의 마법이 가진 힘이다.
손질한 채소를 넣고, 배합한 향신료를 부었다. 향신료가 녹으면서 푸르스름한 색을 띄었다.
강황을 적게 넣고, 푸른 사프란의 비율을 높였기에 색이 푸르다.
민이 심호흡을 하고, 하르페를 역수로 쥐었다.
‘여기가 승부처.’
살아 있는 굴착어의 머리를 단번에 딴다. 죽음을 느끼지 못하도록, 머리가 없어도 살아 있다고 여기도록, 빠르고 정교하게, 완벽하게 목을 취한다.
목을 베는 참수(斬首)의 아티팩트. 하르페는 이날 이때를 위해 존재한 것이리라-!
수많은 괴물의, 몬스터의 목을 베어 온 하르페가 굴착어의 목을 땄다. 민은 재빨리 왼손으로 알리스터의 나이프를 쥐었다.
전기를 다루는 이 나이프는 베는 것과 동시에 전기 충격을 가할 수 있다. 굴착어를 공중에 띄워 두고 양손으로 녀석을 손질한다.
지느러미를 자르고, 아가미를 떼고, 내장을 자르고 비늘을 긁는다.
치지직, 치지직 하고 전기가 멸균과 살균, 소독을 동시에 하면서 살짝 굴착어를 굽는다.
한 번 살짝 구운 대가리를 재빨리 냄비에 넣었다. 이대로 끓이면 굴착어 대가리 커리는 완성된다. 하지만 아직 끝은 아니다.
‘몸이 남았다.’
생선 대가리 카레의 기본은 대가리지, 몸이 아니다만 결코 버릴 수는 없다.
요리를 시작하고 끝냈을 때 음식 쓰레기가 적을수록 좋은 요리사다.
승우가 그렇게 말했으니 몸을 버리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민은 이 굴착어의 몸으로 하나의 요리를 더 만들기로 했다.
‘피쉬 헤드 커리는 원래 밥을 따로 먹어. 부어서 같이 비벼 먹는 한국의 카레라이스와는 전혀 다르지. 그러니까 완성한 굴착어의 대가리 커리와 같이 먹을 밥이 필요해. 그렇다면 주먹밥이 좋겠군.’
재빨리 피닉스의 오븐에 몸통을 굽는다. 화력을 올렸기에 금방 구워진다. 하지만 겉은 타고, 안은 설익었다.
실패작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건 요리로서는 실패작이지만, 괴식으로서는 성공작이다.
겉태속설.
겉을 태우고, 안을 설익힌다.
괴식 요리사의 필수스킬이다.
민은 겉은 타고 안은 설익은 굴착어를 꺼내 위생장갑을 낀 손으로 으깼다.
뼈와 가시는 아까 발라 두었기에 쉽게 으깨졌다. 그렇게 으깨진 살에 쌀밥을 넣는다. 그리고 파슬리 가루를 조금, 맛소금도 조금, 올리브 오일도 조금 넣었다.
조물조물 주무른 밥으로 모양을 잡았다. 모양은 두 개, 하나는 영식이 모양의 큰 덩어리. 하나는 나비의 앞발 모양의 작은 덩어리다. 그리고 그 옆에 마침 완성된 굴착어 대가리 커리를 담았다.
“완성했습니다.”
단숨에 마감한 민이, 두 그릇을 내놓으며 숨을 몰아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