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49)
괴식식당-49화(49/613)
049화. 피자 (3)
황지현은 깊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길게 기른 머리를 고무줄로 묶었다.
전투준비 완료다.
적은 지현이 아는 한 최악이자 최고의 요리사가 만든 피자.
그것도 지현의 상체보다도 거대한 울트라 피자다.
상대로는 부족함이 없다.
“…….”
그런 지현을 보며 승우가 입을 다물었다.
돌격 직전의 기사를 보는 듯한 저 비장함이란 시선을 끄는 무언가가 있다.
그의 시선을 느낀 지현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뭘 그렇게 봐요! 오랜만에 치팅 데이란 말이에요!”
“치팅 데이가 뭡니까?”
“다이어트만 하면 괴롭잖아요? 그러니까 일, 이주일에 한 번 먹고 싶은 걸 원 없이 먹는 날이죠.”
“아, 아아아. 그렇군요.”
이해된다.
인간의 욕망은 주기적으로 해소해 주지 않으면 폭발하고 만다.
금욕과 절제만을 추구하다 큰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있겠지.
그러니까 나름 현명한 이야기지만.
“어제 저녁에 돈가스 3인분을 드신 분이 치팅 데이를 운운하다니…….”
“…….”
“뻔뻔하기도 하지.”
빠드득하고 지현의 주먹에 힘이 실렸다.
포크가 부르르하고 떨렸다.
승우는 자칫 잘못 자극하면 저 포크가 이마에 박힐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러나 목이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하는 주의라 어쩔 수 없었다.
“사장님……?”
“흠, 흠흠. 체조는 열심히 하고 있습니까?”
“네, 매일 하고 있는데요. 체중이 변하질 않네요.”
아일루로스족의 비법인 용사의 체조를 하면 일주일에 3㎏가 빠진다.
그런데 안 빠졌다?
“그만큼 먹고 있으니까 안 빠지죠.”
“아, 진짜!”
그냥 3㎏ 찔 만큼 매주 먹고 있다는 소리가 아닌가!
지현의 눈매가 예리해졌다.
화났다는 신호다.
아, 정말이지.
이건 나쁜 버릇이다.
기회가 되면 사람을 놀리지 않고서는 참을 수가 없으니!
승우는 입가에서 미소를 지우지 않고 움직였다.
그래, 슬슬 먹어야지.
이번에 만들 피자는 먹을 사람의 욕망이 가득 담긴 만큼, 무척 거대했다.
테이블의 크기를 벗어날 정도 거대함!
울트라 피자가 모습을 보였다.
토마토소스의 자극적인 향기!
치즈의 고소한 향.
닭, 소, 돼지, 오리 등 각종 고기의 애간장을 녹이는 향기가 버무려져 식욕을 자극했다.
지현이 눈을 빛내며 양손을 모으는 것과 동시에 나비와 은하, 태지, 영식이도 모여들었다.
“맛있는 냄새…….”
꼬마 숙녀가 눈을 감고 냄새를 따라 걸었다.
고양이도, 탱탱볼도, 근육남도 마찬가지.
눈을 떠 보니 테이블 앞에는 커~다란 피자가 있다.
“자, 그럼 전원 먹고 싶은 피자 앞에 앉아.”
승우가 말하자 모두 일사불란하게 의자 앞에 앉았다.
이미 떡-하니 자신을 위한 고기 스페셜 피자 앞에 앉은 지현이 전투적으로 양팔을 벌렸다.
태지는 ‘아아아, 저게 더 맛있어 보여’라고 생각했지만 차마 양보해 달라거나, 나눠달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지현의 눈에는 그야말로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으니까!
“일단 들고 먹을 수 있으면 들고 먹는 게 좋지만, 몇몇에게는 너무 크니까. 포크와 나이프도 준비했어.”
나비와 은하가 야무지게 포크와 나이프를 쥐었다.
태지와 지현은 역시 맨손.
영식은 물끄러미 피자를 노려봤다.
‘먹을 거 주제에 나보다 크다.’
한 번에 삼킬 수 있을까?
반의반도 못 할 거 같다.
‘하, 한 방에 삼켜야 되는데 힘들 거 같아! 어쩌지?’
걱정하는 영식이의 시선을 느끼고 은하가 말했다.
“돌돌 말아서 먹으면 되지 않을까요?”
‘…천잰데?’
이걸로 준비는 끝.
먹을 시간이다.
“잘 먹겠습니다냐!”
“잘 먹겠습니다!”
“뿌우-!”
모두가 인사를 하고 피자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뜨거운 피자를 단번에 입에 넣었다.
“역시 고기야!”
“새우와 오징어의 풍미가……!”
길게 말해서 뭐 할 것인가.
대량의 신선한 치즈.
갓 만든 도우와 토마토소스.
예산과 가성비 따위는 집어 던지고 멋대로 쌓아 올린 메가 토핑!
오븐에서 나온 지 1분도 안 지난 따끈한 피자!
화룡점정으로 두 방울 들어간 아일루로스의 비법 소스까지.
맛이 없다면 거짓말이고, 그런 거짓말도 못 할 정도로 압도적인 맛이었다.
피자의 맛은 누구나 알고 있다.
여기 있는 이들 중에서 피자를 먹어본 적이 없는 건 영식이 하나뿐.
나머지가 피자의 맛을 모르겠는가?
그런데 그저 맛있다.
전에 먹었던 피자보다 맛있고, 앞으로 먹을 피자보다 맛있다.
그 말 말고는 할 말도 없는 상태였다.
와구와구 하고 먹어치우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태지는 경호 일조차 잊고 음식에 몰두했으며, 지현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광전사(狂戰士)!
방해되는 것은 모두 파괴하는 난폭한 전장의 지배자!
단연코 이 식탁의 지배자는 그녀였다.
치팅 데이라는 명분으로 그녀를 묶고 있던 족쇄는 끊어졌다.
“아이들은 콜라, 어른들은?”
“맥주!”
지현이 환호하고 테이블 위에 맥주가 놓이자, 태지가 진심을 담아 맥주를 노려봤다.
어른이라도 마실 수 없다.
경호 일을 해야지!
하지만 지현은 이미 퇴근했고, 승우는 셔터 내린 사장님이다.
체면 차릴 필요는 없다.
승우도 와이셔츠의 단추를 하나 풀고, 한 손에는 맥주.
다른 손에는 피자를 장비했다.
피맥, 최강의 조합이다.
“여유가 있었으면 치즈 단계에서부터 손으로 만들었을 텐데, 그게 아쉽네.”
“치즈-! 치즈는 좋다냐!”
“좋아. 다음에는 치즈부터 시작해 보자.”
만들 것이 늘어난다는 건 본래라면 꽤 귀찮은 일이다.
하지만 은퇴 후의 여가 생활에서, 할 일이 생기는 건 기쁜 일이지.
승우는 마음 속 버킷 리스트에 수제 치즈를 추가했다.
“소라도 한 마리 사야겠군.”
“마당에서 풀어서 키울 겁니까? 목가적이고 좋긴 하지만 민원이 들어올 겁니다.”
태지가 볼에 토마토소스를 묻히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은하가 ‘태지 오빠, 볼!’ 하면서 닦아주지 않았다면 몰랐을 테지.
마당에서 키우는 소라… 마음에는 들지만, 확실히 여러 문제가 있다.
냄새라던가, 냄새라던가, 냄새.
승우는 그윽한 그 향기를 떠올리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식당 주인으로서 기본예절이 아니지. 별장에서 키울 생각이야.”
승우에게는 세계에서 누구도 가지지 못한 별장이 있으니까.
소 한두 마리 키우는 건 일도 아니었다.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식사 시간이 이어졌다.
만드는 건 어렵지만 먹는 건 쉽다던가?
그 커다란 피자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그런데 한동안 신나게 피자를 먹던 은하가 울상을 지었다.
배가 부르다.
“우, 우우. 더 먹고 싶은데…….”
한 조각이 어지간한 XL 사이즈 피자 한 판과 같은 크기의 울트라 피자다.
아이에게는 한 조각은 당연히 벅차다.
그런 은하를 보다가 나비가 앙앙- 하고 입을 벌렸다.
“냐는 더 먹을 수 있다냐.”
“정말요?”
은하는 한 입 크기로 썬 피자를 나비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나비가 냠 하고 단번에 먹어버렸다.
우물우물하고 입이 움직이고 콧수염이 움찔거렸다.
은하가 환하게 웃었다.
그렇구나! 내가 배부르면 남을 먹여주면 되는 거구나!
은하가 연신 포크와 나이프를 움직이고, 나비는 냠냠하고 열심히 먹었다.
그럼 영식이는?
녀석은 빠르게도 한 조각을 해치우고 잠이 들었다.
승우의 등에 기대서 쿨쿨 잠이 들었는데, 지현이 쿡쿡 찔러도 일어나지 않는 걸로 보아 깊은 잠에 든 것 같다.
지현이 신기한지, 영식의 볼살을 잡아 늘이면서 말했다.
“보통 슬라임은 꾸덕꾸덕하고 흐물흐물하면서 고약한 냄새가 나기 마련인데, 얘는 진짜 특이하네요. 무슨 만화 슬라임 같아.”
“귀엽죠?”
“귀엽네요. 그런데…….”
이어지는 지현의 말에는 승우조차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얘는 무슨 맛이려나… 사이다? 트로피컬 후르츠? 블루 하와이안?”
“벌써 취했습니까?”
“향이 너무 좋잖아요. 몰랑몰랑하고…….”
승우는 조심스럽게 영식이를 숨겼다.
농담이라고 하기엔 눈이 너무 진지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렇게 오늘 하루도 끝났다.
하지만 지현의 하루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야 공무원과 자영업자의 하루가 같을 수야 있나.
긴급 호출이 들어왔다.
* * *
밤늦은 시각 게이트 주둔군, 지부장실.
‘피자가 참 맛있었습니다’로 끝나는 보고서를 읽고 이정훈은 즉시 화내지 않았다.
잠시 안경을 벗고 눈의 피로를 푼 후, 책상에 놓인 따뜻한 차를 마셨다.
그러고 나니 한결 나았다.
“후, 그래서 피자가 맛있으셨다?”
“예, 반성문 10장 정도의 값어치는 하는 맛이었습니다.”
내 생애 한 점 후회도 없다는 표정으로 늠름하게 서 있는 황지현을 보라.
화를 내려고 해도 기운이 생기지 않는다.
늙어서 그러나?
“후, 자네 말일세.”
“예, 말씀하십쇼.”
“얼마 전까지는 자네의 별명이 ‘냉혈여제’라는 직원들의 말에 내심 고개를 끄덕였네. 참 어울리는 별명이라고 말이야.”
백강혁조차 자신의 부관인데도 움찔하게 만드는 그 태도!
아무리 같이 일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그 냉정한 모습이란.
공과 사를 가린다고 말은 하지만 과연 개인사라는 게 있는지 의심스러운 칼같은 사무원.
누구와도 친해지지 않고 말을 섞지 않으며 피 내신 냉각수가 흐른다고 알려진 사람이었다.
그래서 생긴 별명이 냉혈여제!
그래, 황지현은 그런 사람이었다.
과거형이다.
정훈이 표정을 굳히니 지현이 살짝 고개를 꺾으며 말했다.
“냉혈여제라… 부끄럽습니다.”
“부끄러워할 건 그게 아니지! 상부의 밀명을 받아서, 밥집의 홍보를 한다! 이건 일이니까 좋다! 그 밥집이 멋대로 닫으려는데 간섭을 못 하는 거? 이것도 외부인의 일이니까 좋다 이거야!”
“예, 저는 규정대로 처리했습니다만.”
“그렇다고 같이 밥 먹는 건 아니지!? 그것도 술도 마셨어?”
“아시다시피 피자와 맥주는 환상의 궁합인지라.”
끄윽- 하고 살짝 트림을 하는 지현.
좀 전까지 부어라 마셔라 하고 왔다더니만, 술 냄새가 물씬 풍긴다.
지현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퇴근 시간 후니까, 술을 마셔도 규정상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가 있다면 퇴근 후에도 보고서를 제출해야 되는 지금 상황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거리감. 거리감을 말하는 걸세. 목표물과 너무 친해지는 거 아닌가? 자네의 직속상관인 백강혁보다 어째 저 귀환자랑 더 친해 보여!”
“솔직히 말해서 그 뺀질이랑 사장님을 비교하는 건 너무 가혹한 처사라고 생각합니다. 얼굴도 인격도 능력도 상대가 안 돼요.”
“취한 김에 그냥 아주 막말하자 이건가……? 이러다가 계급장도 떼고 한 판 붙자고 하겠군그래.”
“바라신다면야 못 할 것도 없죠.”
가드를 올리고 무에타이의 기본자세를 잡는 지현을 보며, 정훈이 기겁했다.
“아주 코가 삐뚤어지도록 마셨구만…….”
“거듭 말하지만 퇴근 후의 일까지 터치하시는 건 에바… 아니, 가혹한 처사라고 생각합니다.”
“…….”
아이고, 머리야.
백강혁이 정신을 차렸다고 생각했더니 이번엔 믿었던 황지현이 맛이 갔다.
이정훈은 미간을 꾹꾹 눌렀다.
“아무튼 늦은 시간에 부른 건 다른 이유가 아니라, B팀이 복귀할 예정이라 그랬네.”
“B팀? 윤은형 님이 복귀하는 겁니까?”
“부상이 모두 회복됐으니까 당연한 수순이지만…….”
지현은 술이 확 깨는 기분이었다.
윤은형.
게이트 주둔군 B팀의 퍼스트 오더.
랭킹 65위.
코드네임 ‘블랙 호크’
고등학교 2학년.
퍼스트 오더 최연소의 랭커!
그리고 한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검사이며, 동시에.
“백강혁 님이 좋아하시겠네요.”
“제기랄. 또 얼마나 싸워댈지.”
백강혁과는 철천지원수에 가까운 인물이다.
원인은 간단해서, 둘 다 별로 성격이 좋지 못한 탓이다.
백강혁은 자기보다 관심을 더 받는 사람을 싫어하고, 윤은형은 최연소 퍼스트 오더.
그리고 백강혁보다 훨씬 랭킹이 높은 인물이다.
윤은형의 경우는 아쉽게도 아직 어리고 천재이기 때문인지 자신에게 공격적인 인물을 호의적으로 봐줄 도량이나 그릇이 없다.
때문에 둘 다 있을 때는 만나기만 하면 싸우는 게 일상이었다.
그야말로 견원지간!
정훈이 담담하게 말했다.
“백강혁이랑 친한 사람이 있으려나 싶다만.”
“윤은형 님도 어지간하시죠. 솔직히 둘 다 비슷합니다.”
“크흡. 아무튼 B팀이 내일 아침에 복귀하니까 잘 대비해 두게.”
“알겠습니다.”
응급차라도 수배해 둬야 하나?
지현은 한숨을 쉬면서 지부장실을 나갔다.
여기에 오기 전까지는 기분이 참 좋았는데…….
“아, 돌아가서 한잔 더해야지.”
들어가는 건 술이고 늘어나는 건 한숨이며 뱃살이로다.
이러니까 다이어트가 안 되지.
지현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