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491)
괴식식당-491화(491/613)
491화. FA (2)
언제까지나 비정규직으로 남아 있을 수는 없다. 특단의 대처가 필요하다. 그것에 대해서는 백강혁도 동감하는 바였다.
하지만 FA라니.
“그건 너무 강한 대처 아닐까요? 좀 더 온건하고 평화로운 대처는…….”
백강혁이 쭈뼛쭈뼛 물으니 테오가 껄껄하고, 호탕하게 웃었다.
“평화로운 혁명 따위는 농경시대의 꿈 같은 거야. 건강한 삶과 자연의 조화 같은 어이없는 소리지. 피, 폭력, 분노와 갈등! 혁명이란 저항 의지와 기득권의 득세 의지의 싸움이다. 화약에 불이 붙으면 어떻게 되겠나.”
“폭발하겠죠.”
“그러니까 혁명은 폭발이야. 그대 백강혁. 정식 화신이 되지 못한 비정규직 화신이여. 언제까지 비정규직으로 살 텐가. 분노를 폭발시키게. 부당대우에는 폭발을. 기득권들에는 불꽃을! 혁명의 봉화를 올리고 반역을 시작하자. 그 첫 시작을 FA로 한다면 좋은 선전포고가 될 거 같군.”
“저기, 그런 게 문제가 아닌데요.”
“그럼 뭐가 문제야?”
“그. 괜찮을까요? 목숨적으로요.”
“아.”
테오가 뒤늦게 백강혁의 고민을 알아차렸다. 본질적으로 말해서 화신은 FA를 할 수가 없다.
FA는 프리 에이전트의 약자인데, 화신은 프리하지 않다. 자유의 몸이 아니다.
“하지만 너 서명 안 했다며?”
“아, 서명은 안 했죠.”
“얼굴도 못 봤고.”
“예. 얼굴도 못 봤어요.”
“사기 계약이네.”
“예?”
“화신 계약을 비대면 계약으로 하는 예는 없어. 계약이 엉망으로 됐으니까 FA해도 돼.”
“…….”
“비정규직이 달리 비정규직이겠어?”
테오가 딱 잘라 말하자, 백강혁이 손가락을 꼼질거렸다.
“그래도, 보복이 있지 않을까요.”
백강혁의 걱정은 매우 합리적인 일이었다. 회사의 갑질은 회사의 밖에서도 있는 법이다.
동일 계열사에 취직을 못 하게 한다던가, 물리적으로 해코지를 한다던가. 고소한다던가.
블랙 기업의 예를 들어도 그 정도인데, 신은 얼마나 갑질할까.
신화를 보면 자기 심기가 더럽다는 이유로, 말하는 꼬라지가 재수없다는 이유로, 으쓱거린다는 이유로, 오늘따라 기분이 드럽다는 이유로 인간을 승천시키는 신의 일화가 많다.
화신을 빼앗긴 신이 가만히 있을까? 그것도 검과 승리, 괴식의 신이라는 무지막지하게 강한 괴력의 신인데?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가만히 있을 거 같지는 않고, 불벼락을 토하겠지. 그뿐인가. 다른 신 생각도 해야 한다.
“맞아 죽고 싶지 않은 다른 신도 눈치를 보지 않을까요?”
비정규직 대우가 싫어서 탈주한 화신을 누군가가 거둬 간다면, 그 신은 검과 승리, 괴식의 신의 의지에 정면으로 맞서는 게 된다.
만약 그렇게 됐을 때의 검과 승리, 괴식의 신이 토할 분노는 그렇다 치더라도 화신을 주워 갈 신이 있기나 할까.
맞아 죽는 게 두려워서 화신 근처에도 안 오고, 입찰도 안 할 거 같은데?
“그러니까 보복이 전방위에서 올 거 같아요. 저나 다른 신이나 견딜 수 있을 리가 없다고 보는데요.”
백강혁이 그리 말하자 테오가 힐끔 승우를 봤다.
“왜?”
기가 막혀서 가만히 있는 승우에게 왼눈을 깜빡여 온다. 그 모습에 승우가 한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저건 개수작을 할 때의 테오의 몸동작이다. 뭔 개소리를 하려나, 하고 기다려 보았다.
과연 개소리가 이어졌다.
“없어, 없어, 전혀 없어.”
“어떻게 그렇게 단언하시나요.”
“검과 승리, 괴식의 신은 나도 조금 아는데 그 녀석은 그럴 녀석이 아니야.”
“그, 그래요?”
“그래. 검과 승리, 괴식의 신은 인격자라고. 아주 상냥하고, 배포가 크고, 친절한 신이지. 녀석의 마음은 하늘보다 넓고 바다보다 깊어. 그런 녀석이 보복이라니, 설마. 그럴 리가 없지. 오히려 넉넉하게 FA자금도 지원해 줄 거야.”
“자금까지……?”
“응. 그렇고말고. 그런 녀석이니까. 거기다가 다른 신에 대한 견제도, 보복도 없을 거야. 자유 의지를 중시하는 진정한 참 신이니까. 아버지어머니할머니할아버지도 아는 갓갓갓신이라고. 그렇지 않아?”
동의를 구하듯 승우를 돌아보았다. 승우는 조용히 눈을 가늘게 뜨고 테오를 보았다.
움찔하고 테오의 어깨가 떨렸으나 모른 척하고 다시 시선을 백강혁에게 주었다. 백강혁이 긁적긁적 머리를 긁었다.
“으으음. 그렇게 친다면 나쁜 이야기는 아니네요.”
확실히 나쁘지 않은 이야기다. 부당대우를 받던 비정규직이, 다른 곳에 정식으로 취직한다.
그 비정규직은 회사에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인재였고, 받던 돈에 몇 배를 벌어 주는 효자 직원이었다. 혼자서 회사를 이끌어가다시피 했던 효자 직원을 잃은 회사는 그 모습을 보며, 뒤늦게 후회한다. 하지만 후회해도 늦었다.
비정규직 효자 직원은 새 직장을 찾았다. 돌아오지 않는다.
평생 후회하라지, 푸헹.
완벽한 사이다 엔딩의 완성이다.
‘하지만…….’
백강혁은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너무 치사하다.
도움받을 때는 다 받아 놓고서, 정말로 이세계에서 고립되어 뒤질 뻔했을 때 구원받아 놓고, 자살 충동이 치밀어 올라서 매일 밤마다 술로 찌들어 살던 개망 인생을 성공자의 인생으로 바꿔줬는데도 이젠 다른 신에게 홀랑 간다?
의리가 없는 정도가 아니다.
그건 완전히 후레자식이다.
백강혁의 얄쌍한 도덕 윤리로조차도 납득이 안 가는 일이다.
‘나는 그렇게까진 하기 싫은데…….’
많은 걸 바라지 않는다. 그냥 인턴 화신에서 정규직 화신으로의 전환만 원한다. 임금 인상도 필요 없고, 권능 인상도 필요 없다.
자리만 보존해 주면 된다. 뒤늦게 들어와서 자기가 두 번째 화신이라고 주장하는 망할 친구 놈에게 티배깅 해 줄 수 있으면 족하다.
경력은 내가 더 많은데 비정규직, 인턴 화신이라서 호봉을 안 쳐 주는 바람에 세 번째 화신 취급받는 건 참을 수 없다.
그러니까 처우개선만이 목적이었는데, 갑자기 이직? FA?
너무 나갔다.
‘FA는 거절해야겠다.’
당분간은 그냥 항의하고, 바닥을 뒹굴면서 버티는 걸로 저항해 보자.
FA는 역시 싫다. 그런데 백강혁이 거절하려고 입을 열 때였다. 테오가 엄지를 보이면서 말했다.
“그런 김에 네 FA를 잠깐 홍보해 봤어. 여러 신들이 접촉해 왔군.”
“예? 여러 신들이요?”
“대략 삼십 명쯤 연락이 왔네.”
“사, 삼십 명이나요?!”
내가 뭐 어떻다고 신이 삼십 명이나 접촉한 거지? 백강혁이 어안이 벙벙해하니, 테오가 에메랄드 태블릿을 흔들었다.
“너 꽤 유명해. 검신의 화신은 엄청나게 유능하다고 말이지.”
“에, 헤에…….”
“그러면 그 신들을 소개하지기 전에 나부터 소개해야겠군. 나도 이번 FA에 입찰할 거니까.”
“예? 왜요?”
“왜라니, 생각해 보라고. 친구야. 너와 나의 시너지를.”
테오의 신명은 혁명과 반역이다. 혁명의 힘은 자신보다 강한 자를 상대할 때 강해지는 능력이다. 반역도 마찬가지.
둘 다 자신보다 강한 자에게 강하고, 약한 자에게 약하다.
강세일 때는 약해지지만, 약세일 때는 강해진다.
“너의 능력은 상대를 하찮게 만드는 능력이야.”
“예? 제 능력이 그거였어요?!”
오늘 참, 예? 많이 하는구나. 백강혁이 바짝 마른 혀를 축이면서 눈을 꿈뻑였다.
백강혁의 능력인 슈퍼스타는 다른 사람이 백강혁에게 관심을 어떻게 주냐에 따라서 강해지는 이상한 능력이다. 이 능력은 여러 가지로 이상한 능력이었다.
전문가도 예측하지 못한 통제 불가능한 영역이 상당수 있다. 그 영역의 기본 골자가 설마 상대를 하찮게 만드는 능력이었을 줄이야.
“그것뿐만이 아니다. 너는 약자에게 강해. 너 혹시 양학 잘한다는 소리 듣지 않냐.”
“…듣죠.”
브론즈 도살자.
브론즈 패왕.
실버 수문장.
백강혁의 숨은 별명이다.
“그게 네 능력의 부가효과 중 하나다. 약해진 상대에게 강해지는 능력이야.”
“…….”
“남을 약하게 하고, 약해진 상대에게 내가 강해진다. 이름을 붙이자면 몰락의 능력이지.”
“몰락…….”
끝내주게 악당 같은 능력이다. 악당 중에서도 삼류 악당의 능력이다. 강혁이 자괴감에 빠지자, 테오가 상냥하게 어깨를 토닥였다.
“얼마나 멋진 능력이냐.”
“이게 뭐가 멋져요.”
“멋지고말고. 상대를 내가 있는 위치까지 끌어내린다. 하향평준화의 능력이야. 평준화, 평준화. 아아아, 말하는 것만으로도 내 가슴의 혁명의 혼과 내 반역의 불꽃이 타오르는구나!”
남이 얼마나 강하든, 끌어내리는 능력. 그리고 끌어내려진 적에게 강해지는 능력.
“너의 능력과 내 신명이 더해지면 어떤 화학반응이 일어나겠나!”
혁명과 반역의 신은 어떠한 강적에게도 그에 맞서는 힘을 준다. 하지만 그의 반대급부로 쉽게 이길 수 있는 적도 강적으로 만들어 버린다. 양날의 칼이다.
그 부족한 약자를 상대하는 능력을 백강혁의 능력으로 채울 수 있다. 심지어 원래 가지고 있던 강적과의 싸움도 오히려 더 편하게 만들어 준다.
“너의 능력과 나의 능력은 환장의 궁합이야. 우리는 하나가 되기 위해 존재하는 거고, 너는 나의 화신이 되기에 걸맞아.”
“듣고 보면 그런 거 같기도…….”
능력만 놓고 보면 궁합이 좋다.
실은 백강혁은 검과 승리, 괴식의 신이 가진 능력과 궁합이 맞지 않는다.
백강혁이 가진 몰락의 힘이 필요할 정도로 승우가 몰린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백강혁은 승우의 힘이 필요하지만, 승우는 백강혁의 힘이 필요 없었다. 굳이 말하자면 정신승리 셔틀에 가까운 형태였고, 그건 화신이 아니라 괴식의 힘으로 얻은 거라 별개의 문제였다.
“상부상조. 얼마나 좋은가. 화신과 신이 급이 나뉘지 않은.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대등한 관계. 계급 따윈 없고, 신부격차도 없는 아름다운 세계의 완성이지.”
“어, 어… 그건 좀 좋네요.”
대등한 관계. 내 도움이 필요하다는 점이 좋다. 검과 승리, 괴식의 신은 백강혁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힘을 주지만, 이쪽에게 요구하는 것은 없다. 그건 백강혁에게 상당한 스트레스였다.
살짝 백강혁의 마음이 움직였다.
그러자, 잠자코 듣고 있던 승우가 한 마디 했다.
“그럼 넌 화신에게 뭘 해 줄 건데.”
“뭘 해 주다니, 서로가 서로를 돕는다니까. 뭐든지 다 해 줄 수 있지!”
“구체적으로 주는 걸 말하라고.”
“우선은 혁명의 붉은 두건을 주지. 레드 후드가 되는 건 영광스러운 일이야.”
레드 후드라는 말에 백강혁의 몸이 크게 들썩였다.
“켁! 레드 후드?!”
레드 후드를 쓴 몬스터는 각지에서 아주 드물게 발견된다. 지구에서는 목격 정보가 열 건이 넘지 않지만, 테라에서 레드 후드하면 다들 알아줬다.
진짜 악마같이 강하고, 통제 불가능한 폭탄 같은 몬스터로 유명하다. 레드 후드 아일루로스 한 마리에게 쓸려나간 마을까지 있을 정도다. 그래서 레드 후드라면 기본적으로 위험도가 S로 시작한다.
“그리고 수천 년, 수만 년. 끝나지 않을 영원토록 지속될 혁명의 전쟁터를 약속하마. 기득권과의 싸움은 끝이 없지, 평생토록 그 싸움을 할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이득 아니냐!”
백강혁이 고개를 직각으로 숙였다.
“제안은 감사하지만, 이번엔 거절하겠습니다.”
“왜?! 이렇게 좋은 조건인데!”
“저랑 방향성이 다른 거 같아요.”
적건적, 레드 후드라는 엘리트 몬스터의 타이틀이나. 평생직장이 전쟁터가 되는 건 싫다.
백강혁이 딱 잘라 거절하자 테오가 툴툴거렸다.
“그럼 다른 신은 어때? 너에게 접촉한 신이 진짜 많은데.”
“또 누가 있나요? 듣는 건 돈이 안 드니까, 들어는 보고 싶네요.”
“음, 다음은…….”
테오가 천천히 신의 이름을 낭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