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495)
괴식식당-495화(495/613)
495화. 연체이자 (1)
차원법의 관리는 대부분 무수한 신의 암묵적인 조약과 상식에 의해서 이뤄지지만, 그 암묵적인 조약이 제대로 된 규칙과 법으로서 작동하게 하는 것이 차원 관리 신의 업무다.
조율, 계약, 준수, 규칙, 법, 규정, 법도 등의 신명을 가진 오십의 신은 오늘도 차원 관리를 위해 불철주야 일하고 있다.
그 신 중 하나.
규칙과 준수의 신명을 가진 신 베아루스는 이번에 큰 경매를 담당하게 됐다. 화신의 FA 경매다.
이런 경매는 종종 있었던 일이다. 실력은 인정하나 성향이 맞지 않는 화신을 방출하면서 이득을 챙기려는 신이 주관하기도 하고, 때로는 화신이 신에게 벗어나고자 다른 신을 찾으면서 생기기도 한다. 이번에는 후자인 모양이다만, 아무래도 좋다.
중요한 점은 따로 있다.
“정신 나간 놈 같으니. 경매 사기를 쳐? 진짜 제정신인가.”
사고가 터졌다. 경매에 체결되는 순간 혁명의 신이 나타나서 경매 대금을 강탈하고, 화신도 데리고 사라졌다. 그 과정에서 다친 악신이 속출했고, 경매 계약 규칙 또한 파괴당했다.
베아루스가 제정신이 아닌 자는 둘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는 화신 FA를 신청하고, 뒤로는 혁명과 반역의 신을 엮은 화신 백강혁이다.
정황상 이놈이 주도적으로 엮은 게 맞다. 혁명의 신의 난입을 보고 놀라지도 당황해하지도 않았다. 그냥 올 게 왔구나, 작전대로 됐구나 하는 덤덤한 표정.
그 표정만으로도 이미 증거는 충분하다. 요놈이 주동자다.
그럼 두 번째는 누구인가. 두 번째는 혁명과 반역의 신을 건드린 악신이라고 할 수 있다.
혁명과 반역의 신 또한 제정신과는 거리가 먼 신이지만, 녀석은 원래 그런 신이다.
취급 매뉴얼을 준수하고, 예절과 격식. 대화로써 해결할 수 있으니 오히려 말이 안 통하는 악신들보다도 취급이 쉽다.
그러니까 그런 핵폐기물, 방사능, 위험물질을 처리할 때 매뉴얼도 안 읽어 본 놈이 훨씬 더 제정신이 아니다. 혁명의 신에게 협박이라니, 진짜 제정신인가 싶다.
베아루스는 격해지는 위통을 느끼며 배를 움켜쥐었다. 신에게도 병은 있다. 차원 관리 신에게 만성 위통은 직업병이다.
온 차원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개짓거리를 보면 없던 위통도 생긴다. 위가 비명을 지르고 있다.
“끄으으으. 끄으으. 이거 아무리 봐도 경매 사기가 맞아.”
경매 사기가 맞다고 판단하는 이유는 크게 셋.
첫째는 검과 승리, 괴식과 하늘의 신에게 화신 백강혁이 건넸다는 신력 대출 서류다.
서류 자체는 완벽하다. 완벽하게 법을 꿰차고 있는 사람이, 사리에 맞게 규정에 맞게 작성한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이 고풍스러우면서 꼼꼼한 서류는 분명히 가정과 결혼의 신인 헤라가 맞으리라.
하지만 이 대출량은 일개 화신이 감당할 신력이 아니다. 화신에게 이런 천문학적인 신력이 필요할 일은 없다.
녀석이 대출한 신력이 어느 정도냐면 이만큼의 신력이 있다면 어거지로 코어를 늘려서 본인이 신명을 달아도 이상하지 않다.
백강혁이란 놈의 주거하는 행성인 지구의 사막을 비옥한 토지로 돌리고, 온난화 현상과 몇 가지 기후 이상, 저주에 가까운 가혹한 질병 몇 개를 영영 사라지게 만들 수도 있다.
하나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예시로 든 것들을 전부 동시에 해도 남는다.
그만큼의 신력을 화신이 빚진다?
말이 안 된다.
근거가 빈약하다.
두 번째 이유는 혁명과 반역의 신이다. 이 녀석은 미치광이고, 통제 불능의 광인이지만. 규칙은 지키는 놈이다. 이 녀석이 화신이 탐난다고 해서 경매에 난입하여 화신을 강탈하는 그림은 어색하다.
중간에 모종의 커넥션이 있음이 분명하다. 아마도 백강혁을 매개체 삼아 검신과 혁명의 신이 물밑거래를 한 게 아닐까?
세 번째 이유는 백강혁이다. 분명 99%의 신은 인간형이 아니다. 1%의 신만이 인간형이고, 그 1%에서 지구인의 형상을 구분할 수 있는 신은 다시 1%밖에 안 된다. 그리고 지구에 정보원을 둬서 녀석의 정보를 캘 수 있는 신은 다시 1%도 안 된다.
1%의 1%의 1%.
베아루스가 생각해 봐도 그 조건에 일치하는 신은 자신을 포함하여 몇 없다.
베아루스는 지구인의 형상을 구분할 수 있다. 스킬, 관찰안(全)의 힘이다. 모든 존재하는 생명체를 감별할 수 있는 신화급 스킬.
관찰안 스킬 자체가 워낙 희귀하고, 그중에서도 전(全)이 달린 관찰안을 지닌 자는 전 차원에 셋이 안 된다.
그런 베아루스조차도 만약 백강혁이 신분 세탁을 하면 찾기가 힘들다. 저곳이 지구이기 때문이다.
지구는 검신의 영역이다. 거기에 첩자나 정보원을 파견할 배짱은 없다. 있어도 곧 사라질 것이다.
“그걸 믿고 신분 세탁을 할 작정이군.”
베아루스는 경험이 많고 노련하다. 신들과 생명체의 사기극은 수도 없이 보아 왔다. 보아 온 경험상 백강혁이 한 사기행각의 전말은 쉽게 유추할 수 있다.
규칙과 준수의 신은 정해진 규칙대로 상대가 움직이도록 준수하게 만드는 신. 최고 수준의 탐정이기도 하다. 베아루스는 전말을 보고 온 것처럼 꿰뚫었다.
물론.
꿰뚫었을 뿐이다.
“좋아. 못 본 척하자.”
Curiosity killed the cat.
호기심은 고양이를 죽인다.
고양이만 아니라 신도 죽인다.
세상에는 알아서는 안 될 것이 분명하게 존재한다. 규칙 준수의 신이라고 해도 가끔은 준수 안 할 수도 있다.
베아루스는 흔들리는 신격을 느꼈으나, 어금니를 깨물고 참았다.
참아야 한다. 참아야 하느니.
괜히 입방정을 떨었다가는 신명 네 개의 신과 사생결단이다.
말이 좋아서 사생결단이지 그냥 일방적인 구타가 되겠지.
그런 일은 사절이다.
“나는 모른다. 나는 몰라.”
몇몇 신들. 베아루스를 비롯한 눈치 빠르고 경험이 풍부한 신들은 진실을 알았다.
하지만 진실을 알 정도로 눈치가 빠르고 경험이 많으며 지혜로운 신들은 이번 경매에 관여하지 않았다. 그만큼의 눈치가 있고 머리가 있으니, 끝까지 관여하지 않는 게 정답이라는 것도 안다.
“나는~ 민원 자판기~ 지조가 없네~”
쓸데없는 일에 정신을 파느니 민원이나 보는 게 낫겠어.
베아루스는 휘파람을 불며 일에 집중했다. 휘파람의 곡조가 참으로 애처로웠다.
* * *
마음을 차분하게 정리할 때는 요리만 한 게 없다. 승우는 묵묵하게 손을 움직였다.
은하와 영식이가 관리하는 텃밭에서 따온 싱싱한 샐러리와 아스파라거스를 깨끗하게 씻어서 썰었다.
오늘은 전골을 할 생각이니 어슷썰기가 좋겠다. 어슷썰기로 썰면 단면이 넓어져 양념이 잘 스며든다. 생강과 마늘도 썰어 준다.
생강은 몰라도 마늘은 게르니아의 토양과 마늘이 잘 맞지 않는 탓인지, 지구산. 특히 한국산이 좋다.
승우는 육쪽마늘을 제일 좋아한다. 다른 마늘보다 단단하기도 하고, 크기가 규칙적이라 보기에 아름답기 때문이다.
샐러리. 아스파라거스. 마늘. 생강을 손질하고 다음은 숙주나물이다.
깨끗하게 세척하고 나면 이제 1차 준비가 끝났다.
웍에 식용유를 뿌리고, 달군다, 페넥스는 마왕이라는 본직이 있으므로 항상 가게에 있지 않다.
페넥스의 불꽃은 요리에 적합하긴 하지만, 전골에는 그런 화력까지는 필요 없다.
툭.
한 번의 노크.
약 불이라는 신호다.
약하게 피어오른, 그러나 가스 불보다는 조금 강한 피닉스의 불꽃이 치솟는다.
충분히 달궈졌으면 웍에 손질한 채소를 넣는다. 부드러운 손목의 움직임으로 잘 섞이며 채소들이 볶아진다.
볶아진 채소를 건지고, 이번에는 고추를 볶아야 한다.
웍에 남은 기름으로도 충분하다.
홍고추 조금, 청양고추 조금, 사천고추 조금. 꽈리고추 조금.
네 종류의 고추는 같이 넣으면 풍미가 깊어진다. 하지만 볶는 시간을 잘 관리해야 한다.
사천고추는 다른 고추보다 습기가 적어서 금방 탄다. 웍을 조금 기울여서 사천고추에 기름이 더 잘 스며들도록 조율하면서 익는 시간이 다른 이 네 가지 고추를 잘 볶는 게 바로 기술이다.
당연히 실수는 없었고, 볶은 채소와 고추기름이 완성됐다.
이제는 메인 재료를 손질하자.
오늘의 주역은 사슴이다.
FA 경매 사기에 휘말린 악신 중에 가르도라는 신이 있다. 이 신은 테오의 기술인 정령시(精靈矢)에 당해서 심한 부상을 입었다.
정령시는 진짜 악독한 화살이다. 맞은 부위에 정령이 깃들어서 죽을 때까지 정령이 상처를 후벼 판다. 외과적인 시술로는 이 정령을 제거할 수 없다. 테오가 부리는 붉은 정령은 집요하고, 강인해서 외압에 굴하지 않는다.
오로지 설득과 대화만이 해결이다. 숙련도 높은 정령술사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 정령술사의 고용을 위한 신력이 부족하여 가르도는 먹으려고 아껴 둔 사슴을 팔았고, 그 사슴을 승우가 샀다.
사연도 많은 사슴. 이 사슴의 이름은 쥬데앗카라고 한다.
그쪽 말로는 암벽을 뛰는 사슴이라는 뜻이란다. 암벽을 뛰어서 단련한 탄탄한 고기가 워낙 맛있는 탓에 오래전에 멸종한 걸로 알려진 녀석이다.
듣기로는 동굴 트롤들이 이 사슴에 환장한다던가? 환장할 만한 이유는 확실히 알겠다.
“튼실하네.”
암반 달리기로 다져진 튼튼한 몸. 그러나 진짜 근육은 단단하면서도 부드럽다. 탄력이 넘친다.
맛 때문에 멸종할 정도였으니 분명히 맛있겠지. 가르도가 먹으려고 아껴 둔 탓에 손질은 이미 다 되어 있었다.
냉동마법으로 꽁꽁 얼린 냉동육이다. 승우는 기왕이면 자기가 손질하고, 냉동하지 않은 채 신선할 때 먹는 걸 선호했지만 어쩔 수 없다.
해동이 끝난 사슴 고기에 감자 전분을 뿌렸다. 습기를 빨아내기 위해서다. 몽글몽글하게 전분이 뭉친다. 그걸 위생장갑(신명무구)을 끼고 슥슥 문질렀다.
핏물과 전분이 뒤엉켜서 마치 묵은 떼처럼 벗겨진다. 쭉쭉 벗겨 낸 전분을 동글동글하게 말았다. 여기에 소금간만 하면 경단이 된다. 전골에 넣을 생각이다. 사슴 고기는 먹기 좋게 한입 크기로 썬다.
준비가 끝났다. 이제는 국물을 만들자. 웍에 다시 기름을 두른다.
달궈진 웍에 된장과 간장을 넣고, 생강과 마늘을 더 넣고 볶는다. 잘 볶아졌다면 이제는 물을 넣는다.
소금과 약간의 간장으로 간을 맞춘다. 팔팔 끊는 기름 물에 사슴 고기를 넣었다. 사슴 고기는 맛이 상당히 늦게 배어든다. 너무 탄탄하기 때문이다. 살짝 마법을 쓰자.
요리에는 두 계통의 마법이 자주 사용된다. 하나는 불이고, 다른 하나는 물이다. 화력 조절과 수분조절. 요리의 핵심이다.
승우는 물의 마법으로 기름 물의 압력을 조절했다. 압력을 높이면 재료에 간이 강하게 배어든다,
사슴 고기의 단단함을 보건데 여섯 배의 압력이면 충분하다.
분홍빛의 사슴 고기가 붉게 물든다. 익었다는 신호다.
이제부터는 바로 먹을 수 있다.
승우가 부르기도 전에 아이들이 이미 자리에 앉았다.
발을 흔들면서 눈을 빛내는 은하와 흥분해서 뿌우뿌우 하고 숨을 내뱉는 영식이, 꼬리를 살랑이는 나비. 그리고 조용히 응시하고 있는 민까지. 다 모였다.
“자, 순서대로 오렴.”
이 순서는 많이 먹는 순서다. 제일 먼저 영식이가 그릇을 내밀었다. 승우는 그릇에 우선 아까 볶았던 채소를 주었다.
밑에 채소를 깔고, 그 위에 맛이 스며든 사슴 고기와 경단을 올린다. 그리고 처음에 만들었던 네 종류의 고추가 들어간 고추기름을 듬뿍 뿌렸다.
그뿐만이 아니다. 뻘건 국물까지 가득 담았다. 코를 간지럽히는 매콤한 향에 영식이가 무심코 에쁑-하고 웃긴 기침을 내뱉었다.
“뿌… 매워.”
“너무 매울 거 같으면 덜 맵게 해 줄까?”
“뿌뿌~ 그래도 먹을 수 있다뿌.”
영식이가 뿌뿌거리면서 그릇을 가져갔다. 다음으로 온 것은 나비였다. 영식이, 나비, 민, 은하 순으로 먹는다.
은하야 어리니까 그렇다고 치지만 성인 남자가 나비보다도 적게 먹는다니, 걱정이다 걱정이야.
“넌 왜 살이 안찌냐…….”
걱정스럽게 말하는 승우에게 민이 조그맣게 항변했다.
“저, 작년보다 17㎏ 쪘습니다만.”
“내년엔 꼭 앞자리 7 찍자.”
“…네.”
즐거운 식사 시간이 이어진다. 하지만 민과 승우의 기분은 그렇게 즐겁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백강혁 말인데…….”
“네. 선생님.”
화제가, 화제였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