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497)
괴식식당-497화(497/613)
497화. 연체이자 (3)
아킬레우스와 거북이의 경주에 빗댄, 제논의 역설이라는 게 있다.
제논의 역설은 이러하다.
그리스 신화 최속의 영웅인 아킬레우스가 100m를 달리는 동안 거북이가 10m을 간다고 가정해 보자. 그리고 거북이는 아킬레우스보다 100m 앞에서 출발한다.
아킬레우스는 거북이를 잡기 위해 100m를 달렸다. 그러면 동시에 거북이는 10m을 간다. 이리하면 거북이와 아킬레우스 사이의 공간은 10m.
이때 아킬레우스가 거북이를 잡기 위해서 다시 10m를 더 나아가면 거북이는 1m를 이동하여 둘의 거리는 1m이 또 남는다.
몇 번을 반복해도 마찬가지다. 아킬레우스가 다시 1m를 가면 거북이는 0.1m 더 나아간다.
아킬레우스는 계속해서 1/10만큼의 거리를 계속해서 뒤처지게 되므로 아무리 가까워져도 거북이를 따라잡는 건 불가능하다.
이게 바로 제논의 역설이다.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역설-!
물론 이 역설은 오래전에 논파됐다. 당시에도 사실이 아님을 학자들도 알았지만, 극한과 무한의 개념이 없기에 논파하지 못했을 뿐이다.
코지가 무한급수를 도입한 현대에는 아주 간단하게 논파됐다. 그리고 애초에 시간은 쪼갤 수 없기에 불가능한 논제기도 하다.
하지만 제논의 역설은 불가능해도 백강혁의 역설은 가능하다.
백강혁의 역설.
놈이 레벨업하면 리비에게 받은 레벨 드레인의 보석으로 배때지를 꿰뚫고 계속해서 레벨을 낮춘다. 그러니까 놈은 영영 레벨99에 도달할 수 없다.
왜냐, 계속해서 레벨이 내려갈 거니까. 민이 계속해서 공격해서 놈의 레벨을 떨굴 거니까.
백강혁은 아킬레우스처럼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거북이의 뒤를 따라, 도달할 수 없는 99의 길을 걸어야 한다.
‘백강혁의 역설을 논파하고 싶으면 내 시체를 넘어가야 할 것이다.’
귀신, 아수라의 형상으로 민이 전투 준비를 마쳤다. 민도 안다.
백강혁은 죄가 없다. 아예 없지는 않지만, 상대적으로 적다.
그래, 백 보 양보해서 놈은 열심히 살았을 뿐이다. 그러니까 힘내서 사는 놈의 배때지를 뚫어 마나 코어를 빼내는 일은 인의(人意), 도의(道義), 신의(信義)를 저버리는 일이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인간으로서의 마음도, 길을 어긋나지 않는 마음도, 많은 싸움을 함께 겪어 온 동료에 대한 신뢰도 선생님의 굴욕에 비하면 가볍다.
백강혁 따위에게 사과해야 하는 선생님을 보는 민의 굴욕과 열심히 레벨업하다가 배때지가 뚫리는 백강혁의 피해를 마음의 저울에 올려서 비교해 볼 필요도 없다.
마음의 저울은 이미 한쪽에 기울어졌다.
당연하다.
한쪽 추에는 백강혁, 한쪽 추에는 선생님이 걸려 있다.
신뢰와 존경의 무게가 다르다.
‘그럼 작전을 준비해 볼까.’
선생님의 기감은 넓다. 원한다면 지구 전역을 덮을 수 있다.
하지만 본인이 그걸 원치 않기에 아주 국소적으로 좁혀서 운영한다고 짐작한다.
리비는 런던에 있었기에, 민과 리비의 접촉은 선생님도 모른다. 리비의 전폭적인 협조는 얻어 냈다.
엄청 재밌어 보인다는 이유로, 그리고 레벨 드레인으로 뽑아 낸 마나 코어는 보석과 융합하여 좋은 마도구가 되기에 이득이 있다는 이유로 돕기로 했다.
덕택에 많은 레벨 드레인 잼을 얻어 냈다.
백강혁과 싸운다면 민이 이긴다. 레벨의 문제가 아니다. 상성의 문제다. 민은 녀석의 습관과 습성을 잘 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까지는 아니더라도 백전불태라고 하지 않는가. 승패를 떠나 배에 보석을 쑤시는 일은 간단히 할 수 있다.
문제는 하나.
‘선생님의 눈을 피해서 백강혁을 조져야 한다.’
선생님은 분명히 막을 것이다.
그러니까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듯이, 몰래 저질러야 한다.
한국에서는 할 수 없다.
국소적으로 좁혀 놓은 기감이라고 해도 한국에서는 분명히 닿는다. 그렇다면 이세계로 가야 한다.
놈이 혁명의 신과 손을 잡고 싸우는 이세계의 전쟁터에 어떻게든 가야 한다.
힘든 일이다. 필멸자인 민에게는 가능한 일이 아니다. 차원 도약이 가능한 능력자는 지구 전역에 하나도 없다. 공간이동과 차원이동은 아예 카테고리가 다르다.
자기 마음대로 차원을 이동하는 자는 분명히 신이라 부르기에 충분할 터. 퍼스트 오더 특권으로도 어떻게 해결할 수 없다.
하지만 민은 포기를 모른다. 전쟁터에서 탄환이 떨어지면 나무 파편을 모아 화살촉을 만든다. 보급품도, 탄환도, 물조차도 없는 늪지에서도 어떻게든 살아남았다.
침착하게 할 수 있는 패를 확인하고, 조합하고, 궁리하면 언제나 답은 있다.
민은 어렵지 않게 페넥스를 떠올렸고, 놈과 교섭했다. 페넥스와는 작은 연이 있다.
그가 마왕이 되도록 부추긴 것이 민이다. 허니스시를 얇게 도포한 나이프도 민의 나이프다.
연락처쯤은 알고 있다. 그리고 페넥스 또한 광신도라면 광신도, 민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다.
“우리의 신이 고개를 숙이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지요. 저 또한 당신의 생각에 깊게 찬동하는 바. 사력을 다해서 보필하겠습니다.”
페넥스는 마왕이다. 차원 이동 정도는 예전에도 할 수 있었다.
지금 혁명의 신과 백강혁을 찾는 일은 어렵지도 않다.
공개수배가 내려진 탓에 여기저기서 두 놈을 베려는 자객이 아주 많이 쏟아진다. 적당한 게시물만 봐도 놈들의 현재 좌표를 거래하고 있다. 비싸지도 않다.
워낙 지원자도 많고, 썰려 나가는 놈도 많아서 그렇다.
페넥스는 좌표를 쉽게 입수했고, 곧 민을 백강혁과 테오가 있는 전장으로 이동시켜 주었다.
그리하여 이 모든 고생과 준비를 마친 끝에.
“아, 안 돼?!”
“돼!”
신나게 레벨업 중이던 백강혁의 배가 뚫리고야 만 것이다.
“아아아악!? 내 레벨?!”
백강혁이 울부짖었다. 레벨 99 달성까지 2.7% 남은 시점이었다.
* * *
리비가 개발한 레벨 드레인 잼은 평범한 보석처럼 보였는데, 이 보석을 피부에 접촉시키면 전자레인지에 돌린 콜라겐처럼 녹아서 몸 안에 스며든다.
그리고 마나코어와 융화하여 결정체를 만든 후 체외 배출 된다.
민의 요구대로 리비는 이 레벨 드레인을 개량했다. 잼과 잼 사이에 줄을 달아서 연속으로 쑤셔 넣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줄조차도 레벨 드레인 잼을 녹여서 길게 뽑은 것이라 몸에 스며들고, 체외 배출 된다. 연속으로 박아 넣을 수 있는 레벨 드레인 잼은 이미 훌륭한 공격 도구다.
ISAC의 무기로서 정식 채용도 고려해 볼 법했지만, 워낙 만드는 금액이 고가라서 실용성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한 발의 레벨 드레인 잼의 가격이 21억이다.
각기 다른 술식을 적은 보석 66종을 농축시키고, 그 농축시킨 보석을 다시 66번 여과하여 만들어지는 레벨 잼은 비쌀 수밖에 없다.
실은 실제 가격은 이 열 배가 넘는다. 리비의 인건비가 빠진 순수한 재료값만 21억이기 때문이다.
리비는 선의로 인건비는 빼줬으나, 재료값은 받았다.
그리고 백강혁의 레벨은 32개가 내려갔다.
즉, 지금 백강혁의 배때지에 들어간 레벨 드레인 잼이 32개라는 말이다.
이 한 번의 공격을 위해서 민은 672억을 태웠다. 열심히 일하고, 낭비 없이 저축해 둔 돈이었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돈값은 톡톡히 했다.
좌라락하고 백강혁의 배에서 32개의 마나 코어 잼이 뽑혀 나온다.
리비의 말로는 보석의 색으로 마나코어의 질을 알 수 있다고 하는데 흰색, 파란색, 노란색, 갈색, 붉은색, 검은색, 초록색 순이라고 했다. 초록색이 제일 높은 등급인 까닭은 리비 본인이 초록 눈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어쨌든 백강혁의 마나 코어 색은 초록색이었다. 레벨 98의 잼이었으니 순도가 높은 게 당연하다.
월척을 건진 민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살면서 이런 미소를 지어 본 적이 다섯 번이 되지 않는다.
민은 지금 날아갈 거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 날아갈 거 같은 민의 얼굴을 지켜본 백강혁의 얼굴에는 오만가지 감정이 깃들었다.
“야이 정신 나간 놈아?!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보면 모르냐. 레벨 드레인이다.”
“아군한테 그런 걸 왜 써!”
“아군? 나에게 아군이란 말은 없다. 일시적인 적과 항구적인 적이 있을 뿐이지.”
“하, 항구적인 적? 그딴 단어는 처음 들어 본다.”
“사실 나도 처음 말해 본다.”
“저거, 저거 미쳤나 보다. 진짜 미쳤나 보다. 그리고 뭔데 그 개 같은 검은 가면은!?”
“인식 저하의 마법이 걸린 가면이라고 해서 받아 왔는데, 개뿔도 효과가 없군.”
아마도 백강혁의 눈이 보기보다도 괜찮은 탓이리라. 백강혁은 담담하게 말하는 민을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보았다.
살다 살다 아군에게 레벨 드레인 배빵을 당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해 보았다. 그리고 민의 말투나 행동도 이상하다.
저놈 뭔가 약이라도 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평소와 다르다.
백강혁이 쓰린 배를 움켜쥐면서 눈알을 굴렸다. 여기는 이계다. 지구가 아니다.
이 미친 자식이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지? 왜 나한테 레벨 드레인 배빵을? 혼란스럽다.
정상적인 판단이 되질 않는다.
사주를 받았나? 누구에게?
FA 사기를 친 탓에 현상금이 붙었다고 했지. 그 현상금을 노린 건가? 아니, 그보다도 그럼 혁명과 반역의 신이 지켜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어째서 접근을 허용했지?
백강혁이 테오를 째려봤다. 그러자 테오가 팔짱을 끼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약한 자가 강자를 이기는 법은 몇 없고, 그중 하나는 매복과 기습이지. 몸이 떨릴 정도로 감동적인 엠부시였다. 멋진 반역이야. 저 자에게는 훌륭한 테러리스트가 될 소질이 있군. 아주 인상적이야.”
“에라이?! 지금 장난해요!? 지금이 그런 말 할 때야!?”
“화신 주제에 나에게 화를 내는 건가? 멋지군. 멋진 혁명과 반역의 정신이야. 그래 계급의 상하를 논하는 것은 고루한 기득권의 발상이지. 좋다. 더욱더 화를 내라. 화신이 화를 내고, 신이 그 화에 움츠러들어 요구를 들어 준다. 멋진 혁명이야! 그래, 이게 혁명이지!”
완전히 미치고 팔딱 뛰겠는데 기름까지 뿌린다. 테오는 복잡한 머리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승우도 인정할 정도의 강력한 재주다.
“끄아아! 도움이 안 돼! 도움이!”
“도움이 안 된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지금도 착실하게 너의 레벨에 맞춰서 내 레벨을 내리고 있다. 모든 신 중에서도 나만이 가능한 재주지. 빨리 감탄해라.”
“갸아아아악! 닥쳐요! 닥쳐!”
“…….”
“왜 갑자기 조용해져요?”
“닥치라며?”
“…왜 또 그런 말은 들어 주는데요?”
“요 붙였잖아. 그거 존댓말 맞지?”
“…….”
앗, 앗, 앗, 뒷골이 아파.
죽을 거 같아.
배도 아프고 뒷골도 아프고.
뇌도 아파.
백강혁이 바닥을 뒹굴었다.
한참을 구르던 백강혁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 새끼 어디 갔어?! 민, 야 민! 야, 해골바가지! 어디냐! 어디야?!”
“걔, 아까 갔는데.”
“왜 안 잡았어요!?”
“잡으라고 안 했잖아.”
응. 죽을 거 같다.
죽는다. 나 죽는다.
이 혁명과 반역이란 놈이랑 같이 일하면 여러 가지로 이유로 죽는다. 적이 많아서 죽고, 답답해서 뒈진다.
“꿹.”
백강혁의 눈동자가 뒤집혔다.
마나 코어가 뽑혀 나간 충격도 있지만, 그냥 고혈압에 의한 기절이었다.
* * *
세상에 완전 범죄란 없다.
특히 이 사람 앞에서는.
“민아, 민아, 민아, 나는 슬프다.”
“…….”
사고 친 지 1분도 안 지나서.
지구에 돌아오자마자 딱 걸렸다.
승우가 신문지로 콩-하고 민의 머리를 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