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505)
괴식식당-505화(505/613)
505화. 빗방울이 모여 강을 이룬다 (2)
시간이 이상하다는 말 자체가 이상하다. 민이 이해 못 하는 반응을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시간 능력자는 희소한 수준이 아니다.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시간 관련 능력자는 소울이터 리비 한 명이 전부다.
장님이 어찌 색을 논할까. 시간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이 리비 혼자이기에, 시간에 대한 감각은 오롯이 리비만이 알 수 있는 감각이다. 민이 침착하게 되물었다.
“어떤 면이 이상하다는 겁니까?”
“흐름이 이상해요.”
“흐름?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좋아요. 우선 확실하게 미리 전제를 깔고 들어갈게요. 시간의 흐름은 정해져 있어요.”
지구인 마법사 중에 최선두를 달리는 마법사의 강의다. 민이 조용히 경청했다.
“시간의 흐름은 무조건 흐르기만 해요. 거스를 수 없어요.”
“시간 가속은 가능하나, 시간 되감기는 불가능하다는 겁니까?”
“맞아요. 어째서라고 생각해요?”
“전혀 모르겠지만, 가설을 세우자면…….”
민이 습관적으로 하르페를 손아귀에서 굴렸다. 생각을 정리할 때의 버릇이다. 새끼손가락부터 시작한 하르페가 엄지손가락에 도착할 무렵 생각이 정리됐다.
“마법이란 결국 의지와 의지의 싸움. 주어진 법칙과 권능을 활용해서 상대의 의지를 꺾는 게 기본이었죠. 그 관점으로 봤을 때 시간 가속은 어디까지나 가속하는 물체나 생명체가 주체가 되니까, 그 물체와 생명체의 의지만으로 가속을 할 수 있겠지요.”
“좋아요. 계속해요.”
“하지만 시간의 되감기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기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와 물체의 의지가 관여되는 부분이니 모든 자의 의지를 꺾어야 한다. 따라서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백 점 만점에 백 점. 완벽해요. 맞아요, 그게 시간 마법의 비밀이에요.”
리비가 방긋 웃었다. 역시 이 민이라는 사람은 우수하다. 내친김에 그는 시간 마법의 비밀 하나를 더 말했다.
“같은 이유로 시간의 정지 또한 불가능한 게 맞아요. 모든 자의 의지를 꺾어야 하니까요. 하지만 몇 가지 자잘한 속임수는 있을 수 있지요.”
“한 물체나, 한 생명체를 한정으로 하여 시간을 멈추고, 되감는 건 가능하겠군요.”
진정한 회귀는 시간을 되감아 과거로 시간을 여행하는 것이다만, 그것은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와 의지를 가진 자를 의지로 꺾어야 하기에 불가능하다. 하지만 자신의 몸만을 회귀하여 회춘, 수복하는 일은 자신의 의지로 시간의 이치를 꺾으면 되기에 가능하다.
같은 이유로 리비의 은밀 행동의 비밀도 알았다. 자신의 신체와 닿는 부분의 공기, 매질(媒質) 따위의 시간을 정지시켜 존재감을 지우는 것이다.
“귀환자는 가능하다만, 회귀자는 불가능하다. ISAC 수칙이 왜 있나 했습니다.”
다른 차원을 여행했다가 돌아온 귀환자는 가능하지만, 시간을 거슬러 돌아온 회귀자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ISAC는 자신이 회귀자라고 주장하는 모든 사람을 정신병원으로 보냈다. 그 수칙을 만든 사람이 바로 리비겠지.
리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와 그것도 알았어요?”
“수칙은 다들 외우지 않습니까.”
“정말 우수하네요. 혹시 대학원생 되고 싶은 생각 없어요? 독일 마탑에 괜찮은 자리가 있는데요.”
“때려죽여도 대학원생은 안 합니다.”
“칫.”
“시간 마법의 대전제는 이해했습니다. 무엇이 이상한 겁니까?”
“시간이 되감아졌어요.”
“예? 지금까지 불가능하다고 하셨잖습니까?”
“그러니까 불가능한 일이 생겼다고요. 이상한 일이죠.”
시간은 흐른다. 거슬러 올라갈 수 없다. 리비가 팔에 돋은 소름을 쓸어 내며 말했다.
“0.2초씩 3번. 무려 0.6초나 되는 시간이 되감아졌어요. 이건 정상이 아니에요. 인간이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요. 그래서 승우 씨가 관여한 건가 하고 물어보는 거죠.”
“선생님이라면 시간을 거꾸로 감을 수 있을까요?”
“몰라요. 전혀 몰라요. 그러니까 꼭 물어봐 줘요. 알았죠?”
난 저 식당에 들어가기 싫으니까.
리비가 뒷말을 삼키고, 후다다닥 달렸다. 올 때처럼 소리도 없이 사라진다.
리비가 사라진 거리에서 민은 한숨을 내뱉었다.
“저 사람도 무서워하는 게 있긴 했군.”
승우를 무서워하는지, 백강혁을 무서워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식당에 가 봐야겠다.
민은 발걸음을 돌렸다.
* * *
민의 이야기를 듣고 승우는 말없이 무릎 위에서 잠든 영식의 정수리를 긁었다. 뿌르르르하고 기분 좋은 듯 영식의 몸에서 기포가 올라온다. 승우가 말했다.
“시간이 되감겼다?”
“예. 리비님의 의견이니 틀릴 수도 있겠지요.”
“흠, 시간인가. 시간에 대해서는 리비의 말이 맞아. 네 추리도 틀리지 않아. 시간의 대전제는 어느 곳이든 같아. 흐름 자체는 다를 수도 있지. 냇물이 흐르는 속도와 폭포가 흐르는 속도가 같지 않잖아? 차원 표준법을 준수하지 않는 차원이라면 다른 곳에서 한 시간이 흐를 때 천 년이 흐를 수도 있어. 그야말로 엉망이지. 하지만 어느 차원이든 흐름을 거스르는 일은 불가능해.”
“시간의 신이라도 말입니까?”
“시간의 신은 없어. 죽었어.”
시간의 신은 크로노스다. 크로노스는 두 명이 있었는데 하나는 티탄 족의 왕이며 농경의 신인 크로노스(Kronos). 그리고 하나는 크로노스(Chronos)다. K, C.
후자 쪽이 시간의 신이다.
“시간의 신은 자신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자연 소멸했어. 신조차도 시간이라는 절대적인 법칙을 지배할 수 없다는 좋은 예시로써 사용돼. 크로노스 이후로 시간의 신명을 건드리려는 바보는 없어.”
“신조차 시간은 지배할 수 없다는 거군요.”
“응. 나도 못 해. 시간 되감기는 그야말로 불가능의 영역이야.”
“선생님조차도요?”
“내 전공은 아무래도 검이란 말이지. 시간을 잘라서 단절시키는 일이야 할 수 있지만, 회귀는 불가능해.”
시간을 잘라서 단절시키는 게 더 무섭지 않나? 민이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승우가 상태창을 펼쳤다. 리비의 말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 모습에 민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 혹시 지금 상태창으로 감각 기록을 확인하시는 겁니까?”
“응. 다른 신도 그렇지만, 나도 감각 대부분을 상태창에 의탁하는 편이야.”
“그럼 약해지지 않습니까?”
“약해지기야 약해지지. 아무래도 일부러 감각을 죽이고, 사는 거니까.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어. 감각은 단련해서 날카로워지면 날카로워질수록 피곤해져. 예를 들어 생각의 속도 같은 건 정말이지 다들 천차만별이란 말이지. 생각의 속도를 문자열로 환산하면 너의 경우는 대략 1초에 한국어 20줄 정도의 생각을 할 수 있을 거야.”
“그, 문자열로 생각의 속도를 환산해 보려고 한 적이 없어서 모르겠습니다만. 그 정도면 제가 보기에도 빠른 거 같네요.”
“무지 빠른 거야. 백강혁은 1초에 세 단어 정도일걸.”
1초에 세 단어면 느린 편이다. 일반인과 비교해도 느리다. 하지만 백강혁의 두려운 점은 평균값이 없다는 점이다.
“근데 또 가끔은 1초에 100줄도 생각하지. 튀고 싶을 때, 돈이 걸린 문제일 때. 아니면 그냥 뭔가 흥이 올랐을 때. 생각의 속도가 휙휙 변해.”
“마치 바퀴벌레 같은 놈이네요.”
바퀴벌레는 생명의 위기가 닥쳐오면 아이큐가 200까지 오른다던가? 낭설인 걸로 기억하지만, 이미지가 너무도 겹친다. 바퀴벌레와 백강혁, 백강혁과 바퀴벌레. 백퀴벌레라고 불러 주면 딱이다.
“아무튼, 감각이란 건 그래. 단련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
“선생님은 어느 정도신가요?”
“상태창을 해제하고 위탁한 감각을 수동으로 돌리면 1초에 15조 줄 정도인가.”
“15조!?”
승우가 쓰게 웃었다.
“그 정도로 생각의 속도가 빨라지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육신의 속도보다 감각의 속도가 올라가서, 몸이 생각을 따라가지 못해. 그렇게 되면 몸이 족쇄, 감옥처럼 느껴지게 되지. 미쳐 버리기 딱 좋다는 뜻이야. 미치지 않으려면 감각 대부분을 상태창으로 정리해서 의탁하는 편이 좋아. 아무리 신이라고 해도 결국은 강한 각성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 이유는 바로 이런 거지. 생물적인 한계를 넘었으나, 결국은 한계에 갇혀 있어. 신도 대단한 게 아니야.”
“충분히 대단한 거 같습니다만…….”
“아무튼 자, 일단 지난 시간을 확인해 보자.”
차분하게 상태창을 정독한 그가 침음을 흘렸다.
“진짜네. 0.187185413초씩 여섯 번이나 되감아졌잖아.”
“리비 님은 세 번이라고…….”
“세 번 놓친 거지. 하지만 세 번이라도 감지한 게 대단하네.”
감각의 대부분을 상태창에 의탁한 승우보다 리비가 시간에 관한 감각이 더 예민했다는 의미다. 다른 의미도 있다.
승우가 영화 관람 중이었을 때 리비만은 촉각을 세우고 있었다. 아마도 이번에 게이트 투어에 뭔가 사고가 터질 줄 알았던 모양이다. 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고가 터지면 재빨리 수습하고 선생님에게 으쓱거리며 가르침을 청할 예정이었다더군요.”
“그런데 아무런 일이 안 터져서 유감이겠네.”
“뭐, 사소하게 터지긴 한 모양입니다. 백강혁이 기자를 때렸다는 이야기도 있고, 듣기로는 기자회견 중에 그만 시장이…….”
“그만그만. 나 좀 있다 야식 먹을 시간이야.”
“아, 죄송합니다.”
상태창은 승우의 감각을 문자로써 정리한 것이기에 거짓이 있을 수 없다. 그러니 이로써 확실해졌다.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시간 되감기가 성공했다. 누군가가 1초가량의 시간을 되감았다.
누구인가.
어떤 의도인가.
어떤 방법을 썼는가.
의문은 많다.
생각의 재료가 부족하기에 결론을 내릴 수 없다.
따라서 승우는 깊게 고민하기보다는 느긋하게 지켜보는 쪽을 선택했다.
“아무래도 좋은 일이야.”
“역시, 그렇죠?”
시간 마법적으로 보아 불가능한 일이 생겼다.
세상에 무려-!
1초라는 시간이 되감겼다.
그래서 어쩌라는 건가.
마법적으로는 대단한 일이지만, 삶에는 전혀 지장이 없는 일이다.
머쓱하니 민이 머리를 긁었다.
“저도 딱히 대단히 위험한 상황이라는 기분이 안 들더군요.”
“그래. 1초 되감기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보통 그렇게 되지.”
“불가능한 일이 생겼다, 신기하다, 헤에, 그렇구나. 정도의 반응 말고는 나오지 않네요.”
만약 설사 대단히 위험한 일이라고 치자.
그러면 승우가 나서 준다.
지구는 실손보장 100%.
대물 대인 손상 100%의 유승우 보험이 가입된 상태다.
진짜 말도 안 되는 일이면 일일수록 승우가 처리해 준다.
그러니 전전긍긍하며 답이 안 나오는 일에 시간을 허비할 필요는 없지. 승우가 싱긋 웃었다.
“그냥 기억해 두고, 살면 돼.”
“야심한 밤에 방문해서 죄송합니다.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냥 가지 말고, 밥 먹고 가.”
“그렇게까지는 제가 죄송해서요.”
“아까도 말했지만, 슬슬 야식 먹을 시간이야. 다 같이 먹는 게 맛있지.”
“그래도…….”
“매콤한 게 먹고 싶어서 골뱅이 소면을 할 생각이야.”
골뱅이 소면이라는 말에 민이 멈칫했다. 아아, 골뱅이 소면. 멋진 단어다. 매콤하고 새콤한 그 맛! 맛이 떠올라 턱 옆에 간질간질해진다. 침샘의 스위치가 눌렸다.
하지만 그래도, 이미 거절했는데 한 번에 냉큼 받기에는 조금 민망하다.
민이 오지도 가지도 못할 때였다.
스윽 하고 영식이의 손이 뻗어 나와 민의 코트 자락을 잡았다.
“먹고가뿌우우우-”
“영식이도 이렇게 말하잖아.”
꾸욱꾸욱, 영식이의 손이 그를 강하게 잡아당긴다. 민은 못 이기는 척, 슬며시 의자에 다시 앉았다.
“그래그래. 착하다, 착해.”
“착하다 뿌우우.”
“…….”
머리를 토닥이는 영식이와 승우의 손. 민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 선생님 제발 애 취급은…….”
선생님이 애 취급 하니까, 영식이까지 따라 하잖아.
민이 불만을 꾹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