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507)
괴식식당-507화(507/613)
507화. 카레 (1)
시간이 되감긴 이후, 며칠이 지났다. 역시 승우의 짐작대로 신들의 목숨을 건 허장성세, 공갈 협박이 분명했다.
그 1초가량의 시간 되감기를 끝으로 더는 시간이 되감기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용사 파티 3인은 당분간 자중하기를 약속했다.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않겠다는 의도다.
그런데 왜 3인인가.
그 이유는 테오가 거부했기 때문이다. 협박을 당했으니 때려죽여도 가만히 못 있겠다나?
그래서 설득했다.
레나토의 감정 공격은 테오의 감수성을 자극한다. 승우의 정론 공격은 올바른 말만 골라 함으로써 테오의 의견을 교정한다.
크라이의 도발 공격은 테오의 짜증 나는 포인트를 집요하게 공격하여, 분노의 화살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한다.
이 셋의 연합공격으로 테오는.
“얌전히 있으면 되잖아!”
“약속이다?”
“알았다고 했잖아! 약속한다고!”
얌전히 있기로 약속해 버렸다. 약속한다고 해서 혁명과 반역의 신이 가만히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겠지만 그것은 기우다.
테오는 반드시 약속을 지킨다. 약속을 깨는 일은 혁명과 반역이 아니다. 그냥 쓰레기나 하는 짓이다.
와일드 엘프로서, 신으로서 약속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지켜야 한다. 의외의 상식적인 면모였다. 크라이가 턱을 긁으면서 중얼거렸다.
“아니, 난 못 믿겠는데. 말만 그렇게 하고 뒤에서 사고 칠 거 같아.”
“거기 어금니 뽀개진 놈. 왜 못 믿는데?”
“네놈이니까. 약속 따윈 속박, 속박은 해제해야 혁명, 따위의 개소리를 하며 무시하겠지.”
“약속은 지킨다고!! 내가 와일드 엘프의 약속 수인이라도 맺으랴?”
“그 새끼손가락을 이마에 대는 기묘한 동작에 무슨 가치가 있다고 그러냐.”
“이 오크 놈이 진짜 짜증 나게 하네. 느그들 맹세의 수인이라는 게 어금니에 엄지 찍어서 피 보이는 거라며? 네 부러진 어금니로도 되냐? 응? 못 하쥬?”
“이 귀잡이 자식. 오늘이 네 마지막 날이다.”
늘 있었던 일이라 이젠 익숙하다.
둘의 싸움을 보며 승우와 레나토는 차를 마셨다.
“언제 철이 드는지, 원”
“차분하게 천년 만 기다려보죠.”
“그건 너무 차분한 거 아냐?”
천년이면 평범한 너구리도 요괴 너구리가 되는 시간이다. 인간에게는 턱없이 길다.
레나토가 싱긋 웃었다.
“좋은 음식을 만드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한 법이잖아요.”
“오, 멋진 소리를 하는군..”
“혹시 남프로브 왕국을 기억하시나요?”
“그 커리 왕국?”
“네. 커리 왕국이요.”
남프로브 왕국은 테라의 왕국 중 하나로 님림이라는 괴식에 목숨을 걸기로 유명하다.
님림이라는 요리는 인도의 요리인 커리와 흡사하다. 거의 다름이 없다. 승우는 커리 왕국의 모습을 떠올리고는 팔짱을 꼈다.
“뭔 말을 하려는지 알겠군. 천년 커리를 말하는 거구나.”
남프로브 왕국이 자랑하는 최고의 괴식은 크로니아 님림이다.
산해진미를 모아 천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쉬지 않고 펄펄 끓인 커리는 천년 커리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승우의 입꼬리가 조금 올라갔다.
“그래. 천년 커리도 처음에는 평범한 커리였겠지. 긴 시간을 차분하게 기다리며 숙성한 끝에 천년 커리가 되었으니 우리도 천천히 테오를 보면 언젠가 저 녀석도 철이 들지 않…….”
“아뇨. 그냥 천년 커리가 먹고 싶다고요.”
“…….”
뭔가 의미가 있어서 한 비유가 아니었구나. 승우가 콜록하고 헛기침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 나도 먹고 싶어졌다.”
그래서 오늘의 요리는.
천년 커리다.
* * *
승우는 커리를 사랑한다. 너무 사랑해서, 한 번 커리 욕구에 불이 붙으면 삼시 세끼, 일 년 열두 달도 커리만 먹을 수 있다.
커리는 완전식품이다. 처음 향신료를 조합하여 커리를 만든 자는 커리의 신명을 얻어 신좌에 올랐다. 그만큼 커리의 발명은 신급의 위업이었으며 위대한 발견이다.
‘너무 좋아해서 오히려 안 만드는 감이 있지.’
한 번 발동이 걸리면 커리만 먹는데, 용사의 식당은 커리 전문점이 아니다. 정신이 들고 보면 커리 전문점이 될지도 모른다.
커리는 그만큼 매력적이다.
그런 커리.
커리의 정의를 내리자면 정확하게 말해서 커리는 카레가 아니다. 향신료를 사용한 요리 전반을 커리라고 부른다.
강황 가루 같은 향신료를 듬뿍 썼다고 죄다 커리라고 부르면 제육볶음과 떡볶이를 고추장이라고 부르는 일이다.
천년 커리는 수많은 커리 중에서 카다히 스타일이다. 카다히 스타일은 볶아서 수분을 줄인 카레다.
수분을 날려 버리기 때문에 매운맛이 강한 커리고, 심지어 재료도 매운 향신료를 쓰니 더더욱 맵다.
“레나토.”
“예.”
호명을 받자, 군말 없이 레나토가 방어막을 펼쳤다. 실명, 후각 상실, 열상, 화상, 방사능 따위를 막아 주는 가이아의 단단한 방패라는 신성 마법이다.
지금은 마법 저작권 정정 과정을 통해서 가이아에서 플로라로 저작권 소유자가 변해 플로라의 단단한 방패라는 이름이 됐다.
“좋아. 시작할까.”
승우가 인벤토리에서 마샬라(मसाला)를 꺼냈다. 네모반듯한 갈색의 덩어리, 마샬라는 수많은 향신료를 끓이고 정제해서 만들어둔 페이스트를 말한다.
이 마샬라는 남프로브를 여행하면서 그곳의 퀘스트를 깨고 국왕으로부터 받은 천년 커리의 오리지널 마샬라다.
아끼던 것이지만 오늘은 고삐 풀고 먹어야만 하겠다.
“끼룩.”
“옳지. 옳지.”
페넥스는 공무 중이기에 오늘은 피닉스다. 웅크린 피닉스 위에 웍을 걸어 두고, 마샬라를 넣었다.
대량의 물을 넣자 금세 끓기 시작한다. 끓는 물에 마샬라가 녹는다. 매캐한 안개가 퍼진다.
꾸벅꾸벅 졸면서 등으로 웍을 데우던 피닉스가 눈을 부릅떴다.
“꾸에에에엑!?”
“신성 보호 중이니까 죽지는 않아. 참아.”
“꾸엣! 꾸엣!”
죽어도 살아나는 불사조가 불평하는 이유가 있다. 천년 커리는 맵다. 죽을 만큼 맵다. 너무 매워서 제조를 시작하면 그 여파로 주변 생명체가 떼죽음을 당한다.
안개가 눈에 닿으면 실명. 코에 닿으면 혼절, 입에 닿으면 미각 상실. 피부에 닿으면 화상. 오래 닿으면 열상이 생기며 쩍쩍 갈라진다. 신성 보호 마법이 없다면 산천초목이 시들어 버린다.
신성 보호 마법이 있다면?
안전하다.
하지만 맵다.
매운 느낌만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니 피닉스가 괴로워할 수밖에 없다.
“꾸에에엣!?!”
“금방 끝내 주마.”
어차피 지금은 아는 사람만 있다. 솜씨를 숨길 필요도 없지. 승우는 인벤토리에서 피망, 당근, 양파, 고추를 꺼냈다.
허공에 생긴 인벤토리의 구멍에서 떨어지는 재료들은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썰려 나간다.
공간을 베는 허공검의 요령이다. 마음이 동하면 모든 것은 베어지니, 검은 필요 없다. 심검의 경지다. 심검으로서 허공을 베니 허공심검이다.
허공심검으로 요리 재료를 손질하는 사치다.
승우가 태연하게 웍을 흔들었다. 심검으로 요리 재료를 손질하면 이점이 있다.
양손이 남기 때문에 웍을 흔들 수 있다. 혼자서 백인분의 요리도 쉽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애초에 천년 커리는 어려운 요리가 아니다.
필요한 것은 두 가지뿐이다.
천년 커리의 마샬라를 얻어 낼 수 있는 남프로브 왕국의 연줄.
천년 커리를 요리하면서 죽지 않을 수 있는 방어 수단.
이 두 가지를 갖췄다면 천년 커리의 조리는 인스턴트 식품 정도의 난이도가 된다.
물론 저 두 개를 갖추는 일은 쉽지가 않다. 천년 커리는 남프로브 왕국의 국보이기 때문이고, 가이아의 단단한 방패처럼 최상급의 신성 마법으로만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화력이 좋으니까, 금방 되네.”
자작하게 볶으니, 매콤한 향은 더 강해진다.
승우가 인벤토리를 뒤졌다.
“메인은 역시 닭이겠지.”
카다히 스타일은 닭과 잘 어울린다. 소고기로 하면 소고기의 맛이 매운맛에 덮여서 사라진다.
돼지고기로 하면 비계 맛과 섞여 매운맛이 변질되며 텁텁하고 꿀꿀한 맛이 된다. 생선과 궁합은 좋으나 그리하면 피쉬 커리라기보다는 아귀찜처럼 되어 버린다. 무조건 닭이 좋다. 그리고 그중 최고는 코카트리스다.
코카트리스는 뱀과 닭을 합친 후에 반으로 나뉜 듯한 모습을 한 몬스터다. 코카트리스의 날개와 날개뼈 아랫부분의 가슴살이 가장 어울린다.
코카트리스 한 마리에서 얻을 수 있는 살코기는 약 650㎏. 전부 다 쓰면 이번 한 끼는 되겠지.
“다시 생각해 봐도 우리 파티의 엥겔 지수는 정상이 아니야.”
“하하하. 요리하느라 고생이 많으셨었죠.”
“요리뿐이겠어?”
가장 큰 문제는 술이다. 현역 용사 시절에는 술값에 기둥뿌리가 흔들렸다. 장비 팔아서 술 마신 적도 있다. 의뢰비의 반은 반드시 술값이었다. 술고래 넷이 모이면 엥겔 지수는 우주로 가게 마련이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먹는 건 오랜만인데 저도 도와드릴까요?”
“혼자 해도 충분해. 그보다 너희 집 식생활은 어때?”
너희 집이라는 말에 레나토의 입가가 올라갔다. 좋고, 좋아서 참을 수 없다는 행복의 미소다.
“전체적으로는 제가 요리하고, 가끔 플로라 님이 하십니다.”
“벌써 같이 산다며. 결혼식은 언제 하려고 그래?”
플로라와 레나토는 결혼했다. 하지만 식은 올리지 않았다. 신들의 결혼은 보통의 행사가 아니고, 주신의 결혼은 더더욱 그렇다.
“달의 흐름과 태양의 흐름으로 보면 적절한 시기는 앞으로 20년은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그리고 한번 시작하면 5년은 하지 않을까요.”
“그때가 되면 불러.”
“물론이죠. 다, 슬슬 됐나요?”
웍에서 푸른 연기가 올라왔다. 푸른 연기는 코카트리스의 고기가 타기 시작했다는 뜻이고, 그건 물기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의미다.
요리가 다 됐다.
“그래. 이제 먹어도 되겠다.”
* * *
천년 커리의 색은 녹색이다. 본래 천년 커리는 팔락 파니르 계통의 커리였다.
시금치를 듬뿍 쓰고, 치즈를 곁들여서 먹는 담백하면서 고소한 커리다.
그 커리를 천년간 끓이면 물질 구성 성분이 변해서 매운맛만이 남는다. 고소함과 담백함은 사라졌지만 외형은 남는다. 초록색의 커리는 보기만 해도 맛없어 보인다.
“천년 커리 진짜 오랜만에 본다. 와, 냄새 독한 거 봐라.”
코피를 풀며 테오가 말했다. 쌍코피다. 제대로 맞은 모양이다.
크라이가 자리에 앉으며 미간에 박힌 화살을 뽑아냈다.
“코가 떨어질 거 같은 이 매캐한 안개. 맛있겠군.”
흐뭇하게 웃다가 겨드랑이에도 화살이 박힌 걸 확인하고 뽑는다.
여기까지 오면서 뽑은 화살촉이 수백 개. 고슴도치와도 같은 상태였다. 레나토가 상냥하게 웃으면서 물었다.
“그래서 누가 이겼어요?”
“당연히 내가.”
“물론 내가.”
“결국 또 무승부군요.”
“!!”
굳이 꺼져 가는 불꽃에 기름을 뿌린다. 쟤 은근히 성격 희한하다니까. 하긴 희한한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
“그래. 먹기 전에 일단 결판을-!”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오크야.”
2차전을 시작하려는 테오와 크라이의 정수리를 아이온으로 후리고, 승우가 한숨을 내뱉었다.
“밥 먹는 자리에서는?”
“싸우지 않습니다.”
“싸우지 않습니다.”
밥 먹는 자리에서는 싸우지 않는다. 용사 파티의 제 2 규칙이다.
제 1 규칙은 파티 가용금의 50%는 술값으로 남긴다, 였다.
“으쓰. 아이온으로 때리다니 인정사정없는 놈.”
“레나토, 나를 낚다니…….”
승부 욕이 강해서 도발을 당하면 발작적으로 승부 스위치가 들어간다. 용사 파티 전원이 가지고 있는 고질병이다.
얻어맞은 정수리를 매만지면서 원한이 담긴 눈으로 레나토를 본다. 테오가 이를 갈았다.
“두고 보자. 복수할 거야.”
“그래요? 이래도 두고 봤다가 복수할 거예요?”
레나토가 싱긋 웃고는 술을 꺼냈다. 천년 커리와 같이 남프로브국의 국보인 우유 술, 엘림이다.
천년 커리와 우유술!
우주최강의 조합이다.
크라이가 빠르게 자리에 앉았다.
“뭔 일 있었나? 난 모르겠군.”
“어금니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해라. 망할 오크.”
테오가 중지를 내밀었다. 아무튼 각각 흩어져 있으면 멀쩡한 사람이지만 네 명이 모이면 정신 연령이 내려간다.
백강혁과 민보고 유치하다고 할 상황이 아니라니까.
“에휴, 일단 먹자.”
혹시 이 꼴을 다른 사람이 보면 나도 같은 취급당하려나? 승우가 다시 한번 한숨을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