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510)
괴식식당-510화(510/613)
510화. 검, 그리고 착한 일 (2)
리비는 개인적으로 PMC 업체를 하나 운영하고 있다. 그 회사의 운영진은 리비의 친구들이었는데, 워낙 짓궂은 인간이 많은 터라 제법 고생한다.
전혀 안 그럴 거 같지만, 리비는 의외로 친구들에게는 약하다. 매번 매번 당한다. 덕분일까? 그 친구들이 있어서 리비는 제법 미니게임 따위에 능했다.
그런 미니게임의 요령으로 승우와의 거래를 정리하면 이렇다.
1. 착한 일을 하면 참 잘했어요 스탬프를 받는다.
2. 스탬프를 5개 모으면 검 이름 1개를 가르쳐 준다.
여기까지는 처음에 승우가 말한 조건. 뒤가 더 있다.
3. 나쁜 일을 하면 안 돼요 스탬프를 받는다.
4. 안 돼요 스탬프 1개는 참 잘했어요 스탬프 3개를 지운다.
5. 그리고 안 돼요 스탬프 3개가 되면 게임 오버.
“끄응, 끄응, 끄응, 귀찮은 미니게임이네요.”
달성 목표와 금지 사항이 상충하는 부분이 거슬린다. 착한 일 세 번 해도 나쁜 일 한 번 하면 끝장이다. 심지어 나쁜 일 세 번이면 즉시 게임 끝이라니, 술자리의 미니게임이었다면 밸런스 맞추라고 화를 낼 부분이다. 그도 그럴 것이 리비는 리비다.
“제가 나쁜 일을 아예 안 할 리가 없잖아요?”
소시오 패스 특.
자기 객관화는 확실함.
리비는 고성능 사이코 패스 겸 소시오 패스였기에, 자신이 다른 사람과 사고관이 다르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분명하다. 안 돼요 스탬프 받기가 참 잘했어요 스탬프 받기보다 쉽고, 안 받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이 미니 게임 규칙은 불리하다. 편파적이다. 하지만 화를 낼 수는 없지. 이쪽이 을이니까. 갑의 지시는 따라야 한다.
“우움.”
규칙을 상기하고 리비가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규칙 자체를 뜯어보면 허점이 꽤 많다.
규칙이 왜 규칙인가. 규칙에 적히지 않은 부분을 이용하고 곡해서 찌르고 들어가기 위해서다.
“착한 일의 기준을 모르겠네요…….”
착한 일이라는 대체 뭘 말하는 걸까. 착한 일을 안 해 봐서 모르겠다. 착한 일의 기준은 다른 사람에게 물어본다 치자.
애매한 부분은 또 있다. 착한 일 하면 스탬프 하나를 받는데 그건 건당인가, 인당인가?
“예를 들자면, 그래요. 추락하는 여객기에서 사람을 구했다고 치면요. 삼백 명을 구하면 삼백 번 착한 일일까요, 아니면 건당이라서 한 번일까요.”
중요한 부분이다. 잘하면 한 방에 검 이름을 다 알아낼 수도 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무조건 건당이다.
인당으로 해 줄 리가 없다. 승우라는 인간은 심술쟁이이기 때문이다. 쉽게 해 줄 사람이 아니다.
“생각 같아서는 다시 따지러 가고 싶지만…….”
리비가 살짝 몸을 떨었다. 항의, 상의하러 갈 수가 없다. 그는 못 보던 사이에 신명이 하나 더 늘었다. 그래서일까.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죽음의 공포가 느껴진다.
솔직히 다른 사람들은 둔해 빠져서 감각이 마비됐거나, 생각이 없는 게 분명하다.
어떻게 저 사람이랑 태연하게 말할 수 있는지 이해도 안 된다. 죽음이 사람의 거죽을 두르고 말하고 있는데 무섭지도 않나?
“이상한 짓은 접어 둬야겠어요.”
예를 들자면 아까 생각한 여객선 구출 같은 선행이다. 여객선이 망가져서 추락하는 일은 살면서 한 번이나 볼까? 복권 당첨처럼 드문 일이다.
리비는 기다리기보다는 움직이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여객기가 추락하길 기다렸다가 구출하기보다는 자신의 손으로 여객기를 추락시키고 구해 주는 짓을 한다.
당연한 이야기인데, 그런 짓을 하면 아웃. 승우는 졸라 안 돼요 스탬프를 꺼내서 리비의 이마에 연달아 세 번을 찍은 후 걷어차서 옆 차원으로 날려 버릴 게 뻔하다.
백강혁의 위험성을 한눈에 간파할 만큼 리비의 감은 매우 뛰어났다. 그 감이 승우에게 개수작을 부린다는 간단한 상상만으로 죽음의 공포를 느끼게 한다.
허튼짓은 집어치우자. 정당하게, 아주 정중하게 착한 일을 하자.
그럼 뭘 하지?
정중한, 정당한 착한 일이 뭔데?
오다가 본, 코인인가 뭔가 하다가 파산한 노숙자 아저씨한테 10억쯤 주면 되나?
곰곰이 생각하던 리비는 바로 지원군을 불렀다.
호출을 받고 나타난 것은 민이었다. 민이 주문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곤란하다는 듯한 얼굴을 했다.
리비가 생글생글 웃었다.
“빚 갚아야죠?”
“예. 갚아야죠.”
민은 리비에게 빚이 있다. 레벨 드레인 잼에 엮인 빚이다. 이래서 빚은 지면 안 돼, 라고 생각하며 민이 물었다.
“정리합시다. 착한 일을 해야 하는데, 착한 일의 기준을 모르겠다는 거군요.”
“네. 전혀 모르겠어요. 착한 일이 대체 뭐죠?”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도 명확하게 정의는 못 내립니다. 그도 그럴게…….”
“샤프슈터씨도 따지고 보면 저희 쪽 사람이었죠.”
“예. 그렇습니다.”
민 오키프는 따지고 보면 뒷세계의 사람이다. 암살, 전쟁, 첩보, 공작, 훈련으로 살아온 인생이다. 상식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어쭙잖게 학습으로 새겨진 상식으로 버티는 매일매일이다. 민이 자신 없게 말했다.
“예전이라면 어떻게 조언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요즘은 저도 자신이 없습니다.”
“왜요?”
“레벨 드레인 건으로 사고를 쳐서요. 제 상식이 상식인가, 라는 의문이 남았습니다.”
“그건 그냥 슈퍼스타씨랑 엮여서 그런 거 아닌가요? 그 사람이랑 엮이면 다 하찮아지는데.”
“그걸 떠나 그렇게 하기로 선택한 건 저 자신이니까요. 제가 멀쩡한 사람이라는 자신감을 잃은 겁니다. 그러니 소울이터님에게 제대로 상담을 할 수 있을 거란 보장이 없습니다.”
“그럼 누가 제대로 상담해 줄 수 있을 거 같은데요?”
민은 빠르게 근처의 사람을 떠올려 보았다. 백강혁의 이름을 제일 먼저 떠올리고, 광속으로 지웠다.
황지현, 황지현은 믿을 수 있지만, 그녀는 지금 죽을 만큼 바쁘다. 시장이 일을 떠넘기고 튀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하나의 일을 더 올려 주면 그녀는 폭발한다.
그녀는 어제 검색엔진에 ‘정치인을 죽이고 도망칠 법한 제3세계 국가 밀항’을 입력하고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 황지현은 안 건드리는 게 좋다. 차라리 탄약고에서 불꽃놀이나 하는 게 낫다.
“한유성이나 지부장님은 어떻습니까? 한유성은 제법 전문적인 박수무당이고, 지부장님은 경험도 많으며 매우 도덕적인 분이라 좋은 상담자가 될 겁니다.”
“나쁘지 않겠지만요, 상담이라는 건 자신의 치부를 남에게 보이는 일이잖아요? 저는 제 약점을 누군가에게 보이기 싫어요.”
“그럼 저는 왜 괜찮은 겁니까?”
“지금이 이 상담은 거래의 일부분이잖아요. 일방적으로 치부를 보이는 게 아니죠.”
“…….”
까다로운 인간이다.
민이 한숨을 내뱉었다.
“역시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럼 제 쪽에서 질문할 테니까 대답만 해 줘요. 승우 씨는 뭘 좋아해요?”
“호불호로 보자면 의외로 가리는 게 적으십니다. 싫어하는 걸 찾는 게 더 빠르겠네요.”
“그럼 뭘 싫어하죠?”
“부조리, 강압 정도일까요.”
“너무 막연한데요.”
“아. 어린이들을 아끼십니다. 특히 고아들을요.”
“거짓말하지 마요. 나도 고안데 하나도 안 아끼던데요.”
“이미 다 크셨잖습니까?”
“회춘 약이라도 만들어 먹어야 할까요?”
“될 거 같습니까?”
“안 되겠죠.”
회춘 약으로 어린애가 되는 것도 엄연하게 개수작에 들어간다.
테라의 신들이 낸 궁리와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과연 리비는 그들보다 머리가 좋았다. 해 봐야 소용없다는 걸 혼자서 바로 깨달았으니 지능이 두 배는 넘었다.
“헤헤. 그래도 대강 얼개가 나오네요. 상담 고마워요.”
“예? 지금 그걸로 무슨 답이 나오신 겁니까?”
“보면 몰라요?”
“모릅니다.”
“이런, 샤프슈터씨도 무르군요. 키워드는 다 나왔잖아요.”
인간 유승우.
싫어하는 것은 강압, 부조리.
그리고 아끼는 것은 고아들.
바로 각이 나오지 않는가?
* * *
“…….”
승우는 오랜만에 말문이 막혔다. 그런 승우에게 리비가 생글생글 웃으면서 참 잘했어요 스탬프를 찍을 티켓을 내밀었다.
참으로 당당하다. 아주 당당하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 당당하지?
이해가 안 되는 듯이 보니 리비가 으쓱거렸다.
“저 잘했죠?”
“…….”
“…이게 아니에요?”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승우가 살면서 본 최고의 미치광이는 테오였다. 테오의 성향은 트루 뉴트럴, 완전 중립이다.
녀석은 착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미치광이다. 이 중립 미치광이 다음의 미치광이는 백강혁이다.
백강혁은 선 성향이다. 설명하자면 아주 길지만 어쨌든 본질은 선하다. 선한 미치광이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놈은 혼돈- 악의 미치광이다. 악인데, 미치기도 했다.
그래서인가. 상상도 못 해 본 짓을 하고 선행이라고 우긴다.
리비가 입을 쭉 내밀었다.
“이게 딱 승우 씨 맞춤형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에요?”
“어째서 이게 내 맞춤형이라고 생각했지?”
“승우 씨는 아이들을 아끼죠.”
“그래. 그건 인정한다.”
테라의 신들도 한 방에 그걸 노리고 들이대더니만, 나란 놈도 제법 투명하구나. 승우가 자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리비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강압과 부조리를 싫어하지요.”
“좋아하는 사람이 이상하지 않냐.”
“보통은 강압과 부조리가 있어도 참아요. 힘이 없으니까요. 어쨌든 봐요. 승우 씨는 애를 좋아하고 강압과 부조리를 싫어해요. 그러니까 고아를 만들어 내는 사람을 싫어할 거예요.”
“그렇지. 그래서 내린 결론이.”
“네. 이거예요.”
리비는 민과의 상담이 끝나자마자 제트기를 탔다. 그리고 지구 반대편의 내전 국가로 쳐들어갔다.
거기서 한 줄로 피의 길을 만들며 반란군을 쓸고 갔고, 급기야는 반란군의 수괴를 잡아서 처형했다.
“하루에만 오십 명의 고아를 만드는, 고아 생성기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반란군 대장의 목을 베어 왔어요. 이건 충분히 참 잘했어요 스탬프 각이라고 보는데요!”
“…….”
승우가 눈을 가리고 장탄식을 내뱉었다. 테오, 백강혁에 이은 세 번째 미치광이는 확실히 타입이 다르다.
악 성향답게 피 냄새가 난다. 하지만 이게 참, 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리비가 환하게 웃으면서 들고 있는 저 콧수염 아저씨 머리. 머리에서부터 뚝뚝 떨어지는 악행 수치는 정말이지 엄청났다.
죽어도 싼 놈이다. 인간 세상에 어지간하면 관여를 안 하려고 하는 승우의 방침 탓에 직접 죽이지 않았을 뿐, 계기만 있었으면 승우도 죽일 법한 그런 나쁜 놈이었다.
나쁜 놈이 하나 줄었다.
그럼 이건 착한 일인가?
이걸 착한 일이라고 쳐 줘야 하나?
잠깐 생각한 승우가 대꾸했다.
“좋아. 참 잘했어요 스탬프를 주지.”
“얏호-!”
“하지만 앞으로는 사람을 죽이는 일로는 스탬프를 주지 않을 거야.”
“왜요?!”
이유는 여럿 있다. 하지만 그 이유의 대부분이 리비에게는 납득이 안 되는 이유겠지.
승우는 눈높이를 맞춰서 리비도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댔다.
“중복 선행 금지 규칙을 추가하지.”
“아. 반복 노가다 금지 규칙인가요. 그거라면 어쩔 수 없죠.”
극단적인 소시오 패스는 세상을 게임처럼 즐긴다고 한다. 게임을 예로 드니 리비도 바로 이해했다. 이해했으니 다행이다. 허튼짓하기 전에 족쇄도 채워야겠다.
“그냥 내가 시킨 일 해라.”
“에, 시킨 일만 하면 재미없는데.”
“일일 퀘스트라고 생각해.”
“일퀘? 좋죠! 뭐부터 할까요.”
바로 이해하고, 순응한다.
소시오 패스의 게임 감각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