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513)
괴식식당-513화(513/613)
513화. 맹견 훈련 (1)
해바라기는 테라에서도 해바라기다. 노란 꽃이 활짝 핀, 희망의 상징과도 같은 모습.
한국에서는 1~3m 정도로 자라지만 일조량이 좋은 나라에서는 12m까지 자란다.
리비가 동화책을 읽어 주는 해바라기꽃은 작아서 10㎝도 안 된다.
저리 작은 해바라기는 처음 봤다. 순간 미니어처라고 생각될 만큼 작고 귀여웠다. 서경수가 의아하게 보니 리비가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이에요.”
“오, 오랜만입니다.”
현장직인 리비와 사무직인 서경수의 사이는 데면데면하다. 별로 친한 사이도 아니고, 업무상 마주칠 일도 적다.
주혁진을 만날 때 리비가 경호원을 하니, 그때 보는 게 전부다. 그러니 별로 사교적인 교유는 없다만,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지금 뭐 하고 계시는지, 여쭈어 보아도 될까요?”
“안 될 건 없죠! 해바라기에게 동화책 읽어 주고 있어요!”
“…….”
아니, 그러니까 그걸 왜 하냐고. 어이가 없어서 보고 있으니, 대답이 은하 쪽에서 돌아왔다.
“해바라기는요.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면 자라요.”
“해바라기가?”
“네! 쑥쑥 자라요.”
내가 모르는 사이에 언제부터 그런 상식이 정착했지?
세계를 떠돌며 사람을 상대하다 보니 세간 사람들보다 상식이 뒤처졌나 보다.
아니, 그게 아니라 나를 두고 상식이 달린 것인가?
리비가 배시시 웃었다.
“은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인사를 나누고, 은하가 쪼르르 달려갔다. 나비와도 인사하고, 승우와도 인사하고 바로 손을 씻는다.
그러고는 뜨거운 물수건을 꺼내서 서경수에게 건넸다. 감사의 인사를 하고 손을 닦고 있으니 리비가 말했다.
“근데 걱정이 있어요. 해바라기가 너무 안 자라요. 책이 나빴던 걸까요? 어떻게 생각해요?”
“흠, 흠. 일단 봅시다. 그 해바라기는 혹시 이계 품종인가요?”
“맞아요! 테라라는 곳의 해바라기래요. 잘 크면 막 백 미터도 넘는다던데요!”
“아, 과연.”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면 자라는 해바라기는 어처구니가 없지만 이계 품종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
서경수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해바라기를 관찰했다. 그는 이런 식으로 무엇인가를 관찰하고, 조언을 주는 일을 업으로 삼은 자다. 냉철한 이성과 풍부한 경험은 그의 가장 큰 자산이다.
좋은 이야기를 들으면 자라는 해바라기. 그렇다면 좋은 이야기란 무엇인가. 확고한 개연성? 멋진 스토리텔링? 눈물샘을 자극하는 감수성? 보는 자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유쾌함?
정답은 없다. 좋은 이야기의 기준은 각양각색이다.
백 명이 있으면 백 개가 있다. 서경수의 취향으로 말하자면 노스텔지어를 자극하는 종류의 이야기, 이제는 제일 흔한 장르가 되어 버린 대재앙 이전의 이야기다.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이야기라고 해도 해바라기가 좋아하진 않을 겁니다. 그렇죠?”
“그렇겠죠?”
“그렇다면 몇 가지 짚이는 게 있습니다. 그 동화책 잠시만 빌려 주십시오.”
“여기요.”
동화책을 받은 서경수가 동화책을 읽었다.
비 오는 어느 날, 자식이 먹을 먹이를 구하려고 밖에 나갔다가 죽은 어미 고양이. 그 어미 고양이를 그리워하는 아기 고양이의 이야기다. 감수성을 자극하는 종류의, 눈물샘을 창으로 쿡쿡 찌르는 구성에 서경수의 눈에 살짝 물기가 어렸다.
‘어머니가 생각나는군.’
이야기의 구성은 나쁘지 않고, 짜임도 좋다. 그리 판단한 서경수가 천천히 책을 낭독했다.
움찔, 움찔, 하고 해바라기가 반응하더니만 몇 초 만에 쑥 하고 두 배는 커졌다.
“엥!? 이렇게 쉽게요?”
“아, 과연. 간단하네요.”
“간단해요?! 내가 한 시간을 읽어 줘도 안 자라던데!”
“한 시간이나…….”
“그래서 사기 친 줄 알았는데요!”
“한 시간이면 그렇게 느낄 수도 있지요.”
서경수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안 자라겠지.
안 자랄 수밖에 없다.
그의 시선이 힐끔, 창가에서 책을 읽는 승우를 보았다. 서경수는 단번에 승우의 의도를 읽었다.
의도를 읽었으니, 리비에게 진실을 말해 줘도 되나 하는 의문도 들었다. 하지만 승우는 딱히 막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럼 말해 줘도 되겠지. 헛기침하고는 서경수가 말을 이었다.
“이 해바라기는 좋은 이야기를 듣고 자라는 게 아닙니다. 해바라기가 귀가 있겠습니까? 없는데 무슨 소리를 듣겠습니까.”
“그렇게 상식적으로 나와도 곤란해요. 진지하게 책 읽어 주던 제가 뭐가 되나요.”
서경수가 보아 온 바로는 강한 헌터일수록 상식이 없다. 상식이라는 게 대재앙 이후로는 상식이 아니게 된 게 워낙 많기 때문이다. 리비 또한 그런 상식이 부족한 사람이라 해바라기가 좋은 이야기를 듣고 자란다고 철석같이 믿어 버린 거겠지.
“이 해바라기는 좋은 이야기를 듣고 성장하는 게 아닙니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화자의 고양된 감정을 먹는 모양입니다.”
“아, 아. 아아아-!”
이렇게 말하니 리비도 단번에 알았다. 인간의 감정은 많은 현상을 일으킨다.
파동은 인간이 관측하는 걸로 모습을 바꾸고, 마나는 인간의 감정으로 색을 바꾼다.
이 해바라기는 좋은 책을 읽고 생기는 감정의 변화. 요컨대 감동, 흥분, 쾌감, 애수를 양분으로 삼아 크는 녀석이다.
“그러니까 이 해바라기는 공포를 먹고 강해지는 할로우 나이트 같은 거군요.”
“예시가 살벌하지만, 이론 자체는 다르지 않습니다.”
“이거 키우는 거 힘들겠네요.”
적대자의 공포를 먹어 점차 강해지고, 성장하는 죽음의 기사 할로우 나이트.
할로우 나이트는 리비에겐 그냥 간식거리였다.
그도 그럴 것이 리비는 공포를 거의 모른다. 지금껏 공포를 느껴본 건 볼코프와 승우를 볼 때뿐이었다.
죽음의 기사?
안 무섭다니까?
리비에게 감정을 먹어서 강해지는 몬스터는 적수가 안 된다.
같은 이유로 이 해바라기도 마찬가지다. 이 해바라기를 키우려면 감수성이 좋아야 한다.
“저한테, 감수성이요? 그런 거 없어요. 있을 리가 없죠.”
그러니 서경수도 가능하고, 나비도 가능하고, 영식이도 가능하고, 백강혁도 가능하며 하다못해 쌀집 아저씨와 한유성도 가능한데 리비는 키울 수 없다!
“우으으으으으으으.”
리비가 낮게 신음하며 승우를 보았다. 저 심술쟁이가 또 심술을 부린다. 일일 퀘스트를 죄다 깨 버리니까, 설마 이런 심술을 부릴 줄이야. 히죽 올라가는 입꼬리가 얄밉다. 더 얄밉게 승우가 말했다.
“정답입니다. 그렇게 바로 정답을 가르쳐 주시면 어떻게 합니까.”
“하하하, 죄송하게 됐습니다.”
별로 질책하는 투는 아니다.
일어나서 인사를 마친 승우가 물어보았다.
“은하가 맛있는 거 먹자고 성화를 부리는 걸 보니, 오늘은 시간이 조금 있으신가 보군요.”
“혹시 폐가 될까요?”
“먹어 주는 입이 많으면 요리사는 기쁘지요. 다만 오늘 점심은 해바라기가 필요한데 말입니다.”
둘의 시선이 리비의 등에 박혔다. 해바라기가 필요한데, 해바라기가 안 자라나네. 질타의 시선이다. 리비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차라리 해바라기 괴물을 불러 줘요. 단번에 죽여 줄 테니까요. 해바라기의 신이라도 괜찮아요. 흥.”
툴툴거리는 게 애 같다. 서경수가 감탄했다.
‘교육자 출신이라더니, 정말 교육자답군.’
저 해바라기를 키우려면 감수성과 공감성이 필요하다. 감수성과 공감성의 결여는 리비를 사이코패스로 만드는 요소다.
그도 그럴 것이 사이코패스가 달리 사이코패스인가. 자신의 아픔은 알지만, 그 아픔을 타인에게 공감할 수 없으니 사이코패스다.
‘이건 조교구만.’
승우가 저 해바라기 키우기를 시키는 이유는 간단하다. 일일 퀘스트라는 형식으로, 게임으로서 리비에게 해바라기 키우기를 제시하고, 부족한 감수성과 공감성을 채우려는 의도다.
그것은 사나운 맹견의 목에 정면으로 뛰어들어 목줄을 거는 행위다. 다른 사람이 이걸 흉내 내려고 했다면 단번에 맹견에게 물려 죽고 말았을 테지. 천하의 주혁진조차도 시도하지 않은 일이다.
“우씨. 내가 못 할 거 같아요?”
“응. 힘내. 힘들겠지만.”
“으으으으아아아! 짜증 나요!”
도발적인 언행으로 리비의 승부욕도 자극한다.
그것은 마치 로데오!
성난 황소를 조련하는 초일류 투우사. 마타도르의 공연과도 같다.
‘이 사람 맹수 잘 키울 거 같아.’
서경수가 다시 한번 감탄하며 보고 있으니, 승우가 말했다.
“아무래도 오늘 내로는 힘들 거 같으니, 해바라기는 빼고 다른 걸 먹어 봅시다. 혹시 멸치나 정어리 좋아하시나요?”
“없어서 못 먹죠. 제 꿈이 바다 사나이였습니다.”
“그래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승우가 주방에 들어섰다.
* * *
함시(χάμψι, hamsi)라는 생선이 있다. 한국에서는 유럽 멸치, 흔히 안초비라고 불리는 생선이다.
승우에게 이 함시라는 생선은 주로 젓갈로 활용되는 매력 없는 녀석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함시를 조리하는 법은 테라에선 오로지 젓갈 하나다. 다른 방식으로는 승우도 먹어 본 적이 없었다.
만남은 언제나 갑작스럽다고 하던가. 언제나처럼 괴식 스트리트를 돌아다니며 점검을 하던 때였다.
터키에서 온 괴식 수련자가 점심을 대접하겠다고 하는 게 아닌가.
남의 호의는 언제나 받는다. 승우는 흔쾌히 그와 같이 점심을 먹었고, 그때 그 사람이 제공한 게 바로 함시였다.
터키 전통음식, 함시 타바.
이름도 알고 있고, 존재도 알고 있으나 먹어 본 적은 없다. 굳이 찾아가서 먹어봐야 할 만큼 매력적인 요리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먹자마자 승우는 이 요리에 흠뻑 빠져 버렸다.
소박하고 간단한 요리법임에도 불구하고 맛있다, 무지막지하게 맛있다. 깜짝 놀랄 만큼 맛있어서 돌아오자마자 영식이와 나비, 은하에게도 해 주었고 호평을 받았다.
특히 나비는 아주 마음에 들어서 함시라는 이야기만 하면 눈을 빛낸다.
“애옹. 애옹. 함시애옹. 츄릅애옹.”
빵을 만들면서도 힐끔힐끔 주방을 본다. 동공이 좁혀질 대로 좁혀져 있다.
먹이를 노리는 고양이의 눈이다. 줄줄 흐르는 침을 몇 번이나 삼킨다. 승우는 씩 웃으면서 함시를 손질했다.
함시는 승우의 엄지손가락만 한 굵기를 가졌고, 전체 크기는 그 2배쯤 되는 청어목 멸치과의 생선이다. 생김새는 멸치처럼 생겼다.
생선의 머리는 괴식에서는 중요하게 치는 부위지만, 지금은 괴식이 아니니까 필요 없다.
머리를 따고, 내장을 긁어낸다. 깔끔하게 세척하고 소금으로 간을 한다. 소금은 조금 많이, 짜다! 하고 느끼기 바로 직전쯤이 좋다.
적절한 소금 간, 그 후에는 밀가루 2, 옥수수가루 8을 배합한 튀김옷을 입혔다.
그리고 잘 데워진 튀김 냄비에 넣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함시가 튀겨진다. 함시가 다 튀겨지는 데는 5분이 걸린다.
그 사이에 승우는 몇 가지 반찬을 준비하고, 특제 소스를 준비했다.
레몬즙 1, 간장 5, 미림 1, 엘릭서 3의 비율로 섞는다. 레몬은 새콤함을. 간장은 감칠맛을. 미림은 달콤함을. 엘릭서는 느끼함을 훌훌 날려 버릴 청량감을 준다.
매콤함을 더해 줄 반찬은 고추잎 나물 무침이다. 고추의 잎은 고추답게 매운맛을 간직하고 있다.
그걸 소금 간만 해서 참기름으로 버무리면 매콤하면서도 고소한 나물이 된다.
그날 먹을 음식은 그날 만든다. 뚝딱뚝딱 승우가 반찬을 만들어 내는 걸 보니 감탄만 나온다.
5분이 갓 지났을까.
“다했다. 먹자.”
승우가 그렇게 말했고.
“어? 조금 자랐어요!”
리비가 이렇게 말했다.
“어? 자랐다고?”
“어? 벌써 밥이에요?”
둘이 서로를 보았다.